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우회해 엔비디아 AI 칩 확보해 온 중국, 美 반도체 규제 무력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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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기업이 지분 투자한 실리콘밸리 기업 통해 전달 군사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아 제재 대상서 제외 규제 회피 논란 속 엔비디아 프로젝트 차질 전망

미국의 강도 높은 대중국 수출 규제에도 중국이 인도네시아를 우회해 엔비디아의 최신 인공지능(AI) 칩 지속적으로 확보해 온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엔비디아와 거래가 가능한 비제재 기업을 연결고리로 이용해 첨단 AI 서버가 인도네시아를 거쳐 중국에 전달된 사례가 드러나면서 ‘사실상 규제 무력화’라는 평가가 나온다. 여기에 엔비디아가 동남아시아 시장 확대를 위해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다양한 AI 프로젝트까지 추진하고 있어 양국 간 이해관계는 더욱 복잡하게 얽히게 됐다.
中 INF테크, 엔비디아 칩 2,300개 연산 능력 확보
13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의 수출 규제로 엔비디아의 최신 AI 칩을 구매할 수 없는 중국이 동남아를 우회해 칩을 공급받았다고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기술 기업 에이브레스에 AI 칩을 판매하는데, 에이브레스는 중국 기업 인스퍼가 지분 3분의 1을 보유하고 있다. 인스퍼는 군사용 슈퍼컴퓨터 개발에 연루됐다는 이유로 지난 2023년 미국 정부가 지정한 블랙리스트(거래 금지 대상)에 올랐으나, 에이브레스는 제재 대상이 아니어서 엔비디아와 거래가 가능하다.
우회 경로로 활용된 나라는 인도네시아다. 에이브레스는 지난해 인도네시아 통신사 인도샛에 엔비디아 최첨단 AI 칩 블랙웰이 장착된 서버를 판매했다. 인도샛은 이 서버를 에이브레스가 이어준 중국 고객사 INF테크에 공급했고, 이를 통해 INF 테크는 엔비디아 칩 2,300개에 이르는 연산 능력을 확보했다. INF테크는 해당 칩을 신약 개발 등 과학 연구 분야에서 AI 훈련용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INF 테크는 MIT 출신 치위안 푸단대 교수가 설립한 AI 스타트업으로, 싱가포르·말레이시아·태국의 데이터센터와도 협력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통상 전문가들은 중국 기업이 이 같은 방법으로 우회 구매한 칩을 군사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이상,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수출 규정을 위반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사실상 제재를 위반하지 않고도 중국 기업이 엔비디아의 최신 AI 칩을 쓸 수 있는 셈이다. WSJ는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중국 시장점유율이 95%에서 0%로 떨어졌다고 했지만, 중국 기업들은 여전히 엔비디아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반도체 굴기 이면엔 엔비디아 칩 암시장 매매 성행
공식적으로 중국 정부는 미국의 첨단 반도체 수출 규제에 대응해 ‘엔비디아 불매’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8월 자국 기업들에 엔비디아 H20 사용을 중단하라고 지시했고, 지난달에는 국가 자금이 투입되는 신설 데이터센터에서 국산 AI 칩만 사용하도록 지침을 내리며 ‘반도체 자강’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러나 폭발적인 수요를 감당할 만큼의 기술 자립은 아직 이루지 못한 상태다. 미국 수출 규제로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확보가 제한되면서, 중국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인 SMIC는 AI 칩 생산에서 만족할 만한 수율을 내지 못하고 있다.
이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중국 기업들이 우회 경로를 통해 엔비디아 칩을 확보하는 것은 이제는 공공연한 비밀이 됐다. 지난 4월 트럼프 대통령이 H20 칩 수출을 전면 금지한 이후에도 최소 10억 달러(약 1조4,000억원) 규모의 엔비디아 칩이 중국으로 반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수치는 기업 공시와 계약서, 거래에 직접 관여한 인물들의 증언을 종합해 도출한 결과다. 미국은 B200, H100 등 엔비디아 첨단 AI 칩의 중국 수출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중국 내에서는 세금만 제대로 내면 이들 칩을 사고파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현재 더우인, 샤오홍슈 등 중국 소셜미디어(SNS)에서는 B200 서버, RTX 5090 등이 버젓이 판매되고 있으며, 일부 유통업체는 올해 출시한 B300 칩의 예약까지 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암시장 거래는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특히 B200 칩은 암시장 최고 인기 품목으로, B200 칩 8개가 탑재된 한 서버랙은 중국에서 350만 위안(약 7억원)에 거래되고 있다. 이는 미국 현지보다 50% 이상 비싼 가격이다. 선전의 유통 기업 게이트 오브 더 이어라(Gate of the Era)는 서버랙을 수백 대 판매해 4억 달러(약 5,500억원)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변수에 노출된 엔비디아 동남아 거점
이런 가운데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로 현재 엔비디아가 인도네시아에서 추진하고 있는 데이터센터 구축 프로젝트도 타격을 입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지난해 엔비디아는 인도샛과 협력해 2억 달러(약 2,800억원)를 투자해 인도네시아 자바주 수라카르타에 AI센터를 구축하기로 했다. 엔비디아가 인도네시아 진출을 확대한 것은 동남아의 생성형 AI 수요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이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전략으로, 이번에 설립되는 데이터센터는 인도네시아어 기반 대형언어모델(LLM) 개발 등 현지 맞춤형 AI 솔루션을 지원하도록 설계됐다.
올해 4월에는 인도네시아 데이터센터 운영 업체 BDx가 '엔비디아 DGX-Ready 데이터센터 프로그램' 인증을 획득하며 AI 학습·추론에 최적화된 인프라를 공식적으로 확보했다. DGX-Ready 인증은 엔비디아의 고성능 AI 플랫폼인 DGX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운용할 수 있도록 전력·냉각·네트워크 등 핵심 시설 요건을 사전에 검증하는 제도다. 이번 인증으로 BDx가 인도네시아 전역에 엔비디아 기반 가속 컴퓨팅 환경을 구축·운영할 수 있게 됨에 따라, 현지 기업들은 데이터 현지화를 통해 보다 수월하게 자체 AI 솔루션을 개발할 수 있게 됐다.
이어 지난 9월 엔비디아는 인도네시아 정부와 인도샛, 시스코 등과 함께 소버린 AI 인프라 구축 프로젝트도 본격화했다. 구체적으로는 인도네시아어 자연어 처리(NLP) 성능을 끌어올린 챗봇 및 AI 솔루션 구현을 목표로 한다. 당시 인도네시아 정부는 "이 프로젝트는 국가 데이터 주권 전략의 핵심 사업으로, 해외 기술 의존도를 줄여 자국 내에서 데이터가 생산·저장·처리되는 AI 생태계 구축을 목표로 한다"며 “인도네시아를 단순한 기술 소비국에서 AI 기술을 자체적으로 생산·혁신하는 국가로 전환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