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은 5.3% 한국은 1%, 반도체 격차가 만든 성장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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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추격 넘어 추월 목전에 둔 대만
TSMC 독주, 대만 경제 ‘AI 플라이휠’
반도체 경쟁력 회복 서두르는 삼성전자

세계 주요 투자은행(IB)들이 대만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로 평균 5.3%를 제시하며 한국(1.0%)을 향한 시선과 다른 기대를 드러냈다. 전 세계에 불어닥친 인공지능(AI) 붐과 TSMC의 초미세공정 독주가 대만 경제를 ‘AI 플라이휠’로 끌어올린 반면, 한국은 메모리 중심 산업 구조에 갇혀 성장세가 정체됐다는 분석이다. 이에 한국에선 삼성전자가 '엑시노스 2600'을 통해 2나노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공정을 상용화하고 고대역폭메모리(HBM)4 양산에 돌입하면서 반격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상태다. TSMC의 독점 구도가 흔들릴 가능성이 커지면서 세계 반도체 시장의 주도권 향방에도 이목이 쏠린다.
한국 1% 턱걸이에 벌어지는 경제 체력 격차
14일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글로벌 IB 8곳의 올해 대만 경제성장률 전망 평균은 5.3%로 나타났다. 이는 8월 말 전망치(4.5%)보다 0.8%p 높은 수준이자, 대만 통계청이 최근 제시한 4.45%와 비교해도 0.85%p를 웃도는 수치다. 노무라는 대만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4.6%에서 9월 6.2%로 1.6%p 높였고, JP모건과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 시티, HSBC 역시 적게는 0.3%p에서 많게는 2.4%p까지 상향 조정했다. 바클레이스와 골드만삭스, UBS는 기존 전망을 유지했지만 모두 5%대 고성장을 점쳤다.
이들 IB는 반도체 수출 호황이 대만의 성장률 전망치를 끌어올릴 것으로 내다봤다. AI 열풍으로 고성능 반도체 수요가 폭증하면서 TSMC를 중심으로 한 대미 수출이 급증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대만의 8월 반도체 수출액은 584억9,000만 달러(약 83조원)로 같은 기간 한국의 584억 달러를 처음으로 추월했다. 이에 대만의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전년 동기 대비 8.01%를 기록하며 10년 만의 최고치를 경신하기도 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와 같은 급속 성장에도 불구하고 대만의 물가는 안정적이라는 사실이다. 8개 IB의 올해 대만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평균 1.7%로 전년(2.2%) 대비 소폭 낮아졌다. 이는 AI 중심 수출 확대로 외화 유입이 증가하면서 환율 방어력이 높아진 결과로 풀이된다. 현재 대만달러화는 연초 대비 3% 이상 절상돼 원자재 수입물가 상승 압력을 완화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는 8개 IB 평균 1.0%로 간신히 0%대 저성장을 면하는 수준에 그쳤다. UBS와 골드만삭스가 1.2%, 바클레이즈가 1.1%를 예상했지만 JP모건과 HSBC는 각각 0.9%, 씨티는 0.8%를 제시했다. 그 결과 올해 한국의 1인당 GDP는 3만7,430달러(약 5,317만원)로 대만(3만8,066달러)에 추격을 허용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인 현재 상황이 유지되면, 이 같은 격차는 더 벌어질 수 있다는 게 IB업계의 관측이다.

반도체 수출, GDP 성장 주축으로 작동
시장에서도 대만 경제의 고속 성장이 TSMC를 중심으로 한 구조적 변화의 결과라는 데 분석이 일치했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인 TSMC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핵심축으로 자리 잡으며 사실상 ‘AI 시대의 실리콘 허브’로 기능한다는 진단이다. 연합보 등 현지 언론에 의하면 TSMC는 이미 애플, 엔비디아, AMD, 미디어텍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과 내년도 2나노 공정 물량의 대부분을 선계약한 상태다. 이에 따라 내년 중반부터 신주과학단지와 가오슝 난쯔 단지의 TSMC 2나노 생산라인은 전면 가동될 예정이다.
이 같은 ‘2나노 효과’는 수치로도 명확히 드러난다. 업계는 TSMC의 내년도 매출이 3조 대만달러(약 140조원)를 돌파하고, 연 매출 성장률 역시 20%를 웃돌 것으로 내다봤다. 신주 바오산과 가오슝 20·22 팹(fab)에서 시험생산 중인 차세대 공정 수율이 일찌감치 70%에 근접한 만큼 초과 달성도 무리가 없다는 예측이다. 2나노는 회로 선폭이 줄어들수록 전력 효율과 연산 속도가 향상되는 초미세 공정으로, AI 서버와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에 필수적인 기술로 꼽힌다. 대만 정부는 이를 기반으로 반도체 산업이 GDP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고성장 구조를 고착화한다는 구상이다.
실제로도 TSMC의 독주는 대만 산업 전반을 AI 플라이휠로 끌어올리고 있다. 폭스콘·콴타·위스트론 등 전자 제조업체들은 AI 서버 조립과 칩 패키징 분야로 빠르게 전환해 매출이 두 자릿수 증가세를 보였고, 대만의 7월 수출은 전월 대비 무려 42% 급증하며 15년 만의 최대 증가폭을 기록했다. 앞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AI 패권의 핵심은 대만에 있다”고 강조한 바 있는데, 이 같은 발언이 현실화하는 모습이다. 대만이 TSMC 중심의 반도체 국가로 재편되면서 제조와 수출, 고용의 선순환이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성장은 정부와 산업계의 공조를 기반으로 한다. 1980년대 모리스 창을 영입해 TSMC를 설립한 대만 정부는 이후 반도체를 국가 전략산업으로 지정하고, 미·중 갈등 국면에서는 고율 관세 위험을 피하기 위해 즉시 미국 애리조나에 1,650억 달러(약 234조원) 규모의 생산기지를 발표했다. 이런 전략적 조치가 적시에 이뤄지면서 대만은 세계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 60% 이상을 차지하는 위치에 다다랐고,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21세기의 석유는 대만의 칩”이라 평가할 만큼 글로벌 경제 질서를 움직이는 국가로 부상할 수 있었다.
삼성의 2나노 반격, 시장 경쟁 구도 변화 조짐
다만 단일 산업 의존도가 10%를 넘어서면서 소위 ‘이카루스 리스크’에 대한 경계 또한 커지는 모습이다. AI 반도체 수요 둔화나 지정학적 충격이 발생하면, 대만의 성장세 또한 단숨에 꺾일 것이란 지적이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는 지난달 말 발간한 보고서에서 “AI 서버 출하량이 올해를 정점으로 내년엔 둔화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여기에 대만 반도체 산업의 전력 소모 비중이 전체의 10%를 넘는 상황에서 물부족·에너지 리스크도 무시할 수 없다. 이런 구조적 불안 요인이 누적될수록 ‘TSMC 중심 성장모델’에 균열이 생길 가능성은 커진다.
삼성전자는 이 같은 틈을 파고든다는 전략이다. 연내 엑시노스 2600 양산을 통해 2나노 GAA 공정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다는 목표를 통해서다.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엑시노스 2600은 3나노 공정 기반의 전작 대비 수율이 30%에서 50%로 개선됐다. 소비전력 효율과 성능도 크게 향상돼 싱글코어 3,309점과 멀티코어 1만1,256점을 기록하며 경쟁사인 퀄컴의 스냅드래곤 8 엘리트 2세대와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섰다. 이는 곧 적자 구조에 빠진 삼성전자 시스템LSI와 파운드리 사업의 턴어라운드 신호로 해석된다.
이와 함께 삼성전자는 HBM 부문에서도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 엔비디아의 HBM3E 퀄테스트를 통과하면서 차세대 AI 가속기 ‘GB300’용 제품 납품이 가시화된 것이 대표적이다. 앞서 발열 문제로 지적받았던 12단 HBM3E를 1a D램으로 재설계해 열 관리 문제를 해결한 결과다. 당장 하반기 양산 예정인 HBM4는 업계 최초로 1c D램을 적용한 초고속 제품으로, 퀄컴·오픈AI·AMD 등 주요 고객사에 샘플이 출하된 상태다. 한 업계 관계자는 “TSMC의 기술 초격차가 유지되지 못할 경우, 대만의 성장 플라이휠은 삼성전자를 앞세운 한국의 반격으로 방향이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