가격 공세 속도 붙은 中 반도체 웨이퍼, 美 규제 뚫고 공급난 반복되는 시장 구조 흔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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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6인치 SiC 웨이퍼, 8인치 전환·정부 자립 정책 속 가격 급락 수급난 이어지는 글로벌 웨이퍼 공급망, 수요 성장세 대응 취약 中 웨이퍼 가격 우위 지속될 시 시장 판도 변화 전망

중국산 6인치(150mm) 실리콘 카바이드(SiC) 반도체 웨이퍼 가격이 빠르게 하락하고 있다. △장비 감가상각 완료 △8인치(200mm) 웨이퍼 전환 △정부의 웨이퍼 자립 정책 등이 맞물리며 하방 압력이 가중된 것이다. 시장에서는 향후 이 같은 가격 내림세가 지속될 경우, 한국·일본·대만의 소수 기업 중심으로 움직이며 반복적인 수급난을 겪던 글로벌 웨이퍼 공급망에 '지각변동'이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中 SiC 웨이퍼 가격 하락세
4일(현지시각) 대만 매체 디지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최근 중국산 6인치 SiC 웨이퍼 일부 물량의 기준 스팟 가격(시장 거래가)은 1장당 200~300달러(약 30만~45만원) 수준까지 급락했다. 중국 업체들의 동일 사양 제품이 대체로 400~500달러(약 62만~77만원) 안팎에 거래돼 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파격적인 할인 폭이다. 사실상 제조 원가 이하에서 '물량 밀어내기'가 시작된 것이다. 이는 장비 감가상각이 완료되며 가격 인하 여력이 확보된 결과다. 산둥천열, 천과람, 통광, 삼안광전 등 중국 주요 웨이퍼 기업의 6인치 생산 라인은 약 10년간 지속돼 온 투자를 통해 회계상 설비투자 부담이 상당 부분 해소된 상태다.
차세대 8인치 웨이퍼 전환 압박도 하락세를 견인했다. 현재 SiC 웨이퍼 시장은 여전히 6인치 제품이 주력이나, 웨이퍼 제조 업체들은 생산 효율과 원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8인치 양산 체제로의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중국 웨이퍼 기업들 역시 8인치 생산라인을 잇달아 가동하거나 양산 준비에 착수한 상태다. 이 같은 과도기 속 중국이 공격적으로 생산 역량을 확대해 온 6인치 웨이퍼는 공급 과잉 국면에 직면했고, 기업들은 단기 수익성 악화를 감수하고 누적된 6인치 재고를 저가로 판매하며 시장 점유율을 유지 중이다.
중국 정부의 반도체 자립 의지 역시 가격 변동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최근 중국은 핵심 반도체 소재의 국산화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지난달 닛케이아시아는 복수의 익명 소식통을 인용해 "중국이 올해 자국 반도체 제조사들이 사용하는 실리콘 웨이퍼의 70% 이상을 중국산으로 충당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현지 업체들은 이러한 정부 기조에 발맞춰 공격적으로 증설에 나섰으나, 생산 역량 확대 속도가 실수요를 웃돌면서 시장 균형이 깨졌다. 가동률 유지와 시장 점유율 확대를 위해서는 가격을 인하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글로벌 웨이퍼 공급망의 한계
시장은 이러한 상황이 글로벌 웨이퍼 공급망에서 어떤 변화를 이끌어낼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금까지 웨이퍼 공급망은 업황에 따라 수급이 쉽게 불안정해지는 경향을 보여 왔다. 대표적인 전례가 2022년 반도체 공급 대란이다. 2022년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전 세계적으로 PC·서버·자동차용 반도체 수요가 급증한 시기였는데, 주요 반도체 업체들의 공급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전 세계적인 칩 부족 현상이 발생했다. 반도체의 핵심 소재인 웨이퍼 수급도 빠르게 경색됐다. 당시 업계에서는 12인치(300mm) 실리콘 웨이퍼를 중심으로 공급 부족이 수년간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쏟아져 나왔으며, 웨이퍼 가격 역시 가파르게 상승했다.
이 같은 문제는 최근 인공지능(AI) 열풍 속에서 재차 반복되고 있다. 그래픽처리장치(GPU), 고대역폭메모리(HBM), 첨단 로직 반도체 등의 생산이 급증함에 따라 웨이퍼 수요 역시 순식간에 불어난 것이다. 이에 따라 AI 공급망 곳곳에서는 이미 병목 현상이 나타나는 추세다. TSMC의 웨이저자 회장은 지난해 반도체 업계 행사에서 "AI용 첨단 공정 생산 능력이 고객 수요의 약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며 "여전히 웨이퍼가 부족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인텔도 최근 실적 발표에서 데이터센터용 AI 제품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웨이퍼 생산 능력을 우선 배정 중이라고 밝혔으며, 일부 제품군은 공급 제약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역시 최근의 메모리 공급난이 웨이퍼 공급 부족에서 기인했다고 진단했다. 최 회장은 지난 3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엔비디아 연례 개발자 회의 ‘GTC 2026’에서 기자들과 만나 “HBM은 웨이퍼를 많이 써야 한다”며 “공급 부족은 웨이퍼 부족에서 비롯되지만, 웨이퍼를 단기간에 갑자기 늘리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더 많은 웨이퍼를 확보하려면 최소 4, 5년이 걸리므로 2030년까지 전 세계 웨이퍼 공급 부족이 20% 이상 지속될 것”이라며 “전력, 건설 능력, 용수 등 여러 자원이 부족해 공급 확대에 한계가 있다”고 강조했다.

中 참전, 시장 경쟁 주요 변수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웨이퍼 공급망의 수급 한계에 미국의 대(對)중국 반도체 규제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정부는 중국의 반도체 자립이 자국의 국가 안보 및 산업 경쟁력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첨단 반도체를 넘어 범용 반도체·핵심 소재 분야에 대해서도 견제를 확대해 왔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해 중국 정부의 반도체 산업 지원 정책이 시장을 왜곡하고 있다며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하기도 했다. 조사 대상에는 실리콘 웨이퍼, SiC 웨이퍼 등도 포함됐다.
이러한 미국의 통제 속에서 글로벌 웨이퍼 시장은 소수 기업 중심의 공급 구조를 유지해 왔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현재 웨이퍼 생산 능력의 대부분은 일본 신에츠화학과 SUMCO, 대만 글로벌웨이퍼스, 한국 SK실트론 등이 점유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 업계 관계자는 "웨이퍼 시장은 생산 설비 증설에 수년이 소요되는 데다 신규 업체의 진입도 제한적"이라며 "저가 물량을 대거 공급할 수 있는 중국의 시장 진입이 제한된 이상, 수요가 급증할 때마다 공급 부족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짚었다.
다만 앞으로도 중국 웨이퍼 업체들의 공격적인 가격 인하 기조가 이어진다면 이러한 기존 시장 구조에도 균열이 생길 것으로 전망된다. 웨이퍼는 기본적으로 품질 검증과 고객사 인증이 중요한 산업이지만, 가격 격차가 벌어지면 고객사들의 조달 전략 역시 변화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글로벌 반도체 업계 핵심 플레이어인 한국 시장에서는 이미 수년 전부터 중국산 웨이퍼의 침투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전자부품 전문 매체 디일렉이 관세청 무역통계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한국의 중국산 웨이퍼 수입액은 2020년 약 4억2,400만 달러(약 6,550억원)에서 2022년 약 7억7,700만 달러(약 1조1,900억원)로 급증했다. 2023년 1월에는 중국산 웨이퍼 수입액이 7,488만 달러(약 1,150억원)로 일본산 웨이퍼 수입액(7,770만 달러)에 육박하기도 했다. 당시 한국에 유입된 중국산 물량은 6인치·8인치 실리콘 웨이퍼 중심의 저가 제품이 대부분이었지만, 기존 주요 공급국 제품과 중국 제품의 가격 차이가 커질수록 범용 제품군 전반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