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도 병력도 AI로 대체, ‘시민 없는 권력’의 위험
입력
수정
AI 자동화로 고용 축소·노동소득 감소 경제적 자립 흔들리며 기술 보유층 의존 심화 부의 집중에 정치적 영향력 격차 확대 우려

자율 무기와 인공지능(AI) 감시망의 확산이 권력 집중을 부추겨 ‘디지털 권위주의’를 초래할 것이라는 경고가 나왔다. 정치 지도자나 거대 기술기업이 시민을 감시하고 저항을 억누를 수단을 독점하면 민주주의의 견제 기능도 약해진다는 우려다. 사람이 제공하던 노동력과 병력을 기술로 대체하는 변화가 진행되면서, 이 같은 우려는 현실적 근거를 얻고 있다. 기업에서는 AI 도입을 앞세운 감원이 이어지고, 전장에서는 무인 장비가 병사의 임무를 넘겨받기 시작했다. 국가와 기업이 시민의 노동과 복무에 덜 의존하게 되면 시민의 요구를 수용해야 할 압박도 약해질 가능성이 크다.
다니엘 수아레스 "AI 앞세운 권력 집중, 시민 통제 위협"
26일 닛케이아시아에 따르면 미국 SF 소설가 다니엘 수아레스는 자율 무기와 AI 감시망의 확산이 디지털 권위주의를 초래할 위험을 경고했다. 그가 주목한 것은 감시와 살상 수단을 독점한 권력자가 시민의 통제를 벗어나는 상황이다. 시민의 움직임을 상시 추적하고 저항을 무력으로 억누를 수단까지 확보하면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견제 기능이 약해진다는 우려다. 수아레스는 그 극단적인 모습으로 권력자가 더 이상 선거나 민주주의가 필요 없다고 선언하는 미래를 거론했다.
그가 경계하는 권력 집중의 주체에는 정치 지도자와 거대 기술기업이 함께 포함된다. AI 감시 인프라와 자율 무기를 장악한 소수가 막대한 강제력을 행사하면서도 대중에게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를 우려한 것이다. 감시망은 권력에 반대하는 사람을 찾아내는 수단으로, 살상 로봇은 저항을 억누르는 수단으로 악용될 위험을 안고 있다. 두 기술이 결합할 경우 시민들이 권력의 부당한 행사에 맞서거나 책임을 묻는 일도 어려워진다는 게 그의 경고에 담긴 취지다.
수아레스는 이를 막기 위한 원칙으로 법치주의와 인간의 개입을 강조했다. 감시와 무력 사용을 결정하는 권한이 누구에게 주어지는지, 그 권한을 어떤 규칙으로 제한할지가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특히 자율 무기의 판단 과정에는 사람이 개입하는 ‘휴먼 인 더 루프(Human-in-the-loop)’ 원칙을 제시했다. 기술 경쟁에 매몰된 채 AI에 권한을 넘기는 흐름을 경계하며, 기술을 운용하는 주체에 대한 법적 통제와 인간의 판단을 함께 요구한 것이다.
청년 채용부터 기존 인력까지 덮친 AI 대체 압박
수아레스가 경고한 미래는 실현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니다. AI가 인간의 지적 노동을 대체하면 기술을 보유한 기업은 인력 의존도를 낮추고, 노동자는 일자리와 소득을 지키기 어려워질 우려가 있다. 기술을 소유한 쪽과 노동을 제공하는 쪽의 힘의 균형이 흔들리는 것이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공동창업자는 지난 8월 세마포어와의 인터뷰에서 AI가 여러 산업의 업무를 동시에 대체하면서 일자리 자체가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의 우려대로 재취업할 직종까지 자동화되면 노동자가 선택할 일자리도 좁아진다.
노동시장에서는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청년층의 취업 기회가 줄어드는 현상이 먼저 포착됐다. 미국 스탠퍼드대 디지털경제연구소가 급여관리업체 ADP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올해 6월 기준 AI 노출도가 높은 직종의 22~25세 고용은 노출도가 낮은 직종과 같은 흐름을 유지했을 때의 예상 수준보다 약 19% 적었다. 연구진은 기업들이 청년층의 신규 채용을 줄이는 과정에서 격차가 벌어진 것으로 분석했다. 고용 감소는 AI가 사람의 업무를 자동화하는 용도로 쓰이는 직종에 집중됐으며, 교과서나 문서로 익히는 표준화된 지식에 의존하는 청년 근로자들이 특히 영향을 받았다.
청년층의 채용 문턱이 높아지는 가운데, 기업들은 AI 도입을 앞세워 기존 인력을 줄이는 작업에도 나서고 있다. 아마존은 지난해 말부터 올해 1월까지 약 3만 명을 줄인 데 이어, 이달 7일 전자상거래 사업을 담당하는 스토어 부문 등을 중심으로 1,000명 미만을 추가 감원한 것으로 파악됐다. 메타는 올해 약 8,000명을 감축하는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채용 예정이던 6,000개 자리도 없앴으며, 직원 7,000명을 AI 업무 관련 조직으로 재배치하고 관리직을 축소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지난 7월 상업용 사업과 엑스박스 부문 등을 중심으로 전체 인력의 약 2.1%인 4,800명 감축을 발표했다. 오라클도 올해 5월 말 끝난 2026회계연도에 전체 직원 수가 약 2만1,000명 줄었으며, 9월 들어 추가 감원에 착수했다. 넷플릭스는 이달 14일 전체 인력의 약 6%인 1,000명을 줄이는 구조조정을 발표했으며, 감원 대상에는 제품·기술·법무·인사 부문이 포함됐다.
표1. 주요 기술기업 감원 및 조직 개편 현황
| 기업 | 시기 | 감원 규모 | 대상·조직 개편 |
|---|---|---|---|
| 아마존 | 지난해 말~올해 1월 | 약 3만 명 | 인력 감축 |
| 10월 7일 | 1,000명 미만 추가 감원 | 전자상거래 담당 스토어 부문 등 | |
| 메타 | 올해 | 약 8,000명 감축 추진 채용 예정 6,000개 자리 폐지 | 직원 7,000명 AI 관련 조직 재배치·관리직 축소 방안 제시 |
| 마이크로소프트 | 7월 발표 | 4,800명 전체 인력 약 2.1% | 상업용 사업·엑스박스 부문 등 |
| 오라클 | 2026회계연도 올해 5월 말 종료 | 전체 직원 약 2만1,000명 감소 | 회계연도 전체 직원 수 감소 |
| 9월 | 규모 미제시 | 추가 감원 착수 | |
| 넷플릭스 | 10월 14일 발표 | 1,000명 전체 인력 약 6% | 제품·기술·법무·인사 부문 포함 |
보급부터 전투까지 병사 대신 뛰는 지상 로봇
사람이 맡던 업무를 피지컬 AI가 대체하는 흐름은 병력을 운용하는 군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지상 로봇에 보급품 운반과 부상병 후송을 맡기고 있으며, 올해 3월에만 9,000건 이상의 관련 임무를 수행했다. 당시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전선의 군수 보급을 모두 로봇으로 처리한다는 목표 아래 상반기 무인지상차량 2만5,000대의 구매 계약을 추진했다. 병사들이 적의 공격에 노출되는 구간에 직접 들어가는 횟수를 줄이려는 구상이다. 지난 8월 24일 키이우에서 열린 독립기념일 열병식에는 전투·정찰·보급·후송용 지상 로봇과 공중 드론, 해상 무인정이 등장했다. 지상 로봇 수십 대가 도심을 행진하고 드니프로강에서는 무인정이 기동하며, 병사들이 수행하던 임무를 넘겨받은 장비들을 선보였다.
지상 로봇은 적의 공격을 저지하고 군사시설을 파괴하는 전투 임무에도 투입되고 있다. 지난 9월 로이터통신이 취재한 우크라이나 제3군단 소속 ‘NC13’ 부대는 기관총을 장착한 무인지상차량으로 러시아군의 공격을 억누르고, 공중에서는 자폭 드론으로 적을 타격하는 합동 작전을 수행했다. 병사들은 지휘소에서 로봇이 전송하는 전장 영상을 보며 원격으로 기관총을 조작하는 방식이다. 폭탄 3개를 실은 트레일러를 지상 로봇으로 끌고 가 러시아군의 보급용 교량을 폭파한 사례도 있었다. 부대 부지휘관은 거의 매일 로봇을 투입해 작전을 벌이고 있으며, 지상 로봇에 항복한 러시아군도 최소 2명이라고 설명했다. 제3군단은 연말까지 전방 병력의 약 3분의 1을 무인지상차량으로 대체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전술 지도 분석 프로그램도 생성형 AI로 구현
우크라이나가 전장에 로봇을 투입하는 가운데, 미국에서는 군 업무용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과정에 생성형 AI를 활용한 사례도 나왔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링컨연구소가 지난 6월 공개한 사례에서는 코딩 경험이 전혀 없던 미 공군 생도 조슈아 린치가 AI의 도움을 받아 군 업무용 소프트웨어 시제품을 개발했다. 군 현장에서 필요한 기능을 떠올린 사람이 전문적인 프로그래밍 교육을 거치지 않고도 직접 구현하는 데 도전한 것이다. 연구소 소속 로라 니스 연구원의 지도를 받은 린치는 챗GPT·클로드·제미나이에 필요한 기능을 일상 언어로 설명하고 코드 작성과 수정을 맡겼다. 이른바 ‘바이브 코딩’ 방식으로 약 3개월에 걸쳐 만든 ‘ROMAD-AI’에는 전술 지도를 분석하고 임무 계획 문서를 생성하는 기능이 담겼다.
개발 과정에서 린치가 주력한 작업은 AI에 요구사항을 구체적으로 전달하고 결과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AI가 지시한 작업의 우선순위를 놓치거나 관련 없는 코드까지 수정하는 일이 생기자, 해결할 과제를 작은 단위로 나눠 질문했다. 대화가 개발 목표에서 벗어날 때는 다시 방향을 잡아주는 방식으로 오류를 줄여갔다. 프로젝트 기간의 상당 부분도 AI의 한계를 파악하고 원하는 결과를 얻는 방법을 익히는 데 쓰였다. 니스 연구원은 코딩을 모르는 군인도 현장의 필요를 작동하는 프로그램으로 구체화했다는 데 의미를 부여했다. 군 현장의 업무를 아는 사람이 필요한 기능과 해결 방안을 기술 전문가에게 구체적으로 전달하는 데 유용한 도구라는 평가다.
흔들리는 근로·납세·국방·교육
이처럼 AI가 전문 지식이 필요한 개발 업무까지 수행하면서, 인간이 교육을 받고 일자리를 얻어 생계를 꾸리는 경로에도 불확실성이 커졌다. 교육에 들인 시간과 비용을 회수하기도 전에 해당 직무의 인력 수요가 줄어들면, 학력과 숙련을 바탕으로 생활 수준을 끌어올리던 경로가 좁아지기 때문이다. 자동화로 생산성이 높아져도 그 성과가 노동자의 소득 증가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다론 아제모을루 MIT 교수는 AI의 경제적 효과를 분석한 연구에서 자본소득과 노동소득의 격차가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기업이 인력을 줄여 생산비를 절감하는 과정에서 노동자가 받던 임금의 일부가 자본 소유자의 수익으로 옮겨가는 구조다.
노동소득 감소는 실직자를 지원해야 할 국가의 재정 여력까지 약화할 위험을 안고 있다. 일자리를 잃거나 임금이 줄어든 사람이 늘면 근로소득세와 사회보험료 수입에도 차질이 생긴다. 국제통화기금(IMF) 연구진은 노동을 대체하는 자동화가 확산할 경우 실업 지원과 재교육에 필요한 지출이 늘어나는 시기에 세입 기반까지 약해질 가능성을 지적했다. 특히 자본소득에 적용되는 실효세율이 노동소득보다 낮은 조세 체계에서는 소득이 자본 소유자에게 옮겨가도 줄어든 세수를 충분히 메우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재정 압박으로 재교육과 생계 지원이 충분히 이뤄지지 못하면, 실직자는 새로운 직무를 익히는 데 필요한 비용과 구직 기간의 생활비를 함께 떠안게 된다. 교육비를 감당하지 못해 재취업이 늦어지고 소득 공백이 길어질수록 노동시장 복귀도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경제적 자립 기반의 약화에 병력의 무인화까지 겹치면, 시민이 국가와 기업을 상대로 행사해온 영향력도 위축될 위험이 있다. 노동자가 생산에 참여하고 시민이 병역을 수행하는 동안에는 이들의 협조를 얻는 일이 기업 운영과 국가 안보의 주요 과제였다. 하지만 생산시설과 군사작전의 무인화가 확대될 경우, 노동 중단이나 동원 거부로 권력에 압박을 가하던 수단도 힘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가 제시한 최악의 시나리오 역시 AI에 밀려난 다수가 경제적 역할과 정치적 영향력을 함께 상실하는 상황을 담고 있다. 일자리에서 배제된 사람들이 부와 기술을 소유한 소수에게 종속되고, 권력자는 상시 감시 체계를 통해 저항을 억제하는 미래를 우려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