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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관세 둘러싼 한·일·대만 “철회 촉구”, 미국 ‘자충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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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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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공급망 무너진다” 공동 경고
철회 기류 포착, ‘모양새 있는 퇴각’ 노리나
소비자 물가 상승·소비 위축, 피해는 미국에

한국과 일본, 대만이 미국의 반도체 관세 부과 방침에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히며 나섰다. 미국이 자국 내 반도체 생산 확대를 추진하는 과정에 동맹국 기업들에 관세를 적용한다면, 기존 대미 투자와 생산 협력 기반으로 전개되던 산업 생태계 전반이 흔들 것이란 지적이다. 이에 미국 내부에서도 트럼프식 보호무역 정책이 자국 소비자와 기업에 부메랑처럼 되돌아오는 악순환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글로벌 반도체 산업에 악영향” 한 목소리

21일(이하 현지시각) 미국 연방관보에 따르면 미 상무부는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라 반도체 관련 제품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며 지난 7일까지 총 206건의 의견서를 접수했다. 특정 품목의 수입이 국가 안보를 위협한다고 판단되면 관세 등 적절한 조처를 할 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하는 미국의 무역확장법 232조는 안보영향 조사 과정에서 각국 및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청취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양국의 상호 보완적 관계를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산업부는 의견서에서 “미국이 인공지능(AI) 경쟁에서 앞서 나가기 위해서는 반도체 공급망의 병목 현상을 피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특히 한국의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첨단 D램 등은 미국 AI 인프라를 확장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라고 짚었다.

이어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430억 달러(약 60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를 계획 중”이라는 사실을 언급하며 “반도체에 관세가 부과될 경우, 결과적으로 미국 내 반도체 제조 비용을 증가시킬 것”이라는 경고의 메시지도 전했다. 정부 외에도 한국반도체산업협회(KSIA)와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KDIA), SK하이닉스 등이 미 상무부에 의견서를 내고 반도체 관세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미국과 반도체 공급망을 형성하고 있는 여타 국가들도 관세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서를 제출했다. 대만은 “미국이 대만산 반도체 및 관련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면, 미국 기업의 생산비용이 증가하고 기술혁신과 시장 경쟁력이 약화하는 것은 물론 대만 기업의 대미투자 의지도 약화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으며 “이는 미국의 방위기술과 AI 및 첨단 기술산업 발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경제 및 국가안보 전략에도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본 정부 역시 “어느 나라도 반도체 가치사슬 전체를 내재화할 수는 없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일본은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강화 노력에 협력한다면서도 반도체 제조 장비, 소재, 파생 제품에 대한 관세를 재고할 것을 촉구했다. 관세 여파가 무역 상대국을 거쳐 미국 내의 반도체 설계 기업과 수요처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란 비관적 관측 또한 덧붙였다.

미국과 전방위적 무역 갈등을 빚고 있는 중국 정부는 “미국이 2017년부터 ‘국가 안보’라는 개념을 계속 확장해 보호무역 조치를 시행하기 위한 구실로 이용한다”고 일갈했으며, 유럽연합(EU)은 “오랜 시간 구축해 온 세계 반도체 공급망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미국 내부에서도 부정적인 의견이 쏟아졌는데,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는 “일률적인 관세는 미국 내 반도체 생산과 기술 개발 비용을 키울 위험이 있다”면서 “관세를 부과할 경우 저율관세할당(TRQ) 등 조치를 통해 위험을 완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모양새 있는 퇴각’ 노리는 美 행정부

미국은 표면적으로는 반도체 관세 부과 방침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서는 철회를 위한 ‘명분 쌓기’ 움직임이 감지되는 모양새다. 일례로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출범 100일을 맞이한 기념식에서 대만 TSMC의 자국 반도체 공장 투자를 중요한 업적으로 강조하며 꾸준한 협력을 약속했다. 당시 미 상무부 관계자는 “TSMC의 애리조나 3공장 착공은 미국의 투자 유치 성과를 보여준다”고 평가하며 “미국 제조업의 황금기를 열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반도체를 비롯한 여러 제품의 생산 투자가 가속화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미국 정부가 TSMC 등 외국 기업의 대미 투자 확대와 일자리 창출 등 노력을 충분히 인정하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반도체 관세 적용에 대한 우려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며, 철회 또는 완화에 앞선 우호적 메시지라는 해석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정치적으로는 강경 메시지를 유지하고 있지만, 실무선에서는 출구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는 게 업계의 주된 시각이다.

한국과 일본, 대만이 일제히 우려의 목소리를 낸 것도 이러한 관측에 힘을 싣는다. 미국 측에 자발적 철회의 여지를 주기 위한 일종의 외교적 유도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는 정치적 압박과 외교 마찰을 극대화한 뒤, 특정 국가나 품목에 대해 관세 예외를 허용하는 방식을 되풀이해 왔다. 최근 영국, 중국과의 관세 협상 또한 이 같은 패턴을 보였다.

지난달 말 중국 경제 매체 차이징은 당국 관계자를 인용해 “기존 125%에 달했던 미국산 반도체 관련 제품 8종에 대한 추가 관세 조치가 해제됐다”고 밝혔다. 이후 양국은 이달 초 스위스 회담에서 상대국에 부과했던 관세 중 각각 115%p를 인하하는 동시에 향후 90일간 추가 협상을 벌이기로 뜻을 모았다. 이를 두고 CNN은 “이번 휴전 선언은 양국이 자국에서 생산하거나 다른 곳에서 조달할 수 없는 중요 품목에 대해서는 일부 관세를 철회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면서 “이는 관세의 영향을 받는 양국 빅테크들에도 직접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반도체 관세에서도 비슷한 시나리오가 작동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예컨대, 특정 제품군에 한해 국가안보 예외를 적용하거나 공급망 안정성을 명분으로 세계무역기구(WTO) 절차를 활용하는 식이다. 이러한 ‘모양새 있는 철회’는 트럼프식 대외 메시지를 유지하면서도 실질적인 정책 조정을 가능하게 하는 방식으로 평가된다. 결국 미국의 다음 행보는 반도체 관세 철회 여부가 아닌 ‘어떻게 철회할 것인가’의 문제라는 게 산업계와 외교계의 중론이다.

기업 수익성 악화, 산업 생태계 ‘일촉즉발’

전문가들은 미국 정부가 반도체 관세 방침을 꺾지 않을 경우 자국 산업 전반에 되돌아오는 타격이 매우 클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직접적인 영향은 단연 반도체 가격 상승이다. 수입 단가가 올라가면 가전제품과 자동차, 서버, AI 반도체 등 다양한 산업군의 제조 원가 또한 함께 오르게 되며, 이는 소비자 물가에도 반영된다. 무리한 관세 적용이 미국 내 인플레이션을 자극하고, 궁극적으로는 소비 위축이란 악순환을 낳을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반도체 장비·소재 분야 업체들의 수익성 악화도 하나둘 가시화하는 모습이다. 이는 세계 1위 반도체 장비 기업 네덜란드 ASML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ASML의 올 1분기 수주액은 39억4,000만 유로(약 43억5,000만 달러·6조2,000억원)로 블룸버그가 집계한 시장 전망치 평균인 48억2,000만 유로(약 54억6,000만 달러·7조5,000억원)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ASML 외에도 램리서치, KLA, 엔비디아 등 중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기업 대부분이 비슷한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이러한 충격은 공급망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 생산 설비가 부족해지고, 핵심 부품 납기 지연과 조달 비용 급증 등으로 반도체 업계 전반에 불확실성이 자리 잡은 것이다. 미국은 반도체 공급망을 자국 내로 회귀시키려 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단기간 내 자급자족은 불가능에 가까운 실정이다. 공급망이 단일국 의존에서 벗어나 글로벌화된 만큼 일방적인 관세 조치로는 시스템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어렵다는 게 업계의 일관된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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