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불패 신화 흔들린다” 에르메스·LVMH·케링 주가 급락, 지정학적 불안에 美·中 소비 위축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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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메스·LVMH·케링 등 글로벌 명품 그룹 실적 둔화, 주가도 동반 급락 중동 전쟁 장기화·유럽 사회 불안에 관광 수요 위축, 미국서도 명품 소비 감소 부동산 침체·해외 자산 과세 강화로 中 핵심 소비층 이탈 가속화

글로벌 명품 그룹들의 주가가 곤두박질치고 있다. 에르메스·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케링 등 주요 업체의 실적 성장세가 줄줄이 둔화하면서 시장의 기대가 빠르게 꺾이는 양상이다. 이러한 업황 악화의 원인으로는 중동 전쟁 장기화, 유럽 내 사회·정치적 불안 등으로 인한 관광·소비 수요 위축이 지목된다. 여기에 최대 명품 수요처 중 하나인 중국에서도 부동산 침체로 인한 소비 심리 악화, 부유층 대상 해외 신탁 과세 강화 등 악재가 누적되는 추세다.
에르메스 주가 '곤두박질'
지난 22일(이하 현지시각) 에르메스는 올해 3분기(7~9월) 매출이 고정환율 기준 41억 유로(약 6조800억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3% 증가하는 데 그쳤다고 발표했다. 이는 직전 2분기 매출 성장률(6.7%) 대비 2.4%P 둔화한 수준이자, 금융정보업체 비저블알파가 집계한 시장 전망치(5.2%)도 밑도는 수치다.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전 세계 매장이 일제히 문을 닫았던 2020년 초 이후 약 6년 만에 기록한 최저 분기 성장률이기도 하다.
실적 발표 직후 프랑스 파리 증시에서 에르메스 주가는 장중 한때 9% 급락했고, 최종적으로는 4.94% 내린 주당 1,289.5유로(약 191만원)에 거래를 마쳤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에르메스 주가가 연초 대비 40%가량 하락한 상태라고 전하기도 했다. 여기에 시가총액은 올해 들어서만 860억 유로(약 127조5,000억원)가 증발하면서 1,350억 유로(약 200조2,000억원)까지 줄었고, 주가수익비율(PER)은 지난해 초 향후 12개월 예상 이익 대비 54배를 상회하다 이달 초 27배 수준으로 반토막 났다.
케링·LVMH도 하락세 직면
프랑스 주요 명품 그룹인 케링과 LVMH 역시 주가 하락 문제에 직면했다. 루이비통·디올·티파니 등 주요 명품 브랜드를 보유한 LVMH의 주가는 지난 22일 종가 기준 연초보다 39.9% 내렸고, 케링 역시 지난 23일 파리 증시에서 전 거래일 대비 16.6% 낮은 178.12유로(약 26만4,000원)에 거래를 마치며 케링 역사상 가장 큰 일일 주가 낙폭을 기록했다. 연초 대비 주가 하락률은 약 41%까지 확대됐다.
실적 성장세도 둔화하는 추세다. LVMH의 올해 3분기 매출은 185억400만 유로(약 27조4,40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유기적 성장률이 1%에 그쳤다. 특히 루이비통·디올 등이 포함된 패션·가죽제품 부문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 감소했다. 케링도 지난 22일 3분기 매출이 33억4,500만 유로(약 4조9,60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비교 가능 기준) 1% 줄었다고 밝혔다. 특히 핵심 브랜드인 구찌의 매출은 12억9,100만 유로(약 1조9,100억원)로 6% 쪼그라들며 시장 전망치(-2.8%)보다 한참 부진했다.
세계 각지서 불확실성 확대
명품주가 일제히 약세를 보이는 원인은 복합적이다. 우선 중동 전쟁 장기화에 따른 경제적 불확실성이 업계에 상당한 부담이 됐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무력 충돌 속 중동 지역의 관광·쇼핑 수요가 위축된 데다, 유가 상승과 항공 운항 차질로 유럽을 방문하는 고액 소비자들의 발길까지 줄어든 것이다. 실제 LVMH는 지난 4월 1분기 실적 발표 당시 중동 전쟁으로 그룹 전체 매출이 약 1% 감소했다고 밝힌 바 있다. 에르메스 역시 올해 3분기 중동 지역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4.5% 급감했다.
여기에 유럽 현지의 사회·정치적 불안도 악재로 작용했다. 지난 17일 프랑스 파리에서는 생활비 상승과 공공서비스 축소에 반발하는 대규모 시위가 폭력 사태로 번졌다. 이 과정에서 몽테뉴 거리의 루이비통·셀린 매장 등이 공격받아 유리창이 파손됐으며, 생토노레 거리에서는 버버리·디올 향수·겔랑 매장 등이 약탈당했다. 방돔 광장 일대의 명품 매장들도 피해를 입거나 영업을 중단했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도 지난 17~18일 생활비 상승 등에 항의하는 시위가 격화하며 상점 약탈과 기물 파손이 발생했고, 19일에는 샤넬·티파니·디올 등 명품 매장이 밀집한 몬테나폴레오네 거리의 상점들이 조기 폐점하거나 진열 상품을 철수했다.
표1. 글로벌 명품주 약세의 주요 원인
| 구분 | 주요 원인 | 시장 영향 |
|---|---|---|
| 관광·영업 환경 악화 | · 중동 전쟁 장기화에 따른 소비·관광 수요 위축 · 유가 상승, 항공 운항 차질로 유럽 방문객 감소 · 프랑스·이탈리아 시위 현장서 명품 매장 파손·약탈 및 영업 중단 사례 속출 | 중동·유럽 매출 둔화, 오프라인 매장 운영 부담 확대 |
| 미국 소비심리 위축 | · 정치적 불확실성 심화 · 국채금리, 주택담보대출 금리 상승 | 미국 명품 소비액 감소세 지속 |
| 중국 내수 부진 | · 부동산 가격 하락에 따른 자산 효과 악화 · 해외 신탁 자산 과세 강화로 부유층의 현금 확보·자산 조정 수요 확대 | 주요 브랜드의 중국 매출 부진 |
美·中 소비자들 지갑도 닫혀
명품 시장의 주요 성장 축 중 하나였던 미국 소비자들도 지갑을 닫고 있다. 미국 씨티은행의 신용카드 거래 내역 분석 결과를 살펴보면, 지난달 미국 소비자들의 명품 구매액은 전년 동월 대비 6% 줄었다. 앞서 7월과 8월에도 각각 4% 하락한 데 이어 3개월 연속 감소세를 이어간 것이다. 특히 시계·고급 보석류의 소비 위축이 두드러졌다. 시장에서는 중간선거를 앞두고 심화한 정치적 불확실성, 미국 국채금리·주택담보대출 금리 상승 등이 명품 구매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평이 나온다.
전 세계 명품 구매의 약 20%를 차지하는 중국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연출됐다. 지난 23일 블룸버그통신이 명품 시장 조사 기관 2곳의 자료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루이비통·구찌 등을 포함한 중국 본토 25개 주요 명품 브랜드의 매출은 지난 8월과 9월 각각 전년 동월 대비 두 자릿수 하락세를 보였다. 중국 국가통계국이 지난 20일 발표한 소매판매 통계에서도 소비 둔화 흐름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지난달 중국의 금·은·보석류 소매판매액은 전년 동월 대비 9.6% 감소했으며, 올해 1~9월 백화점과 브랜드 전문 매장의 매출 역시 각각 2.9%, 10.3% 쪼그라들었다.
中 소비 위축의 원인
중국의 명품 소비 감소세는 장기간 이어진 부동산 시장 침체와 내수 부진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 부동산 시장은 2021년 대형 부동산 개발업체 헝다그룹의 유동성 위기를 계기로 본격적인 조정 국면에 접어들었으며, 이후 △개발 업체들의 채무불이행 △주택 거래 감소 △주택 가격 하락 등 요인이 맞물리며 상황이 한층 나빠졌다. 중국 정부가 주택 구매 규제 완화와 대출금리 인하 등 부양책을 잇달아 시행했지만, 회복세는 여전히 미약한 실정이다. 지난달 중국의 신규 주택 가격은 전월 대비 0.1%, 전년 동월 대비 2.8% 내렸다. 부동산 자산 가치가 미끄러지면 가계의 소비 심리가 악화하고, 저축을 늘리는 경향이 강해져 명품을 비롯한 고가 소비재 수요가 줄어들게 된다.
이에 더해 최근 중국 정부가 부유층의 해외 신탁 자산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면서 소비 위축 압력이 재차 커졌다. 현재 중국 세무당국은 해외 신탁을 통해 자산을 관리해 온 고액 자산가들을 대상으로 과거 미신고 소득의 신고를 요구하고 미납 세금 추징에 나선 상태다. 이는 앞서 지난 7월 중국 재정부와 국가세무총국이 역외 신탁으로 이전한 자산의 가치 상승분과 신탁에서 발생한 소득에 20%의 세율을 적용하는 규정을 도입한 데 따른 조치다. 이처럼 세무당국의 감독이 강화되자, 일부 자산가들은 세금 납부에 필요한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보유 주식을 매각하거나 해외 신탁을 해지하는 등 자산 구조조정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