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MEMO] 미국 AI 패권이 이끄는 새 국제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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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AI 패권이 글로벌 거버넌스 재편 주도 기술 통제와 공급망이 새 안보 질서의 핵심 동맹국간의 공동 운영 원칙 구축 필요
본 연구 기사는 유럽 경제 연구소 The Economy의 연구위원(Fellow)들이 작성한 The Economy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The Economy 또는 집필자의 소속 기관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미국의 압도적인 인공지능(AI) 기술 우위가 글로벌 AI 거버넌스의 방향을 바꾸고 있다. 2026년 유엔(UN) 위촉 과학 패널 분석에 따르면 세계 상위 500대 AI 슈퍼컴퓨터 연산 능력의 75%를 미국이 차지했고, 중국은 15%에 그쳤다. AI 개발에 필요한 컴퓨팅 자원이 미국으로 집중되면서 앞으로의 AI 거버넌스도 모든 국가가 동등하게 참여하는 국제 협의체보다 미국과 주요 동맹국이 주도하는 'AI 안보동맹(AI Security Alliance)'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커졌다. AI 안보동맹 체제에서는 참여국들이 반도체 공급망과 에너지, 금융, 시장 등 각자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역할을 분담하게 된다. 반면 중국과 러시아는 핵심 의사결정 과정에서 사실상 배제될 가능성이 높다. 국제기구가 AI 관련 기준을 마련하더라도 실제 정책은 첨단 기술과 인프라를 보유한 국가를 중심으로 결정될 수밖에 없다.
AI 거버넌스의 핵심은 기술 통제권
AI 거버넌스는 제도보다 핵심 기술과 인프라를 누가 통제하느냐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모델 가중치(model weights), 클라우드 인프라, 안전성 평가 체계가 하나의 생태계로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특정 국가가 규제를 강화하더라도 동일한 AI 모델이 다른 국가의 클라우드에서 서비스되면 규제 효과는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 같은 구조는 미국의 투자 규모와 기술 경쟁력에서도 확인된다. 2024년 미국의 민간 AI 투자액은 1,091억 달러(약 163조원)로 중국의 약 12배, 영국의 약 24배에 달했다. 같은 해 미국은 주요 AI 모델 40개를 공개한 반면 중국은 15개, 유럽은 3개에 머물렀다. 투자와 기술 개발 모두 미국으로 집중되면서 AI 거버넌스 역시 미국의 정책과 동맹국 간 협력을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국제기구가 공통 기준을 제시하더라도 최첨단 AI 모델의 공개 범위나 고위험 이용자에 대한 접근 통제까지 조율하기에는 한계가 분명하다.

기술 스택이 재편하는 동맹 구조
AI 거버넌스의 중심이 미국으로 이동하면 통제 방식도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는 반도체와 장비 같은 실물 제품의 수출을 제한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면, 앞으로는 AI 모델 자체의 접근 권한을 관리하는 방식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갈 전망이다. 접근 권한 부여와 레드팀 평가, 취약성 점검, 정부 승인 절차가 하나의 체계로 연결되면서 AI 서비스 제공 여부가 새로운 통제 수단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 최근 앤트로픽 사례는 이러한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앤트로픽은 미국의 수출통제 조치에 따라 해외 이용자의 고성능 AI 모델 접근을 일시 중단했다. 이후 미국 정부와 협의를 거쳐 약 3주 만에 서비스가 정상화됐다. AI 모델을 해외로 이전하지 않더라도 서비스 접근 권한만으로도 첨단 기술을 통제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이처럼 AI 통제의 중심이 기술 스택으로 옮겨가면서 동맹국의 역할 역시 확대되는 추세다. 대만은 TSMC를 앞세워 세계 파운드리 생산과 최첨단 반도체 제조를 담당하는 핵심 생산기지 역할을 맡고 있다. 네덜란드는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공급하고, 한국과 일본은 메모리 반도체와 제조장비, 핵심 소재를 책임진다. 아랍에미리트(UAE)는 자본과 에너지를 바탕으로 데이터센터와 컴퓨팅 인프라를 확대하고 있으며, 영국은 AI 연구 역량과 규제 경험을 토대로 제도 설계를 지원한다.
반면 첨단 반도체 설계부터 클라우드 인프라, 초거대 AI 모델 개발, 컴퓨팅 자원, 글로벌 플랫폼까지 하나의 생태계를 구축한 나라는 미국뿐이다. 이 때문에 AI 안보동맹은 미국이 핵심 기술과 플랫폼을 주도하고 동맹국이 분야별 역량을 보완하는 비대칭 구조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이러한 구조가 일방적으로 유지되기는 쉽지 않다. 동맹국들은 대규모 투자와 공급망 기여에 걸맞은 의사결정권과 시장 접근 확대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 역시 동맹과의 협력을 확대하더라도 핵심 기술에 대한 통제권만큼은 쉽게 내주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AI 안보동맹은 미국이 기술 주도권을 유지하는 대신 동맹국에는 공동 안전성 평가와 시장 참여 기회를 확대하는 방식으로 균형을 찾아갈 것으로 예상된다.

안보동맹이 갖춰야 할 운영 원칙
AI 안보동맹이 안정적으로 작동하려면 기술 우위만으로는 부족하다. 참여국들이 신뢰할 수 있는 운영 원칙과 책임 체계를 함께 마련해야 동맹의 지속 가능성도 확보할 수 있다. 기술력이 곧 영향력으로 이어지는 시대일수록 투명한 규칙과 예측 가능한 운영이 중요해진다. 이를 위해 AI 모델의 위험도에 따라 국가별 접근 기준을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 저위험 모델은 연구와 산업 활용을 폭넓게 허용하되 군사 전용이 가능하거나 생물학·사이버 공격 등에 악용될 우려가 큰 고위험 모델은 참여국 간 공동 심사와 승인을 거쳐 제한적으로 제공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모델 성능과 위험 수준이 달라지는 만큼 동일한 기준을 일률적으로 적용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모델 개발 이후에도 안전성을 지속적으로 검증하는 체계도 갖춰야 한다. AI는 업데이트를 거듭하면서 성능과 위험 특성이 함께 달라진다. 출시 당시에는 문제가 없던 모델도 새로운 기능이 추가되면 예상하지 못한 취약점이 드러날 수 있다. 책임 체계 역시 개발 단계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모델을 개발한 기업뿐 아니라 서비스를 운영하는 클라우드 사업자와 이를 산업 현장에 적용하는 기업까지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배분하는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
동맹의 신뢰를 유지하려면 분쟁 발생 시 이를 조정할 장치도 필수적이다. AI 서비스 중단이나 기술 접근 제한을 둘러싼 갈등이 발생했을 때 정치적 판단에만 의존한다면 동맹의 예측 가능성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독립적인 검토 절차와 이의 제기 제도를 마련해 기술적 판단과 정치적 결정을 일정 부분 분리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기존 국제 협력 사례는 이러한 제도 설계 과정에서 시사점을 준다. 주요 7개국(G7)의 '히로시마 AI 프로세스'는 국제 원칙 마련의 출발점이 됐고, 미국 백악관이 추진한 자율 안전성 약속은 민간 기업의 책임을 제도권으로 끌어들이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러나 두 사례 모두 법적 구속력이 제한적이었고 실제 기술 접근이나 모델 배포를 직접 관리하지는 못했다는 한계도 남겼다.
AI 거버넌스의 다음 질서
AI 기술 경쟁은 이미 연구개발 경쟁을 넘어 국가 안보와 산업 전략의 영역으로 확장됐다. 앞으로의 AI 거버넌스도 핵심 기술과 인프라를 보유한 국가들의 협력 체계를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기술력이 곧 협상력과 규범 형성 능력으로 이어지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렇다고 AI 안보동맹이 특정 국가의 일방적인 통제 체계로 굳어져서는 안 된다. 기술 우위를 가진 국가가 중심적인 역할을 맡더라도 동맹국이 신뢰할 수 있는 운영 원칙과 책임 체계가 함께 뒷받침돼야 한다. 안전성 검증과 정보 공유, 분쟁 조정, 책임 분담이 제도적으로 자리 잡을 때 동맹은 지속 가능한 협력 체계로 발전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AI 거버넌스를 기술 경쟁과 규제의 대립 구도로 바라보지 않는 일이다. AI 기술은 국가안보와 산업 경쟁력, 경제 성장, 사회 안전이 긴밀하게 맞물린 분야다. 규제와 혁신을 균형 있게 조화시키면서도 신뢰할 수 있는 국제 협력 체계를 구축하는 일이 앞으로의 AI 정책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The AI Security Alliance Is Already Taking Shape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The Economy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