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파이낸셜] 허시라이퍼 효과, 정보가 많아져도 경제 판단이 정확해지지 않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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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감 정보 의존으로 실제 지표와 인식 간 격차 동일한 전망 확산으로 경제주체의 동시 대응 정보의 양보다 정확성과 전달 방식이 관건
본 연구 기사는 유럽 경제 연구소 The Economy의 연구위원(Fellow)들이 작성한 The Economy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The Economy 또는 집필자의 소속 기관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약 90%를 차지하는 47개국 소비자 4만6,285명을 조사한 결과, 거시경제 상황을 판단할 때 중앙은행이나 통계기관보다 개인의 경험에 의존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응답자의 80% 이상은 자신이 구매한 상품의 가격과 공공요금 등 일상에서 체감하는 변화를 주요 판단 기준으로 삼았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은 경제의 일부만 반영하기 때문에 특정 가격 변화에 지나치게 의존할 경우, 실제 경제 상황과 다른 판단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경제학의 ‘허시라이퍼 효과(Hirshleifer effect)’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개인에게 유용한 정보라도 사회 전체에는 항상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특정 정보가 여러 경제주체의 공통된 판단 기준이 되면 소비와 저축, 투자 등이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시장 변동성을 키울 수 있어서다. 따라서 거시경제의 안정성을 살펴볼 때 정보의 양뿐 아니라 어떤 정보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전달되는지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정보 공개에 따른 위험 분담 약화
허시라이퍼 효과는 보험의 위험 분담 원리에서 출발했다. 미래에 누가 피해를 입을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는 여러 사람이 보험에 가입해 손실을 함께 부담할 수 있다. 반대로 계약을 맺기 전에 피해를 입을 사람이 확실해지면 위험을 함께 나눌 이유가 줄어든다. 피해 가능성이 없는 사람은 손실이 예상되는 사람의 비용을 분담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개인에게는 미래를 정확히 파악할수록 유리하지만 불확실성이 일찍 사라질수록 보험을 통해 위험을 나눌 기회는 줄어드는 셈이다.
이 같은 원리는 자산시장에서도 나타난다. 특정 정보로 증권의 미래 가치가 미리 드러나면 해당 자산을 위험회피 수단으로 활용하기 전에 가격이 먼저 조정된다. 가령 다음 날 가치가 0이 될 자산이라는 사실을 시장 참여자들이 미리 알게 되면 가격은 즉시 떨어지고 매수자를 찾기도 어려워진다. 정보가 자산의 미래 가치를 가격에 빠르게 반영하는 대신 거래를 통해 위험을 분담할 여지는 좁아지는 것이다.

공통 신호가 키우는 경제 변동성
정보가 위험 분담을 어렵게 만드는 현상은 자산시장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인플레이션과 금리, 경제성장에 대한 전망은 가계의 소비와 저축부터 기업의 투자와 가격 결정, 임금 협상까지 폭넓게 영향을 미친다. 경제주체가 서로 다른 정보를 바탕으로 판단하면 반응하는 시점과 강도에도 차이가 생긴다. 반면 특정 정보가 공통된 판단 기준이 되면 여러 경제주체의 행동이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가령 물가 상승 전망이 확산되면 가계는 내구재 구매를 앞당기고 근로자의 임금 인상 요구도 늘어난다. 기업도 가격을 올리면서 예상에 그쳤던 물가 상승이 실제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가능성이 높다. 경기침체 전망 역시 여러 기업의 투자 축소가 동시에 나타날 경우 경기 위축을 심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결국 정보가 경제주체의 행동을 동시에 바꾸면서 예상했던 경제 상황을 현실로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정보의 정확성만큼 어떤 정보가 대중의 판단 기준으로 받아들여지는지도 중요하다. 국제 설문조사에서는 공식 통계보다 장바구니 물가와 전기요금처럼 직접 경험한 정보를 중시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조사 대상 모든 국가에서 소비자가 인식하고 예상한 인플레이션은 이후 실제로 관측된 물가상승률보다 높았다. 반면 공식 보고서를 중요하게 참고한 소비자의 기대 인플레이션은 그렇지 않은 비슷한 특성의 소비자보다 2%포인트 이상 낮았다. 이처럼 경제 전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개인의 경험이 주요 판단 기준이 될 경우 실제 지표와 대중의 인식 사이에 격차가 커질 수 있다.

정책 신뢰 하락과 정보 선택의 변화
대중이 어떤 정보를 받아들이는지는 정부와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와도 맞물려 있다. 국제 설문조사에서 정책당국에 대한 신뢰가 낮은 사람일수록 공식 보고서를 활용하는 비중이 낮았으며, 인플레이션에 대한 인식과 전망의 오차는 더 컸다. 이러한 관계는 인구학적 특성과 정치적 성향, 민간 금융기관에 대한 신뢰 등을 고려한 뒤에도 유지됐다.
특히 경제 불안이 장기간 이어질 경우 정책당국에 대한 신뢰도 함께 흔들릴 수 있다. 실제로 지난 10년간 인플레이션 변동성이 컸던 국가일수록 정부와 중앙은행에 대한 불신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물가 불안이 정책당국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고 낮아진 신뢰가 공식 정보의 활용을 줄이면서 경제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하기 더욱 어려워지는 구조다. 따라서 중앙은행이 경제 전망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려면 단순히 정보를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대중이 공식 지표를 신뢰할 수 있는 기반을 유지해야 한다.
불확실성을 반영한 정보 전달
정책당국에 대한 신뢰를 높이기 위해 무조건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해법은 아니다. 공통된 정보가 경제주체의 행동을 동시에 움직일 수 있는 만큼 불확실한 전망을 빠르고 단정적으로 전달하면 오히려 시장의 반응을 키울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서로 다른 판단이 일정 부분 공존하면 새로운 정보에 대한 반응이 한꺼번에 나타나는 것을 줄이고 시장이 이를 반영할 시간도 확보하게 된다. 이후 경제 상황이 달라졌을 때 정책당국이 기존 전망을 수정할 여지도 넓어진다.
이는 정보 공개를 줄여야 한다는 의미와는 다르다. 투명성은 정책에 대한 신뢰를 높이고 자의적인 의사결정을 견제하는 데 필요한 만큼 전달 방식이 핵심이다. 데이터와 정책 판단의 근거를 공개하면서도 확인된 사실과 추정치, 아직 불확실한 전망을 명확히 구분해 전달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이에 중앙은행과 공공기관은 하나의 전망치를 확정된 경로처럼 제시하기보다 예상 범위와 여러 시나리오를 함께 보여주고 전망에 남아 있는 불확실성도 명확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 단기간에 수정될 가능성이 높은 지표를 핵심 메시지로 지나치게 부각하는 방식도 경계해야 한다. 정보의 정확성과 한계를 함께 전달해야 불확실한 하나의 신호가 경제주체의 판단과 행동을 지나치게 좌우하는 상황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정보가 많아진다고 경제주체의 판단이 반드시 정확해지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정보를 언제, 어떤 방식으로 전달하느냐다. 정책당국은 공공 데이터의 투명성을 유지하면서도 불확실한 전망이 확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여지지 않도록 정보의 한계와 변동 가능성을 함께 제시해야 한다. 이를 통해 하나의 신호가 대중의 판단을 좌우하고 경제 전반의 변동성을 키우는 위험을 줄일 수 있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The Hirshleifer Effect: When More Information Destabilizes Expectations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The Economy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