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외시장서 오픈AI 제친 앤트로픽 몸값, 중국 AI 공세 속 커지는 ‘고평가 경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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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외시장 기업가치 1조2,000억 달러 돌파 실제 모델 시장은 중국 AI 중심으로 재편 기업가치와 시장 경쟁력 간 괴리 확대

미국 인공지능(AI) 스타트업 앤트로픽의 장외시장 기업 가치가 오픈AI를 넘어섰다. 기업공개(IPO) 이후의 추가 상승을 기대한 투자 수요가 몰린 결과지만, 특수목적법인(SPV·Special Purpose Vehicle)을 통한 우회 거래가 상당한 만큼 장외 평가액을 실제 기업 가치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AI 모델 시장에서는 저렴한 중국산 모델의 약진으로 클로드(Claude) 계열의 사용 비중이 빠르게 줄고 있다. 이에 앤트로픽은 스타트업 대상 무료 토큰 공급을 확대하는 등 고객 선점에 나섰지만, 막대한 연산 비용 탓에 가격 경쟁력과 수익성을 동시에 확보해야 하는 부담도 함께 커지는 양상이다.
상장도 전에 ‘품귀 현상’
12일(현지시간) 미국 경제 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에 따르면, 앤트로픽은 장외시장 플랫폼 캡라이트(Caplight)에서 기업 가치 1조2,000억 달러(약 1,800조원)를 기준으로 거래되고 있다. 이는 지난 5월 시리즈 H 투자 유치 당시 평가받은 9,650억 달러(약 1,450조원)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캡라이트 플랫폼 기준으로 오픈AI의 기업 가치는 9,080억 달러(약 1,365조원)로, 앤트로픽 시장 가치가 오픈AI를 앞선다. 하비에르 아발로스 캡라이트 최고경영자(CEO)는 "앤트로픽은 벤처 세컨더리 시장 역사상 가장 많은 수요가 몰린 기업"이라고 말했다.
장외거래 중개사 레인메이커 증권의 글렌 앤더슨 CEO도 앤트로픽 주식이 1조2,000억 달러를 기준으로 거래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가격이 그렇게 높게 형성됐는데도 팔겠다는 사람이 거의 없다”며 “내가 가진 매수 대기 주문을 모두 체결할 수 있었다면 지금 인터뷰가 아니라 해변에 가 있었을 것”이라고 현 시장 분위기를 설명했다. 실제로 일부 투자자들은 자신이 보유한 집을 앤트로픽 주식과 맞바꾸자는 제안을 할 정도로 매수 열기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에서는 이 같은 ‘매도 실종’ 현상이 앤트로픽의 IPO가 임박했다는 관측과 맞물려, 상장 후 추가 상승 기대가 커졌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최근 매출이 급증하고 있는 점도 고평가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꼽힌다. 앤트로픽은 올해 2분기 매출이 전 분기보다 130% 증가한 109억 달러(약 16조4,000억원)에 이르고, 창사 이후 첫 분기 영업이익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초기 투자사인 멘로 벤처스의 맷 머피 파트너는 이 같은 장외 평가액에 선을 그었다. 그는 장외시장에서 형성되는 가격을 “잡음이 많은 신호”라고 표현하며, 과열된 시장 심리가 반영된 일시적 현상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SPV 통한 우회투자, 높은 수수료·의결권 부재·무효 가능성 등 위험
또한 시장에서는 이와 같은 장외 거래 가운데 상당수가 SPV를 통한 우회 거래 형태라는 점에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SPV는 여러 투자자의 자금을 하나의 법인에 모아 비상장주식을 취득하는 투자 기구다. 투자자는 SPV 지분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앤트로픽 주가 변동에 참여하지만, 실제 주주는 SPV가 된다. 앤트로픽의 주주명부에는 SPV 한 곳만 등재되고, 개별 투자자는 SPV 운용사와 체결한 계약을 토대로 배당이나 매각대금을 분배받는다. 발행사 입장에서는 주주 수의 급증을 억제할 수 있고, 투자자는 소액으로 희소한 비상장주식에 접근할 수 있어 후기 단계 스타트업 거래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다.
단, 투자자가 확보하는 권리는 SPV와 체결한 계약에 따라 결정된다. 의결권과 주식 처분 권한, 상장 이후 지분 배분 시점도 SPV 운용사가 관리한다. 여러 단계의 SPV가 연결된 구조에서는 수수료가 중첩되거나 권리관계가 복잡해질 수 있어, 장외시장에서 형성된 가격이 투자자의 실제 수익으로 그대로 이어진다고 보기 어렵다. 발행사의 승인 여부도 중요한 변수다. 앤트로픽은 최근 이사회 승인을 거치지 않은 주식 이전이나 주식 관련 권리 거래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역시 비상장주식은 발행 계약과 증권법에 따라 양도가 제한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거래가 성사됐더라도 발행사의 승인을 받지 못하면 계약상 권리만 보유하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다.
물론 비상장 주식 거래를 구현할 기술적 기반이 없는 것은 아니다. 씨티그룹은 지난달 비상장기업 주식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토큰화 예탁증서를 발행하고 직접 수탁하는 서비스를 공개했다. 씨티가 실제 주식을 보관한 뒤 이에 상응하는 디지털 예탁증서를 발행하고, 투자자는 기존 자산관리 플랫폼이나 디지털 시장 인프라에서 해당 증서를 거래하는 방식이다. 블록체인에 소유권 이전 기록을 남기면 결제와 명의 변경 과정을 단축할 수 있고, 여러 중개업체를 거치는 기존 SPV 거래보다 보유 관계와 수수료 체계를 명확하게 설계할 여지도 생긴다. 다만 공식 거래소를 거치지 않는 거래인 만큼 발행사의 승인과 투자자 권리 보호, 증권 규제 등 제도적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는 평가다.

중국 AI 모델로 이동하는 수요, 고객 확보 경쟁 속 커지는 출혈 부담
게다가 거래 기반이 정비되더라도 앤트로픽의 장외 평가액을 실제 사업 성과가 뒷받침할 수 있는지는 별도의 검증이 필요하다. 블룸버그가 AI 모델 중개 플랫폼 오픈라우터(OpenRouter)의 개발자 사용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지난달 말 기준 미국 AI 기업들의 토큰 처리 비중은 20%까지 낮아졌다. 반면 중국 AI 기업들의 비중은 80%까지 확대되며 시장 주도권이 이동하는 양상을 보였다. 전년 동월 미국 기업들의 점유율이 74%에 달했던 점을 감안하면 불과 1년 만에 개발자들의 모델 선택 기준이 크게 바뀐 셈이다.
앤트로픽 역시 이러한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다. 오픈라우터 집계 기준으로 클로드 계열 모델의 토큰 사용 비중은 지난해 약 29%에서 지난달 말 13.3%로 축소됐다. 반면 같은 기간 딥시크(DeepSeek), 알리바바 큐원(Qwen), 즈푸AI(GLM), 문샷AI(Kimi) 등 중국계 AI 모델은 사용량을 빠르게 늘리며 개발자 생태계에서 존재감을 키웠다. 장외시장에서 앤트로픽 지분을 확보하려는 주문이 집중되는 동안 실제 모델 시장에서는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 기업으로 수요가 분산되고 있는 것이다.
수요 이탈이 가시화되자 앤트로픽은 유망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무료 토큰 공급을 대폭 확대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앤트로픽은 최근 세계 최대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와이콤비네이터(YC) 참여 기업에 제공하는 무료 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API) 크레딧 한도를 기존 3만 달러(약 4,500만원)에서 최대 50만 달러(약 7억5,000만원)로 높였다. 별도의 지분 취득 조건도 붙이지 않았다. 앞서 오픈AI가 YC 소속 169개 스타트업에 최대 200만 달러(약 30억1,000만원) 상당의 크레딧을 제시하자 지원 규모를 즉각 확대한 것으로, 개발 초기 단계부터 클로드를 채택하도록 유도해 장기 고객을 확보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스타트업 고객 선점이 중요한 이유는 생성형 AI 서비스의 개발 구조에 있다. 기업이 특정 모델을 기반으로 애플리케이션을 구축하면 프롬프트와 데이터 처리 체계, 에이전트 구성, 내부 평가 기준도 해당 모델에 맞춰 설계된다. 이후 다른 모델로 교체하려면 기존 시스템을 다시 조정하고 성능과 안정성을 검증해야 해 전환 비용이 발생한다. 앤트로픽은 무료 사용 기간에 개발사의 서비스와 클로드를 긴밀하게 결합한 뒤 크레딧이 소진되면 표준 API 요금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유료 고객 전환을 노리고 있다. 실제 앤트로픽의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도 무료 크레딧 종료 후 별도의 이전 절차 없이 일반 요금이 자동 적용되도록 설계돼 있다.
그러나 무료 토큰 확대는 사용량을 끌어올리는 동시에 단기 수익성을 압박할 수 있다. 최고 성능 모델은 추론 과정에서 대규모 연산 자원을 소비하는 만큼 무료 호출이 늘어날수록 앤트로픽이 부담해야 하는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비용도 함께 증가하기 때문이다. 미국 반도체 분석업체 세미애널리시스에 따르면, 월 200달러 구독자가 이용할 수 있는 일부 토큰 물량을 API 요금으로 환산하면 최대 1만4,000달러(약 2,1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기업들이 낮은 토큰 가격과 공개형 모델을 앞세우는 상황에서 앤트로픽은 가격 경쟁력과 수익성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