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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英 경제금융 협의체 구성, FTA 개선 협상도 이뤄 외교의 기본 '기브 앤 테이크, 침체기 겪는 英 상황 고려해야 브렉시트 이후 미래 어두운 英, 외교 전략 구성 필요
우리나라와 영국의 재정·금융당국이 공동으로 경제 및 금융 관련 사안을 논의할 수 있는 협의체를 구성한다. ‘한·영 경제금융 대화’라는 이름의 협력 채널이 내년 마련되면 금융시장 현안과 거시경제 안정, 재정정책, 경제안보 등에 대해 폭넓은 논의가 이뤄질 전망이다. 한국과 영국의 관계가 '글로벌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는 순간이다. 다만 브렉시트(유럽연합 탈퇴) 이후 영국 내 경기 침체가 가시화되는 상황인 만큼 얻을 건 얻고 빠질 땐 빠지는 외교 전략을 구상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韓-英, '전략적 동반자'로 관계 격상
영국을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은 22일 리시 수낵 영국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기획재정부와 영국 재무부 간의 협력 채널을 마련하기로 합의했다. 양국 정부가 경제·금융 관련 협력 채널을 본격적으로 가동하면 한국 외환·금융시장에 안전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영국과의 금융 관련 협력이 확대되면 자금 조달 및 시장 안정화 등 측면에서 긍정적일 것”이라고 전했다. 윤 대통령과 수낵 총리는 공급망 관련 협의체도 구성하기로 했다. 양국 정상은 “첨단기술 관련 소재, 부품, 장비와 필수의약품, 에너지 및 핵심 광물 등 경제활동과 안보에 필수적인 핵심 공급망 회복력을 촉진하기 위해 올해 말까지 ‘한·영 공급망 대화’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배경 아래 영국 해상풍력 개발 전문 기업 코리오와 에너지기업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 등은 우리나라에 약 1조5,000억원가량의 투자를 진행하기로 했다.
양국 정상은 국방, 방위산업, 과학기술, 무역 및 투자, 문화, 인적교류, 에너지 등 전 분야에 대한 협력을 강화하는 내용의 ‘다우닝가 합의(DSA)’를 체결하기도 했다. DSA에는 분야별 협력 원칙과 구체적인 이행 계획까지 포함됐다. 수교 140주년을 맞은 한국과 영국의 관계가 새롭게 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두 정상은 합의문을 통해 “양 국가와 경제, 국민 간 관계가 가장 높은 수준으로 격상될 것이며 이는 이번 세기와 그 이후에도 지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방 분야에서는 외교장관과 국방장관이 참여하는 ‘양국 2+2 장관급 회의’를 신설하기로 했다. 별도의 ‘한·영 전략적 사이버 파트너십’을 체결해 사이버 위협에 공동 대응하겠다고도 전했다. 러시아와 북한 간 무기 거래를 반대하는 데도 의견을 같이했다. 대북 제재 이행을 위한 공동 순찰, 방산 공동 수출 등에 대한 의견 공유도 이뤄냈다.
한·영 자유무역협정(FTA) 개선 협상에 대한 논의도 있었다. 2020년 영국의 갑작스러운 브렉시트로 체결된 한·영 FTA는 시장 접근, 디지털 통상규범, 공급망 협력 등을 중심으로 개선이 이뤄질 전망이다. 이와 관련해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전기자동차 등의 수출이 용이해지도록 완화된 원산지 기준을 도입하고 고속철도 등 정부조달시장을 개방하는 문제를 논의했다”며 "광범위한 분야에서 시장 접근 장벽을 극복하기 위해 협력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양국은 또 거시경제 안정, 재정정책, 금융시장, 경제안보, 국제금융 등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내년 말까지 한·영 경제금융 대화체를 신설하기로 합의했다. 최 수석은 “금융협력 채널 강화로 한국 금융회사의 영국 시장 투자 확대와 함께 런던 은행·증권사의 한국 시장 참여 확대도 기대된다”고 전했다. 이외에도 ▲경제금융 대화체 신설 ▲첨단기술 공급망 대화 연내 설치 ▲탄소중립 목표를 위한 협력 강화 ▲대형 원전 및 소형모듈원전(SMR) 개발 협력 ▲과학기술 파트너십 강화 등 논의를 이어가며 양국 간 전략적 동맹 관계를 더욱 강화했다.
'얻을 것' 제한적인 英, "빠질 땐 빠져야"
이번에 양국이 취한 스탠스는 줄 건 주고 얻을 건 얻는 전형적인 기브 앤 테이크 협력체계다. 다만 일각에선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우리나라가 영국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자원은 상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나온다. 실제 영국은 최근 경기 침체 우려에도 불구하고 완만한 성장을 이뤄내는 등 성과를 보였음에도 미래는 상당히 어둡다는 평가를 받는다. 영국 경제의 완만한 성장세는 지난 2분기 생산과 소비가 대체로 증가했기 때문인데, 고금리 및 고물가가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 이 같은 기세가 이어질지 여부는 미지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영국은 선행지표를 중심으로 약세를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이에 대해 이코노미스트는 "민간 부문 회복력이 약해지기 시작한 만큼 금리 인상 여파가 실물경제에 파급해 2024년 초 영국도 경기 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관측했다. 선행지표 모두 앞으로 수개월 사이 성장이 더욱 감속한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며 “3분기 GDP가 줄어들 위험성이 커지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금리 인상과 신규 수주 감소로 인해 영국의 PMI(구매관리자지수)가 올해 들어 최저치로 주저앉았다는 분석도 나왔다. 속보치 45.0에서 상향했지만 2020년 5월 이래 저수준을 기록한 것이다. PMI는 50을 넘으면 경기 확대, 50을 밑돌면 경기 축소를 의미한다. 즉 영국 내 지표는 12개월째 경기 축소를 나타내고 있는 셈이다. S&P 글로벌은 “금리가 오르고 해외 수요 부진이 이어지면서 재고가 쌓여 PMI가 악화됐다"며 "내수와 수출 수요가 감퇴하고 수주 잔고가 격감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향후 수개월 사이 영국 내 생산, 고용, 구매가 더욱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이처럼 브렉시트 이후 영국의 경기 침체는 점차 가시화되고 있는 분위기다. 우리나라 입장에선 얻을 건 얻고 빠질 땐 적절히 빠지는 외교적 전략을 구성해 나갈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