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졸자는 취업 한파·고졸자는 스카우트 전쟁, AI가 촉발한 美 취업시장 ‘학위 역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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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작성·자료 분석·기초 코딩까지 흡수한 생성형 AI 신입 채용은 얼어붙고 전기·배관·용접 인력의 몸값은 상승 대학 졸업장 프리미엄 흔드는 직군별 고용 양극화 가속

미국 청년 고용시장에서 ‘뒤집힌 양극화’가 나타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청년층은 20년 만의 고용 호황을 누리는 반면, 대졸 청년의 취업 여건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부진한 수준으로 악화했다. AI 확산으로 신입 대졸자가 주로 맡던 사무·전문직 수요가 줄어든 사이, 데이터센터 건설과 전력망 확충에 필요한 전기기사·배관공·용접공 등 숙련 기능직은 심각한 인력난 속에 몸값이 치솟았다. 대학 졸업장이 더 나은 일자리를 보장한다는 오랜 통념이 AI 등장에 따라 흔들리는 모양새다.
대졸·비대졸 취업 속도 격차, 반세기 만의 최저권
8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노동연구기관 버닝글래스연구소에 따르면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22~34세 실업률은 최근 20여 년 중 가장 낮은 수준에 근접했다. 고령층 은퇴와 이민 감소로 숙련 기능직 인력 부족이 심화한 영향이다. 특히 육체노동 비중이 높고 대면 업무가 많은 직종일수록 실업률이 낮았다. 서비스업, 건설업, 제조업 등 AI가 대체하기 어려운 생산·현장직 일자리가 대표적이다. 미국 노동통계국(BLS)이 지난 4일 발표한 '8월 고용 보고서'도 이를 뒷받침한다. 지난달 늘어난 미국 신규 일자리 16만2,000개 가운데 음식점·주점 관련 일자리가 3분의 1 이상을 차지했다.
반면 대학을 졸업한 구직자는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취업난을 겪고 있다. 특히 석사 이상 학위를 보유했거나 과학·기술·공학·수학(STEM) 분야를 전공한 구직자의 어려움이 큰 것으로 조사됐다. 가드 레바논(Gad Levanon) 버닝글래스연구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대졸과 비대졸 구직자가 정반대 상황을 겪고 있다”며 “통상 경기와 상관없이 대졸자와 비대졸자 고용 상황이 비슷한 흐름을 보이던 것과 대비된다”고 설명했다.
학력에 따른 취업 속도의 격차도 축소됐다. 최근 클리블랜드 연방준비은행이 1976~2025년 미국 인구조사국의 현행인구조사(CPS)를 분석한 결과, 수십 년 동안 5%포인트 안팎이던 22~27세 고졸자와 대졸자의 실업률 격차는 7월 기준 12개월 이동평균 2.5%포인트로 좁혀졌다. 이는 1970년대 후반 이후 최저치인 2024년 3월의 2.4%포인트에 근접한 수치다. 실업 상태에서 일자리를 찾는 비율도 2019년 전후로 두 집단이 비슷해졌다.
AI 도입 늘자 대졸 초급 사무직 채용 ‘뚝’
이 같은 학력별 고용 격차는 AI 확산으로 직군별 노동 수요가 엇갈리면서 커졌다. 지난 5월 텍사스 기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는 응답 기업의 3분의 2가 AI를 업무에 활용한다고 밝혔다. 2년 전 40%였던 도입률이 60%대로 높아진 것이다. 댈러스 연방준비은행이 온라인 채용공고 수백만 건을 분석한 결과, 생성형 AI로 자동화할 수 있는 업무 비중이 높은 직종의 공고는 노출도가 낮은 직종보다 2023년 말에는 약 5%, 2025년 1분기에는 8% 적었다. AI 활용도가 높은 기업의 관련 채용공고도 올해 초까지 8~9% 감소했다.
기업이 우선 줄인 대상은 신규 인력이 맡아 온 초급 업무였다. 생성형 AI는 문서 초안 작성과 자료 요약, 정형화된 분석, 고객 응대, 기초 코딩 등을 수행할 수 있다. 댈러스 연은이 분류한 고노출 직군에는 소프트웨어 개발자와 웹디자이너, 컴퓨터 프로그래머뿐 아니라 사무원과 편집자, 일부 관리직도 포함됐다. 온라인에 게시되는 채용공고의 절반 이상이 경력 2년 이하 구직자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공고 감소의 충격은 대졸 신입과 이직 준비자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다. 연구진은 생성형 AI 노출로 텍사스의 전체 온라인 채용공고가 2024년 1.8%, 지난해 2.6% 감소한 것으로 추산했다.
표1. 생성형 AI 확산에 따른 텍사스 기업의 채용공고 변화
| 구분 | 시점 | 주요 수치 | 세부 내용 |
|---|---|---|---|
| 텍사스 기업의 AI 도입률 | 2026년 5월 | 응답 기업의 약 3분의 2 | 2년 전 약 40%에서 60%대로 상승 |
| 생성형 AI 고노출 직종의 채용공고 | 2025년 1분기 | 저노출 직종 대비 약 8% 감소 | 소프트웨어 개발자·웹디자이너·프로그래머·사무원·편집자·일부 관리직 포함 |
| AI 활용도가 높은 기존 기업의 관련 채용공고 | 2026년 초까지 | 8~9% 감소 | 문서 작성·자료 요약·정형 분석·고객 응대·기초 코딩 등 초급 업무 축소 |
| 생성형 AI 노출에 따른 전체 온라인 채용공고 | 2025년 | 2.6% 감소 | 온라인 채용공고의 절반 이상이 경력 2년 이하 구직자 대상 |
AI 자본 몰렸지만 고용·소득 지표는 악화
텍사스의 상황은 특히 AI 설비투자와 대졸자 고용이 서로 다른 궤적을 보인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글로벌 부동산 서비스업체 존스랑라살(JLL)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텍사스의 기존·건설 중 데이터센터 용량은 26기가와트(GW)로, 2위 버지니아주 13GW의 두 배에 달했다. 북미 전체에서 건설 중인 용량 66GW 가운데 상당 부분이 텍사스에 몰린 셈이다. 하지만 댈러스 연은이 확인한 텍사스 대학 졸업자의 고용·소득 지표는 같은 기간 악화했다. 데이터센터 투자액과 대졸 신입 채용 규모가 함께 증가하지 않은 것이다.
데이터센터의 고용 효과가 크지 않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는 미국 데이터센터 약 1,500곳과 취소된 사업 52건을 BLS 자료와 연계해 2003~2024년 지역 고용 변화를 분석했다. 그 결과 첫 대형 데이터센터가 들어선 지역에서 10년 동안 추가로 발생한 일자리는 통상 100~200개로 추정됐다. 데이터 처리 부문 고용은 56%, 통신 부문은 43% 증가했지만 당초 종사자 수가 적어 전체 고용에 미친 영향은 제한적이었다. 지역 임금은 유의미하게 상승하지 않았고 주택가격만 2~5% 올랐다.
AI 노출 직종서 청년 고용 6% 감소
여기에 데이터센터 투자를 촉발한 생성형 AI는 대졸 청년이 주로 진출하던 사무·전문직의 초급 업무까지 흡수하고 있다. 스탠퍼드대 디지털경제연구소가 미국 급여관리업체 ADP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AI 노출도가 높은 직종에 종사하는 22~25세 고용은 2022년 말부터 2025년 9월까지 6% 감소했다. 반면 같은 직종의 35~49세 고용은 8% 이상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소프트웨어 개발 분야에서는 22~25세 고용이 2022년 말 고점에서 약 20% 줄어들었다.
기업의 채용 방식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시카고 채용업체 하이어웰에 따르면 광고·마케팅 대행사들은 최근 신입사원을 거의 뽑지 않고 있다. 컨설팅업체 퓨처티는 올여름 인턴 채용을 중단한 뒤 소셜미디어(SNS) 게시물 작성 업무를 챗GPT에 맡겼다. 자료 조사와 문서 초안 작성, 기초 분석, 콘텐츠 제작을 경력자와 AI가 함께 처리하면서 신입 직원을 선발해 가르칠 유인이 약해진 것이다. 이에 대졸 청년의 고용 충격도 재직자 해고에 앞서 신규 채용 축소의 형태로 나타나는 분위기다.
데이터센터 건설 붐에 몸값 치솟는 블루칼라
반면 데이터센터를 짓고 전력망을 확충하는 공사 단계에서는 현장 인력 수요가 급증했다. 서버를 가동하려면 대용량 변전설비와 냉각장치, 광섬유망, 비상발전시설 등을 갖춰야 해서다. 이에 전기기사와 배관공, 용접공, 냉난방·공조(HVAC) 기술자, 중장비 운전 인력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미국 주요 건설 현장으로 확산됐다. 이들 직군의 채용에서는 4년제 학위를 요구하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도제훈련 이수 여부와 자격증, 현장 경력이 주요 채용 기준으로 통한다.
노동시장 분석업체 라이트캐스트에 따르면 데이터센터 관련 건설직 공고는 최근 6개월간 23% 증가했고, 2년 사이 약 두 배로 불어났다. 데이터센터 기술자와 엔지니어 수요도 비슷한 폭의 증가세를 보였다. 이미 미국 숙련 기능직의 연간 부족 인원은 170만 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라이트캐스트가 텍사스주 러레이도 지역을 토대로 산출한 대표 사업 모형에서는 공사 기간에만 1,000명의 인력이 필요했으며, 이들이 벌어들인 소득은 7,400만 달러(약 990억원)로 추계됐다.
현장 인력 쟁탈전은 전력업계로도 번졌다. 컨설팅 업체 딜로이트는 미국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가 2025년 47GW에서 2035년 176GW 이상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2023~2025년 데이터센터 핵심 직군의 채용공고는 64%, 전력업계 공고는 20% 늘어난 반면 같은 직군의 미국 전체 증가율은 4%에 그쳤다. 데이터센터 전기설비 기술자 공고는 180% 이상 급증했고 발전설비 운용 인력도 56% 늘었다. 두 업계가 새로 낸 공고의 3분의 1 이상은 같은 직군을 겨냥한 것으로 집계됐다.
메타·구글, 기능직 근로자 훈련에 거액 투자
인력 부족은 임금과 처우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의하면 데이터센터 건설 현장으로 옮긴 일부 기능직 근로자는 기존 일자리 대비 25~30% 높은 임금을 받고 있으며, 연봉이 10만 달러(약 1억3,390만원)를 웃도는 사례도 잇따랐다. 인력업체 켈리의 조사에서는 데이터센터 운영사의 90%가 인력난을 사업 추진의 중대한 위험으로 지목하기도 했다. 데이터센터 전문 기술자의 미국 내 연봉 중간값은 11만2,000달러(약 1억5,000만원), 건설관리자는 12만8,000달러(약 1억7,100만원)로 제시됐으며, 현장 인력 4명 중 1명은 경쟁사의 영입으로 직장을 옮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력 확보가 사업 일정까지 좌우하자 빅테크 기업들은 기능직 양성에 직접 나섰다. 메타는 1억1,500만 달러(약 1,540억원)를 투입해 루이지애나·오하이오·인디애나·텍사스에서 무료 직업훈련 과정인 ‘아메리카 워크포스 아카데미’를 시작했다. 수료생에게 공인 자격과 협력업체 취업을 보장하는 해당 교육에는 접수 개시 7일 만에 3만5,000명이 몰렸다. 구글도 5,000만 달러(약 669억6,000만원)를 들여 미국 20여 개 주에서 숙련 인력 30만 명을 양성하기로 했다. 지원 대상에는 전기기사와 용접공, 배관공, HVAC 기술자 교육과정이 포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