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유 금융사에 70조 수혈하는 중국, ‘가계 차입 부진·기업 여신 편중’에 경기부양 효과 제한적
입력
수정
공상은행·농업은행·보험사 등 8곳 3,600억 위안 증자 은행권 대출 여력 확대 통한 투자·소비 회복 모색 가계 차입 수요 꽁꽁, 기업대출 늘어도 내수 효과 불투명

중국 정부가 60조원 규모의 특별국채를 발행해 8개 국유 금융사의 자본 확충에 나선다. 저금리와 부동산시장 침체로 수익성이 악화한 금융권의 재무건전성을 보강하고, 은행의 대출 여력을 키워 투자와 소비를 되살리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주택시장 침체로 가계의 차입 수요가 얼어붙은 만큼, 추가 여신은 기업 부문으로 먼저 향할 가능성이 크다. 민영 중소기업의 자금난을 덜어줄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오지만, 여신이 국유기업과 자본집약적인 첨단산업에 쏠릴 경우 고용과 소비 회복 효과가 제한될 수 있다는 우려도 뒤따른다. 금융권에 누적된 부실채권 역시 신규 대출 확대를 가로막는 변수다.
이례적 특별국채 발행, 국유은행·보험사에 자본 투입
7일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이날 중국 재정부는 중앙정부가 관리하는 8개 국유 금융사의 자본 확충을 위해 3,000억 위안(약 59조9,700억원) 규모의 특별국채를 발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주요 국유 은행인 중국농업은행·중국공상은행과 중국 최대 생명보험사인 중국생명보험 등 8개사도 전날 각각 제3자 배정 등 증자 계획을 발표했다. 이들이 밝힌 증자 규모는 재정부 출자액 3,000억 위안을 포함해 총 3,600억 위안(약 71조9,640억원)에 달한다.
기업별로는 △중국농업은행 1,600억 위안(약 31조9,840억원) △중국공상은행 1,000억 위안(약 19조9,900억원) △중국생명보험 350억 위안(약 6조9,970억원) △중국수출입은행 300억 위안(약 5조9,970억원) △중국인민보험 150억 위안(약 2조9,990억원) △중국수출신용보험 100억 위안(약 1조9,990억원) △타이핑보험 70억 위안(약 1조3,990억원) △중국재보험 30억 위안(약 6,000억원) 등이다.
저금리發 수익 악화 부담 덜고, 대출여력 늘려 투자·소비 유도
이처럼 재정부가 직접 나서 금융사에 대규모 자본을 투입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로, 표면적인 이유는 금융사들의 재무건전성 확보다. 지속되는 소비 부진과 부동산시장 침체 속에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면서 수익성이 압박받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상업은행의 순이자마진(NIM)은 지난 2분기 1.41%에 그쳤으며, 대형 국유은행은 1.31%까지 떨어졌다. 저금리 정책과 대출금리 인하로 수익 기반이 약해진 상황에서 정책금융 공급까지 확대해야 했던 은행들의 부담을 재정으로 떠받치는 셈이다.
다만 당장 재무적 부실이나 위험이 커진 게 아니라는 점을 고려하면 소비 촉진과 내수 진작을 염두에 뒀다는 분석이 많다. 금융사의 자본이 확충돼 자본건전성이 개선되면 대출과 투자 여력이 커져 실물 경제 지원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조치에서 기대할 수 있는 긍정적 효과로는 장기간 누적된 디플레이션 압력의 완화가 꼽힌다. 은행이 확충된 자본을 토대로 여신을 늘리고 기업 투자와 고용이 되살아나면, 가계소득과 소비 회복을 거쳐 물가에도 상승 압력이 붙게 되기 때문이다. 가격이 계속 내려갈 것이라는 예상은 자동차·가전 등 내구재 구매를 미루게 하고 기업의 재고 감축과 투자 보류를 부추겨 왔다. 완만한 인플레이션이 자리를 잡으면 소비 시점이 앞당겨지는 동시에 기업의 명목 매출과 이익도 개선돼 부채의 실질 상환 부담을 덜 수 있다.
부동산 침체가 촉발한 中 디플레이션 악순환
이런 기대의 배경에는 부동산시장 침체 이후 굳어진 가격 하락의 악순환이 자리한다. 지난해 중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0%에 그쳤고 생산자물가지수(PPI)는 2.6% 하락했다. 생산자물가는 올해 2월까지 41개월 연속 내리막을 타고 있다. 국내총생산(GDP) 디플레이터 역시 1분기까지 12개 분기 연속 마이너스였다. 주택가격 약세는 가계의 자산효과를 위축시켰고, 제조업의 공급과잉은 업체 간 출혈 경쟁을 부추겼다. 기업 수익성 저하가 임금과 고용을 압박하고 다시 소비 여력을 떨어뜨리는 흐름이 고착된 것이다.
장기간 이어진 디플레이션 압력은 최근 다소 완화됐으나, 내수 회복이 뒷받침되지 않아 물가 반등세의 지속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2분기 GDP 디플레이터는 전년 동기보다 1.6% 올라 3년 만에 플러스로 돌아섰으며, 7월 CPI와 PPI도 각각 0.5%, 3.5% 상승했지만, 세부 항목에서는 취약한 소비 수요가 여전히 확인된다. 7월 CPI는 전월 대비 0.1% 내렸고, 소비재 PPI도 전년 동월보다 0.8% 낮았다. 주거비와 자동차 가격 역시 각각 0.3%, 1.3% 떨어진 것으로 집계됐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는 최근 물가 상승이 에너지와 정보통신기술(ICT) 관련 업종에 집중된 만큼, 뚜렷한 내수 회복이 뒤따르지 않으면 디플레이션 압력이 다시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돈 풀어도 빚 안 내는 中 가계
디플레이션 완화 효과를 끌어내려면 금융사에 투입한 자본이 가계와 기업의 신규 대출 증가로 이어져야 하지만, 현재로서는 은행의 추가 여신이 기업 부문에서 먼저 소화될 가능성이 크다. 특별국채 자금은 우선 금융사의 자본계정에 편입돼 손실 흡수력과 재무건전성을 높이고, 은행에는 자본비율을 유지하면서 대출자산을 늘릴 여유를 확보해 준다. 실물경제로 돈이 흘러가는 시점은 은행이 새로 확보한 여력을 토대로 기업과 가계에 대출을 집행한 이후다.
이번 전체 증자액 3,600억 위안 가운데 대출 확대를 뒷받침할 자본은 중국농업은행·중국공상은행·중국수출입은행 등 3곳에 배정된 2,900억 위안(약 57조9,710억원)이다. 이 자금은 상업은행의 신규 여신과 정책은행의 산업 지원을 확대할 기반을 마련한다. 보험사 5곳이 받는 700억 위안(약 13조9,930억원)은 재무건전성을 높이고 중장기 투자 여력을 보강하는 성격이 강하다. 실물경제에 미치는 단기 파급효과도 세 은행의 대출 확대를 통해 먼저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저금리가 이어지는 가운데서도 가계는 신규 대출을 꺼리고 있다. 로이터통신이 인민은행 자료를 토대로 추산한 결과, 올해 7월 신규 위안화 대출은 3,400억 위안(약 67조9,660억원) 줄어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대 감소 폭을 기록했다. 가계대출 감소액은 4,603억 위안(약 92조원)으로, 기업대출 감소액 1,300억 위안(약 25조9,870억원)의 3배를 웃돈 규모였다.
가계대출을 끌어내린 가장 큰 요인은 장기화한 주택시장 침체다. 로이터에 따르면 7월 중국 신축주택 가격은 전월 대비 0.1%, 전년 동월 대비 3.2% 각각 떨어졌다. 조사 대상 70개 도시 가운데 전월보다 집값이 오른 곳도 17곳뿐이었다. 주택가격 하락과 거래 부진이 계속되면서 새 빚을 내 집을 사려는 가계의 유인도 그만큼 약해졌다.
자금난 中企에 숨통
게다가 정책 방향도 기업금융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중국인민은행(PBOC)은 올해 1월 민영 중소·중견기업 지원을 위해 1조 위안(약 199조9,000억원) 규모의 재대출 제도를 신설했다. 7월 말 재대출 잔액은 8,000억 위안(약 159조9,200억원)에 달했으며, 2분기 말 관련 대출 잔액은 15조 위안(약 2,998조5,000억원)으로 약 250만 개 사업자가 혜택을 받았다. 상반기 신규 대출의 가중평균금리도 전년 동기보다 0.4%포인트 낮아졌다. 지방 금융기관을 겨냥한 재대출에 대형 국유은행의 자본 확충까지 더해지면서 민영기업에 자금을 공급할 정책 기반도 넓어진 상황이다.
대출이 제때 집행되면 우선 자금난에 빠진 중소 기업들이 숨을 돌릴 수 있다. 수주 물량을 확보하고도 매출채권 회수가 늦어 임금과 납품대금을 지급하지 못했던 업체에는 운전자금 확보가 경영 정상화의 출발점이 된다. 그러나 대출 잔액의 증가가 곧바로 산업 회복과 고용 확대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중국 국유 은행들은 신용위험이 낮고 정부 지원을 기대할 수 있는 국유기업과 전략산업에 여신을 집중해 왔다. 담보가 부족한 민간 중소기업은 고용 비중이 높아도 대출 심사에서 밀릴 우려가 크다.
AI·반도체 자금 수요 급증, 고용 효과는 미지수
여기에 반도체·인공지능(AI)·로봇 등 첨단 제조업은 대규모 설비와 연구개발 투자가 필요한 분야여서 자금 투입액만큼 일자리가 늘어난다고 장담하기도 어렵다. 로이터가 기업 공시와 금융정보업체 LSEG 자료를 분석한 결과, 올해 6월 중순까지 중국 본토 증시에 상장을 신청한 AI·반도체·로봇 기업은 약 50곳으로 집계됐다. 이들이 제시한 공모 규모는 최소 1,261억 위안(약 25조2,070억원)에 이른다. 대규모 상장 대기 물량은 성장기업들이 연구개발과 설비투자에 필요한 장기 자본을 적극적으로 찾고 있다는 방증이다.
금융권에 쌓인 부실채권도 기업 대출 확대를 제약하는 요인이다. 영국 경제매체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중국 안후이성 법원은 지난 7월 지방 자산관리회사(AMC) 궈허우자산의 구조조정안을 승인했다. 은행의 부실채권을 인수해 처리하던 금융회사가 직접 구조조정을 받게 된 중국의 첫 사례로, 은행 장부에서 빠진 부실이 자산관리회사로 이전된 뒤 해당 회사의 재무건전성까지 훼손된 것이다. 경쟁력을 잃은 기업에 신규 자금이 계속 공급되면 생산성이 낮은 업체들이 시장에 남아 공급과잉과 출혈 경쟁을 부추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