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옵션 포기 끝 돌아온 부담, SK “11번가 안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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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 지분 정리→그룹 내 단독 책임 구조 전환
손익 안정 우선, ‘흑자 매물’ 만들기 총력전
그룹 차원 포트폴리오형 자회사로 전환

SK스퀘어가 11번가를 둘러싼 재무적투자자(FI)와의 갈등을 5,200억원 상환으로 매듭지을 전망이다. 이로써 2년 넘게 이어진 협상 공방은 결국 ‘매각이 아닌 책임 인수’로 귀결되는 모양새다. 국민연금까지 얽힌 복잡한 이해관계를 정리하면서 SK그룹은 시장 신뢰 회복과 내부 리스크 관리라는 두 과제를 동시에 풀겠다는 계산이다. 업계는 이번 상환 이후 SK가 11번가를 그룹 포트폴리오 안에서 어떤 방향으로 재정비할지 주목하고 있다.
신뢰 회복 및 그룹 재편 신호
28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SK스퀘어는 오는 29일 열리는 이사회에서 기존 FI 자금을 상환하는 안건을 최종 의결할 계획이다. 상환 규모는 4,600억원 수준으로, FI들은 지금까지 받은 600억원가량의 배당금을 포함해 원금을 소폭 웃도는 5,200억원을 회수하게 된다. 국민연금이 전체 투자금 5,000억원 중 4,000억원을 출자한 최대 투자자인 만큼 이번 결정은 사실상 ‘국민연금 이슈’로 비화 될 수 있던 분쟁을 조기에 봉합하는 성격도 있다. SK스퀘어는 연내 자금 집행을 목표로 세부 절차를 조율 중이며, 이사회 통과 즉시 상환 절차를 개시한다는 방침이다.
이번 결정은 11번가를 둘러싼 SK스퀘어와 FI 간 2년 넘는 갈등이 끝나는 신호로도 해석된다. 앞서 SK스퀘어는 지난 2018년 나인홀딩스컨소시엄(국민연금·H&Q코리아·새마을금고)에 전환상환우선주(RCPS)를 발행하며 5,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계약에는 일정 기간 내 기업공개(IPO)가 성사되지 않으면 SK스퀘어가 FI 지분을 되사는 콜옵션 조항이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11번가의 IPO가 무산되면서 2023년 10월 SK스퀘어는 1차 콜옵션을 포기했고, 이후 FI가 동반매도요구권(드래그얼롱)을 발동해 매각 추진에 나섰으나 시장에서 원매자를 찾지 못했다. 그 사이 11번가의 기업가치는 2018년 2조7,000억원에서 현재 8,200억원으로 떨어졌다.
SK스퀘어는 이달 2차 콜옵션 만료 시점을 앞두고 또다시 선택의 기로에 섰다. 콜옵션을 행사하면 FI 지분 18%를 5,844억원에 매입해야 한다. 문제는 11번가의 장부가치(6,600억원)와 시장가치가 적잖은 차이를 보이면서 법적 리스크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이다. 반대로 콜옵션을 포기하면, 장부상 손실이 불가피해 회계 리스크가 남는다. 결국 SK스퀘어는 그룹 차원의 신뢰 회복 및 FI와의 관계 정상화를 우선시해 상환 결단을 택한 모양새다. 이번 상환은 콜옵션 행사 형식이 아닌 그룹 계열사 출자금으로 재원을 마련하는 방식으로 추진된다.
이사회 통과 이후 SK스퀘어는 11번가를 그룹 내부 포트폴리오로 전환해 독자 운영 체계를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FI 지분 정리로 경영권 불확실성이 해소되면서 11번가의 향후 과제는 시장 신뢰 회복과 경쟁력 재건으로 이동한다. 다만 FI 지분을 모두 떠안게 되면서 단기적으로는 SK스퀘어의 재무 부담이 커질 가능성도 존재한다. 결국 향후 관전 포인트는 FI 분쟁이라는 불확실성을 털어낸 SK스퀘어가 11번가의 체질 개선과 흑자 전환에 얼마나 속도를 낼지로 몰리는 양상이다.
매각 실패 후 ‘독자 생존’ 모드 전환
SK스퀘어는 내부적으로 11번가의 독자 생존에 사활을 건 것으로 전해진다. 2년 넘게 이어진 매각 시도가 사실상 무산되면서 외부 투자 유치보다 자체 수익 구조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경영 전략을 선회한 것이다. 11번가는 지난해부터 두 차례 희망퇴직을 실시하고, 올해 초에는 ‘넥스트 커리어 프로그램’을 통해 세 번째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그 결과 연간 인건비는 2023년 1,087억원에서 841억원으로 약 200억원 감소했다. 11번가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서울역 본사를 경기도 광명으로 이전하며 임대료 등 고정비를 절감에도 박차를 가했다.
이 과정에서 11번가는 매출 규모보다 손익 개선을 우선순위에 두는 전략을 취했다. 2023년 8,655억원이던 11번가 매출은 2024년 5,618억원으로 줄었지만, 영업손실은 같은 기간 1,258억원에서 754억원으로 축소됐다. 직매입 중심의 사업 구조를 오픈마켓 중심으로 바꾸면서 물류비·운영비 절감을 이룬 결과다. 여기에 오픈마켓 수수료 매출 중심 수익 구조가 자리를 잡으면서 지난해 3월 이후 12개월 연속 월간 영업손익 흑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11번가 관계자는 “올해 1분기에도 오픈마켓과 리테일 등 주력 부문이 대부분 손익분기점을 달성했다”며 “지속 가능한 흑자 구조를 만들기 위한 비용 효율화에 집중하고 있다”고 전했다.
체질 개선은 ‘매력적인 매물’이 아닌 ‘살아남는 플랫폼’에 방점을 찍었다. 11번가는 사업을 재편하며 패션·뷰티·여행 등 수익성 높은 카테고리를 중심에 뒀다. 아울러 수도권에 국한했던 익일 배송 서비스를 전국으로 확대하고, 기존 11월에만 열리던 대규모 세일 ‘그랜드십일절’을 5월과 11월 두 차례로 늘리며 이용자 유입을 확대했다. 그 결과 지난 5월 그랜드십일절 행사에는 모바일 기준 모바일 기준 2,200만 명이 방문했고 이 가운데 신규 고객은 11만 명에 달했다. 11번가는 업계 내 ‘재무통’으로 불리는 박현수 신임 대표를 선임하며 수익성 중심 경영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굳힌 상태다.

SK그룹의 선택, ‘손절’ 아닌 ‘보유’
이런 이유로 시장에선 SK그룹과 FI들의 갈등이 의도된 책임 회피보다는 불가피한 ‘출구 조정 과정’이었을 것이란 진단이 주를 이룬다. 이 같은 평가의 배경에는 양측이 2년에 걸친 매각 시도 속에서 현실적 한계를 직접 확인했다는 점이 있다. FI는 여러 원매자 접촉과 가격 인하를 반복하면서도 성과를 내지 못했고, 결국 손실 최소화라는 목표로 방향을 선회했다. SK그룹 역시 콜옵션 포기 이후 시장 신뢰 하락과 국민연금 부담이라는 이중 압박 속에서 불확실성을 조기에 정리하는 편이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이번 상환 결정은 책임 회피가 아닌 ‘관리 가능한 보유’라는 현실적 선택으로 읽힌다.
FI의 움직임도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한다. 앞서 FI들은 11번가 IPO가 무산된 데 이어 SK스퀘어가 콜옵션을 포기하면서 엑시트(자금 회수) 수단이 사라지자, 즉각 드래그얼롱을 발동해 씨티글로벌마켓증권과 삼정KPMG를 주관사로 세우고 알리바바·오아시스·큐텐 등 잠재 인수자들과 접촉을 이어갔다. 다만 이들 원매자는 최종 협상 단계에서 지급보증 요구, 자금 조달 여력 등 문제를 이유로 한발씩 물러났다. 결과적으로 FI는 협상 테이블에서 “우리는 끝까지 팔아보려 했다”는 기록을 남겼고, 시장이 실제로 받아들일 수 있는 기업가치에 대한 근거 또한 확보했다.
SK 측도 분주하게 움직였다. SK스퀘어는 콜옵션 포기 직후부터 사실상 사면초가에 몰렸다. FI들이 매각을 주도하는 구도가 굳어지면서 “SK가 약속했던 회수 장치를 깨고 물러났다”는 인식이 외부에 확산한 것이다. 여기에 국민연금 이슈까지 더해졌다. 11번가 투자금 가운데 78% 상당이 국민연금 자금으로 들어간 구조에서 회수가 불가능하다는 신호가 굳어질 경우, 부담은 단순한 재무 리스크를 넘어 여론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지난해 말 이후로 한명진 SK스퀘어 대표, 송재승 최고투자책임자(CIO) 등이 직접 협상 테이블에 앉으면서 “우리가 정리하고 책임진다”는 접근으로 무게중심 또한 옮겨가기 시작했다.
이 같은 맥락에서 보면 SK그룹의 기조는 11번가를 고성장 자산으로 키워내겠다는 접근보다는 ‘당장 적자만 통제되는 한에서 품 안에 두고 관리한다’는 형태에 가깝다. FI 지분을 정리해 지배구조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그룹 포트폴리오 안에서 관리하겠단 구상이다. 이런 구도는 단기적으로 장부상 부담을 떠안는 방식이지만, 더 이상 외부 투자자와 조건 협상에 끌려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가 된다. SK로선 5,000억원대까지 내려온 현시점 매각가와 여론 리스크를 동시에 감수하는 대신 구조조정 효과와 손실 축소 흐름을 지켜보면서 향후 노선을 확정하는 게 더 합리적이라고 판단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