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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공급망 재편 가속, K배터리 생존 카드는 ‘기술과 현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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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year 7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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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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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생산 축소→유럽·미국 중심 재편
제조혁신으로 LFP 배터리 대체 가속
“산업 회복엔 시간 필요” 전망 우세

세계 배터리 산업이 균열과 재편의 갈림길에 접어들었다. 미국과 유럽이 현지 생산과 규제를 앞세워 중국 중심 공급망을 흔드는 가운데, 한국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는 기술 초격차와 효율화를 결합한 ‘투 트랙’ 전략으로 대응에 나섰다. 그러는 동안 북미 지역에서는 제너럴모터스(GM)와 스텔란티스 등 주요 기업의 투자 철회와 이전이 이어지며 시장 불균형이 심화하는 상황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배터리 산업의 향배가 결국 정책 압박과 기술 진화가 어느 지점에서 교차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는 데 전망이 일치했다. 

현지화로 비용 절감 및 관세 리스크 최소화

16일(현지시각) 대만 기술 전문 매체 디지타임스는 “가격 경쟁력과 안전성을 앞세운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시장에서 절대 강자로 군림해 온 중국의 독주에 한국 배터리 3사가 강력한 제동을 걸고 나섰다”면서 “중국의 수출 통제 전략이 경쟁국인 한국에는 서방 시장을 공략할 새로운 기회가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매체는 LFP 배터리 시장의 판도가 이미 변곡점을 맞았다는 진단과 함께 “한국 기업들은 저가 경쟁에 매몰되지 않고 ‘현지화’와 ‘기술 초격차’를 앞세워 돌파구를 찾는 모습”이라고 전했다. 

기술 경쟁이 그 첫 번째 축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초 자체 개발한 셀-투-팩(CTP) 기술을 파우치형 LFP에 적용했다. 해당 기술은 중국 업체들이 주로 생산하는 각형 LFP 배터리보다 에너지 밀도를 5% 높여 주행거리를 늘린 게 특징이다. 비슷한 시기 SK온은 혹한 지역 전용 ‘윈터 프로’ LFP 셀을 선보이며 저온 충전 성능을 크게 개선했고, 삼성SDI는 상용차 전용 ‘LFP+’ 배터리를 공개해 기존 제품보다 에너지 밀도를 10% 높이고 열 안정성까지 강화했다. 세 회사 모두 고효율·고안전 제품을 기반으로 미국과 유럽의 프리미엄 전기차 시장, AI 데이터센터용 에너지저장장치(ESS) 수요를 동시에 겨냥하는 양상이다. 

이러한 기술력 강화는 곧 현지화 전략과 맞물린다. LG에너지솔루션은 르노 전기차 자회사 암페어와 계약을 맺고 폴란드 브로츠와프 공장에서 올해 말부터 2030년까지 39기가와트시(GWh) 규모의 LFP 배터리를 공급한다. 또 GM과의 합작법인 얼티엄셀즈를 통해 미국 테네시 공장을 LFP 중심으로 전환, 보급형 전기차 대응력을 높인다는 구상이다. 이 같은 전략은 중국 생산 비중을 줄이고 미국·유럽으로 이동함으로써 관세 및 규제 리스크를 줄이고, 현지 완성차 업계와의 동시개발·인증 주기를 단축하는 게 핵심이다. 

현지화 전략의 범위는 단순한 공장 이전을 넘어선다. 유럽연합(EU)이 배터리 여권과 탄소라벨 공개를 의무화하면서 제조 단계의 탄소 배출량과 재활용 원료 투입 비율이 수주 경쟁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국내 3사는 헝가리·폴란드 공장에서 재생에너지 사용 비중을 높이고, 현지 리사이클링 파트너십을 확대는 식으로 대응 중이다. 이러한 폐순환 체계 구축은 고객사 이탈을 막는 ‘락인 효과’로 이어진다. 제품 개발과 품질 관리, 물류, 재활용을 하나의 공급망으로 통합함으로써 장기적인 원가 절감과 지속가능성 경쟁력을 동시에 확보하는 것이다.

중국 기업들 역시 유사한 전략을 취하는 모양새다. 일례로 CATL은 헝가리 데브레첸에 연 100GWh 규모의 공장을 세우고 내년부터 단계적 가동을 앞두고 있다. 유럽 현지 생산을 본격화해 물류비 절감과 규제 대응 속도에서 우위를 확보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이와 관련해 에너지 전문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는 “글로벌 배터리 시장은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공급망 재편과 규제 강화 흐름이 가속하는 형국”이라면서 “기업들로선 기술 경쟁력뿐만 아니라 공급 기반의 독립성과 지역 전략의 유연성을 갖춘 대응력이 요구되는 전환 국면에 접어든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곳곳서 투자 철회, 글로벌 시장 양극화

글로벌 배터리 산업 전반으로 시야를 넓혀 보면, 현지 진출과 투자 확대로 활기를 띠는 기업들만큼 이탈 움직임을 보이는 사례도 심심찮게 포착된다. 대표적 사례로는 GM과 브라질 광산기업 발레(Vale)의 캐나다 사업 중단을 꼽을 수 있다. GM은 포스코퓨처엠과 함께 추진하던 퀘벡주 베캉쿠르 양극재 공장의 2단계 증설을 잠정 보류했다. 2022년 북미 내 안정적 공급망 구축을 목표로 시작한 프로젝트였지만, 정책 환경과 수익성 불확실성이 커지자 계획을 수정했다. GM은 1단계 사업만 예정대로 진행해 내년 가동에 들어간다는 구상이다. 

이 과정에서 협력사인 발레도 큰 타격을 입었다. 발레는 GM의 양극재 공장에 황산니켈을 공급하기 위해 3억2,500만 캐나다 달러(약 2억3,100만 달러·3,300억원)를 투자해 현지 공장을 건설 중이었으나, GM의 증설 보류로 공급 계약이 무의미해지면서 사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퀘벡주에선 이보다 앞서 포드와 에코프로의 양극재 공장 건설 또한 중단된 바 있다. 이 때문에 초기 ‘배터리 밸리’ 조성 계획은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으며, 지역 경제에 미치는 여파 또한 상당할 전망이다. 

스텔란티스의 움직임도 상징적이다. 스텔란티스는 캐나다 브램턴 공장에서 진행하던 지프 컴퍼스 생산을 미국으로 옮기기로 결정했고, 이 과정에서 약 3,000개의 일자리가 조정됐다. 캐나다 정부가 스텔란티스-LG에너지솔루션 합작 공장에 최대 150억 캐나다 달러(약 106억 달러·15조원)의 보조금을 약속했던 점을 고려하면, 이 같은 전략 재배치는 현지 정부의 정책 부담으로도 이어진다. 캐나다 의회 예산처(PBO)는 올해 상반기까지 전기차 산업에 투입된 525억 캐나다 달러(약 374억 달러·53조원) 규모의 보조금 전반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흐름은 글로벌 공급망의 양극화를 선명히 보여준다. 자본 여력이 충분한 대형사는 시장 상황에 맞춰 투자를 재배치하며 수익성을 도모하고, 중소 규모 기업은 정책 변화와 비용 부담에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 식이다. 또 정부 보조금으로 산업을 지탱하던 지역들은 투자자금 회수 불확실성에 직면했고, 그 결과 산업 구조의 안정성까지 흔들리는 실정이다. 결과적으로 ‘확장’과 ‘보류’가 공존하는 이중 흐름이 형성되면서 배터리 공급망의 안정성은 기업별·국가별로 크게 갈릴 수밖에 없게 됐다. 

수주 가뭄 현실화에 장기 침체 가능성도 

국내 배터리 장비업계는 이미 이러한 변곡점을 체감하는 분위기다. 올해를 끝으로 주요 3사의 대규모 설비 반입이 마무리되면서 신규 수주 공백이 현실화한 탓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조지아주의 현대차 합작공장(HL-GA), 오하이오의 혼다 합작공장, 애리조나 퀸크릭 독자 공장 등에서 장비 반입을 마무리하는 단계다. 또 SK온은 포드와의 블루오벌SK(BOSK) 켄터키 1공장과 현대차 합작공장의 장비 반입을 진행 중이며, 삼성SDI는 헝가리 괴드 2공장에서 46파이 원통형 배터리 전환 투자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이처럼 장비 반입 일정이 대부분 끝나가면서 장비 업계는 당장 내년 하반기 매출을 가늠할 수 없는 실정이다. 

기업의 투자 방향 또한 신규 증설에서 전환 투자로 옮겨가는 추세다. 전기차 수요 둔화와 공장 가동률 조정으로 셀 제조사들이 기존 라인을 개조하거나 ESS·LFP 등으로 전환하는 움직임이 확산한 것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얼티엄셀즈 2공장을 LFP 생산라인으로 전환하고, 랜싱 공장 일부를 ESS용 각형 배터리 생산으로 개조한다. SK온은 테네시 공장 가동을 늦추고 켄터키 2공장 일정을 내년으로 미루면서 비용 구조를 재정비했다. 기업의 투자 축이 확장에서 재구성으로 옮겨가면서 장비업계는 기존의 대규모 신규 프로젝트 대신 소재 혁신과 효율화 설비 중심의 수주 경쟁에 돌입한 상태다.

그럼에도 일부 낙관적인 신호도 포착된다. 현대자동차와 SK온이 1년 만에 미국 조지아주 합작공장 투자를 재개한 것이다. 지난해 전기차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을 이유로 중단됐던 프로젝트가 다시 가동되면서 협력사들의 납품 준비 또한 본격화했다. 이번 재개 결정은 현대차가 LG에너지솔루션 합작공장의 구금 사태로 인력 공백을 겪던 시점 내려진 것으로, SK온이 공급망 내 역할을 확대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현대차는 조지아주 바토우 카운티 공장에 연간 35GWh 규모의 배터리 생산능력을 확보할 계획이며, 올해 안에 1개 라인을 완성하고 내년 1분기 중 나머지 3개 라인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배터리 산업 회복의 관건은 정책과 기술의 교차점에 있다고 입을 모았다. 미국과 유럽이 중국산 배터리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 한국 3사는 수혜를 볼 가능성이 크지만, 글로벌 수요 정체가 장기화되면 장비업계의 수주 가뭄이 심화하면서 설비 과잉과 현금흐름 악화가 불가피하단 설명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배터리 산업은 이제 기술과 정책 두 축이 동시에 작동해야 안정적인 성장 국면으로 돌아설 수 있다”며 “시장 수요가 회복되더라도 생산 효율화와 공급망 관리 능력에서 차이를 보이는 기업 간 격차가 더욱 벌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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