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빼고 AI·희토류 공급망 짠다" 팍스 실리카 앞세우는 美, 日도 자원국 협력 확대·자체 기술 개발 박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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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팍스 실리카 협력체 앞세워 中 AI 밀어내기 나서 핵심 광물 공급망 다변화 흐름, 호주-日 연합 강화 희토류 자립 이어가는 日, 협력국 확보·기술 개발 '속도'

미국이 인공지능(AI), 첨단 반도체, 핵심 광물 등의 분야에서 ‘팍스 실리카(Pax Silica)’ 체계를 강화하고 나섰다. AI 부문에서는 중국산 모델과 기업의 시장 접근을 제한하고, 희토류·핵심 광물 분야에서는 채굴부터 정·제련으로 이어지는 공급망 전반을 우방국 중심으로 재편하는 모습이다. 이 같은 흐름에 올라탄 일본은 호주와의 협력을 통해 희토류·갈륨 수급처를 확보하는 한편, 팍스 실리카 체계를 넘어 중남미·아프리카 자원 개발과 자체적인 공급망 다변화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美의 '팍스 실리카' 체계
지난 23일(이하 현지시각)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보도에 따르면, 홍콩중문대학교 공공정책학원장 정융녠(Zheng Yongnian) 교수는 최근 남남공업대학 공공정책연구소가 주최한 학술 포럼 영상 연설에서 "워싱턴이 추진 중인 팍스 실리카, 반도체 칩 동맹, 핵심광물 동맹 등 일련의 안보 프레임워크는 명백히 특정 제3국을 배제하고 봉쇄하는 것을 목표로 설계되었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실패할 운명"이라고 비판했다. 정 교수는 "미국 정부가 자국 기업들에게 저비용·고효율의 중국산 AI 모델 사용을 금지한다면, 이는 기업들의 실질적 개발 이익과 혁신을 억압하는 명백한 자해 행위"라며 "시장과 기업의 상업적 생존 논리를 이념적 잣대로 거스를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가 언급한 팍스 실리카(Pax Silica)는 미국이 지난해 12월 출범한 AI·첨단기술 공급망 경제 안보 협력체로, △AI 소프트웨어·플랫폼과 첨단 기반 모델 △컴퓨팅·반도체 △데이터센터·통신망 △첨단 제조 △핵심광물 정·제련 △에너지·물류 등 AI 산업 공급망 전반을 미국과 우방국 중심으로 재편하는 것이 핵심이다. 출범 당시 선언문에는 ‘과도한 의존’을 줄이고 신뢰할 수 있는 공급자와의 연결망을 구축하는 한편, 비시장적 관행과 과잉생산·불공정 덤핑에 공동 대응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는 사실상 중국을 정조준한 목표로 풀이된다. 미국 국무부는 이후 팍스 실리카를 자국의 대표적인 AI·공급망 안보 구상으로 규정하고, 지난 3월에는 핵심광물 채굴·가공과 반도체 공급망 관련 인프라·제조 시설을 지원하기 위해 2억5,000만 달러(약 3,460억원) 규모의 ‘팍스 실리카 펀드’를 조성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中 AI 배제 행보 지속
이 같은 협력 체계는 최근 들어 사실상 중국과 분리된 별도의 AI 경제권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지난 14일 로이터통신은 자체 입수한 미국 국무부 내부 서한 초안을 인용, 미국 정부가 미국 주도의 ‘AI 기회 공동성명(Joint Statement on AI Opportunity)’에 서명한 35개국에 대중국 견제 동참을 요구하는 방침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중국이 주도하는 세계인공지능협력기구(WAICO) 등 팍스 실리카의 경쟁 구상에 동시 참여할 경우, 팍스 실리카 협력 대상에서 해당 국가를 배제하는 방식이다. 이는 팍스 실리카의 핵심 광물 공급국인 카자흐스탄이 미국과 중국 양측 구상에 모두 참여한 사실이 알려진 데 따른 조치로 풀이된다.
중국 AI 기업과 모델을 대상으로 한 규제책도 잇달아 논의 테이블에 올랐다. 악시오스 등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미 상무부는 일부 중국 AI 연구소를 수출 통제 목록인 엔티티 리스트(Entity List)에 추가하는 조치를 추진해 왔다. 백악관에서는 미국 기업이 중국산 AI 모델을 호스팅하거나 서비스에 활용할 경우 보안 요건을 적용하는 방안, 중국산 오픈소스 모델의 정부 조달·사용을 제한하는 방안 등도 검토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함께 중국 AI 기업들이 미국 기업의 첨단 모델 출력값을 활용해 자사 모델을 고도화하는 이른바 ‘증류(distillation)’ 문제도 미국 정부의 주시 대상으로 부상했다.
호주-日 희토류 협력 구도
희토류·핵심 광물 방면에서의 공급망 재편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원재료의 안정적인 확보가 AI 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라는 판단하에 우방국 중심으로 관련 생태계를 구축해 나가는 양상이다. 이 같은 구조에서 가장 큰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호주를 비롯한 주요 자원 보유국이다. 호주는 희토류를 비롯해 리튬·갈륨·게르마늄·안티모니·고순도 실리카 등 첨단 산업에 필요한 광물 자원이 풍부한 국가로, 팍스 실리카 출범 초기부터 핵심 파트너로 참여해 왔다. 현재 호주는 상당수 자원의 정제를 중국 등에 의존하던 기존 체계에서 벗어나, 여타 우방국과 함께 자국 내 정·제련 및 후방 가공 능력을 확충하는 데 힘을 싣고 있다.
이 과정에서 존재감을 드러낸 국가가 일본이다. 일본 종합상사 소지쓰(Sojitz)와 일본 정부 산하 에너지·금속광물자원기구(JOGMEC)는 합작사 JARE를 통해 2011년부터 호주 희토류 생산 기업 라이너스에 5억 달러(약 6,920억원) 이상을 투자해 왔으며, 2023년에는 2억 호주달러(약 1,980억원)를 추가 투입해 중희토류 분리·정제 사업을 지원했다. 그 대가로 일본은 라이너스가 호주 마운트웰드 광산 원료를 기반으로 생산하는 디스프로슘과 터븀의 최대 65%를 장기적으로 공급받는 계약을 확보했다. 이에 더해 JOGMEC와 소지쓰는 별도 합작사 JAGA를 통해 미국 알루미늄 제조 기업 알코아와 손잡고 서호주 알루미나 정련소 내 생산 시설 구축에도 참여하고 있다.
표1. 일본의 핵심 광물 공급망 다변화
| 지역 | 주요 협력 대상 | 전략 |
|---|---|---|
| 호주 | 라이너스·알코아 | 희토류 투자와 장기 구매계약을 통해 중희토류 물량 확보, 현지 정·제련 시설 구축 참여 |
| 라틴아메리카 | 미주개발은행(IDB) | 광산·물류 인프라 및 현지 가공 산업에 공동 투자 |
| 나미비아 | 나미비아크리티컬메탈스 | 로프달 광산 탐사·개발 참여로 중희토류 공급 기반 확보 |
日, 자원 공급국 다변화 나서
일본은 팍스 실리카 외부에서도 자체 핵심 광물 공급망 강화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대표적인 예가 미주개발은행(IDB)과의 협력이다. 라틴아메리카는 리튬, 구리, 니켈, 희토류, 흑연 등의 주요 매장지이지만, 추출된 광물의 90% 이상을 중국을 비롯한 역외에서 정·제련해 왔다. IDB는 이러한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올해 역내 핵심 광물 고부가가치 공급망 전용 이니셔티브인 'IDB LAC Minerals'를 공식 출범했다. 공공 차관에만 의존하던 기존 개발 금융 방식에서 탈피해 민간 투자 전문 기구인 IDB 인베스트(IDB Invest)를 중심으로 민관 합작 투자를 주도하며, 오는 2030년까지 최대 120억 달러(약 16조원) 규모의 핵심 광물 금융 파이프라인을 마련하겠다는 구상이다. 일본 정부와 일본국제협력기구(JICA)는 IDB와의 공동 파이낸싱 체계를 대폭 확대하며 현지 광산 물류망 구축,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기준 준수, 지역사회 대화 창구 확보 등 성장 기반 조성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자원 부국도 협력 파트너로 부상했다. JOGMEC는 2020년부터 캐나다의 나미비아크리티컬메탈스와 나미비아 북서부 쿠네네주 로프달을 공동 탐사해 왔으며, 해당 지역에 디스프로슘·터븀 등 중희토류가 다량 매장돼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올해 1월 공개된 예비타당성조사 결과에서는 로프달 개발이 본격화할 경우 연간 약 2,000톤(t)의 총희토류산화물을 생산할 수 있다는 전망이 제시되기도 했다. 민간 기업도 사업에 직접 뛰어들었다. 도요타그룹의 종합상사인 도요타통상은 지난 3월 JOGMEC가 보유한 로프달 프로젝트 지분 옵션 일부를 넘겨받는 공동개발 사업자로 선정됐고, 6월에는 사업 추진을 위한 특수목적회사(SPC) ‘TJ Namibia Rare Earths’를 설립했다. JOGMEC는 지난달 해당 법인에 최대 4,766만8,000캐나다달러(약 477억원) 규모 투자를 집행했으며, 향후 사업화 가능성 평가를 거쳐 2026회계연도 안에 최종 개발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中 의존도 하락, 독립은 '묘연'
자체적인 기술 역량 강화를 위한 투자도 이어지는 중이다. 현재 일본 정부는 오가사와라제도 미나미토리시마 앞바다의 해저 희토류 개발에 힘을 싣고 있다. 경제안보상 핵심 기술을 지원하는 ‘K프로그램’을 개편해 5년 이상의 장기 지원을 허용하고, 미나미토리시마 희토류 개발에만 수천억 엔 규모의 자금을 투입하는 방식이다. 해저에서 희토류가 포함된 진흙을 끌어올릴 전용선, 운송을 위한 항만 인프라 등도 정부 차원에서 마련한다. 막대한 초기 비용을 정부가 부담해 사업화를 뒷받침하는 전략이다. 일본원자력연구개발기구(JAEA)는 물과 기름이 섞인 산업폐액에서 희토류를 선택적으로 추출·회수할 수 있는 흡착제를 개발하며 자원 추가 수급 통로를 확보하기도 했다. JAEA는 향후 민간 기업과 협력해 반도체 공장과 화학 플랜트의 폐액·폐유에 해당 기술을 적용할 계획이다.
이 같은 흐름 속 중국 희토류의 영향력은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연구소(CSIS)에 따르면, 일본의 대중국 희토류 의존도는 2010년 90%에서 현재 60% 안팎까지 줄었다. 여기에 일본은 2010년 센가쿠 열도를 둘러싸고 중국과 갈등을 벌인 후 기존 60일 분 수준이었던 희토류의 비축 목표를 180일 분으로 3배 늘린 상태다. 이와 관련해 한 시장 전문가는 "평시의 비축분이 있는 만큼, 일본은 최근 심화한 중국의 희토류 공세에도 최소 연말 또는 내년 초까지는 버틸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이는 단기적 대책일 뿐, 사태가 길어져 재고와 비축량이 줄고 국제 가격이 오르면 위기가 심화할 수 있다"고 짚었다. 디스프로슘, 테르비움 등 중희토류의 대중국 의존도가 여전히 100%에 가까운 데다, 채산성·정제 기술이 아직 중국을 한참 밑도는 만큼 단기간 내 공급망 독립을 실현하기는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