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디트스위스 품은 UBS, 자본 규제에 본사 이전 저울질, 스위스 ‘금융 강국’ 위상 경고등
입력
수정
은행법 개정 추진에 자본 요건 강화 부담 미국 이전·유럽 은행 합병 등 다각도 검토 UBS 이탈 땐 스위스 자산관리업도 타격

스위스 최대 은행 UBS가 자본 규제 강화에 따른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본사를 해외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크레디트스위스 구제 인수 이후 덩치가 커진 UBS에 당국이 자본 확충 규모를 늘리도록 요구하자, 미국 은행 인수 등을 통한 이전 가능성을 살피고 나선 것이다. UBS는 현지 패밀리오피스와 자산운용사에 거래·대출 서비스를 제공하며 스위스 자산관리 산업의 중심축을 맡아 왔다. 본사 이전에 핵심 인력과 사업 기능의 이동까지 뒤따르면 스위스의 자산관리업과 법률·세무 등 연관 산업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홍콩·싱가포르가 부유층 자금을 빠르게 흡수하는 상황에서 UBS의 이탈이 현실화할 경우 스위스의 국제 금융허브 위상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60억 달러 추가 자본 준비에 부담
15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UBS 관계자와 은행 자문단은 본사 이전을 포함한 비상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UBS가 검토 중인 본사 이전 방안에는 해외 금융회사와의 인수·합병(M&A)이 포함돼 있다. 은행 내부에서는 미국의 소규모 은행을 인수한 뒤 본사를 옮기는 방안을 살펴보고 있으며, 인수 후보 명단을 작성하는 작업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 경쟁 은행과 합병하거나 UBS를 미국 금융기관에 매각하는 방안도 검토 대상에 올랐다. 실제로 UBS의 자산관리 사업과 부유층 고객 기반에 관심을 가진 미국 측 잠재 거래 상대방들이 접촉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이전 가능성을 놓고 UBS 수뇌부와 미 정부 사이에 사전 논의도 이뤄졌다. 콜름 켈러허(Colm Kelleher) UBS 회장은 지난해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과 본사를 미국으로 옮길 경우의 구체적인 구상을 비공개로 논의했으며,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UBS 유치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주요 주주들도 해외 이전을 지지하는 입장이다. 이전에 따른 사업 재편 방안으로는 스위스 국내 영업을 유지하면서 국제 사업을 해외로 옮기거나, 국내 사업을 분리해 주주 또는 외부 투자자에게 넘기는 구상이 거론되고 있다.
UBS의 본사 이전 검토에는 스위스의 자본 규제 강화로 늘어날 비용 부담을 줄이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스위스 상원은 지난달 23일 UBS가 해외 자회사 지분 가치의 90%를 보통주와 이익잉여금 등으로 구성된 보통주자본(CET1)으로 뒷받침하도록 하는 방안을 의결했다. UBS는 이 조치가 확정되면 본사 은행인 UBS AG에 160억 달러(약 21조4,510억원)의 자본을 추가로 확보해야 할 것으로 추산했다. 여기에 기존 규정에 따른 크레디트스위스 인수 후 자본 확충분과 올해 발표된 별도 규제까지 합치면 추가 자본 부담은 총 330억 달러(약 44조2,430억원)에 이른다는 게 은행 측 설명이다. UBS는 관련 조치에 따른 연간 비용을 25억 달러(약 3조3,520억원)로 예상하며, 과도한 자본 확충 의무가 국제 경쟁력을 훼손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크레디트스위스 위기서 시작된 규제 강화
규제 강화의 계기는 2023년 스위스 양대 은행 중 하나였던 크레디트스위스의 유동성 위기다. 당시 법정 자본·유동성 요건을 충족하고도 대규모 자금 인출을 견디지 못하면서 기존 규제의 위기 대응 능력이 도마에 올랐다. 위기에 앞서 크레디트스위스는 잇따른 금융 사고와 경영 실패로 고객과 투자자의 신뢰를 잃고 있었다. 손실과 구조조정 비용이 누적돼 자본 기반이 약해진 가운데, 불안해진 고객들이 대거 자금을 빼내면서 그해 3월 지급불능 위기에 몰린 것이다. 당시 크레디트스위스는 법정 자본·유동성 요건을 충족한 상태였으나, 온라인을 통해 급속히 번진 불신과 자금 이탈을 감당하지 못했다.
대규모 자금 이탈로 크레디트스위스의 독자 생존이 어려워지자, 스위스 당국은 파산에 따른 충격이 자국 경제와 국제 금융시장으로 확산될 것을 우려해 UBS를 통한 긴급 인수를 추진했다. 크레디트스위스는 글로벌 시스템적 중요 은행으로, 파산할 경우 금융회사 간 거래와 자금 조달에 연쇄 충격을 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에 스위스 정부와 중앙은행, 금융감독청(FINMA)은 월요일 금융시장 개장 전에 합의를 끌어내기 위해 주말 동안 협상을 중재했고, 2023년 3월 19일 UBS가 크레디트스위스를 30억 스위스프랑(약 4조8,540억원)에 인수하는 방안이 발표됐다. 크레디트스위스 주식 22.48주를 UBS 주식 1주로 바꾸는 전액 주식 교환 방식이었다. 당국은 긴급 인수를 뒷받침하기 위해 양사 주주의 승인 절차를 면제했으며, 주요 감독당국도 신속한 거래 승인에 협조하기로 했다.
UBS의 인수 부담을 덜기 위한 대규모 정부 보증도 마련됐다. 인수 대상 중 특정 비핵심 자산을 처분하다 손실이 발생하면 UBS가 먼저 50억 스위스프랑(약 8조920억원)을 부담하고, 이를 초과하는 손실은 정부가 최대 90억 스위스프랑(약 14조5,650억원)까지 보전하는 조건이었다. 크레디트스위스가 인수 절차를 밟는 동안 고객의 인출 요구에 대응할 수 있도록 중앙은행의 유동성 지원 대출에도 최대 1,000억 스위스프랑(약 161조8,370억원)의 정부 보증을 붙였다. 당시에는 이러한 공적 유동성 지원을 위한 법적 장치가 갖춰져 있지 않아 연방정부가 긴급명령으로 근거를 마련해야 했다. 이후 UBS는 같은 해 6월 인수를 마치고 해당 자산의 손실 위험을 재평가한 뒤 8월 손실보전 약정을 자진 해지했다. 정부 보증부 유동성 대출 역시 전액 상환돼 관련 계약과 보증이 종료됐으며, 스위스 정부가 보증 이행으로 떠안은 손실은 없었다.
표1. 스위스 정부의 UBS 자본 규제 강화 배경 및 주요 대책
| 구분 | 주요 내용 | 배경·취지 |
|---|---|---|
| 금융 위험 집중 | 2024년 봄 UBS 총자산 1조7,000억 달러, 스위스 연간 GDP의 약 2배 | 자국 내 유일한 글로벌 시스템적 중요 은행으로, 위기 발생 시 국가 재정·납세자 부담 우려 |
| 은행 안정성 대책 (2024년 4월) | 자본·유동성 요건 강화, 경영진 책임 명확화, 성과급 지급 유예·환수 등 22개 조치 | 은행 자체 손실 감당 능력 확충, 일부 조치는 UBS에 맞춰 적용 방침 |
| 의회 조사 결과 (2024년 12월) | FINMA의 2017년 규제 예외 없었다면 크레디트스위스는 2022년 법정 자본 요건에 크게 미달 | 대형 은행 대상 규제 예외 적용 제한 주문, 자본 규제 강화 필요성 부각 |
| 해외 자회사 관련 취약점 | 해외 자회사 출자액 일부를 차입금으로 충당 가능 | 자회사 가치 하락·매각 손실 발생 시 본사 자본 잠식 위험 |
| 자본 확충 방안 (2025년 6월) | 해외 자회사 출자액 전액을 본사 보통주자본으로 뒷받침하는 방안 제시 | 해외 사업 손실·자회사 처분에도 본사 자본 건전성 유지 |
UBS 해외 자회사까지 자본 규제 확대
인수 이후 스위스 당국은 몸집이 커진 UBS에 집중된 금융 위험을 관리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크레디트스위스를 흡수한 UBS의 총자산은 2024년 봄 기준 1조7,000억 달러(약 2,279조1,900억원)로, 스위스의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두 배에 달했고, 자국에 남은 글로벌 시스템적 중요 은행도 UBS 한 곳뿐이었다. 당국은 UBS마저 흔들릴 경우 국가 재정과 납세자에게 막대한 부담이 돌아갈 수 있다고 보고, 위기 발생에 앞서 은행 스스로 손실을 감당할 능력을 높이는 작업에 착수했다. 2024년 4월 연방정부가 내놓은 은행 안정성 대책에는 자본·유동성 요건 강화와 경영진의 책임 명확화, 성과급 지급 유예·환수 등을 담은 22개 조치가 포함됐다. 정부는 일부 조치를 스위스의 유일한 글로벌 시스템적 중요 은행인 UBS에 맞춰 적용하겠다는 방침도 명시했다.
같은 해 12월 공개된 의회 조사 결과는 자본 규제 강화에 힘을 실었다. 조사위원회는 FINMA가 2017년 크레디트스위스에 허용한 규제상 예외가 없었다면 이 은행이 2022년 법정 자본 요건에 크게 미달했을 것이라고 지적하며, 대형 은행에 대한 예외 적용을 제한하라고 주문했다. 후속 대책에서는 해외 자회사의 부실이 본사의 자본 건전성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는 방안이 구체화됐다. 기존 제도에서는 해외 자회사 출자액 일부를 차입금으로 충당할 수 있어, 자회사 가치가 하락하면 그 손실이 본사의 자본을 잠식할 위험이 있었다. 위기 수습을 위해 해외 자회사를 매각하려 해도 매각 손실로 본사의 자본이 부족해질 수 있는 구조였다. 이에 연방정부는 지난해 6월 해외 자회사 출자액 전액을 본사의 보통주자본으로 뒷받침하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해외 사업에서 손실이 나거나 자회사를 처분하더라도 본사가 건전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자본 확충 의무를 강화하겠다는 취지였다.
UBS 떠나면 스위스 자산관리 기반도 흔들
하지만 스위스가 자본 규제를 강화하며 줄이려는 대형 은행의 구제 부담은 UBS의 해외 이전 과정에서도 쟁점이 될 수 있다. UBS를 유치하는 국가 역시 위기 발생 시 자국 금융시장과 납세자에게 돌아갈 위험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UBS 유치가 자국 납세자의 위험 부담을 키울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엘리자베스 워런(Elizabeth Warren) 미 상원의원은 지난해 12월 베선트 재무장관과 UBS에 서한을 보내, UBS가 미국으로 이전하면 자산 기준 미국 내 6위 은행이 된다고 강조하며, 부실 발생 시 미국 경제와 금융시스템이 받을 충격을 우려했다. 크레디트스위스 인수에 따른 법률·재무·운영상 과제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 본사 이전까지 추진하면 안전한 통합 작업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UBS가 해외로 이전하면 스위스도 금융산업의 핵심 기반을 잃을 위험에 놓인다. UBS는 초고액 자산가의 재산을 관리하는 패밀리오피스와 자산운용사에 자산 보관·거래 집행·대출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며 이들의 해외 투자를 뒷받침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본사 이전에 핵심 인력과 사업 기능의 해외 이동까지 뒤따를 경우, UBS와의 협업을 바탕으로 고객 자산을 운용해 온 현지 업체들도 거래 관계와 업무 체계를 재편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 특히 부유층 고객과 자산관리 인력의 동반 이탈은 현지 프라이빗뱅킹(PB) 영업은 물론 투자·상속 업무에 수반되는 법률·세무 자문 수요까지 위축시킬 요인으로 꼽힌다.
아시아 금융허브 약진에 커진 UBS 이탈 부담
스위스의 자산관리 기반이 흔들릴 경우 홍콩·싱가포르와의 글로벌 자금 유치 경쟁에서도 입지가 약해질 우려가 있다. 두 금융허브는 최근 중국과 동남아시아의 부유층 자금을 끌어들이며 해외 자산관리 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우는 중이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의 올해 글로벌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홍콩이 유치한 역외 자산은 2조9,500억 달러(약 3,955조650억원)로, 스위스의 2조9,400억 달러를 처음으로 앞질렀다. 중국 본토 자금의 유입에 기업공개(IPO) 활황과 주가 상승이 맞물린 결과다. 싱가포르에서도 단일 가문의 재산을 관리하는 싱글패밀리오피스가 2020년 400곳에서 2024년 말 2,000곳 이상으로 늘며 자산관리 수요가 확대됐다. BCG는 홍콩과 싱가포르의 역외 자산이 2030년까지 연평균 약 9%씩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가뜩이나 홍콩·싱가포르의 추격을 받는 스위스로서는 UBS의 이탈까지 감수하며 규제를 밀어붙이기에는 부담이 크다. UBS 역시 본사를 옮기면 세금 부담이 발생하고, 스위스 은행이라는 신뢰를 바탕으로 거래해 온 고객을 잃을 위험을 안고 있다. 양측 모두 결별에 따른 부담이 큰 만큼 자본 규제에서 접점을 찾아야 하지만, 정치권의 절충 시도는 아직 결실을 보지 못했다. 스위스 상원 경제위원회는 지난 8월 해외 자회사 지분을 뒷받침할 자본을 CET1과 조달 비용이 낮은 신종자본증권(AT1)으로 절반씩 충당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손실 흡수 능력을 보강하면서 UBS의 자본 조달 부담을 덜어주려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지난달 상원 본회의에서는 해당 절충안 대신 해외 자회사 지분 가치의 90%를 보통주자본으로 뒷받침하도록 하는 방안이 통과됐다. 이를 두고 UBS가 여전히 과도한 부담이라고 반발하면서 타협의 여지는 하원으로 넘어간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