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main content
  • Home
  • 딥폴리시
  • [딥폴리시] 유럽 연구 경쟁력의 진짜 원천, 간판 아닌 협력 구조

[딥폴리시] 유럽 연구 경쟁력의 진짜 원천, 간판 아닌 협력 구조

Picture

Member for

1 year
Real name
송혜리
Position
연구원
Bio
[email protected]

다양한 주제에 대해 사실에 근거한 분석으로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 전달에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수정

명문대 중심이 아닌 협력으로 구축된 유럽의 연구 경쟁력
공동연구와 개방성이 지식의 순환과 균형 성장을 견인
협력망을 제도화해 지속 가능한 연구 생태계로 발전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유럽의 경쟁력은 소수 명문대가 아니라 학문을 잇는 연구망에서 나온다. 2022년 EU 과학 논문의 56%가 국제 공동연구로 작성됐으며, 이는 미국의 40%를 크게 웃돈다. 이 차이는 유럽이 각국의 연구 체계를 하나의 지식 네트워크로 묶어 운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반면 미국은 브랜드 중심 구조 속에서 연구 자원과 명성이 소수 명문대에 집중돼 있다.

이 차이는 단순한 문화적 성향이 아니라 지식을 생산하고 확산하는 방식의 구조적 차이다. 국경을 넘는 협력이 많을수록 아이디어의 교류가 활발해지고, 연구 체계 전체의 복원력이 높아진다. 예산 배분에서도 이런 철학은 분명히 드러난다. EU는 2024년 연구 혁신 예산 중 연구 기반이 취약한 회원국에 배정된 비중을 14%로 확대했다. 같은 해 유럽연구위원회(ERC)는 24개국의 초기 경력 연구자 494명에게 연구비를 지원했다. 결국 유럽의 연구를 이끄는 힘은 브랜드가 아니라 협력의 구조다.

명성의 기준을 바꾸는 유럽식 연구 구조

유럽의 학문 체계는 대학의 이름보다 연구자의 성과와 협력망을 더 중시한다. 유럽은 유럽연구공간(ERA) 조성, 국경 간 연구 기금 제도, 개방형 채용 정책을 통해 이 구조를 의도적으로 설계했다. EU는 세계 2위의 연구 생산국으로, 주요 과학 강국과 대등하거나 그 이상 수준의 협력 체계를 구축했다.

반면 미국은 여전히 명문대 위계가 뚜렷하다. 종신직 교수의 약 80%가 상위 20% 대학 출신이며, 그중 8분의 1은 단 5개 대학에서 배출됐다. 이는 지위를 유지하는 데는 효율적이지만 지식 확산에는 한계를 드러낸다.

유럽의 연구망은 연구자의 소속보다 무엇을, 누구와 함께 만들어내는가를 평가의 기준으로 삼는다. 지역별 격차는 존재하지만, 국가 간 협력 구조가 그 차이를 완화한다. ERC 연구팀, 마리 퀴리 연구지원사업(MSCA), 호라이즌 유럽(Horizon Europe) 컨소시엄은 국경과 언어를 넘어 아이디어의 흐름을 촉진한다. 각 연구는 기관 간 협력을 넓히고 지식을 순환시키는 통로로 작동한다. 지난 10년간 EU 연구자 수가 약 45% 늘어난 것도 이러한 구조의 성장을 보여준다.

1730년 학회가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학문 네트워크
주: 학회가 없을 경우 지식 교류망이 약화되고, 학자들은 몇몇 지역에만 몰려 연결된다.

협력이 끌어올린 평균의 힘

유럽 학문 네트워크의 강점은 교육과 연구의 전반적 수준을 함께 높이는 데 있다. 협력은 형식이 아니라 성과를 결정짓는 요인이다. 국제 공동연구 논문은 국내 연구보다 인용도가 높으며, 유럽은 이를 꾸준히 생산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2022년 EU 전체 논문 중 56%가 국제 공동연구로 작성됐고, 그중 약 60%는 EU 내부 협업이었다. 이는 유럽 내에서 아이디어가 활발히 순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개방성 측면에서도 유럽은 앞선다. 2020년 기준 EU의 학술 논문 중 약 80%가 오픈액세스로 공개돼 지식의 접근성과 확산 속도를 높였다.

이러한 개방적 구조는 결과로 이어졌다. EU의 2024년 연구 성과 보고서에 따르면, 연구 품질이 일부 대형 기관에 집중되지 않고 다양한 대학으로 확산됐다. 이는 연구 기회를 넓히는 협력 구조의 효과를 입증한다. ERC는 경력 단계별로 연구자를 지원하며, 2025년에도 약 4,000건의 제안 중 12% 이상을 선정했다. 여성 연구자 비율은 40%대를 유지하며 균형을 확보했다. 경력 연구자를 위한 지원사업도 23개국 이상에서 신규 프로젝트를 후원하며 유럽 전역에 연구 거점을 확충하고 있다.

또한 EU는 연구 평가 개혁(CoARA)을 추진해 ‘논문 수 중심 평가’에서 ‘기여 중심 평가’로 전환했다. 2024년 8월 기준, 700개 이상의 대학과 기관이 이 협약에 참여했다. 이와 함께 2021~2024년 사이 EU 외 연관국들도 호라이즌 유럽에 40억 유로(약 5조9,000억원) 이상을 투자하며, 유럽의 협력망은 회원국 경계를 넘어 확장되고 있다. 이는 명문 중심 구조의 한계를 줄이고, 국경을 넘는 연구 협력의 가치를 제도적으로 강화하는 변화다.

1793년 식물학적 사실주의 사상과 식물원의 확산 관계
주: 식물원이 있는 도시(붉은 마름모)가 사상이 퍼진 중심지로, 식물학적 사실주의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다음 10년을 위한 정책 설계

유럽은 이미 협력 중심의 연구 구조를 통해 경쟁력을 입증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이 구조를 다음 단계로 발전시키는 일이다. 예산 운용과 제도 설계를 개별 기관이 아니라 협력망 전체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연구비 지원은 소수 명문대가 아니라, 연구자와 기관을 잇는 협력 구조로 흘러가야 한다.

유럽연구위원회(ERC)와 마리 퀴리 연구지원사업(MSCA)은 이러한 모델의 효과를 보여준다. 두 제도는 연구자에게 직접 자금을 지원하고, 협력 파트너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2024년 MSCA 공모에는 1만여 건이 몰렸지만 1,700건만 선정됐다. 협력 기반 연구의 수요가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이런 수요를 반영해 연구 기반이 약한 지역과 성장 단계의 대학을 먼저 연결해야 한다. ‘Teaming’ 프로그램이나 ERA 연구 지원금을 활용하면 두 번의 지원주기 안에 이들을 주요 연구망에 포함시킬 수 있다.

이제 정책의 초점은 소수의 성과가 아니라 지식의 확산에 맞춰야 한다. 각국 정부는 국제 공동연구 비율, 상위권 밖 대학의 연구비 수주 비중, 협력이 신진 연구자에게 얼마나 이어지는지 등을 공개해야 한다. 이런 지표를 기준으로 예산을 조정하면 협력의 효과가 체계 전반으로 퍼질 수 있다.

연구자의 이동성과 공동연구 절차도 단순화해야 한다. 비자 제도를 간소화하고, 표준화된 지식재산권 계약서를 도입하면 중소기업과 공공 연구소의 협력이 쉬워진다. 박사과정 지원은 공동학위·공동지도 제도와 연계하고 일정 기간 해외 연구를 의무화해 젊은 연구자들이 자연스럽게 국제 협력망에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방문 연구나 단기 훈련은 ‘마이크로 자격증’으로 인정해 채용 평가에서 실제 경력으로 반영되도록 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연구 평가 체계는 협력 중심으로 전환돼야 한다. CoARA는 논문 수가 아니라 연구 기여도와 협력 성과를 기준으로 삼는 제도다. 참여 기관에는 네트워크 공모 우선권, 간소화된 절차, 빠른 심사 등 실질적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 이런 변화가 정착될 때 유럽의 연구는 명성보다 협력의 가치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유럽 과제와 방향

유럽 내부에도 과제는 남아 있다. 특허 공동출원과 기술이전 협력에서는 지역별 격차가 여전히 크고, 연구 통합 수준도 미국보다 낮다. 그러나 개선은 빠르다. 연구 혁신 예산에서 연구 기반이 약한 회원국의 비중이 14%로 확대됐고, 비EU 연관국들도 40억 유로(약 5조9,000억원) 를 투자하며 참여를 늘리고 있다. ERC의 연구 지원금 역시 매년 여러 회원국으로 고르게 분산되고 있다.

유럽의 다음 목표는 협력망 밖에 남은 기관을 줄이고 연결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특허 공동출원과 국경 간 기술이전을 장려하고, ERC의 ‘사람 중심 접근’을 기술이전과 지식재산(IP) 분야에도 확대해야 한다. 평가 제도 개혁도 이어져야 한다. 협력적 성과가 단순한 명성보다 높게 평가될 때 유럽의 연구 생태계는 더욱 단단해질 것이다.

협력의 힘

유럽의 연구 체계는 소수 명문대의 이름이 아니라 협력 구조 전체의 역량으로 작동한다. 연구자와 아이디어, 성과가 국경을 넘어 순환하는 구조는 지식을 한곳에 머물게 하지 않고 확산시킨다. 그 결과 유럽은 상위 기관뿐 아니라 다양한 대학과 연구소의 수준을 함께 끌어올리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 구조는 연구 기회의 폭을 넓히고, 위계를 완화하며, 공공투자를 지식의 흐름으로 전환했다. 앞으로 필요한 것은 협력에 투자하고, 새로운 기관을 포용하며, 확산의 가치를 평가하는 일이다. 개인의 기여와 공동의 성과가 대학의 이름보다 높이 평가될 때, 유럽은 교육과 연구 모두에서 새로운 기준을 세우게 될 것이다. 결국 유럽의 경쟁력은 이름이 아니라 협력에서 나온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European scholar networks: how distributed prestige beats brand power in higher education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

Picture

Member for

1 year
Real name
송혜리
Position
연구원
Bio
[email protected]

다양한 주제에 대해 사실에 근거한 분석으로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 전달에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