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파이낸셜] 환율 커뮤니케이션의 효과는 왜 엇갈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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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 발언의 효과를 결정하는 정책수단 유로존과 아시아의 다른 시장 반응 제도적 환경을 반영한 환율 커뮤니케이션
본 연구 기사는 유럽 경제 연구소 The Economy의 연구위원(Fellow)들이 작성한 The Economy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The Economy 또는 집필자의 소속 기관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올해 4월 말부터 한 달 동안 일본 당국은 엔화 가치 방어를 위해 11조7,000억 엔(약 68조원)을 외환시장에 투입했다. 그러나 불과 한 달 뒤 엔/달러 환율은 162.66엔까지 오르며 엔화 가치는 1986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렇다고 시장이 당국의 경고를 외면한 것은 아니다. 투자자들은 당국의 발언을 면밀히 분석하며 추가 개입 가능성을 가늠했고, 엔화 약세에 베팅한 포지션을 축소하거나 헤지에 나섰다. 장기적인 환율 흐름은 바꾸지 못했지만 정책 당국의 발언은 시장 참가자의 위험 인식과 투자 전략에는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한편 유럽중앙은행(ECB) 기자회견을 분석한 연구도 흥미로운 결과를 내놨다. 금리 관련 발표는 유로화 움직임에 뚜렷한 영향을 미쳤지만 환율 관련 발언의 효과는 제한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이 환율 관련 발언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유럽과 아시아에서 서로 다르게 나타나며, 그 차이는 이를 뒷받침하는 정책수단과 제도적 환경에서 비롯된다.
유로화 체제에서 제한된 환율 발언 효과
2002년부터 2023년 6월까지 ECB 기자회견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기자회견 당일 유로화 변동의 약 16%는 통화정책 결정과 정책 신호에서 비롯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환율 관련 발언의 영향은 매우 제한적이었으며, 효과가 나타나더라도 일주일 안에 절반 이상 약화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 같은 결과는 ECB의 제도적 특성과 유로화의 위상에서 비롯된다. 유로화는 세계 2위의 기축통화이며, 유로존 국가의 국채 대부분도 자국 통화인 유로화로 발행하는 구조다. 이에 따라 환율이 변동하더라도 국가 재정과 금융시스템이 직접 받는 충격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여기에 ECB는 물가 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어 외환시장 직접 개입도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이뤄진다.
이처럼 발언과 실제 정책수단 사이의 연결성이 약하다 보니 시장은 ECB의 환율 관련 언급만으로 정책 방향이 달라질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 환율 언급 역시 경제 상황에 대한 설명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반면 금리 커뮤니케이션은 성격이 다르다. 정책금리는 ECB가 직접 결정하고 집행하는 핵심 정책수단이다. 금리 변화는 자금조달 비용과 채권금리, 투자자의 자산 배분에 영향을 미치고 환율에도 파급된다. 시장이 금리 관련 발언에 환율 발언보다 훨씬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도 실제 정책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높게 보기 때문이다.

정책수단이 중요한 아시아
유럽과 달리 아시아에서는 환율 관련 발언과 실제 정책수단의 연결성이 훨씬 강하다. 일본은 재무성이 외환정책을 결정하고 일본은행(BOJ)이 이를 집행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역할은 나뉘어 있지만 시장은 당국의 공식 발언이 실제 외환시장 개입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인식한다. 올해 봄 대규모 시장 개입 이후에도 엔화 약세가 이어졌지만, 투자자들은 추가 개입 가능성을 계속 반영하며 거래 전략을 조정했다. 장기적인 환율 흐름은 바꾸지 못했어도 정책 신호가 시장의 위험 인식에는 영향을 미친 셈이다.
한국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환율 관련 공식 발언은 달러 매도와 유동성 공급, 국민연금의 환헤지 비율 조정 등 후속 조치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어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한다. 지난해 한국과 미국이 외환시장 개입 내역의 공개를 확대하기로 합의한 것도 외환시장 개입이 실제 정책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중국은 이러한 특징이 더욱 뚜렷하다. 기준환율 설정과 거시건전성 규제, 외환시장 직접 개입을 함께 활용하는 관리환율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미국 재무부가 한국과 일본, 중국 등을 환율 관찰대상국으로 관리하는 것도 이들 국가가 환율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양한 정책수단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반영한 것이다.
최근 한국과 일본의 외환시장 개입은 통화 가치 절하를 통한 수출 경쟁력 확보를 겨냥한 정책과는 구분된다. 이는 수입물가 상승과 과도한 환율 변동을 완화하고 금융시장의 안정을 유지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결국 시장이 주목하는 것은 발언 자체보다 이를 뒷받침하는 정책수단이다. 금리 외에도 외환시장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단을 갖춘 국가일수록 환율 관련 발언의 파급력도 커질 수밖에 없다.
정책수단에 따라 달라지는 시장 반응
환율 관련 커뮤니케이션은 정책수단과의 연계 방식에 따라 성격과 시장 반응이 달라진다. 대표적으로 ▲정책수단이 뒷받침되지 않는 단순 발언 ▲금리 경로를 통해 환율에 영향을 미치는 통화정책 가이던스 ▲외환보유액을 활용한 직접 시장 개입 ▲자본규제와 기준환율 운영 등 제도적 장치와 결합된 방식으로 나눌 수 있다. ECB의 환율 커뮤니케이션은 주로 단순 발언과 통화정책 가이던스에 해당한다. 반면 한국과 일본, 중국은 외환시장 직접 개입과 제도적 장치를 함께 활용하는 유형에 가깝다. 정책수단과 제도적 환경이 다른 국가를 동일한 기준으로 비교하면 시장 반응의 차이를 온전히 설명하지 못한다.
또한 환율 커뮤니케이션의 효과를 현물환율의 방향만으로 판단해서도 안 된다. 가격 변동성과 거래량, 옵션·선물환시장 등 시장 전반에 미치는 영향까지 함께 살펴봐야 한다. 장기적인 환율 흐름을 바꾸지 못하더라도 가격 변동성을 낮추고 시장 참가자의 포지션 조정을 유도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외환 포지션을 보유한 기업과 금융기관에는 일시적인 환율 변동만으로도 손실이나 추가 증거금 부담이 발생할 수 있는 만큼 단기적인 시장 안정 효과 역시 중요한 평가 대상이다.

정책 신뢰를 높이는 커뮤니케이션
이처럼 환율 커뮤니케이션의 효과가 정책수단에 따라 달라지는 만큼 정책당국의 커뮤니케이션 방식도 그에 맞춰 개선이 시급하다. 시장의 신뢰는 정책 목표와 대응 수단을 얼마나 명확하게 제시하느냐에 달려 있다. ECB는 특정 환율 수준을 목표로 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면서도 환율 변동이 물가와 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꾸준히 설명해야 한다. 한국과 일본은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신속히 공개하고 개입 목적이 무질서한 시장 변동을 완화하고 금융 안정을 유지하는 데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국은 기준환율 산정 방식과 외환시장 운영, 공적 자금의 역할에 대한 투명성을 높여 시장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미국 재무부도 환율 관찰대상국 지정 기준을 구체화해 정치적 해석의 여지를 줄여나가는 방향이 바람직하다.
금리가 가장 강력한 정책수단인 유로존과 외환보유액, 직접 시장 개입, 제도적 장치를 함께 활용하는 아시아에서는 환율 커뮤니케이션이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기 어렵다. 따라서 당국의 발언을 평가할 때 이를 뒷받침하는 정책수단과 제도적 환경을 함께 살펴야 한다. 이러한 차이를 고려하지 않으면 한 지역에서 확인된 결과를 모든 국가에 그대로 적용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Exchange Rate Communication Is Not Cheap Talk Everywhere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The Economy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