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자산 공식 뒤집혔다" 중동 불안 속 미끄러지는 금값, 일부 중앙은행 매도세·美 금리 인하 지연이 핵심 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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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發 리스크에도 금값 하락, 일부 중앙은행 매도세 부각 "물가는 상승, 경기는 견조" 연준 금리 인하 명분 부족 美 고금리가 낳은 하방 압력, 금 투자 기회비용 확대

금값이 눈에 띄는 하락세를 기록했다. 중동 지역의 긴장이 장기간 지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안전자산 선호 문법이 좀처럼 작동하지 않는 모양새다. 이는 일부 국가 중앙은행이 외환·재정 압박에 대응해 보유 금을 유동성 확보 수단으로 활용하는 가운데, 미국의 견조한 경제 지표와 인플레이션이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동결 가능성을 키운 결과로 풀이된다.
이례적 금값 하락세
14일(이하 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에 따르면, 13일 금 가격은 트로이온스(약 31.1g)당 3,997달러(약 600만원)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 1월 새로 쓰인 사상 최고치(트로이온스당 5,318달러·약 795만원) 대비 25% 급락한 수준이다. 최근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군사적 충돌이 재점화하며 지정학적 리스크가 가중됐음에도 불구하고, 가격 반등 흐름은 나타나지 않는 모습이다. 대표적인 안전자산인 금은 통상 지정학적 긴장과 금융 시장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수요가 늘면서 가격이 상승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처럼 전통적인 시장 문법이 흔들린 원인 중 하나로는 금의 최대 수요처인 중앙은행들의 태도 변화가 꼽힌다. 최근 수년간 각국 중앙은행은 달러화 의존도를 낮추고 외환보유액을 다변화하기 위해 금을 공격적으로 사들여 왔다. 하지만 올해 들어 중동발(發) 에너지 충격과 외환 시장 불안이 가시화하자, 일부 국가는 금을 추가 매입하는 대신 보유 물량을 현금화하기 시작했다.
가장 적극적으로 금을 처분한 국가는 튀르키예다. 튀르키예 중앙은행은 이란 전쟁 발발 이후인 2월 말부터 3월 말까지 금 52톤(t)을 직접 매각하고, 약 79톤을 금 스와프 거래에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 스와프는 금을 담보로 외화를 조달한 뒤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시 금을 돌려받는 거래로, 시장에는 실질적인 공급 증가 압력을 가하게 된다.
러시아에서도 금 매도세가 두드러졌다. 서방 제재와 원유 수출 감소로 인해 재정 압박이 커진 결과다. 러시아는 달러화 및 유로화 자산을 자유롭게 처분하기 어려운 만큼, 금과 중국 위안화를 사실상 핵심 유동 자산으로 활용하고 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올해 들어 지난 5월까지 금 34톤을 순매도해 보유량을 2,292톤으로 줄였다. 단기적인 경제 충격에 직면한 국가들이 금을 일종의 비상 유동성 창구로 활용하면서, 중국을 비롯한 여타 국가들의 공격적인 매입 행보가 더 이상 일방적인 가격 상승 동력이 되어 주지 못하는 양상이다.
美 정책금리 인하 제동
연준의 금리 정책 향방 역시 금값에 막대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기 행정부 출범 직후부터 미국의 기준금리가 경제 여건에 비해 지나치게 높다며 연준에 조속한 금리 인하를 요구해 왔다. 이는 가계와 기업의 차입 비용을 경감하기 위한 선택으로 읽힌다. 기준금리가 내려가면 신용대출과 기업대출 금리가 낮아지고, 장기 국채 금리가 안정될 경우 모기지 금리도 하락할 수 있다. 막대한 연방정부 부채 역시 금리 인하 필요성을 부각하는 요소다. 정책금리와 국채 금리가 하락하면 미 재무부가 신규 국채를 발행하거나 만기가 돌아온 채권을 차환할 때 부담하는 이자 비용도 줄어들게 된다.
문제는 이란 전쟁의 여파로 미국의 인플레이션 압력이 가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WSJ가 지난 2~7일 72명의 경제학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 참여자들은 올해 연말까지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가 3.4%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4월 조사 당시(3.2%)보다 소폭 상승한 수준이다. 연준이 주시하는 물가 지표인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 전망치 역시 3.2%로 4월의 2.9%를 웃돌았다. 아울러 대다수 전문가는 연준이 12월까지 금리를 현 수준인 3.5~3.75%로 동결할 것으로 봤다. 금리 인상 가능성을 점친 응답자 비중은 15%였다.
같은 조사에서 향후 1년 내 미국이 경기 침체에 빠질 확률은 25%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 4월 조사 당시의 33%를 밑도는 수치이자, 지난해 초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경제 성장 전망치도 2.1%로 4월(2.0%) 대비 상향 조정됐으며, 실업률 전망치는 4.3%로 장기 균형 실업률과 비슷한 선에서 제시됐다. 이러한 경제 상황은 연준의 통화 정책 운신 폭을 좁히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경기 침체 위험이 뚜렷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금리를 인하할 경우, 소비와 투자가 급속도로 확대되며 물가 상승세를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적합한 금 투자 전략은
연준이 금리 인하를 미룰 경우 금값 하방 압력은 자연스럽게 커지게 된다. 미국 정책금리가 높은 수준에 머물면 미 국채, 은행 예금, 머니마켓펀드(MMF) 등 달러화 자산의 수익률도 이에 비례해 유지된다. 반면 금은 배당이나 이자를 지급하지 않는 자산인 만큼, 보유 기간이 길어질수록 투자자가 포기해야 하는 이자 수익이 늘어난다. 여기에 경기 침체 확률마저 낮다면 안전자산 보유 명분 자체도 약해져, 안정적인 이자 수익을 확보할 수 있는 단기 미 국채 등으로 자금이 이동할 가능성이 한층 커진다.
고금리로 인한 달러화 강세 역시 금값을 끌어내리는 요인이다. 연준이 금리 동결 기조를 유지하는 동안 유럽중앙은행(ECB)이나 일본은행(BOJ) 등 주요국 중앙은행이 금리를 낮출 시, 미국과 여타 주요국 간 금리 격차가 벌어지며 더 높은 수익률을 좇는 자금이 미국으로 유입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달러화 수요가 늘어나 강달러 흐름이 본격화하면, 달러화 외 통화를 사용하는 국가들이 체감하는 금값은 자연히 뛰게 된다. 국제시장에서 금 가격이 달러화로 표시되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 외 시장에서 실물 금과 금 상장지수펀드(ETF) 수요를 위축시키고, 기존 투자자들의 차익 실현을 부추기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가운데 금 신규 투자자들의 셈법은 복잡해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10일 미국 CBS는 "금값 하락은 드물고, 하락하더라도 오래 지속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면서 "신규 투자자들은 신속하면서도 전략적으로 움직일 준비를 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금괴, 금화, 금 개인연금계좌(IRA), 금 ETF 등 투자 방법은 다양하다"면서 "다만 모든 방식이 개개인에게 적합하지는 않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CBS는 금 투자 비중을 전체 포트폴리오의 10% 이내로 제한하는 것이 좋다고 짚었다. 금은 기존 보유 자산의 가치를 보호하는 수단인 만큼, 과하게 투자할 경우 주식·채권·부동산 등 다른 자산이 제공하는 수익 창출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조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