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칩스법] “현실의 벽에 발목 잡힌 美 리쇼어링” TSMC 애리조나 공장, 인력·규제·비용 삼중고 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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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 팹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 '장기 청사진' 제동 대만보다 50% 높은 비용에 전문 기술 인력난까지 고강도 규제에 6개 팹 모두 가동해도 美 수요 충당 부족

미국 정부의 ‘반도체 굴기’를 상징하는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TSMC 공장 건설 프로젝트가 거대한 암초에 부딪혔다. 수십 년간 제조업 기반이 약화된 미국에서 첨단 생산기지를 구축하는 과정이 숙련 인력 부족, 경직된 규제 체계, 높은 비용 구조라는 삼중의 부담이 겹치며 속도와 효율을 크게 제약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막대한 자본 투입만으로는 미국 내 반도체 제조 역량을 단기간에 복원할 수 없다는 냉혹한 현실을 드러낸다.
1,000억 달러 투자에도 주민 반대에 ‘신도시’ 개발 제동
16일(이하 현지시간) 피닉스 지역방송 ABC15에 따르면 13일 피닉스 북부 지역의 '노스 게이트웨이 빌리지 기획위원회(North Gateway Village Planning Committee)' 회의장은 수십 명의 성난 주민들로 가득 찼다. TSMC 공장 인근에 '노스파크(NorthPark)'라는 대규모 복합 신도시를 건설하는 안건을 두고 격렬한 반대 의견이 쏟아진 것이다. 노스파크 개발은 수만 명에 달할 TSMC 엔지니어와 협력사 직원들을 수용하기 위한 필수 기반 시설로, TSMC와 부동산 개발사 펄트그룹(Pulte Group)이 주도하고 있다.
피닉스 시당국에 따르면, 노스파크 용도 변경 안건에 대해 접수된 의견은 반대·우려 243건, 지지 68건으로 반대 여론이 압도적이었다. 주민들의 분노는 '삶의 질' 하락에 집중됐다. 피닉스 주민인 앤 윌지는 "우리는 막대한 교통량을 감당하고 싶지 않다"며 "우리는 조용한 우리 커뮤니티를 좋아한다"고 호소했다. 주거지 바로 옆에 '도시 속의 도시(city within a city)'가 들어서며 발생할 극심한 교통 혼잡과 안전 문제를 정면으로 지적한 것이다.
더 근본적인 불만은 '물'에서 비롯됐다. 사막 기후인 애리조나에서 주민들은 TSMC가 진행하는 거대한 프로젝트가 지역의 물 공급에 미칠 영향을 우려했다. 반도체는 생산 과정에서 물을 여러 차례 정제한 초순수를 활용한 세정 등 공정을 거치기 때문에 대량의 수자원을 활용한다. 첨단 공정을 활용하면 물 사용량도 더욱 늘어난다. 이에 대해 주민 짐 움라우프는 "10년 뒤 우리가 '그때 집을 더 지었어야 했는데'라고 후회하진 않겠지만, '그때 더 많은 녹지(open space)를 지켰어야 했는데'라고 분명히 돌아보게 될 것"이라고 성토했다. 이들은 주 소유 신탁 부지 개발로 인한 환경 파괴와 휴식 공간 감소를 문제 삼으며, 프로젝트를 현 주거지에서 더 먼 루프 303 고속도로 북쪽으로 옮기라고 요구했다.
피닉스 주민들이 반대하는 노스파크 신도시 개발은 TSMC가 미국 공장을 가동하기 위한 필수 전제조건이다. 수만 명의 고급 엔지니어와 노동자를 사막 한가운데로 불러 모으려면 그들이 거주할 집과 학교, 병원, 상업 시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교통 대란 역시 불가피하다. TSMC는 "트럭 이동 경로를 주거지가 아닌 고속도로로 유도하겠다"고 밝혔지만, 24시간 쉴 새 없이 원자재와 완제품을 실어 날라야 하는 반도체 산업의 물류 시스템과 주민들이 내세우는 '조용한 전원 공동체'의 가치관은 정면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현지 규제로 수요 7%만 충당
TSMC 투자의 발목을 잡는 건 또 있다. 현지 규제당국의 관료주의적인 절차와 경직된 규정이다. TSMC는 애리조나 주에 총 1,000억 달러(약 145조원) 규모의 반도체 생산시설을 단계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이는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의 반도체 및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 칩스법) 지원금 유치와도 긴밀히 연결돼 있다. 칩스법은 미국 내 반도체 제조 인프라를 확보하기 위한 핵심 입법으로, 시설 투자 시 수십억 달러 규모의 보조금 및 세제 혜택이 제공된다.
이에 TSMC는 2020년 5월 애리조나에 첫 번째 공장 착공을 시작해 올해부터 고급 칩을 생산하고 있으며, Fab 21단지 내 두 번째 공장은 최근 3nm 공정을 기반으로 건설이 완료됐다. 올해 2분기에는 세 번째 팹(P3, F21)이 착공에 돌입한 상태로, P3에서는 2nm 기반 생산을 시작해 주요 고객사의 고성능 반도체 수요를 직접 대응할 계획이다. 아울러 네 번째 공장부터는 2nm와 A16 공정을 적용하며, 다섯 번째 및 여섯 번째 공장에서는 지금보다 진보된 차세대 기술이 투입될 예정이다. TSMC는 이들 공장 여섯 곳과 첨단 포장 공장 두 곳, 연구개발(R&D) 센터까지 아우르는 '반도체 단지(클러스터)'로 확장한다는 목표다.
하지만 이 같은 공격적인 확장에도 불구하고 TSMC는 여전히 미국 현지 반도체 수요의 상당 부분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이와 관련,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지난 7월 올인 팟캐스트(The All-In Podcast)에 출연해 TSMC 애리조나 공장이 현재 미국 전체 반도체 수요의 약 7%만 충족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장비 통관 지연, 각종 허가 절차 지체 등이 생산 효율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숙련공 씨 마른 美, 생산 비용도 2배 이상
현지의 전문 인력 부족도 미국 공장 확대의 걸림돌이다. 애리조나에 있는 첫 번째 공장의 경우 당초 지난해부터 가동될 예정이었으나, 첨단 장비를 설치할 만큼 숙련된 인력을 구하지 못해 올해로 1년 미뤘다. TSMC는 예산 내에서 공기를 맞추기 위해 대만에서 전체 필요 인력 가운데 절반에 달하는 1,000여 명의 숙련된 기술자들을 데려오려고 했으나, 애리조나 현지 노조에서 지역 일자리를 빼앗는다며 반발해 이 역시 무산됐다. 결국 TSMC는 대만에서 전문 엔지니어들을 파견해 미국 근로자들을 훈련하거나, 일부 현지 인력을 대만으로 보내 교육하는 데 1년을 썼다.
전문 인력 부족은 미국 정부가 반도체 굴기를 목표로 자국 내에 반도체 공장 건설을 압박하기 시작한 이래로 계속 제기돼 온 문제다. 삼성전자를 비롯해 TSMC, 마이크론, 인텔 등이 앞다퉈 미국에 공장을 새로 짓는다고 발표했지만 정작 거기서 일할 숙련된 기술자가 모자라 정상 가동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미 상무부에선 해마다 10만 명이 모자랄 것으로 추산하기도 했다.
인력난에 더해 미국 내 높은 생산비용도 TSMC의 어려움을 키우는 요인이다. 미국에서 반도체 공장을 짓고 가동하는 비용은 아시아 대비 30~50% 높다는 것이 업계의 정설이다. TSMC도 미국 공장의 생산단가가 대만 대비 최대 100% 비싸질 수 있다고 추산한 바 있다. 미국에서 첨단 반도체 공장을 짓고 운영하는 데 드는 비용이 동아시아 대비 두 배 이상이란 분석도 있다.
실제로 반도체 클린룸 건설 기업 엑사이트(Exyte)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에서 팹을 건설하는 데는 대만보다 두 배의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 대만에서 최첨단 팹은 약 19~20개월이면 완공되지만, 미국에선 각종 인허가와 규제 절차, 24시간 공사 불가능 등으로 38개월 가까이 소요된다. 또 장비 비용을 제외한 나머지 인건비·자재비 등 건설비용도 대만의 두 배 수준이다. 운영 단계에서도 전기료 등 유틸리티, 인건비 부담이 큰 탓에 칩 한 개당 생산단가가 50% 이상 높다. 인건비, 건설비, 운영비 등 모든 면에서 비용 경쟁력의 격차가 존재하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TSMC가 이러한 비용 장벽을 해소하지 못하면, 막대한 투자를 하고도 가격 경쟁력 부족으로 사업성이 흔들릴 위험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미국의 칩스법은 바로 이런 코스트 갭(Cost Gap)을 메우기 위한 장치지만, 이 같은 정부 지원도 한시적일 수밖에 없어서다. 현 시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반도체 관세를 올려서 미국 반도체 산업 부활을 꿈꾸고 있으나, 결국은 미국 팹들이 비용을 줄이든 수율을 높이든, 자체적으로 '가성비'를 높여야 장기적 생존이 가능하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