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모디 총리, 이달 초 러시아 국빈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회담
방위 및 군사 분야 중심으로 양국 협력 지속 확대 기조 굳힌 듯
미국 등 서방 경제 제재 피해 갈 방안도 함께 모색
[동아시아포럼] 섹션은 EAST ASIA FORUM에서 전하는 동아시아 정책 동향을 담았습니다. EAST ASIA FORUM은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교(Australia National University) 크로퍼드 공공정책대학(Crawford School of Public Policy) 산하의 공공정책과 관련된 정치, 경제, 비즈니스, 법률, 안보, 국제관계에 대한 연구·분석 플랫폼입니다. 저희 폴리시 이코노미(Policy Economy)와 영어 원문 공개 조건으로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나렌드라 모디(Narendra Modi) 인도 총리가 지난 8일(현지시간)부터 이틀에 걸쳐 러시아를 국빈 방문했다. 이 자리에선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 러시아 대통령과의 제22차 인도-러시아 연례 정상회담이 치러졌다. 양국의 연례 정상회담은 본래 매년 열리지만 21차 회담은 지난 2021년 12월에 개최됐다. 이듬해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이래 모디 총리와 푸틴 대통령이 얼굴을 마주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러시아는 냉전 시대부터 인도와 단단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특히 2022년 2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이후에는 러시아의 외교 정책에서 인도가 부쩍 중요한 존재로 부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모디 총리의 집권기 내내 인도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시행한 이른바 ‘군사 작전(military operation)’에 대해 직접적인 비난을 삼갔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전쟁(war)’이란 용어 대신 ‘특별군사작전(special military operation)’이라는 단어를 쓴 것과 궤를 같이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인도는 올해 초부터 양국 갈등을 전쟁으로 명명하며 노골적인 군사 행동을 벌이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번 모디 총리의 러시아 국빈 방문은 더욱 유의미하다. 러시아를 둘러싼 국제사회의 비난이 쇄도하는 가운데 인도와 러시아 관계의 지속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던 분위기에서 이뤄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모디 총리는 이번 방문에 며칠 앞서 카자흐스탄에서 진행된 2024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는 참가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국빈 방문 기간 모디 총리는 국방을 비롯해 무역과 투자, 교육, 문화, 인적 교류 등 전방위적 분야에서 양국 관계를 점검하고 인도계 이민자들과의 교류도 나눴다. 아울러 푸틴 대통령과 포옹을 나누는가 하면, 푸틴 대통령은 미소를 띤 얼굴로 모디 총리를 “내가 가장 친애하는 친구(my dearest friend)”라고 부르기도 했다.
모디 총리는 이번 방문 이전부터 푸틴 대통령과 지역 및 국제적 문제들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싶다는 뜻을 강하게 내비쳐 왔다. 러시아로 떠나는 날 내놓은 성명에선 “평화롭고 안정적인 지역을 만들기 위해 지원국 역할을 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러시아에 대한 지지 입장을 간접적으로 표명한 것이라 해석되는 대목이다. 실제로 모디 총리는 지난 9일 푸틴 대통령과의 공식 회담을 시작하며 우크라이나 문제를 꺼내 들었는데, 당시에도 “전장엔 평화가 없고, 해결책은 오직 대화를 통해서만 찾을 수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인도-러시아, 경제 및 방위 협력 지속적 확대 중
인도와 러시아의 관계를 유지시키는 요소로는 서방 세계가 러시아에 전례 없는 경제 제재를 가하는 와중에도 굳건한 러시아의 경제적 회복력, 그리고 국방 및 에너지 수요와 관련한 인도의 꾸준한 의존성 등이 거론된다. 러시아의 국내총생산(GDP)은 지난 2023년 4분기 4.9% 증가한 데 이어 올해 1분기엔 전년 동기 대비 5.4% 늘었다. 러시아 경제는 2022년 극심한 침체를 겪은 이후 반등했고, 현재 강력한 모멘텀을 유지 중이다.
여기엔 국가적 차원의 무기와 탄약에 대한 투자가 주효했다. 뿐만 아니라 서방국들의 제재가 이어지는 가운데서도 러시아는 계속해서 유럽으로 액화천연가스(LNG)를 수출했다. 이는 인도 입장에선 반길 만한 일이다. 인도가 러시아와의 경제 교류를 중단하라는 서방 세계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러시아산 원유를 사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는 G7(주요 7개국) 회원국들이 지정한 가격 상한선인 배럴당 60달러를 넘긴 가격으로도 러시아산 원유를 수입할 수 있다는 뜻을 밝힌 바도 있다.
인도는 군사 무기 분야에서도 러시아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현재 인도의 재래식 무기 비축량의 60~70%가량이 당시 소련제거나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의 생산품이다. 인도와 러시아는 오랫동안 방산 업계 차원에서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지난 20년에 걸쳐 양국이 합작으로 제조해 온 브라모스(BrahMos) 순항 미사일이 대표적인 예다. 인도 육해공군에서 쓰이고 있는 이 미사일은 군함과 전투기 등에 장착해 쓸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양국 관계에 균열이 생긴다면 인도엔 경제적·전략적 차원에서도 상당한 부담이 생긴다. 서방 제재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경제가 계속해서 회복세를 보일 경우 인도-러시아 관계의 윤곽에 당분간 큰 변화가 없을 가능성이 높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를 방증하듯 모디 총리의 이번 러시아 국빈 방문 논의 주제도 기존 방위 계약을 이어가는 것과 추가 안보 협정을 맺는 방안 등에 쏠렸다.
양국은 인도의 자국 산업 육성책인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 정책에 발맞춰 러시아산 무기 및 방위 장비를 유지보수하는 데 필요한 각종 부품을 인도에서 공동 생산하는 방안에도 합의했다. 양국 관계에 걸림돌이 되는 지정학적 장벽을 넘어서 양국 간 금융 거래를 확대하려는 열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합의에 앞서 인도 측은 메이크 인 인디아를 비롯해 ‘자립 인도(Self-Reliant India)’ 등 자국의 제조업 성장을 촉진하는 정책들을 내세워 러시아 측에 투자를 요청했다. 그런가 하면 인도의 주요 도시를 잇고 해당 지역들의 제조업을 활성화하는 국가산업회랑(National Industrial Corridor)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산업지구에 생산 시설을 세우기 위해 러시아 기업들을 인도로 초청하기도 했다. 러시아 측에선 인도 은행에 쌓여 있는 러시아의 수출 대금이 다시 본국으로 흘러들어오게끔 하는 메커니즘이 필요했다.
美 달러 의존도 낮추려는 시도도
이처럼 양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인도와 러시아는 이번 회담을 통해 여러 가지 금융 분야 합의를 만들어 냈다. 무역 결제에 달러가 아닌 자국 통화를 쓰는 것도 그중 하나인데, 이를 통해 미국 달러 의존도를 낮추고 미국의 경제 제재도 피해 가겠다는 복안이다. 양국에서 쓸 수 있는 금융 메시징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과 보험 및 재보험 문제와 관련해 양국 모두 수용할 수 있는 방안을 계속해서 협상해 나가는 것도 이번 합의에 포함됐다.
이와 더불어 인도는 무기 운송에도 속도를 내 달라고 러시아에 요청한 것으로 파악된다. 인도는 지난 2018년 러시아로부터 사들인 미사일 5기 중 2기를 아직 받지 못했다. 중장거리 지대공 미사일인 S-400 시스템으로, 당초 5기 모두 지난해 말까지 인도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이래 운송 계획이 차일피일 미뤄졌다.
일각에서는 모디 총리의 이번 러시아 방문이 러시아 국영 원자력기업 로사톰(Rosatom)의 인도 내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위한 우라늄 장기 공급 계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인도는 현재 공격적으로 전국에 원전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이로 인해 세계 원전 시장에서 ‘블루오션’으로 떠오른 상태다. 러시아 역시 일찌감치 인도에 원전 추가 건설 사업을 지원할 수 있다는 뜻을 전한 바 있다.
인도와 러시아의 이번 연례 정상회담은 양국 간의 끈끈한 관계를 재차 입증했다. 러시아가 인도의 주요 원유 공급처이자 국방 파트너라는 사실도 회담을 통해 한층 더 확실해졌다. 이 같은 양국의 굳건한 관계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원문의 저자인 아디트야 반(Aditya Bhan)은 인도 싱크탱크인 옵저버 리서치 파운데이션(Observer Research Foundation)의 연구원입니다. 폴리시 이코노미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영어 원문 기사는 Modi’s got a friend in Moscow | East Asia Forum에 게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