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달러선 무너지고 50달러 다가선 유가, 공급 과잉이 만든 새 가격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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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 생산 경고 속 약세 구간 돌입 자산시장 상승세 속 원유만 소외 증산 기조 속 가격 방어 메커니즘 붕괴

국제유가가 60달러 아래 수준까지 밀리면서 일각에서 제기된 ‘50달러 붕괴’ 가능성에 무게를 더했다. 산유국 협의체의 증산 기조에 재고 증가 전망이 맞물리며 가격 하방 압력이 거세진 데 따른 결과다. 여기에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까지 더해지면서 안전자산인 금 가격을 비롯해 암호화폐 같은 위험자산까지 동반 상승하는 ‘에브리싱 랠리’ 국면에서조차 원유만 홀로 약세 흐름을 굳히는 모양새다. 시장에서는 수요 측 모멘텀 회복 등 강한 변수 없이는 추세적 상승 전환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데 전망이 일치했다.
심리적 ‘핵심 지지선’ 무너져
13일(이하 현지시각) 뉴욕상업거래소에 따르면 전날 12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전장 대비 2.55달러(4.18%) 내린 배럴당 58.49달러에 거래를 마치며 지난 10월 21일(57.82달러)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같은 날 브렌트유 선물 가격도 2.45달러(3.76%) 급락해 배럴당 62.71달러까지 밀리며 원유 전반이 약세 구간으로 밀려나는 모습이 부각됐다. 이에 시장에서는 “핵심 지지선이 붕괴됐다”는 평가와 함께 단기 반등 기대감보다는 추가 하락을 전제로 한 포지션 조정에 대한 필요성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이번 급락의 직접적인 방아쇠로는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공개한 월간 보고서가 꼽힌다. OPEC은 이달 보고서에서 러시아 등 비회원국으로 구성된 산유국 협의체(OPEC+)의 증산과 여타 산유국 공급 증가를 반영해 내년 세계 원유시장이 하루 2만 배럴가량의 공급 과잉 상태에 놓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미국과 브라질, 캐나다 등 비(非)OPEC 산유국들의 생산 전망치가 상향 조정되면서 공급 확대 압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는 불과 한 달 전 하루 5만 배럴 수준의 공급 부족을 예상했던 것과 상반된 관측으로, OPEC+ 원유에 대한 내년 수요 전망치 역시 하루 10만 배럴 하향 조정됐다.
시장에서는 이미 지난달부터 이러한 가격 조정을 어느 정도 예견해 온 분위기다. WTI는 10월 이후 여러 차례 배럴당 50달러 후반~60달러 초반 구간을 오르내리며 2020년 하반기 이후 5년 만의 최저 수준을 시험해 왔다. 특히 지정학적 리스크가 일시적으로 부각될 때를 제외하면, 경기 둔화와 공급 확대가 동시에 진행되는 국면에서 유가가 예전처럼 70~80달러대로 쉽게 회복되기 어렵다는 시각이 주를 이뤘다. 여기에 OPEC의 공급 과잉 신호까지 겹치면서 가격 하단이 더 내려갈 수 있다는 보수적 시각 또한 한층 강화됐다.
이 같은 흐름은 산유국들의 재정 여건과 글로벌 경기 신뢰를 반영한다. 시장이 추산하는 산유국 예산의 손익분기점은 70달러 안팎으로, 최근의 유가는 OPEC+ 회원국들의 재정 압박을 매우 높이는 수준이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미국 경기 둔화 우려와 중국·유럽의 수요 둔화 가능성이 겹치면서 산유국들로선 수요 측면에서 강한 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운 국면이 형성됐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OPEC이 공급 과잉 가능성을 공식화한 것은 감산을 통해 가격을 지키기보다는 생산과 수출을 유지하며 시장 점유율 경쟁에 나설 수밖에 없는 현실을 드러낸 셈이다.
경기 침체 우려에 수요 둔화 선반영
이 때문에 시장 일각에선 50달러 선 붕괴 가능성까지 조심스럽게 점치는 상황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지난달 보고서에서 “OPEC 및 OPEC+에 참여하는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아랍에미리트(UAE) 등의 공급 증가가 지속되면 원유 재고는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최고 수준까지 불어날 수 있다”며 “이 경우, 브렌트유 가격은 일시적으로 배럴당 50달러 아래로 내려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다만 BoA는 올해 4분기와 내년 상반기 평균 가격 전망치는 각각 61달러, 64달러 수준으로 유지했다.
장기화 국면에 접어든 미·중 갈등 역시 유가 하방 압력을 키우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양국 간 무역 분쟁이 좀처럼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글로벌 성장률 전망이 하향 조정되고, 그 결과 WTI와 브렌트유 선물 구조가 모두 ‘콘탱고’ 구간으로 전환된 것이다. 콘탱고는 현물 가격이 선물 가격보다 낮은 상태를 의미하는 말로, 단기 공급이 충분하거나 과잉인 반면 수요는 약화돼 있음을 시사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 민간 컨설팅사 리마타 에너지 그룹은 내년 세계 원유 공급량이 올해 평균 대비 하루 400만 배럴 이상 늘어날 것으로 추정하면서 공급 증가율이 수요 증가율보다 약 3배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환경에서는 산유국들이 감산 카드를 꺼내더라도 유가 반등 폭이 제한적일 공산이 크다. 중국 하이통증권은 “공급 과잉 압력이 이미 현실화하고 있어 산유국이 감산에 나서더라도 시장 기대를 크게 끌어올리기는 어렵다”고 진단한 바 있으며, 골드만삭스 역시 내년 4분기 브렌트유가 배럴당 52달러 선까지 밀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대표적 안전자산인 금 가격은 물론 글로벌 증시와 비트코인 등 위험자산까지 동반 상승하는, 이른바 ‘에브리싱 랠리’ 국면에서조차 원유만 홀로 약세를 이어가는 현재 상황에서는 수요 측 모멘텀 회복이나 지정학적 공급 차질 같은 강한 변수 없이는 추세적 상승 전환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시장 전반의 시각이다.

수요처 변화→가격 방어 실패
OPEC+의 증산 기조도 이 같은 전망을 뒷받침한다. 이들 국가는 오랜 감산을 통해 가격을 끌어올리는 전략으로 움직여 왔지만, 올해 들어서는 오히려 생산량을 늘리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6월 성명에서 사우디와 러시아, 이라크, UAE 등 8개국은 하루 기준 41만1,000배럴씩 증산하기로 결정했고, 그 결과 7월에만 하루 137만1,000배럴이 추가로 시장에 풀리면서 과거 감산을 통해 줄였던 물량의 상당 부분이 빠르게 회복됐다. 감산을 통해 가격을 지지하던 협의체가 오히려 공급 확대에 나서면서 단기 반등 가능성도 빠르게 가라앉았다.
이후 9월에도 OPEC+ 8개국은 하루 13만7,000배럴씩 추가 증산에 뜻을 모았다. 이는 2023년 감산분 220만 배럴을 사실상 대부분 되돌리는 수준으로, OPEC+가 더 이상 가격 지지보다 시장 점유율 회복을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됐다. 실제로 이들이 증산에 나선 이후 국제유가는 연간 기준 약 12% 하락했다. 이달 들어서는 증산 폭을 전월과 동일하게 제한하며 공급과잉 우려를 해소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지만, 이미 누적된 추가 물량이 남긴 하방 압력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인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OPEC+의 연이은 증산 결정이 전통적인 담합 구조가 흔들리는 것에 대한 방증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리고 그 시발점으로는 2022년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제재를 지목했다. 서방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이 중단되면서 시장 곳곳에서 수요처를 잃은 원유 화물이 속출했단 지적이다. 여기에 최근 미국이 인플레이션 완화를 명분으로 유가 인하를 공개적으로 압박하고 나서면서 산유국들은 가격 방어보다 수요처를 지키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게 됐다. 원유 생산 현장의 증산 기조가 불러온 공급 과잉 구조가 ‘변수 아닌 상수’로 인식되는 배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