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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민간 공사에서 물가 상승분도 공사비 증액에 반영해야 된다 판결 확정
물가 상승에 재건축·재개발 현장서 시공사-시행사 분쟁 격화 중
이번 판결로 건설사 수익성 개선될 것 전망도
최근 물가 상승으로 인해 건설 공사들이 지연되거나 시공사, 시행사 간 분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민간 공사 계약에서 물가 상승분을 공사비 증액에 반영하지 않기로 한 '물가변동 배체 특약'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은 판결이 나왔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지난 4월 '건설산업기본법 제22조 5항'을 근거로 물가변동 배제 특약의 효력을 제한할 수 있다고 본 부산고등법원 판결에 대한 상고를 심리불속행 기각하며 2심을 확정했다. 심리불속행은 상고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디는 사건을 대법원에서 기각하는 제도다. 예상을 뛰어넘는 원자재 가격 상승 부담을 건설사가 독점 부담하는 것은 '불공정 거래'라는 판단이다.
원자재 가격 급등 탓 공사비로 시공사, 시행사 분쟁 격화 중
코로나-19 이후 급등한 공사비 문제로 전국 건설 현장에서 시공사와 시행사가 비용 부담에 따른 분쟁이 격화되는 상황인만큼, 이번 판결은 상당한 파장을 낳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부산의 한 교회가 시공사에 제기한 선급금 반환 청구 항소심에서 2심 재판부는 “수급인(시공사)의 귀책사유 없이 착공이 8개월 이상 늦춰지는 사이 철근 가격이 두 배가량 상승했는데 이를 도급금액에 전혀 반영할 수 없다면 수급인에게 현저하게 불공정한 경우에 해당한다”며 해당 물가 배제 특약을 건산법 조항에 따라 무효라고 판결했다.
건설산업기본법 제22조 5항은 ‘계약 내용이 당사자 일방에게 현저하게 불공정한 경우에 특약을 무효’로 할 수 있다고 정의한다. 계약 체결 이후 설계 변경과 경제 상황 변동에 따른 계약금액 변경에 대해 상대방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것을 ‘불공정 거래’로 판단하는 것이다. 국토교통부 역시 같은 법률에 따라 물가변동 배제 특약이 무효가 될 수 있다는 유권 해석을 내놓은 바 있다.
지난해 1심 판결 내용이 알려진 이후부터 건설 현장에서 공사비 인상 협상을 진행 중인 재건축·재개발 사업장의 갈등도 심화되는 추세다. ‘e편한세상 부평그랑힐스’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인천 청천2구역 주택재개발조합은 최근 물가 상승을 반영해 공사비 일부 증액에 합의하면서 시공사가 소송을 취하했다. 판결 결과가 알려지면서 조합주민들이 건설사와 분쟁에서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결국 시공사 DL이앤씨 측은 지난달 31일 소송을 취하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건축·재개발 조합과 건설사 간 분쟁에 영향 줄 것 전망
DL이앤씨 측은 물가 상승으로 공사비가 20% 증가했다며 1,645억원의 공사비 증액을 요구했지만, 재개발조합과 무궁화신탁 등 발주처 측은 물가 상승에 따른 공사비 조정은 없다는 특약을 근거로 거부했다. 그러나 건설 자재 비용 및 인부 노임이 폭등하면서 더 이상 수익성을 내기 어려워진 건설사의 불만이 반영된 것이다.
KT 경기 판교사옥 건설 공사비 증액을 두고 다투던 KT와 쌍용건설도 결국 법정행을 선택했다. 쌍용건설이 원자재 가격 상승 등의 이유로 171억원의 추가 공사비를 요구하자 KT는 지난달 10일 공사비를 모두 지급했다며 ‘채무부존재확인의 소’를 제기했다. 경기 광주의 한 지역주택조합 사업 시공을 맡은 서희건설은 이번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조합 측에 공사비 인상 요구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건설공사비지수는 1월 기준 2021년 124.12에서 2022년 141.91, 지난해 150.84로 지속적으로 상승해 왔다. 올해 들어서는 154.64까지 치솟아 3년 새 30.52 포인트 증가했다. 비용이 빠르게 상승하면서 건설업계 수익률도 떨어지는 상황인 것이다.
국토교통부, 물가 반영 주기 단축 고민 중
국토교통부는 건설자재 가격 등 시장 상황을 반영해 적정 총사업비가 편성될 수 있도록 표준시장단가 관리체계를 개선하고 현장 가격의 주요 관리가 필요한 공종의 관리 범위를 확대하고, 개정 주기를 단축할 계획이다. 건설현장 물가를 적시 반영할 수 있도록 물가보정지수를 건설업과 관련성이 높은 건설공사비지수로 변경·적용하는 방안도 확대될 전망이다. 아울러 건설신기술의 적정공사비를 반영할 수 있는 공사비 기준도 신설된다.
국토부 관계자는 “건설공사비지수가 생산자물가지수나 소비자물가지수에 비해 지난 10년간 2.5배 정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면서 “(건설업계가) 공사비를 올려달라는 것이 아니라 못 받는 측면이 있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장기적으로 봤을 때 건설업계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건설업계도 자구 노력을 해야 한다”면서 “우리가 스마트건설, 스마트건축을 통해 생산성을 향상시킬 필요성도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