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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산업의 중국화’ 본격 시동
머스크, 중국 공급망 의존도 인정
관세 폭탄에 생산비용 급등 가능성

테슬라가 미래 사업으로 내세운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Optimus)의 양산 계획에 적신호가 들어왔다. 중국 공급망 의존도가 높은 로봇 산업의 특성상 미국 정부의 고율 관세 정책이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진단이다. 이에 업계에서는 미국이 아닌 중국이 옵티머스의 주도권을 쥐게 될 것이란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 분위기다. 첨단 기술 분야에서 오랜 시간 시장을 선도해 온 테슬라도 이번만큼은 중국이라는 기술·생산 양면의 복합적 경쟁자를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제조 강국 중국, 로봇 분야도 미국 추월 목전
20일(이하 현지시각)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쉬 쉬에청 중국 저장성 휴머노이드 로봇혁신센터 수석 연구원은 최근 자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테슬라의 옵티머스 양산 계획은 보류될 가능성이 높다”고 관측하며 그에 대한 근거로는 “테슬라를 비롯한 미국 휴머노이드 로봇 업체들은 현재 개발 중인 로봇의 핵심 상당수가 중국 공급망에 매우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쉬 연구원은 옵티머스와 같은 고급 휴머노이드 로봇에는 외장재부터 액추에이터, 조인트, 볼 스크류 등 중국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부품이 필요하다는 점을 주목했다. 이러한 의존도에서는 대량생산 단계로 갈수록 중국의 역할이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쉬 연구원은 “중국의 제조 생태계는 매우 성숙했고, 수년간의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품질을 높게 유지하는 동시에 가격 또한 낮췄다”고 강조했다.
업계에서도 중국이 더 이상 ‘세계의 공장’이라는 말로 단순화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시각이 주를 이룬다. 과거 중국의 제조업이 값싼 인건비를 무기로 단순 조립 생산을 주도했다면, 오늘날에는 첨단 자동화 설비와 자체 기술력으로 고도화된 공장을 구현해 내고 있다는 진단이다. 특히 산업용 로봇과 인공지능(AI) 기반 공정관리 시스템을 결합해 효율을 극대화했다는 점에서는 “중국이 글로벌 제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중국 정부 역시 ‘제조 2025’ 전략의 연장선상에서 로봇 산업을 전략 산업으로 육성 중이다. 연구개발(R&D) 지원과 세제 혜택, 생산시설 확보까지 전방위적으로 나서고 있으며, 이는 민간의 기술 상용화를 뒷받침하는 강력한 추동력이 되고 있다. 이에 유니트리, 유닉스, 부스터로보틱스, 애지봇 등 민간 스타트업들은 물론 샤오미와 BYD, 체리, 샤오펑 등의 전기차 제조사들까지 줄줄이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에 출사표를 던졌다.
이들 민간 기업은 자국 내 제조 인프라를 적극 활용해 단기간 내 양산 체제에 근접한 수준까지 기술을 끌어올렸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중국의 기술력이 미국을 추월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반도체·AI 분야 연구 분석 기관 세미애널리시스는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서 “중국이 전기차 산업에서 이룬 파괴적 영향력을 휴머노이드 로봇 분야에서도 재현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옵티머스에 도전장 낸 중국 스타트업들
앞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옵티머스 프로젝트를 테슬라의 미래 먹거리로 내세우며 휴머노이드 시장이 향후 몇 년 안에 10조 달러(약 1경4,000조원) 수준까지 성장할 것이라 내다본 바 있다. 전기차를 넘어서는 거대한 시장이 열릴 것이란 관측이다. 그리고 이러한 계획이 중국의 기술력 없이는 실현되기 어렵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다는 입장이다. 그는 지난 2월 옵티머스 양산 계획을 밝히면서 “중국과의 협력 없이 2만 달러 생산 단가는 불가능하다”고 현실을 인정했다.
테슬라가 중국을 단순한 생산 파트너가 아니라, 경쟁자로 보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미 중국 내 다수의 스타트업이 옵티머스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밀고 있으며, 연간 5,000대 생산 체제 구축을 목표로 대규모 설비 투자를 감행 중이다. 이들은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빠르게 생산라인을 정비 중인 데다, 제품 단가 역시 테슬라를 위협할 정도로 낮게 형성돼 있다. 옵티머스와 유사한 범용 휴머노이드를 자국 산업용 수요에 맞게 커스터마이징해 내수 시장부터 선점한다는 게 중국 업체들의 전략이다.
반면 테슬라는 글로벌 공급망 리스크, 미국 내 고비용 생산 구조 등으로 본격적인 양산을 위한 조건이 아직 완비되지 않은 상태다. 테슬라가 세계 최초로 상용 휴머노이드 양산에 성공하더라도 그 뒤를 추격하는 중국 기업들이 가격과 공급망, 물량 확보에서 저만치 앞서갈 수밖에 없다. 양측의 기술 격차보다 ‘속도와 실행력’의 격차가 시장에서의 승패를 가를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는 배경이다.

압도적 기술력 테슬라? 지정학적 현실은 더 강해
이런 가운데서도 머스크 CEO는 연내 옵티머스 로봇 1만 대 이상 양산 계획을 공식화하며 프로젝트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테슬라 내부에서도 로봇 제조 인력과 자동화 설비 채용을 늘리며 힘을 보태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 모든 계획은 중국에 기반한 공급망을 전제로 구성됐다는 점에서 한계를 가진다. 미·중 갈등이 갈수록 격화하는 만큼 옵티머스는 혁신이 아니라 ‘리스크’로 전환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더군다나 이미 미국은 반도체·배터리·태양광 부문에 대한 대(對) 중국 수출 규제 및 관세 장벽을 강화하고 있으며, 로봇 산업 역시 그 연장선에 놓일 공산이 크다. 중국 내 생산시설에서 부품을 조달하거나 로봇 완제품을 역수입하는 과정에 관세가 중첩되면, 머스크 CEO가 말한 2만 달러 단가는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나아가 리스크가 고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옵티머스의 가격 경쟁력은 대량생산 체제에서 현실화 가능한 것으로, 미·중 갈등으로 공급망이 끊기거나 불안정해지면 양산 일정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경우 시장 선점 전략에도 대대적인 수정이 불가피하다. 이처럼 머스크가 꿈꾸는 ‘로봇 대중화’는 기술은 물론 국제 정세에도 발목 잡힌 프로젝트가 될 위험이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