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 병목’에 전력 공백 커진 美 해군, 韓·日·필리핀 등 아시아 MRO망으로 中·北 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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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韓·日·필리핀 등 아시아 국가와 함정 MRO 협력 확대 美 해군 정비 체계 과부하, 고장·초장기 작전 수행 등 잡음 지속 "中·北 영향력 억제" 美 해상 군사력, 아시아태평양 안보 직결

미국이 아시아 동맹국들과 함정 유지보수·수리·운영(MRO)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자국 조선소의 정비 적체 및 함정 가동률 저하 문제가 심화하는 가운데, 인도·태평양 전진 배치 전력을 보다 신속하게 복구하고 작전 지속 능력을 높이기 위해 역내 조선·정비 거점을 적극 활용하는 양상이다. 이러한 협력 구조는 미 해군의 대중국·대북 견제 전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기반으로 작용하며, 역내 동맹국들의 안보에 직접적인 이익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아시아 동맹국 조선소 찾는 美
6일(이하 현지시각)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보도에 따르면, 미 해군은 최근 아시아 핵심 동맹국 조선소에 대한 MRO 수주를 적극 확대하고 있다. 이는 본토와의 물리적 거리를 극복하고 유사시 태평양 내 함정 회전율을 극대화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미국법전 제10편 8680조는 미국·괌·북마리아나제도에 모항을 둔 해군 함정의 해외 조선소 정비를 원칙적으로 제한하지만, 항해 중 필요한 수리나 적대 행위로 발생한 손상 복구 등에는 예외를 인정한다. 여기에 2025회계연도 국방수권법(NDAA)을 통해 규정이 추가로 완화되면서, 현재는 해외에 전개 중인 미 본토 모항 함정도 계획된 정비 기간이 21일을 넘지 않는 예방·고장 정비에 한해 외국 조선소에서 작업을 받을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최신 보고서에서 "인도-태평양의 잠재적 분쟁 지역과 최대한 가까운 전진 거점에서 더 많은 함정을 신속히 수리·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는 것은 전시를 포함한 미 해군의 장기 작전 지속 능력을 뒷받침하는 핵심 열쇠"라고 평가했다. 중국이 세계 선박 건조 점유율의 절반 이상을 장악하며 자국 해군력 육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만큼, 세계 2·3위 조선 강국인 한국·일본과 남중국해와 말라카 해협의 지정학적 길목을 쥔 필리핀·싱가포르의 가치가 부각되기 시작했다는 진단이다.
美 해군 구조적 한계 직면
다만 전문가들은 미국의 MRO 외주 확대가 단순 대중국 견제를 위한 조치만은 아니라고 분석한다. 미 해군 전력이 직면한 군사적 과부하 및 구조적 파산 위기가 동맹국과의 협력 필요성을 강화했다는 것이다. 실제 미 회계감사원(GAO)과 의회조사국(CRS) 데이터에 따르면, 미 해군 수상함·잠수함 전력 중 공공 조선소에서 제때 정비를 마치는 함정의 비율은 11% 안팎에 그친다. 자체 MRO 역량 부족으로 인해 정비 대기일수와 비계획적 정비 소요(함선이 작전 중 돌발 고장이나 노후화로 독에 묶이는 시일)'가 대폭 불어난 결과다. 해군 함정들이 부두에 계류돼 있을 때 발생하는 '작전 손실 일수'는 지난 10년간 무려 1만5,000일을 넘어섰고, 미 해군의 비대칭 핵심 전력인 44척의 공격핵잠수함(SSN)은 상당수가 정비 대기 및 폐선 대기 함정의 적체로 인해 바다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문제는 실제 함선 운용 체계에도 막대한 혼란을 야기했다. 미국 CNN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의 알레이버크급 구축함 벤폴드함은 지난 7월 24일 인도·태평양에서 통상 임무를 수행하던 중 발전기 계통 고장을 일으켰다. CNN은 당시 승조원들이 낮 기온 32도를 넘나드는 날씨 속에 나흘 동안 조리 시설, 수세식 화장실, 냉방 장치 등을 쓰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란 전쟁에 투입됐던 미 해군 핵추진 항공모함 USS 에이브러햄 링컨함의 경우, 지난 2일 외부 표면에 이끼와 부식 흔적이 가득한 채로 태국 람차방항에 입항하기도 했다. 미 군사 전문 매체 TWZ는 링컨함의 모습을 두고 장기간 고강도 작전을 버텨낸 흔적이라며 "사실상 지옥을 다녀온 것처럼 보인다"고 평가했다. 링컨함은 지난해 11월 샌디에이고를 떠난 뒤 286일 동안 배치됐고, 그 가운데 상당 기간을 중동에서 이란을 상대로 한 전투 작전에 투입됐다. 승조원들이 실질적으로 하선해 휴식하거나, 정상적인 MRO를 진행할 기회를 장기간 얻지 못한 셈이다.
아시아 국가들과의 협력 구도
이러한 상황에서 자체적인 MRO 체계를 갖춘 아시아 국가들은 미 해군 전력의 유지력을 끌어올리는 '협력자'로 기능할 수 있다. 미 해군은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스카 기지에 함정 수리 시설 및 일본지역정비센터(SRF-JRMC) 본부를 두고 있으며, 나가사키현 사세보에 분견대를 배치해 직영 정비망을 가동 중이다. 미쓰비시중공업(MHI)은 2019년 미 해군 구축함(USS 밀리어스) 수리를 수주했고, 지난해에는 풀러급 원정 이동 기지함인 USS 미구엘 키스의 정기 오버홀 계약을 따냈다. 스미토모중공업은 요코스카를 중심으로 미 해군 제7함대의 핵심 핵추진 항공모함과 육군 상륙정 정비를 지원하고 있다.
동남아시아와 인도도 주요 MRO 거점으로 부상 중이다. 우선 필리핀의 경우 자체 조선 기술은 부족하지만, 남중국해와 인접해 있다는 명확한 지리적 이점이 존재한다. 이에 미국계 사모펀드 세르베루스는 과거 한진중공업 소유였던 '아길라 수빅 조선소'를 인수했고, 미 방산업체 V2X(구 벡트러스)는 해당 조선소를 남중국해에서 손상된 함정의 응급 복구 기지로 활용하고 있다. 싱가포르에서는 국영 방산기업 ST 엔지니어링 마린과 아시아 최고 깊이(14m) 독을 보유한 시트리움이 미 군수해상수송사령부(MSC) 함정 정비를 전담 중이며, 인도에서는 '인도-태평양 전략' 강화에 따라 마자곤 독, 라르센앤투브로(L&T), 코친 조선소 등 3곳이 잇달아 MSRA 자격을 획득했다.
표1. 아시아 주요국의 미 해군 MRO 협력 현황
| 국가 | 주요 기반·강점 | 미 해군과의 협력 현황 |
|---|---|---|
| 일본 | 요코스카·사세보에 미 해군 직영 정비망 구축 | 미쓰비시중공업·스미토모중공업이 구축함·항공모함·원정이동기지함 등 정비 지원 |
| 필리핀 | 남중국해와 인접한 수빅만의 전략적 입지 | 아길라 수빅 조선소를 손상 함정의 응급 복구 거점으로 활용 |
| 싱가포르 | 대형·심해 독, 축적된 상선 정비 역량 보유 | ST엔지니어링 마린·시트리움이 군수해상수송사령부 함정 정비 담당 |
| 인도 | 대형 조선소, 인도양 접근성 확보 | 마자곤 독·라르센앤투브로·코친조선소가 함정정비협정 자격을 취득해 미 해군 정비망에 편입 |
| 한국 | 신속한 건조·수리 능력과 대형 조선 인프라 보유 | 한화오션이 군수지원함 정기창정비·중기정비·항해정비를 연이어 수주, 현지 함정 설계·건조까지 협력 범위 확대 |
한화오션, 韓-美 협력 중심축으로
한국의 경우 미군 직영 수리창을 갖추지는 못했지만, 압도적인 건조·수리 속도를 무기 삼아 미국의 MRO 핵심 파트너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관련 거래를 이끄는 대표 주자는 한화오션이다. 한화오션은 2024년 7월 미 해군 보급체계사령부(NAVSUP)와 MSRA를 체결하고, 같은 해 8월 MSC 소속 루이스앤드클라크급 화물·탄약운반선 ‘USNS 월리 시라’의 정기창정비(ROH) 사업을 수주했다. 월리 시라는 이후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에서 약 7개월간 정비를 받았으며, 작업 범위에는 드라이도킹을 비롯해 선체 부식 보수, 추진기·타기 계통 등 300건이 넘는 정비 항목이 포함됐다.
한화오션은 2024년 11월 미 해군 7함대에 배속된 3만1,000톤(t)급 급유함 ‘USNS 유콘’의 정기정비 계약도 수주했다. 유콘은 지난해 상반기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에서 정비를 받았고, 정비 항목은 350개 수준이었다. 지난해 7월에는 한화오션의 세 번째 대규모 미 해군 MRO 사업인 ‘USNS 찰스 드루’ 정기창정비 계약이 공식화했고, 같은 해 9월에는 앞서 대규모 정기창정비를 마친 월리 시라의 중기정비(MTA) 계약이 재차 체결됐다. 올해 들어서는 비교적 짧은 기간 진행되는 항해정비 수요도 커졌다. 지난 2월 한화오션은 19일 'USNS 리처드 E. 버드'의 항해정비 계약을 수주했고, 3월에는 원정이동기지함 'USS 미겔 키스'의 항해정비 계약도 따냈다. 같은 달 한화디펜스USA와 한화 필리조선소는 미 해군 차세대 군수지원함(NGLS·Next Generation Logistics Ship) 사업에서 글로벌 함정 및 특수선 설계 기업인 바드 마린 US의 하도급 파트너로 선정되며 현지 함정 설계·건조 사업으로 협력 범위를 넓히기도 했다.
아시아태평양 안보 질서
이러한 협력 구도가 장기화할 경우, 미국에 손을 보탠 아시아 국가들은 안보 측면에서 혜택을 보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 해군이 오랫동안 아시아 인근 해역에서 중국의 군사적 영향력 확대를 억제하는 역할을 수행해 왔기 때문이다. 미군의 대표적인 전진 활동 지역으로는 대만해협이 꼽힌다. 미 해군 구축함 등은 대만과 중국 본토 사이의 해협을 반복적으로 통과해 왔으며, 중국이 자국 관할권이라고 주장하는 남중국해 해역에서 이른바 ‘항행의 자유 작전(FONOP)’을 수차례 실시한 바 있다. 미국은 해당 작전을 특정 국가의 영유권을 부정하기 위한 조치가 아니라 '국제법상 과도한 해양 관할권 주장을 인정하지 않기 위한 활동'으로 규정한다.
필리핀 역시 안보 측면에서 미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중국 해경과 해상민병대가 필리핀 선박을 상대로 물대포 사용, 충돌, 항로 차단 등 위협을 반복하는 가운데, 미국은 미·필리핀 상호방위조약이 남중국해 내 필리핀군과 공공선박에 대한 무력 공격에도 적용된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밝히며 중국을 압박해 왔다. 한반도에서는 미 해군 전력이 북한의 핵·미사일 리스크를 억제하는 한미 연합 방위 체계의 핵심 축으로 기능한다. 미국은 항공모함, 이지스 구축함, 핵추진 잠수함 등 해군 전력을 한반도 주변에 수시로 전개하고, 한국 해군과 연합 훈련을 실시하며 대북 견제 태세를 유지해 왔다. 특히 북한이 핵·미사일 능력을 고도화한 이후에는 미 항공모함 전단이 대표적인 확장 억제 수단으로 활용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