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병 무산에도 협력은 계속” 日 혼다·닛산, 부품사까지 묶어 SDV 승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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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다·닛산, 차세대 자동차 기술 공유 부품사까지 아우른 공동 개발·표준화 확대 SDV 시대 눈앞, 규모의 경제 확보로 경쟁력 제고

경영 통합 계획이 무산된 혼다와 닛산자동차가 차세대 자동차 시장의 패권을 쥐기 위해 산하 핵심 부품 자회사들까지 동원하는 기술 연대에 나섰다. 합병에는 실패했지만 차세대 자동차 개발에 필요한 막대한 투자 부담이 협력 필요성을 다시 키우면서 공동 개발과 부품 표준화로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양상이다.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진화하는 자동차 산업에서 개발 비용을 줄이고 경쟁력을 높여, 앞서가는 미국과 중국 업체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혼다·닛산, 차세대 차량 핵심 부품 공동화 추진
10일 교도통신에 따르면, 혼다의 관련 회사인 아스테모(Astemo)와 닛산자동차의 자회사인 자트코(JATCO)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차세대 차량 공동 개발을 위한 협의에 착수했다. 아스테모는 조만간 혼다가 출자 비율을 61%로 높여 공식 자회사로 편입할 예정이며, 자트코는 닛산이 75%의 지분을 보유한 핵심 부품 공급사다. 양사는 자율주행 기능 등을 가상 디지털 공간에서 시뮬레이션하고 분석하는 첨단 기술을 공동으로 연구개발(R&D)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혼다와 닛산 본사 역시 올여름 최종 합의를 목표로 광범위한 협업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양사는 차세대 차량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SDV)’의 전자제어장치(ECU) 공통화를 심도 있게 검토 중이다. 막대한 자본과 시간이 소요되는 개발 분야만큼은 산하 기업들까지 포함해 결속력을 한층 강화하는 실용주의 노선을 택한 것으로 분석된다.
SDV는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하거나 자율주행·지도 애플리케이션 등 기능을 인터넷으로 추가해 성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차세대 차량이다. 인터넷을 통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와 자율주행, 차량 정보 시스템 등의 기능 추가가 가능해 향후 선진국 자동차 시장의 주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ECU는 SDV의 ‘두뇌’ 역할을 하는 핵심 장치다. 여러 반도체와 전자 부품으로 구성돼 전기 신호를 통해 차량 전체 기능을 제어한다.
기존 자동차는 엔진·브레이크 등 기능별로 수십 개에서 100개 수준의 ECU를 탑재하지만, SDV에서는 다양한 기능 업데이트를 통합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고성능 ECU가 필수다. 그러나 SDV용 ECU 개발은 설계 난도가 높고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다. 양사는 부품 공통화를 통해 규모의 경제 효과를 확보하고 개발 부담을 낮춰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양사는 ECU뿐 아니라 SDV의 기반이 되는 차량용 운영체제(OS) 공통화도 검토하고 있다. 닛산이 지분 26%를 보유한 미쓰비시자동차에도 공동 개발 부품을 공급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세기의 통합' 꿈꿨지만 합병 결렬
당초 혼다와 닛산은 합병 협의를 해왔으나, 지난해 2월 정식으로 관련 협의를 중단하기로 하면서 무산됐다. 앞서 양사는 지주회사를 2026년 8월에 설립하고 양사가 지주회사의 자회사가 되는 방향으로 경영을 통합하는 협의를 시작한다고 2024년 12월 23일 발표했다. 이러한 구상이 실현되면 2023년 판매량 기준으로 현대차그룹을 제치고 세계 3위 자동차 업체가 탄생한다는 점에서 '세기의 통합'으로 평가받았다. 양사가 합병할 경우 닛산이 최대 주주인 미쓰비시자동차도 합류할 수 있다는 견해가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혼다와 닛산은 협의 과정에서 큰 진통을 겪었다. 업계에 따르면 협상은 출발 단계부터 양사의 현격한 기업가치와 재무 여건 차이에 직면한 것으로 알려졌다. 혼다는 닛산보다 높은 시가총액과 안정적인 현금 창출력을 보유한 만큼 통합 법인의 경영권을 확보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닛산은 공동 지주회사 아래에서 일정 수준의 대등성을 보장받기를 원했으나, 혼다 내부에서는 경영 정상화가 지연된 닛산과 권한을 균등하게 배분하는 구조에 대한 거부감이 확산됐다.
닛산의 구조조정 속도도 핵심 쟁점으로 부상했다. 로이터통신은 혼다가 닛산에 인력 감축과 생산능력 축소, 공장 폐쇄를 포함한 강도 높은 자구책을 요구했지만 닛산이 정치·노사 부담이 큰 생산 거점 정리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전했다. 실적 악화가 심화되는 동안에도 닛산이 대등한 통합 조건을 고수하자 혼다 측의 불신이 증폭됐다는 설명이다. 이후 혼다는 협상 후반부에 공동 지주회사 구상을 수정해 닛산을 주식교환 방식의 자회사로 편입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혼다 경영진은 신속한 의사결정과 구조조정 집행을 위해 지배권이 명확한 체계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으나, 닛산 이사회는 독립성과 브랜드 존속에 관한 불확실성을 이유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양사는 지난해 2월 통합 검토를 종료했고, 이에 따라 미쓰비시자동차를 포함한 3사 통합 구상도 함께 폐기됐다.

적자 속 커진 기술 협력 필요성
양사의 통합 결렬은 기업 문화 차이만으로 설명하긴 어렵다. 혼다는 닛산의 의사결정 체계와 구조개혁 실행력을 문제 삼았고, 닛산은 혼다가 제시한 종속적 지배구조를 수용할 경우 독자적인 회생 전략이 훼손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양측 모두 기술 협력의 필요성에는 동의했지만, 비용 부담과 경영권 배분을 하나의 자본 관계로 묶는 과정에서 이해관계 조정에 실패한 셈이다.
통합 협상 당시 재무적 우위에 있던 혼다의 경영 환경도 빠르게 악화했다. 혼다는 2025회계연도에 4,239억 엔(약 3조9,500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하며 1957년 상장 이후 처음으로 연간 적자를 냈다. 전기차 수요 둔화에 대응해 북미 전기차 사업과 관련 자산을 재검토하면서 대규모 손상·구조개편 비용이 발생한 영향이다. 혼다는 전기차 전용 생산시설과 배터리 투자, 신규 플랫폼 개발 계획을 공격적으로 확대해 왔으나, 시장 성장 속도가 예상에 미치지 못하면서 투자 회수 일정이 흔들렸다. 중국에서는 현지 전기차 업체들의 가격 경쟁과 제품 출시 주기가 급격히 빨라졌고, 북미에서는 정책 변화와 충전 인프라 제약으로 수요 불확실성이 커졌다.
닛산의 경영 사정은 더욱 긴박하다. 닛산은 2024회계연도에 6,709억 엔(약 6조2,500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한 뒤 공장 7곳 폐쇄와 인력 2만 명 감축, 글로벌 생산능력 축소를 포함한 ‘리:닛산’ 계획을 가동했다. 2025회계연도에는 영업이익 580억 엔(약 5,400억원)을 확보했지만 구조조정 비용과 공장 폐쇄 관련 손실 등으로 5,331억 엔(약 4조9,600억원)의 순손실을 냈다.
양사 모두 적자를 냈지만 발생 배경에는 차이가 있다. 닛산은 판매 부진과 과잉 생산능력, 노후화한 제품군이 수익성을 압박했고, 혼다는 전기차 투자 계획을 수정하는 과정에서 대규모 회계 비용을 반영했다. 다만 두 회사 모두 전동화와 SDV에 필요한 투자 재원을 독자적으로 조달하면서 기존 사업의 수익성까지 방어해야 한다는 공통 과제를 안게 됐다. 합병 결렬 이후에도 양사가 협력 채널을 폐쇄하지 않은 이유다. 혼다에는 개발비 분산과 조달 규모 확대가 필요하고, 닛산에는 현금 지출을 억제하면서 차세대 기술 개발을 지속할 수 있는 파트너가 필요하다. 자본 통합을 둘러싼 정치적 부담은 컸지만, 공동 개발을 통한 비용 절감의 경제적 유인은 양사의 실적 악화와 함께 더욱 선명해진 것이다.
혼다와 닛산은 경영 통합 협상 이전인 2024년 3월부터 전동화와 차량 지능화 분야의 전략적 제휴를 논의해 왔다. 같은 해 8월에는 차세대 SDV 플랫폼의 기반 기술을 공동 연구하기로 합의하고 배터리 규격, 전기 구동계, 충전·에너지 서비스 등의 협력 가능성을 검토했다. 이 같은 협력 논의는 최근 ECU와 차량용 OS, 핵심 전장 부품의 공동 개발 및 표준화 논의로 구체화하는 양상이다. 개발비 부담이 큰 영역부터 협력 범위를 넓혀가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특히 양사가 현재 추진 중인 부품 공동 조달의 효과는 생산 규모가 커질수록 확대된다. 혼다와 닛산, 미쓰비시자동차가 동일 계열의 ECU와 반도체를 사용하면 공급업체와의 가격 협상력이 높아지고, 개별 차종마다 별도 부품을 설계하면서 발생하던 인증·검증 비용도 줄어든다. 공급망 교란이 발생했을 때 호환 부품을 투입할 수 있는 여지가 커진다는 점도 재고 부담과 생산 중단 위험을 낮추는 요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