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의존하다 결국 생각 멈춰”, 대학·직장 덮친 ‘AI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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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봇 답 반복 수용, 사고 과정 통째로 외주화 과제 처리 속도 상승 속 기억·검증 훈련 실종 인지 부채의 노동시장 전이, 채용·임금 격차 확대

대학가에서 학생들이 인공지능(AI)에 지나치게 의존해 스스로 생각하는 과정을 포기하는 이른바 ‘인지적 항복’(cognitive surrender)을 겪고 있다는 보고서가 나왔다. AI가 과제를 대신하는 빈도가 높아질수록 기억·추론·검증 과정에 투입되는 인지 활동은 약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학습 습관이 굳어지면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오류를 판별하는 능력도 함께 퇴화할 가능성이 크다. 대학에서 벌어진 사고력 격차가 졸업 이후 업무 역량의 차이로 이어져 채용과 임금까지 가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AI 의존해 놓고 ‘학습했다’ 착각
15일(이하 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매사추세츠공대(MIT)AI 사용 연구위원회는 지난달 보고서를 통해 학생들이 조금만 어려움을 겪어도 곧바로 AI에 의존해 답을 구하면서도 "학습했다는 착각(Illusion of learning)"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학생들이 교수의 상담 시간을 찾아가거나 다른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는 대신 챗봇에서 답을 구하면서 고립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고 짚었다. 사고 과정에 필요한 인지적 부담을 AI에 전가하는 인지적 항복도 포착됐다. MIT 미디어랩의 54명 대상 실험에서 챗GPT 이용 집단은 검색엔진 이용 집단과 도구를 쓰지 않은 집단 가운데 뇌 신경망 연결성이 가장 약했고, 자신이 작성한 문장을 기억하거나 글에 대한 소유감을 느끼는 수준도 낮았다.
AI가 실제 학습 능력을 떨어뜨릴 수 있음을 시사하는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다. 중국 중·고등학생 2만6,000명을 대상으로 한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AI를 활용한 뒤 숙제 점수가 18% 상승했지만, AI를 사용할 수 없는 통제된 환경에서 치른 시험 점수는 20% 하락했다. AI의 도움으로 숙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정작 AI 없이 문제를 풀 때 필요한 심층적인 학습이 약화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결과다. 연구에 참여한 나탈리야 코스미나 MIT 연구원은 "기억하는 데 도움을 주는 기억 네트워크를 사실상 전혀 사용하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동적 정보 수용 확산
실제 미국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도 크게 약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4일자 사설을 통해 "지난해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PISA)에서 미국 학생들은 중국 학생들에 크게 뒤쳐진 것으로 파악됐다"며 "PISA 결과는 교육 경쟁력 약화가 중국과의 혁신 경쟁에서 미국의 보다 근본적인 문제임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미국 싱크탱크 경제정책연구센터(CEPR) 연구진은 학습 손실의 핵심 원인으로 '노력의 전가(effort displacement)'를 꼽았다. 학습 손실의 약 80%가 과제를 비정상적으로 빠른 속도로 끝내는 행태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인지적 노력을 꺼리는 사람일수록 접한 정보를 그대로 수용하는 성향은 오래전부터 확인됐다. 생성형 AI는 검증을 생략해도 된다고 여기는 기준선을 크게 끌어올렸을 뿐이다. 답변이 유려한 문장과 정돈된 논리로 제시되면서 오류와 불확실성을 감지할 단서가 희미해졌고, 사용자는 익숙하지 않은 분야의 판단까지 챗봇에 맡기기 시작했다. 특정 집단에서 주로 관찰되던 수동적 정보 수용이 일상적 사고 방식으로 확산할 여건이 조성된 셈이다.
표1. AI 의존이 학습 능력에 미친 영향
| 구분 | 연구 대상·비교 | 주요 결과 | 시사점 |
|---|---|---|---|
| MIT 실험 | 54명을 챗GPT·검색엔진·도구 미사용 집단으로 구분 | 챗GPT 이용 집단의 뇌 신경망 연결성이 가장 약했고, 작성 문장에 대한 기억과 소유감도 낮게 측정 | 사고 과정의 인지적 부담을 AI에 전가하는 ‘인지적 항복’ 가능성 |
| 중국 학생 연구 | 중·고등학생 2만6,000명의 AI 활용 전후 학업 성과 분석 | AI 활용 뒤 숙제 점수는 18% 상승했지만, AI를 사용할 수 없는 시험 점수는 20% 하락 | 과제 성과 개선과 달리 독립적인 문제 해결에 필요한 심층 학습은 약화 |
| 학습 행태 변화 | 챗봇 이용 학생의 과제 수행 방식과 학습 과정 분석 | 교수 상담과 동료 학습 대신 챗봇 답변에 의존하고 과제를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완료 | ‘학습했다는 착각’과 수동적 정보 수용, 학생 고립 현상 확산 |
| 학습 손실 | 미국 경제정책연구센터(CEPR)의 학습 손실 원인 분석 | 학습 손실의 약 80%가 과제를 지나치게 빠르게 끝내는 ‘노력의 전가’에서 발생 | AI 활용이 기억·추론·검증에 투입되는 학습 노력을 대체할 위험 |
AI 오답인데도 10명 중 8명 그대로 채택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의 스티븐 쇼(Stephen Shaw)·기드온 네이브(Gideon Nave) 연구팀은 이를 외부 AI가 인간의 직관과 숙고에 개입하는 ‘시스템 3’로 규정했다. 연구진은 사전 공개 논문에서 참가자 1,372명을 상대로 9,593회의 인지반응검사(Cognitive Reflection Test)를 진행했는데, AI가 제공한 답이 틀렸음에도 참가자의 79.8%가 이를 채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AI 없이 문제를 풀 때 45.8%였던 정답률은 AI가 정확한 답을 제시하자 71%로 올랐고, 오답을 제시한 경우에는 31.5%까지 추락했다. 인간의 추론 성과가 모델의 정확도에 종속되는 ‘가위 효과(Scissors Effect)’가 현실화한 것이다.
오답을 수용한 뒤에도 참가자들의 확신은 꺾이지 않았다. 30초의 시간제한을 둔 실험에서는 AI 이용자의 오답 문항 정답률이 12.1%까지 떨어졌다. 정확한 판단에 금전적 보상을 지급하고 즉각적인 피드백을 제공한 조건에서도 인지적 항복 비율은 57.9%에 달했다. AI 신뢰도가 높은 참여자에게서는 오답 수용 경향이 강하게 나타났고, 높은 인지 욕구와 유동지능(Fluid Intelligence)은 이를 억제하는 방어 요인으로 작용했다. 검증을 촉진하는 장치를 투입한 뒤에도 AI가 제시한 첫 답이 판단의 기준점으로 남은 결과다.
생성 속도에 가려진 ‘인지 부채’
이런 종속이 누적될수록 AI 시대의 인지 격차는 양극화될 전망이다. 마이크로소프트리서치와 카네기멜런대 연구진이 지식노동자 319명의 AI 활용 사례 936건을 분석한 결과, AI에 대한 신뢰가 높을수록 비판적 사고를 수행하는 빈도는 줄어드는 연관성이 확인됐다. 특히 자신의 업무 능력을 확신한 사람에게서는 정보 검증과 결과 통합, 작업 관리에 투입하는 사고가 활발해졌다. 같은 도구를 손에 쥐고도 한쪽은 AI의 판단을 지휘하고 다른 쪽은 생성된 답변을 승인하는 역할로 굳어지는 셈이다.
더욱이 AI 의존의 후유증은 ‘인지 부채’로 쌓이고 있다. 캐나다 빅토리아대 마거릿앤 스토리(Margaret-Anne Storey) 교수는 최근 논문에서 AI가 대량의 코드를 빠르게 생산하면서 개발팀의 코드 이해력이 떨어지고, 설계 목적과 기술적 제약도 기록에서 빠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결과물은 계속 쌓이지만 담당자가 작동 원리와 수정 방법을 설명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런 공백이 커지면 오류 대응과 유지보수까지 다시 AI에 맡기게 되고, 조직의 판단 능력은 갈수록 약해질 수밖에 없다.
사고력 갖추지 않은 인력, 노동시장서 도태
이런 인지 공백은 노동시장에서 곧바로 대체 압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중국 AI 기업 딥시크의 머신러닝 시스템 엔지니어 류성위는 최근 직종 전환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베이징대 튜링반 출신인 류는 세계 대학생 슈퍼컴퓨터 경진대회에서 상위권에 올랐고, 딥시크 V4.1의 핵심 연산 기술 개발에도 참여한 최정예 인력이다. 그는 AI가 향후 6개월∼1년 안에 자신이 맡은 고난도 시스템 최적화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AI 개발의 최전선에 선 엔지니어까지 대체 위험을 체감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산업 현장의 변화는 이미 채용과 임금 지표에서 확인되고 있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최고경영자는 지난 4월 구글 신규 코드의 75%가 AI를 통해 생성되고 있다고 밝혔다. 2024년 10월 25%였던 비중이 2년도 채 지나지 않아 세 배로 뛰었다. AI 활용 능력을 갖춘 인력의 몸값도 급등했다. 글로벌 회계 컨설팅 그룹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가 27개국의 채용 공고 10억 건 이상을 분석한 ‘2026 글로벌 AI 일자리 지표’에 따르면, AI 기술을 요구하는 일자리의 임금 프리미엄은 평균 62%로 집계됐다. 지난해 57%에서 5%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기업이 AI 활용 능력을 별도 자격이자 고임금의 근거로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신입 채용의 문턱도 급격히 높아졌다. PwC가 미국의 초급 일자리 240만 개를 분석한 결과, AI 노출도가 높은 직무는 판단력과 리더십, 창의성, 대면 소통 능력을 요구할 확률이 기존 초급 직무의 7배에 달했다. 이른바 ‘고숙련형 초급 일자리’는 2019년 이후 35% 증가했고, 기존 초급 일자리는 10% 감소했다. 학위와 자격증만 갖춘 구직자는 서류 단계부터 밀려나고, 전공지식과 AI 활용 능력을 함께 입증한 인재에게 채용 기회가 집중되는 양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