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글로벌 곡물 가격, 흑해 공급망 마비·유럽 이상기후·중동 리스크 '삼중고' 덮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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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물 가격 상승세 뚜렷, 러시아-우크라이나 공급망 마비 영향 폭염·가뭄 덮친 유럽에서도 곡물 수확량 급감 흐름 중동산 에너지·비료 수급 차질, 농가 비용 부담 '껑충'

글로벌 곡물 가격이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의 교전이 장기화하며 흑해 곡물 공급망이 사실상 마비된 가운데, 유럽에서도 폭염과 가뭄의 영향으로 주요 곡물 생산량이 잇달아 쪼그라든 결과다. 여기에 이란 전쟁으로 인한 호르무즈 해협 통항 차질 역시 농가의 생산·운송비 부담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전 세계 곡물 가격 '천정부지'
26일(이하 현지시각)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날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에서 밀 선물은 전 거래일 대비 45센트(약 621원) 오른 부셸당 7.4825달러(약 1만330원)로 마감하며 일일 가격 상승 제한 폭에 도달했다. 이는 수년 만의 최고 수준이다. 옥수수 선물도 13센트(약 179원) 상승한 부셸당 5.365달러(약 7,407원)를 기록했으며, 장중에는 5.3875달러(약 7,438원)까지 올라 2023년 여름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대두 선물 역시 28.25센트(약 390원) 뛴 부셸당 12.66달러(약 1만7,479원)로 거래를 마쳤다.
이 같은 곡물 가격 오름세는 여타 지표에서도 확인된다. 시카고상업거래소(CME)에 따르면 지난달 KC 경질적색겨울밀(HRW) 선물의 월간 수익률은 13.15%, 시카고 밀은 8.49%에 달했다. 곡물·유지 종자 등을 포함하는 CME그룹 농산물지수 역시 같은 기간 2.36% 올랐으며, 연초 이후 상승률은 9.21%에 육박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의 세계식량가격지수도 지난달 기준 131.1로 전월보다 0.6%, 전년 동월보다 1.0% 뛰었다. 이 가운데 곡물가격지수는 113.8로 한 달 새 3.4% 치솟았고, 전년 동월과 비교하면 6.9% 상승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수출량 급감
곡물 가격을 끌어올린 요인으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흑해 공급망 마비가 꼽힌다. 로이터는 최근 흑해·아조우해 일대 곡물 수출 설비의 97% 이상이 가동을 멈췄다고 보도했다. 특히 우크라이나의 해상 수출길은 사실상 완전히 막혔다는 전언이다. 타라스 비소츠키 우크라이나 농업장관은 지난달 22일부터 이달 중순까지 오데사 항만에 새로 입항한 선박이 한 척도 없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현재 우크라이나는 철도를 이용해 동유럽 항만으로 곡물을 보내거나 다뉴브강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우회 수출을 이어가고 있지만, 오랜 가뭄으로 다뉴브강의 수위가 낮아진 데다 동유럽 철도 정비 문제까지 겹쳐 이마저도 원활하지 못한 실정이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해상 수출이 재개되지 않으면 수출 회복 폭이 필요 물량의 최대 50% 수준에 머물 것으로 전망한다.
러시아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세계 최대 밀 수출국인 러시아의 핵심 곡물 수출 거점 노보로시스크에서는 주요 터미널이 잇달아 운영을 중단했다. 노보로시스크곡물터미널(NZT)과 노보로시스크곡물공장(NKHP)에 이어 러시아 최대 곡물 터미널인 KSK도 곡물 반입과 수출을 멈췄고, 타만 터미널도 가동을 정지한 상태다. 발트해·카스피해·극동 항만 등으로 물량을 우회할 여지는 있지만, 이 경우 운송 거리가 길어지며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이러한 물류 차질 속 러시아의 이달 밀 수출량은 약 180만 톤(t)까지 쪼그라들었다. 이는 월간 기준 2010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표1. 흑해 곡물 공급망 상황
| 국가 | 주요 수출 차질 | 우회 수출의 한계 |
|---|---|---|
| 우크라이나 | 오데사 항만 신규 선박 입항이 끊기며 해상 수출로 사실상 마비 | 다뉴브강 수위 저하, 동유럽 철도 정비 문제로 수출 회복 제약 |
| 러시아 | 노보로시스크·타만 주요 곡물 터미널 대부분 운영 중단 | 발트해·카스피해·극동 항만 이용 시 운송 거리 및 비용 증가 |
이상기후 속 유럽 작황 '비상'
유럽을 덮친 이상기후 역시 글로벌 식품 공급망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유럽 국가들은 최근 수개월간 지속된 폭염과 가뭄으로 인해 신음하고 있다. 유럽연합(EU)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서비스(C3S)에 따르면 지난 5월 유럽 평균기온은 13.87도로 1991~2020년 평균치를 0.60도가량 웃돌았다. EU 공동연구센터(JRC)는 당시 고온과 건조한 봄 날씨가 서·중·동부 유럽의 겨울 작물 수확량 전망을 떨어뜨리기 시작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이후 6월 들어 폭염은 유럽 전역으로 확대됐고, 프랑스·독일·스페인·이탈리아·베네룩스 등 다수 지역이 평년보다 약 3~5도 높은 월평균 기온을 기록했다.
이에 따라 유럽의 곡물 생산 전망도 빠르게 악화했다. 유럽 곡물업계 단체 COCERAL은 지난 6월 2억9,550만t 선이었던 EU 27개국·영국의 올해 곡물 생산량 전망치를 지난달 2억8,660만t까지 하향 조정했다. 이는 지난해 생산량 3억1,000만t과 비교하면 약 2,340만t(7.5%) 작은 규모다. JRC 역시 지난 24일 발표한 최신 작황 보고서를 통해 "프랑스, 독일 남부, 이탈리아 북·중부, 오스트리아,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루마니아 서부 등에서 고온과 강수 부족이 개화와 종실 형성을 저해하고 곡물 충실도를 떨어뜨렸다"며 EU 주요 여름작물 수확량 전망치를 최근 5년 평균보다 최대 14% 낮은 수준까지 하향 조정했다.
유럽 농가의 피해 상황
국가별로 보면 프랑스의 피해가 가장 뚜렷하다. 프랑스 농무부 산하 통계기관 아그레스트는 지난 7일 올해 곡물용 옥수수 생산량을 900만t으로 예상했다. 이는 지난해보다 35% 줄어든 규모이자, 관련 통계가 확인되는 1980년 이후 가장 적은 수준이다. 종자용을 제외하면 생산량 전망치는 882만1,000t까지 낮아지게 된다. 이탈리아에서는 북부 곡창지대를 중심으로 옥수수·쌀 생산 차질이 커지고 있다. 이탈리아 최대 농민 단체 콜디레티는 지난 11일 폭염, 가뭄, 우박, 산불 등으로 올해 농업 부문 피해액이 이미 30억 유로(4조8,260억원)를 넘어섰다고 추산했다. 아울러 일부 지역에서는 옥수수 수확 자체가 어려울 정도로 피해가 커졌으며, 쌀 수확량은 최대 40% 감소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영국에서도 곡물 전반의 수확량 감소세가 확인되고 있다. 영국 농업원예개발위원회(AHDB)가 지난 14일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 시점 수확이 완료된 영국산 밀(전체 밀 재배 면적의 85%)의 평균 단수는 헥타르당 약 6.7t에 그쳤다. 이는 최근 5년 평균보다 13% 낮은 수치다. 영국 에너지기후지능연구소(ECIU)는 올해 폭염과 가뭄으로 영국의 곡물·유지 종자 생산량이 기존 전망보다 최대 250만t 줄어들 수 있다고 추정하기도 했다. 독일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관찰된다. 로이터가 지난 6일 독일 바이에른주 프라이징 지역을 취재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현지 농가들은 약 두 달간 지속된 가뭄 끝에 옥수수를 예년보다 일찍 수확 중이다. 현지 농민 미하엘 펠마이어는 올해 곡물 단수가 기록이 시작된 이래 가장 낮다고 전했다.
중동發 비용 상승 압력
이란 전쟁 역시 전 세계 농가에 치명적인 악재로 작용했다. 전쟁 이후 호르무즈 해협의 선박 통항이 사실상 중단된 영향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지난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원유와 석유 제품 규모는 하루 평균 약 2,000만 배럴로, 전 세계 해상 석유 거래의 약 25%에 달했다. 하지만 전쟁 발발 이후인 3~5월 평균 통과량은 하루 270만 배럴까지 쪼그라들었고, 국제유가 역시 한때 배럴당 100달러(약 13만8,000원)를 훌쩍 넘어서는 등 높은 수준에 머물렀다. 이에 따라 경유를 사용하는 트랙터·콤바인 등 농기계 운용비와 농산물 운송비가 동반 상승했고, 농가의 생산비 부담도 눈에 띄게 확대됐다.
비료 공급에도 직접적인 차질이 발생했다. IEA에 따르면 중동 지역은 전 세계 암모니아 교역량의 25% 이상, 요소 교역량의 40%가량을 담당한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이후 암모니아·요소·황 등 글로벌 비료 공급망이 급격히 경색된 이유다. 여기에 천연가스 가격까지 상승하면서 가스를 핵심 원료로 사용하는 질소 비료의 가격도 동시에 뛰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글로벌 비료가격지수는 전 분기 대비 12% 이상 상승했으며, 4월에는 2022년 10월 이후 최고치를 새로 썼다. 올해 전체 비료가격지수 상승 폭은 전년 대비 30%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