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英 안 되면 홍콩으로" 몸값 낮추고 IPO 나선 쉬인, 홍콩 금융시장 부활 동력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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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인, 美·英 증시 입성 실패 후 홍콩서 IPO 추진 상장 지연에 서방국 제재 릴레이까지, 기업가치 곤두박질 홍콩 증시, 中 기업 연이어 유치하며 '금융 허브' 지위 되찾아

중국 패션 플랫폼 쉬인(SHEIN)이 홍콩 증시에 상장한다. 미국과 영국에서 정치·규제 리스크로 상장 계획이 잇달아 무산된 끝에, 중국 정부의 정책적 지원을 받는 홍콩 시장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시장에서는 이번 기업공개(IPO)가 쉬인 입장에서는 서방 자본시장 진입이 막혀 택한 차선책에 가깝지만, 금융 허브로서의 입지를 급속도로 되찾아 가는 중인 홍콩에는 회복세를 굳힐 핵심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쉬인, 홍콩 상장 본격 시동
12일(현지시각) 로이터통신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지난 10일 중국증권감독관리위원회(CSRC)는 자사 웹사이트 공고를 통해 쉬인 글로벌 홀딩스가 최대 3억4,160만 주의 H주(홍콩거래소에 상장돼 거래되는 중국 본토 기업 발행 주식)를 발행할 수 있다고 밝혔다. 관련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들은 CSRC의 승인이 중국 공산당 최고위층까지 보고된 사안이며, 상장 시점은 올해 9~10월로 전망된다고 전했다. 쉬인이 이번 IPO에서 목표로 하는 기업가치는 400억~500억 달러(약 61조2,000억~76조5,000억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2022년 기록했던 기업가치 최고점(1,000억 달러·약 150조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이처럼 기업가치가 대폭 하락한 것은 쉬인의 상장 절차가 장기간 지연됐기 때문이다. 쉬인은 앞서 지난 2020년 미국 뉴욕증시 상장을 처음 준비했지만, 미·중 갈등과 불안정한 시장 여건 등을 이유로 계획을 접었다. 2022년 1월 재개된 상장 작업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글로벌 증시 변동성이 확대되며 한 달 만에 중단됐다. 이후 쉬인은 2023년 11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IPO 신청서를 비공개로 제출하며 세 번째 도전을 본격화했으나, 미국 정치권으로부터 신장위구르자치구 강제 노동 관련 지적을 받으며 재차 암초에 부딪혔다. 미국은 2022년 6월부터 위구르강제노동방지법(UFLPA)을 시행해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생산된 상품을 강제노동 산물로 간주하고 수입을 금지하고 있다. 미 의회는 쉬인이 신장산 면화 사용 여부와 공급망 추적 체계를 충분히 공개해야 한다고 압박했고, SEC 역시 비공개 신청이 아닌 공개적인 등록 서류 제출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쉬인은 미국 상장 계획을 사실상 철회하고, 2024년 6월 영국 금융행위감독청(FCA)에 비공개 상장 신청서를 제출하며 런던증권거래소로 방향을 틀었다. FCA는 지난해 4월 현지 사회 반발을 무릅쓰고 상장안을 통과시켰으나, 쉬인의 해외 상장에 필요한 CSRC의 승인은 나오지 않았다. 쉬인이 영국 투자설명서에 신장위구르자치구의 공급망 연관성을 '위험 요인'으로 기재했다는 사실이 발목을 잡은 것이다. 이에 쉬인은 결국 지난해 5월 런던 상장 추진을 중단하고, 홍콩 증시에 도전장을 던졌다.
美·EU 시장 수익성 '빨간불'
서방국의 연이은 규제 역시 쉬인의 기업가치를 훼손한 요인으로 꼽힌다. 가장 직접적인 부담은 미국 시장에서 발생했다. 쉬인은 중국 공장에서 생산한 저가 의류를 미국 소비자에게 개별 소포로 직접 배송하는 방식으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해 왔다. 800달러(약 120만원) 이하 수입품의 관세를 면제해 주는 미국의 '소액 면세' 제도를 적극 활용한 것이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해 5월부터 중국·홍콩발(發) 소액 소포에 대한 면세 혜택을 폐지하면서, 쉬인의 상품에도 관세와 통관 비용이 붙기 시작했다. 과거와 같은 초저가 직배송 모델을 유지하기는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 연출된 셈이다.
유럽에서도 이러한 배송 모델을 겨냥한 압박이 본격화하고 있다. 그동안 유럽연합(EU)은 역외에서 소비자에게 직접 배송되는 150유로(약 25만7,300원) 이하 상품에 대한 관세를 면제해 왔으나, 최근 들어 이 같은 면세 혜택이 역내 업체에 불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고 세관의 상품 안전 검사를 방해한다는 인식이 확산했다. 이에 EU는 지난 1일부터 해당 제도를 폐지하고, 2028년 7월까지 상품 한 개당 3유로(약 5,100원)의 임시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향후 규제 기조가 강화되면 품목별 정상 관세와 별도의 소포 처리 수수료가 추가 적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관세 외 규제도 누적되고 있다. 지난해 5월 EU 집행위원회와 회원국 소비자보호당국들은 쉬인이 판매 마감 시간, 할인 폭, 재고 부족 문구 등을 허위로 표기하고, 반품·환불 권리에 관한 온전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는 공동 조사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쉬인이 시정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각 회원국 당국은 해당 국가에서 발생한 연간 매출을 기준으로 과징금을 부과하거나 영업 관행 변경을 명령할 수 있다. 빅테크 기업 규제 법안인 디지털서비스법(DSA)에 따른 압박 역시 가시화하는 추세다. 쉬인은 2024년 4월 EU에서 ‘초대형 온라인 플랫폼’, 즉 DSA 적용 대상으로 지정됐다. 현재 집행위는 DSA 조항을 근거로 쉬인에 대한 공식 조사를 진행 중이다. 조사의 핵심은 △불법·유해 상품 판매 방지 체계 △출석 보상, 포인트 지급 등 반복적인 접속과 구매를 유도하는 설계의 중독 위험 △개인별 상품 추천 알고리즘의 투명성 등이다. 아울러 집행위는 쉬인에서 무기류, 아동 형태의 성인용 인형 등 불법 상품이 판매된 정황에 대해서도 살펴보고 있다.

홍콩 금융 시장의 부활
시장에서는 쉬인의 이번 IPO가 쉬인 입장에서는 '차선책'에 가깝지만, 홍콩 금융 시장에는 명백한 호재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홍콩 증시는 2020년대 들어 글로벌 IPO 시장에서 입지가 꾸준히 축소돼 왔다. 2020년 6월 중국 정부가 홍콩 국가보안법을 시행한 이후 홍콩 금융 시장의 안정성·자율성에 대한 의구심이 커진 탓이다. 여기에 본토의 빅테크 규제, 부동산 경기 침체, 미·중 갈등 등 악재가 누적되며 중국 관련 자산에 대한 해외 투자자의 선호도 대폭 약화했다. 이에 따라 홍콩 증시의 전체 시가총액은 2022년 말 약 30조7,000억 홍콩달러(약 6,020조원)에서 2023년 말 약 25조5,000억홍콩달러(약 5,000조원)로 17% 급감했다.
상황이 뒤집힌 것은 2024년이었다. 중국 정부가 본토 증시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동시에, 홍콩을 중국 기업의 해외 자금 조달 창구로 적극 육성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은 것이다. 당시 CSRC는 홍콩 내 주요 중국 기업의 IPO를 지원하고, 본토와 홍콩거래소 간 교차거래 제도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선전과 홍콩 증시를 연결하는 선강퉁, 상하이와 홍콩 증시를 연결하는 후강퉁의 투자 대상이 대폭 확대됐다. 중국 본토 투자자들의 홍콩 증시 접근 장벽이 낮아지고, 홍콩에 상장한 기업들도 보다 다양한 투자 수요를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홍콩거래소 역시 상장 심사 기간을 단축하며 적극적으로 중국 기업 유치에 나섰다.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우량 기업의 상장 심사 기간을 30영업일 안팎으로 줄여 본토보다 신속하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조치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후 홍콩 증시는 순식간에 과거의 위상을 되찾아 가고 있다. 국제금융센터(KCIF)에 따르면 지난해 홍콩 증시에 상장한 기업들이 IPO를 통해 조달한 자금은 2,858억 홍콩달러(약 50조원)로 전년 대비 2배 이상 증가했다. 같은 기간 홍콩거래소에 상장한 기업 수 역시 70% 이상 늘어난 117곳을 기록했다. 특히 성공적인 상장 사례로는 △중국 배터리 기업 CATL(5월 상장) △금광기업 즈진골드(9월 상장) △건설 장비 기업 산이중공업(10월 본토 동시 상장) △전기차 제조기업 세레스그룹(11월 상장) 등이 꼽힌다.
이러한 증시 강세에 힘입어 홍콩 금융 시장도 활기를 되찾았다. 미국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따르면 지난해 홍콩의 역외 부유층 자산관리(AUM) 규모는 전년보다 11% 증가한 2조9,500억 달러(약 4,400조원)로, 사상 최초로 스위스를 넘어섰다. BCG는 현재 홍콩에서 관리되는 자산 가운데 약 59%가 중국 본토 자금이며, 2030년에는 이 비중이 68%까지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경제 성장으로 축적된 부가 다음 세대로 이전되는 ‘아시아의 세대교체’가 본격화하며 자산 이동이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