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英, G7 중 세금 인상 가장 빠를 듯",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는 증세 압박
입력
수정
IMF “英, 증세 정책으로 2029년 세금 2.3%P 상승” 노동당 “재정 적자 해소 위해서는 증세 불가피" 佛은 극상류층에 순자산 2% 과세하는 방안 검토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와 관세 전쟁으로 인한 유럽 각국의 재정 부담이 커지는 가운데, 영국의 세금 인상 속도가 주요 선진국 중 가장 빠를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반발도 만만치 않다. 영국 노동당 정부가 재정 건전성 확보를 위해 세금 인상 가능성을 시사하자, 보수당과 개혁당은 물론 노동당 내부에서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한편, 프랑스에서는 극상류층을 겨냥한 부유세 논의가 정치권을 달구며 유럽 전역으로 증세 논쟁이 확산되고 있다.
650억 파운드 증세 전망, G7 중 가장 큰 폭
16일(현지시각) 국제통화기금(IMF)은 "영국이 주요 7개국(G7) 가운데 세금 인상 속도가 가장 빠른 나라가 될 것"이라며 "레이첼 리브스 재무부 장관이 추진하는 조세 정책으로 인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세수(정부 수입)가 2024년 38.3%에서 2029년 40.6%로 2.3%포인트 상승할 전망"이라고 전했다. 액수로 환산하면 650억 파운드(약 111조7,000억원)에 달하는 세수가 늘어나는데 이는 G7 국가 중 가장 증가 폭이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IMF의 이번 전망에 대해 "다음 달 예산안 발표를 앞두고 노동당 정부의 조세 부담 확대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신호로 해석된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이날 리브스 장관은 스카이뉴스와 인터뷰에서 “11월 예산안에서 세금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며 처음으로 증세 가능성을 인정했다. 지난해 취임한 리브스 장관은 보수당 정권이 남긴 대규모 재정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조세 확대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해 왔다.
이 같은 증세 움직임에 정치권은 강하게 반발했다. 멜 스트라이드 보수당 의원은 “노동당의 경제 실정이 성장률을 떨어뜨리고 조세 부담을 다른 어떤 선진국보다 빠르게 끌어올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리처드 타이스 개혁당 부대표 역시 “세금 증가로 인해 부와 혁신을 영국 밖으로 내몰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동당 내부에서도 레이너 부총리 등 좌파 인사들이 복지 예산 축소와 증세 병행 정책에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 재정 악화 부추겨
이러한 상황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도 재정 악화를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다. 4월 기준 영국의 국가 부채는 2조7,000억 파운드(약 5,090조원)로 GDP의 100%에 달한다. 이에 대해 스테파노 파사리엘로 인베스코 수석 투자책임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 정책은 글로벌 성장에 심각한 위협으로, 특히 부채 수준이 높은 국가에는 더욱 그렇다"며 "영국은 이미 상당한 부채를 안고 있어 이러한 외부 충격에 극도로 취약하다"고 경고했다.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경제학자 폴 데일스도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는 글로벌 공급망을 붕괴시키고 인플레이션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있다"며 "이는 영국의 소비자 물가를 상승시키고, 가계의 실질 소득은 감소시켜 경제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영국 정부가 이미 에너지 가격 상승과 생활비 위기로 상당한 재정적 압박에 직면한 상황에서 글로벌 경기 침체까지 닥친다면 정부의 부채 부담은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일부 전문가들은 현재 영국의 상황이 2010년대 그리스 부채 위기와 유사하다고 경고한다. 당시 그리스는 과도한 재정 지출과 글로벌 금융 위기로 국가 부도 직전까지 몰리며 국제 사회의 구제 금융을 받는 수모를 겪었다. 영국이 그리스 상황과 완전히 같은 건 아니지만, 높은 부채와 외부 충격에 대한 취약성은 분명한 위험 요인으로 꼽힌다. 특히 브렉시트 이후 유럽연합(EU)과의 무역 관계가 완전히 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보호무역주의 흐름은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아르노 회장 "쥐크만세는 경제 파괴 행위"
이러한 증세 논의는 비단 영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부채 비율 113.9%로 재정 위기에 시달리는 프랑스도 최근 증세 논란으로 시끄럽다. 특히 프랑스 좌파 정당이 제안한 ‘쥐크만세(Zucman tax)’가 뜨거운 정치적 이슈로 떠올랐다. 이는 가브리엘 쥐크만 UC버클리대 교수가 내놓은 아이디어로 순자산 1억 유로(약 1,645원)가 넘는 부유층에 한해 순자산에 최소 2%를 세금으로 부과하자는 내용이 골자다. 해당 납세자가 한 해 납부하는 세금이 순자산의 2%는 돼야 하고, 만약 그에 못 미치면 추가로 세금을 물려 2% 기준선에 맞춘다는 취지다.
순자산 1억 유로 이상을 보유한 납세 대상은 고작 1,800가구에 불과하다. 전체 3,400만 가구의 0.005%밖에 되지 않는 극상류층으로, 쥐크만 교수는 이 세금 도입으로 연간 200억 유로(약 33조원)의 세수가 추가될 것으로 추산한다. 프랑스는 당장 내년에 440억 유로(약 72조원)의 예산 감축이 필요한 상황이다.
쥐크만세에 대한 여론은 긍정적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프랑스 국민 86%가 쥐크만세에 찬성했다. 좌파 유권자는 물론이고, 우파인 르네상스당 지지자의 92%, 공화당 지지자의 89%도 찬성했다. 좌우 세력의 분열이 이어져 온 프랑스에서 드물게 나타나는 만장일치다.
반면 납세 대상이 되는 슈퍼리치들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쥐크만세에서 말하는 순자산은 주식, 부동산, 은행 예금 등을 모두 포함한 개념으로, 대기업 오너들이 대부분 해당된다. 이에 프랑스 최고 부호인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뷔통모에헤네시 그룹 회장도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혔다. 그는 영국 선데이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자유주의 경제를 파괴하는 쥐크만세는 우리 경제에 치명적인 공격 행위"라고 비판했다. 그의 순자산은 현재 1,690억 달러(약 235조원)로 쥐크만 교수의 주장대로라면 연간 4조7,000억원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