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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대통령, 기업 발전 저해하는 낡은 '상속세' 제도 개편 시사 10조원 상속하면 세금만 6조원? 전례 없는 최고치 상속세율 상속세 폐지 해야 vs 세제 유지하되 세율 절반 이상 낮춰야
대통령실이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상속세 폐지’ 발언에 대한 논란 잠재우기에 나섰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윤 대통령이 상속세 폐지 카드를 꺼내든 것에 대해 야당에서 ‘총선용 포퓰리즘’이라는 비난을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관련 업계 전문가들은 글로벌 흐름과 맞지 않는 우리나라의 낡은 상속세 제도를 고쳐야 한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기업 경영권을 자녀에게 넘기는 과정에서 내는 징벌적 세금과 제도가 기업 경영뿐 아니라 국가 경제 전반에 부작용을 초래한다는 이유에서다.
"일방적인 상속세 폐지는 없을 것, 다만 숙고는 필요"
18일 성태윤 대통령 비서실 정책실장은 용산 대통령실에서 민생토론회(새해 업무보고)를 중간 정리하는 브리핑을 열고 전날 윤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부연했다. 17일 윤 대통령은 “기업이 열심히 일을 해서 주가가 오르게 되면 가업 승계는 불가능해진다. 상속세를 어마어마하게 물어야 하기 때문”이라며 “주식시장 발전을 저해하는 과도한 세제는 우리 중산층과 서민에게 피해를 준다는 점을 우리 국민께서 다 같이 인식하고 공유해야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해 상속세 폐지를 시사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성 실장은 “현재 상속세 관련 정책을 준비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하지만 상속세가 명백히 다중과세 형태인 것은 분명하다. 이 같은 세수 방식에 대해 숙고해야 할 시점인 것은 맞다”고 전했다. 이어 “경제발전 초기 단계에는 개인의 경제활동을 일일이 국가가 확인하기 힘든 탓에 세원 확보가 어려워 상속세로 주요 재원을 확보했다”며 “현재는 제도의 디지털화 등으로 재산 형성 과정에서 소득세를 비롯한 다양한 세금을 충분히 거두고 있어 다중형태로 부과되는 세금에 타당성을 따져볼 필요가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성 실장은 사회적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상속세를 폐지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그는 “지금 당장 상속세를 어떻게 하겠다는 게 아니다”라며 “국민께서 합의해 주실 수 있는 범위, 국민께서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제도와 연결하는 방안, 이런 것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야당에서 ‘총선용 퍼포먼스’라며 재벌 봐주기에 불과하다는 지적에는 “각각의 세금 중에 경제적 왜곡 현상이 심하고 세수를 많이 감소시키지 않는 세원을 발굴하고 있다. 오해 말아달라”고 해명했다.
기업 피 말리는 과도한 상속세
1950년에 제정된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은 2000년에 최고세율을 45%에서 50%(최대 주주는 60%)로 5%포인트 인상해 지금까지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높은 우리나라 상속세율은 미국·영국(40%)은 물론 일본(55%)보다도 높다. 업계에서 “과도한 상속세 때문에 상장기업이 저평가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가업 승계를 위해 주식을 대량 매도해 상속세를 마련하면 아이러니하게도 주가가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삼성 일가는 지난 2020년 이건희 회장이 별세한 뒤 12조원의 상속세를 부과받고 5년에 걸쳐 분납하고 있다. 이에 지난 10일 장 마감 이후 삼성 오너 일가가 상속세를 내기 위해 삼성전자 등 계열사 주식 2조6,000억원어치를 처분하겠다고 공시하자 이달 초 7만9,600원까지 올랐던 주가는 18일 종가 기준 7만1,900원까지 하락했다.
또 지난 2020년 한미약품 그룹 일가는 임성기 한미약품 창업주가 갑작스레 별세하며 5,400억원에 달하는 상속세를 내야 했는데, 이 역시 주가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 실제로 지난해 7월 7일부터 3거래일 동안 한미약품의 주가는 무려 9.55%나 주저앉았다. 유족들은 결국 이달 말 OCI그룹에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 지분 27%를 매각해 OCI그룹에 흡수 통합되는 길을 선택했다. 지난해 6월에는 넥슨 그룹이 상속세를 내기 위해 지주회사 NXC 지분 29.3%(약 6조원)를 정부에 물납한 사례도 있었다. 이로 인해 상속세 대신 주식을 받은 기획재정부가 국내 최대 게임업체의 2대 주주로 등극하는 비상식적인 상황도 연출됐다.
국가 경제 효율성 제고 위해서라도 상속세 개편 필요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나라 경제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중소·중견기업 2세대들 사이에선 상속 포기까지 고려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일부 전문가들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장기적으로는 상속세 폐지를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상속 시 세금을 바로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차익이 발생했을 때 세금을 부과하는 '자본이득세' 개념으로 세제 개편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다른 한편에서는 상속세 폐지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상속세가 경영권의 승계에 방해되지 않도록 세율을 30%대로 조정하거나 연부연납 기간을 15년에서 20년으로 연장하는 등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곽장미 한국세무사고시회 회장은 “상속세 금액이 경영권 승계에 장애가 되지 않도록 보완이 필요하다”며 “사업 계속 및 고용보장 등의 전제 조건을 달아 경영권 승계를 위한 지분 상속분에 대해서는 연부연납 기간을 20년 등 획기적으로 연장하는 것도 한 방편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상속세의 존재 이유가 젊은 세대의 출발점을 맞추는 데 있는 만큼 상속세를 현행법대로 유지해야 한단 의견도 있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결국 삼성 주가를 걱정해서 상속세를 폐지하자는 것 아니냐”며 “부의 대물림을 막지 않으면 서민은 영원히 서민으로 남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민들 사이에서 기업 세습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하다는 점도 상속세 개편의 걸림돌이다.
상속세 논쟁의 핵심을 ‘상속세 폐지가 국가 경제적 관점에서 가져올 파급효과’에 두고 상속세제 개편을 고민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기업 상속세 완화가 상당수의 일자리 창출과 기업 성장 효과를 가져다준다는 설명이다. 중소기업 전문 민간 연구기관 파이터치연구원에 따르면 기업 상속세율을 현행 최고 세율의 절반으로 인하할 경우(30%) 일자리가 26만7,000개 늘어나며, 기업의 총매출액과 총영업이익이 각각 139조원, 8조원 증가한다. 이는 근로자 개인의 소득 증가로도 이어져 월급 기준 7,000원의 상승효과를 가져오는 것으로도 분석됐다. 즉 기업 상속세 인하 혜택이 피상속인에게만 돌아가는 게 아니라 국민과 국가 경제 전체에 골고루 배분되는 셈이다. 이와 관련해 라정주 파이터치연구원장은 “상속세 완화를 통한 경제적 파급효과를 고려했을 때 우리나라의 상속세율을 계속 고집하는 것은 효율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며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더 많은 강소기업이 등장할 수 있도록 하려면 과감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