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비는 줄고 국경은 높아져" 美 대학가 학자·유학생 줄이탈, 트럼프 행정부 압박에 '두뇌 유출' 가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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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떠나는 학자들, 캐나다·유럽·중국 등지서 둥지 틀어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연방 연구 지원 대폭 축소 입국·체류 요건 강화로 유학생 유입도 줄어, 대학 재정 '비상'

미국 학계에서 인재들이 속속 이탈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연구비 확보 난도가 대폭 올라간 가운데, 외국인 유학생·연구자의 입국 및 체류 요건까지 강화되면서 여타 주요국으로 거점을 옮기는 학자들이 급증하는 양상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흐름이 장기화할 경우 미국 대학의 연구·인력 기반 전반이 약화하며, 미국의 첨단 과학기술 분야 경쟁 우위에도 균열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한다.
美 인재 흡수한 캐나다
9일 학계에 따르면, 최근 미국 대학가에서는 '두뇌 유출' 현상이 눈에 띄게 심화하고 있다. 일례로 지난달 28일(이하 현지시각) 캐나다는 미국 내 최고 수준의 학자 48명을 캐나다 21개 대학으로 한꺼번에 영입했다고 발표했다. 유명 천문학자인 세라 시거 매사추세츠공과대(MIT) 교수, 컴퓨터 단백질 설계 분야의 브라이언 쿨먼 UNC채플힐 교수, 미국 매사추세츠주립대 챈 의과대학의 리보핵산(RNA) 치료제 연구소를 이끄는 필립 재모어 소장 등이 대표적이다. 영국 종합 과학 학술지 네이처에 따르면, 이들 중 상당수는 미국의 연구 자금 지원 불확실성을 이유로 이동을 결정했다.
실제 캐나다 몬트리올 맥길대에 자리를 잡은 재모어 소장은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연구비 집행이 18개월이나 미뤄지며 연구실 규모를 줄여야 하는 처지에 놓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향후 캐나다 정부가 마련한 17억 캐나다달러(약 1조6,520억원) 규모 ‘글로벌 임팩트+연구인재 이니셔티브’ 프로그램을 통해 연간 110만 달러(약 14억7,170만원)를 제공받을 예정이다. 여기에 지속 가능성, 기후, 환경 등 트럼프 행정부가 배척하는 분야의 연구진도 다수가 캐나다로 둥지를 옮겼다.
유럽·중국行도 늘어
유럽으로 이동하는 미국 연구자도 늘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지난 2월 해외 우수 연구자 유치 프로그램인 ‘Choose France for Science’의 1차 선정자 46명을 공개했는데, 이 가운데 41명이 미국 연구기관 소속이었다. 출신 기관별로는 컬럼비아대 8명, UCLA 4명, 워싱턴대·NASA 고다드우주비행센터·스탠퍼드대 각 2명 등이 포함됐다. 연구 분야는 기후·생물다양성·지속가능사회가 37%로 가장 많았고, 보건·생명과학이 30%, 저탄소에너지와 우주 연구가 각각 9%를 차지했다. 프로그램 전체 예산은 1억 유로(약 1,556억원)이며, 연구자 1인당 최대 250만 유로(약 38억9,060만원)를 지원받을 수 있다.
중국으로 향하는 연구자도 적지 않다. CNN이 대학·연구 기관의 공개 발표 등을 집계한 결과, 지난해 미국 대학에서 중국 연구 기관의 전임직으로 이동한 저명·신진 과학자는 최소 55명에 달했다. 조사 범위를 2024년 초까지 확대하면 그 수는 약 85명으로 늘어나며, 이 중 상당수는 중국 출신으로 미국에서 연구 경력을 쌓은 과학자였다. 지난해 노벨화학상 공동 수상자였던 오마르 야기도 지난 7월 UC버클리를 떠나 중국 칭화대에 전임 교수로 합류했다. 야기는 칭화대에서 화학·화학공학·인공지능(AI)·컴퓨터과학·재료공학 분야가 공동 참여하는 AI 재료화학연구센터 설립을 주도할 예정이다.
학계 예산 조이는 트럼프
이러한 인재 이탈의 핵심 원인으로는 미국의 연방 연구비 축소와 집행 불확실성이 지목된다. 네이처에 따르면 지난해 NIH와 국립과학재단(NSF)에서 취소·동결된 연구 과제는 7,800건 이상이었다. 이후 법원 명령과 정부·대학 간 합의로 일부 지원이 복구됐지만, 올해 초 기준 약 2,600건의 과제가 여전히 정상화되지 않은 상태였다. 신규 연구비 확보난도 자체도 크게 높아졌다. NSF의 지난해 신규 연구과제 지원 건수는 직전 10년 평균보다 25% 감소했고, NIH 역시 24% 줄었다. 특히 NIH는 지난해 초 연구비 심사위원회 개최가 장기간 중단되면서 연간 470억 달러(약 62조8,800억원) 규모의 연구 예산 상당 부분을 제때 집행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비 감소는 각 대학의 인력 운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하버드대, MIT, 에모리대, UC샌디에이고 등 주요 연구 대학들은 줄줄이 신규 채용을 동결하거나 축소했고, 일부 대학은 출장·임금 인상까지 제한했다. 펜실베이니아대를 비롯한 일부 대학은 같은 해 박사 과정 입학 예정자에 대한 비공식 합격 의사를 철회하거나, 일부 박사 과정 신입생을 아예 받지 않기도 했다. 이 같은 문제는 올해 들어서도 지속되고 있다. 올해 NSF가 지원하는 신규 연구 과제는 약 6,100건에 불과하다. 이는 전년보다 약 30% 적은 수치이자, 40여 년 만에 기록한 최저치다. 올해 상반기에는 생물학과 사회과학 분야를 중심으로 연구비 지급이 지연되기도 했으며, 연구자들은 신규 프로젝트 착수뿐 아니라 연구원·대학원생 인건비 지급에도 차질을 겪었다.
유학생 진입·체류 장벽도 높아져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강화된 외국인 유학생과 연구자의 입국·체류 요건 역시 악재로 꼽힌다. 앞서 미 국토안보부(DHS)와 이민세관단속국(ICE)은 지난해 3~4월 유학생 관리 시스템인 'SEVIS'에서 외국인 학생들의 기록을 대거 종료한 바 있다. 근거는 과거 경범죄 및 경찰 접촉 기록, 비자 취소 등이었다. 이후 DHS는 같은 해 5월 하버드대의 학생·교환 방문자 프로그램(SEVP) 인증을 취소하겠다고도 통보했다. 이는 하버드대가 신규 F-1·J-1 비자 학생을 받을 수 없게 될뿐더러, 기존 외국인 학생도 체류 자격을 잃거나 다른 학교로 소속을 옮겨야 할 수 있는 중대 조치였다. 법원이 집행을 막으면서 실제 인증이 취소되지는 않았지만, 미 국무부는 같은 달 전 세계 미국 대사관과 영사관에 F·M·J 비자의 신규 인터뷰 예약을 일시 중단하라고 지시하며 압박을 유지했다.
비자 발급이 재개된 뒤에는 심사 기준이 한층 강화됐다. 국무부는 지난해 6월부터 모든 F·M·J 비자 신청자의 소셜미디어(SNS)와 온라인 활동을 심사하도록 했으며, 신청자에게 계정을 공개 상태로 설정하도록 요구했다. 영사관 직원은 신청자의 온라인 게시물과 활동 내역을 검토하고, 미국 정부·제도 등에 대한 적대적 태도가 있는지 살펴보라는 지침을 받았다. 이에 더해 DHS는 지난해 8월 F-1 유학생과 J-1 교환방문자에게 적용해 온 'Duration of Status(D/S)' 체계를 폐지하고, 원칙적으로 최대 4년의 고정 체류 기간을 부여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지금까지 해당 비자 보유자는 학업이나 연구 프로그램을 정상적으로 이어가는 동안 별도의 체류 종료일 없이 합법적 신분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새 제도에서는 4년 이상의 체류가 필요한 경우 추가로 체류 기간 연장 심사를 받아야 한다. 이 방안은 올해 7월 최종 규정으로 확정됐으며, 오는 15일 본격 시행될 예정이다.
표1.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외국인 유학생·연구자 규제
| 시기 | 조치 | 주요 내용 |
|---|---|---|
| 2025년 3~4월 | SEVIS 기록 종료 | 경범죄·경찰 접촉·비자 취소 이력 등을 근거로 외국인 학생 기록을 대거 종료 |
| 2025년 5월 | 하버드대 SEVP 인증 취소 시도 | 외국인 학생·교환방문자 수용 자격 박탈 추진, 법원이 집행 차단 |
| 2025년 5월 | 비자 인터뷰 중단 | 전 세계 미국 공관에서 F·M·J 비자 신규 인터뷰 예약을 일시 중단 |
| 2025년 6월 | 온라인 활동 심사 강화 | 비자 신청자의 SNS 계정 공개 요구, 게시물·활동 내용 심사 |
| 2025년 8월 | 고정 체류기간 도입 제안 | 학업 기간에 연동되는 체류 자격 폐지, 원칙적으로 최대 4년만 허용하는 방안 제시 |
| 2026년 9월 | 고정 체류기간 시행 | 유학생과 교환방문자에게 새로운 체류 기간 규정 적용 |
학생 비자 발급 감소세
이러한 조치로 인해 미국 대학으로 새롭게 유입되는 외국인 학생은 뚜렷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 국무부가 후원하는 국제교육연구소(IIE)의 ‘Open Doors’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가을 미국 대학에 처음 등록한 외국인 학생은 전년 대비 17% 줄었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당시를 제외하면 관련 통계 작성 이후 가장 큰 감소 폭이다. 비자 발급 건수에서는 이 같은 흐름이 한층 명확하다. 미 고등교육 전문 매체 크로니클오브하이어에듀케이션이 미 국무부 통계를 분석한 결과를 살펴보면, 지난해 가을학기 입학을 앞두고 비자 발급이 집중되는 5~8월 F-1 학생비자 발급 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36%(9만7,000건) 급감했다. 특히 최대 유학생 공급국 가운데 하나인 인도의 경우 해당 기간 발급된 F-1 비자가 약 2만2,870건으로 전년보다 약 60% 쪼그라들었다.
연간 기준으로 범위를 넓혀도 결과는 비슷하다. 미 국무부는 지난해 발급된 학생 비자가 전년보다 23% 줄었다고 집계했다. 인도 국적자에 대한 발급 건수는 56.6% 급감했고, 이란·미얀마·베네수엘라 등 일부 국가에서는 감소 폭이 70%를 웃돌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대학들은 입학 연기 등 대응책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IIE 조사에서 미국 대학의 72%는 지난해 가을학기 입학 허가를 받고도 제때 입국하지 못한 외국인 학생에게 올해 봄까지 등록을 미룰 수 있도록 했으며, 56%는 올가을까지 연기를 허용했다. 이러한 유학생 유치 장벽은 향후 등록금 의존도가 높은 지역과 중소 대학의 재정 부담으로 이어지며 고급 인력 양성·운용의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