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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는 들어왔지만 신뢰는 빠져나갔다, 아르헨 위기 속 드러난 한국의 불편한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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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year 7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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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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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적 효과 제한적, 외교적 상징 그치나
개혁 피로에 무너지는 아르헨티나
스와프 의존의 환상이 한국에 주는 경고

아르헨티나의 경제 위기가 다시 금융시장의 경고등을 켰다. 하비에르 밀레이 정부의 ‘전기톱 개혁’이 자국 경제 체력을 소진시킨 가운데, 미국의 200억 달러(약 28조원) 규모 스와프와 페소 매입마저 시장 회복의 신호탄을 쏘지 못한 것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외부 유동성 공급만으로는 신뢰를 되살릴 수 없다는 방증”으로 정의했다. 시장이 단기적인 ‘달러 약속’보다 일관된 정책과 내생적 복원력을 신뢰한다는 점에서 진짜 위기의 본질은 스와프 부재가 아닌 ‘경제 체력 부재’라는 지적 또한 설득력을 얻는 모양새다. 이 같은 현실은 대미 투자 확대와 원화 약세에 직면한 한국에도 불안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트럼프發 통화 방어에도 페소 가치 급락세 지속

21일(이하 현지시각)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 재무부는 이달 초 아르헨티나 중앙은행과 200억 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 계약을 맺고, 직접 페소화를 매입했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9일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서 “아르헨티나는 심각한 유동성 부족에 직면해 있다”며 “미국은 시장 안정을 위해 필요한 모든 예외적인 조치를 즉시 취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그는 “국제 사회는 아르헨티나의 신중한 재정 전략을 지지하지만, 신속히 행동할 수 있는 것은 미국뿐”이라며 “우리는 아르헨티나 페소를 직접 매입했다”고 강조했다.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지난달 연중 최저치를 기록했던 아르헨티나 증시는 9일 하루에만 5.3% 상승했으며, 하루 전 3% 급락했던 페소화도 달러당 1,418페소(약 3만5,000원)를 기록하며 0.8% 강세로 마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러한 움직임이 ‘현물 매입과 스와프 체결’이라는 신호에 따른 단기 조정에 가깝다고 입을 모았다. 미 재무부가 페소 매입 규모나 스와프 금리, 상환 방식 등 세부 조건을 모두 비공개로 남긴 만큼 개혁 연계성과 상환 구조가 불투명하단 이유에서다. 신호 효과는 분명하지만, 실제 외화 유입 경로는 여전히 안갯속이라는 평가다. 

민간 자금 참여도 난항이 예상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의하면 400억 달러(약 56조원) 규모의 이번 구제 패키지 중 절반은 정부 간 스와프, 나머지는 민간은행 대출로 구성됐다. 그러나 JP모건·골드만삭스·씨티그룹 등 참여 예정 은행들은 정부 담보나 보증이 없으면 대출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들 은행은 아르헨티나가 과거 9차례 채무불이행(디폴트)을 경험했다는 점을 근거로 들며 “아르헨티나 국채 역시 액면가 대비 크게 할인돼 담보로 삼기 어렵다”는 의견을 내놨다. 이처럼 민간 대출이 막히면, 미 정부가 제시한 구제 패키지의 유동성 효과도 절반으로 줄어들게 된다. 

이 때문에 시장도 다시 약세로 돌아섰다. 미 재무부가 이달에만 세 차례 페소 매입에 나섰다는 보도에도 불구하고 페소는 달러당 1,477페소로 떨어지며 사상 최저치를 다시 경신했다. 이는 4월 도입된 환율 밴드 하단에 근접한 수준으로, 투자자들이 미 정부의 추가 개입 가능성보다 유동성 공백의 지속에 더 무게를 두며 위험 프리미엄을 확대한 결과다. 여기에 루이스 카푸토 아르헨티나 경제부 장관이 선거 국면에서 5억 달러(약 7,000억원)를 투입했단 사실이 알려지며 ‘개입 없는 환율 운영’ 등 정책 일관성에 대한 의문 또한 커진 상황이다. 미 정부의 이번 조치에 임시 방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아르헨티나 물가·실업률 폭등→시장 신뢰 회복 실패

밀레이 대통령을 위시한 아르헨티나 정부는 집권 직후부터 전기톱을 상징으로 급진적 긴축을 이어 왔다. 보조금 삭감과 공공일자리 축소, 공기업 민영화 같은 극약 처방으로 물가를 잡으려 했지만, 그 결과는 내수와 고용 기반 붕괴였다. 이런 가운데 외환시장 개입이 반복되면서 외화가 유출되고, 고평가된 페소는 자국 수출 경쟁력을 떨어뜨렸다. 그러는 사이 기업들은 불안정한 자금 조달비용 등을 이유로 들며 투자 계획을 미뤘다. 

실물경제 악화 신호도 곳곳에서 포착됐다. 인플레이션이 고점에서 내려오는 사이 아르헨티나의 실업률은 5.7%에서 7.6%로 뛰었고, 대중교통·에너지 요금은 300% 이상 급등했다. 이를 두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가계 체감 지표가 폭락하면서 물가 안정의 의미가 퇴색됐다”고 평가했다. 페소의 인위적 강세가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었다는 진단이다. 이는 곧 아르헨티나 정부의 전기톱 개혁이 속도전으로만 전개되면서 경제의 하부 구조가 버티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이런 가운데 정치적 불안까지 겹치면서 금융시장을 흔들었다. 미 경제학자들은 재무부의 페소 매입이 세 차례 이뤄졌으나, 그 규모는 4억 달러(약 5,600억원) 수준에 불과하다고 추정했다. 그러는 동안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의 순외화 준비금은 50억 달러(약 7조원) 미만으로 줄었고, 방어 여력에 대한 의문이 커졌다. 이에 역내외 시장에서는 착불선물환(NDF) 가격이 연말 1,600페소 아래를 가리키며 추가 평가절하 가능성을 미리 반영했다. 외부 지원으로 시간을 벌었다 해도, 정치적 지지와 외화 유동성이 동시에 약해지면 통화방어의 효과는 급속히 줄어든다. 

이번 통화 스와프를 둘러싼 경제학계의 시각이 비판 일색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학교 교수는 ‘누구를 위한 구제인가’라는 칼럼에서 “민간 대출에 정부 보증이 결합되지 않으면 자본이 움직이지 않고, 중앙은행의 외환이 바닥난 상황에서는 추가 지원도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비판하며 “개혁의 속도 조절과 외화 확보 전략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시장은 반등을 ‘일시적 착시’로 간주할 가능성이 크다”고 꼬집었다. 인위적 환율 강세와 외환 소진의 악순환이 아르헨티나의 성장 기반을 약화시키는 한, 미국의 대규모 지원책이 성과를 거둘 가능성은 전무하다는 평가다. 

위기 방어 안전판? 시장 불신의 지표!

이런 흐름은 최근 한국이 처한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현재 정부는 대미 3,500억 달러(약 490조원) 투자 이행에 따른 달러 수요 급증을 우려해 협상 과정에서 ‘무제한 통화스와프’를 제안한 상태다. 그러나 미국의 외환안정기금(ESF) 잔고가 434억 달러(약 60조7,000억원) 수준에 불과하고, 이 중 절반가량인 200억 달러가 이미 아르헨티나 스와프에 투입된 만큼 한국에 남은 여력은 제한적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더욱이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주요 기축통화 외 국가와 무제한 스와프를 체결할 가능성 또한 희박해 제도적 여건부터 현실과 괴리된 실정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역시 이번 통화스와프 논의와 관련해 실효성에 없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는 20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미 재무부의 ESF이 충분하지 않은 규모라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라면서 “통화스와프는 단기 유동성 목적인 만큼 3,500억 달러와 같은 장기투자 목적에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부가 외부의 유동성 공급을 절대적 안전판으로 인식할 경우, 그 자체가 시장 불안을 키우는 역효과로 이어지는 만큼 스스로의 역량으로 시장을 안정화하는 게 신뢰의 핵심이란 설명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아르헨티나의 사례는 통화스와프가 위기 해결의 만능열쇠가 될 수 없다는 점을 다시 상기시킨다. 외부 지원은 시간만 벌어줄 뿐, 내생적 성장력과 정책 신뢰가 없으면 시장은 금세 그 한계를 드러낸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원화 안정의 핵심은 스와프 체결 여부가 아닌 통화정책과 재정의 조합, 그리고 이를 지탱할 경제 펀더멘털이다. 미국의 ESF나 한시적 달러 라인에 의존하는 구조는 단기 변동성 완화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근본적 체력 부재를 가리기엔 부족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관된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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