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MEMO] 공급망 회복력이 국가 경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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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광물 공급 차질, 산업 전반으로 확산 공급망 경쟁력은 대체 가능성이 결정 EU, 선택지 확보 중심 전략적 자율성 구축
본 연구 기사는 유럽 경제 연구소 The Economy의 연구위원(Fellow)들이 작성한 The Economy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The Economy 또는 집필자의 소속 기관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유럽중앙은행(ECB)의 최근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중국과 연계된 상류 공급망 투입재가 50% 차질을 빚을 경우 유로지역 5개국의 제조업 부가가치는 2~3% 감소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규모가 크지 않은 공급 충격도 제조업 전반으로 확산되면 큰 생산 차질을 초래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자석과 화학제품, 흑연, 정제 광물처럼 통관 통계상 비중은 크지 않더라도 자동차와 풍력터빈, 반도체, 방위산업에 필수적인 핵심 투입재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유럽연합(EU) 전략적 자율성의 기준도 달라져야 한다. 핵심은 핵심 투입재 공급이 중단됐을 때 대체 공급망을 얼마나 신속하게 확보할 수 있는지에 있다.
공급망 규모보다 대체 가능성이 중요
그동안 전략적 자율성을 평가하는 기준은 국가별 수입 규모와 의존도였다. 그러나 EU와 중국의 교역 규모만으로는 공급망 취약성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2024년 기준 EU는 중국에 약 2,130억 유로(약 361조원)를 수출하고 5,190억 유로(약 880조원)를 수입해 3,060억 유로(약 519조원)의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러한 거시 지표만으로는 실제 공급망 병목이 어디에서 발생하는지 파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실제 위험은 기업이 생산 과정에서 사용하는 핵심 투입재에서 나타난다. ECB에 따르면 역외 수입품의 약 17%는 핵심 투입재이며 이 가운데 약 3분의 1을 중국이 공급한다. 더욱이 이런 품목은 공급처를 바꾸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품질 인증과 생산설비 조정, 규제 승인 등을 거쳐야 하는 만큼 공급이 끊기면 생산 차질도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공급망은 대체 가능성을 중심으로 평가해야 한다.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도가 얼마나 높은지, 공급처를 바꾸는 데 얼마나 시간이 필요한지, 공급 차질이 발생해도 생산을 유지할 수 있는지를 함께 살펴야 실제 취약성을 정확히 진단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 단위가 아니라 제품과 공정 단위에서 공급망을 분석하는 접근이 요구된다.

정제·가공 능력이 만든 공급망 우위
중국의 경쟁력은 정제와 가공 등 공급망 핵심 공정을 장악한 데서 나온다. 중국은 주요 전략광물 20종 가운데 19종의 정제 시장에서 세계 최대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으며, 광물 정제 시장의 금액 기준 점유율도 약 70%에 이른다. 2024년 기준 희토류 채굴의 약 60%, 소결 영구자석 생산의 약 94%도 중국이 차지했다.
이처럼 공급망의 핵심 공정이 중국에 집중되면서 다른 국가가 광산 개발을 확대하더라도 공급망 의존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핵심 광물의 분리·정제와 가공 역량이 여전히 중국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최종 조립을 유럽에서 수행하더라도 핵심 공정이 해외에 묶여 있다면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는 데는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다. 이 같은 구조는 경제적 압박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전면적인 수출 금지에 나서지 않더라도 허가 절차를 강화하거나 공급 시점을 늦추는 것만으로 상대국 산업에는 상당한 부담을 줄 수 있다. 중국은 2023년 갈륨과 게르마늄, 흑연을 시작으로 2024년 안티모니, 2025년에는 희토류와 관련 가공기술까지 수출 통제 대상에 포함했다. 2024년 기준 허가제 적용 대상은 핵심 원자재 교역의 약 16%를 차지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품목별 위험도에 맞춘 공급망 전략
공급망 위험은 특정 국가와의 거래를 줄인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어떤 품목에서 위험이 집중되는지, 또 그 위험이 생산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구분하는 일이다. 제품과 생산 공정마다 대체 가능성과 공급 차질의 파급력이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중국은 영구자석과 흑연 음극재처럼 대체가 어려운 핵심 소재에서는 높은 위험 요인이지만, 범용 공산품은 비교적 안정적인 공급처 역할을 한다. 반대로 인도와 브라질은 공급망 다변화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단기간에 중국을 대체하기에는 생산 기반과 정제 능력이 아직 충분하지 않다. 따라서 특정 국가와의 거래를 줄이는 것보다 공급원을 다변화해 위험을 분산하는 접근이 현실적이다. 이 같은 원칙은 동맹국에도 예외가 아니다. 2025년 미국은 EU가 추가로 수입한 액화천연가스(LNG)의 약 58%를 공급했다. 미국은 중국과 달리 안보 동맹과 제도적 신뢰를 바탕으로 협력하고 있지만 공급이 한 국가에 지나치게 집중되면 정책 변화나 시장 여건에 따라 새로운 위험이 발생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AI 시대에도 통하는 관리된 상호의존
이러한 원칙은 AI 산업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하드웨어와 클라우드, 데이터, 인재 등 AI 생태계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독자적으로 확보한 국가는 극소수다. 올해 초 기준 전 세계 AI 프로젝트의 52%가 엔비디아 하드웨어를 활용하고 있지만 인도는 미국산 GPU 3만8,000개를 도입하면서도 자체 데이터 통제와 언어모델 개발 역량을 바탕으로 AI 주권을 유지하고 있다. 핵심 기술은 해외에서 조달하되 데이터와 서비스 운영 역량은 자국이 확보하는 방식이다.
이 같은 접근은 공급망 정책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모든 생산 공정을 역내로 이전하기보다 공급원을 다변화하고 핵심 공정의 위험을 관리하는 편이 현실적이며 비용 부담도 적다. 이를 위해서는 공급망을 상시 점검하는 체계부터 갖춰야 한다. 통관 자료뿐 아니라 기업별 조달 현황과 재고, 품질 인증 절차, 소유구조까지 함께 분석해야 실제 병목을 조기에 파악할 수 있다.
여기에 대체 공급처가 평상시에도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기반도 마련해야 한다. 장기 구매계약과 유럽투자은행(EIB)의 금융 지원, 공동 구매 등을 통해 안정적인 수요를 확보해야 위기 상황에서도 공급망 다변화가 가능하다. 비축 제도 역시 기존 역할에서 벗어나 재편이 필요하다. 비축은 기업이 새로운 공급처를 확보하고 제품을 재설계하는 동안 시간을 확보해 주는 안정장치 역할이다. 이런 관점에서 EU의 핵심원자재법(CRMA)이 제시한 2030년 역내 채굴 10%, 가공 40%, 재활용 25% 목표도 공급망 위험을 분산하기 위한 기준으로 이해하는 편이 적절하다.
평상시 대비가 공급망 경쟁력 좌우
공급망 위기는 법과 제도만 마련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실제 위기에서는 정부와 기업, 규제기관 간 정보 공유가 늦어지고 역할이 엇갈리면서 대응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따라서 EU는 영구자석과 배터리 원자재, 반도체, 의약품 등 핵심 공급망을 대상으로 정례 위기 대응 훈련을 실시하고, 공급망 위험 수준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위기 시계(Crisis Clock)' 체계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위기 대응 훈련은 공급 부족을 처음 확인하는 단계부터 비축 물자 방출과 행정 승인, 대체 공급처 인증까지 전 과정을 점검하는 방식으로 운영해야 한다.
물론 공급망 안정성을 높이는 과정에서 비용 부담과 규제 확대를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공급망 붕괴 이후 발생하는 생산 차질과 물가 상승, 성장 둔화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고려하면 사전 대비의 편익이 더 크다. 따라서 시장 왜곡에는 무역정책을, 전략 자산 통제권 위협에는 투자 심사를, 정치적 압박에는 반강압수단(ACI)을 적용하는 등 위험의 성격에 맞춰 대응 수단을 정교하게 운용해야 한다.
공급망 정책의 목표는 모든 위험을 없애는 데 있지 않다. 작은 공급 차질이 산업과 경제 전반으로 확산되는 연결고리를 끊고 위기 상황에서도 생산을 이어갈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 핵심 공급망별 재고 여력과 대체 공급처 확보, 제품 재설계에 필요한 시간을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가장 취약한 분야부터 대응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전략적 자율성도 위기 상황에서도 선택지를 유지하며 외부 압박에 흔들리지 않는 공급망을 구축하는 데 있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EU Strategic Autonomy Is a Race Against the Clock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The Economy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