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산업 정의 다시 쓰는 중국, 시장 포화 속 SW 중심 재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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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주행·AI 중심 전환 압력 공급 과잉 누적으로 인한 시장 왜곡 시장 재편 가속, 구조적 분기점 도래

중국 자동차 산업이 급격한 분기점에 직면했다. 공급 과잉과 보조금 소멸로 수익성 붕괴가 가속화되자, 하드웨어 중심의 성장 모델에서 소프트웨어 중심 체제로의 전환을 서두르는 모습이다. 기술 내재화와 서비스 생태계 구축이라는 고난도 전략을 확보하지 못하면 더 이상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는 위기 의식이 산업 전반에 확산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AI·자율주행 등 모빌리티 서비스에 주력
18일 중국 관영 매체 차이나데일리에 따르면 최근 중국 자동차 산업에서의 핵심 경쟁 우위는 하드웨어(제조)에서 소프트웨어(서비스 생태계)로 이동하고 있다. 중국 전기차 및 스마트 커넥티드카 산업의 발전을 위해 조직된 기관인 전기차백인회(中國電動汽車百人會∙CHINA EV100)는 가장 먼저 이 같은 변화를 예고했다.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이한 지금, 중국의 자동차 산업 경쟁력은 새로운 기준으로 평가돼야 한다는 것이다.
CHINA EV100은 자동차 사용 중에 창출되는 서비스 산업 가치가 2028년까지 8조 위안(약 1,650조원)을 돌파하며 제조업의 가치를 능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연구 데이터에 따르면 부품 교체나 유지 보수 같은 기존의 애프터서비스 마켓 규모만 해도 2028년까지 2조1,000억 위안(약 432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서비스 생태계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차량 판매, 금융 및 보험, 에너지 솔루션(충전), 맞춤화, 갱신 서비스 등 모든 모빌리티 관련 경제 활동을 포괄하는 거대한 시장으로 평가된다.
서비스 생태계를 현실화 하는 핵심 동력 중 하나는 자율주행 기술이다. 특히 화웨이의 고급 자율주행 시스템(ADS)인 '첸쿤 ADS 4.0'은 중국 자동차업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ADS 4.0은 보조 운전 사용률을 15%에서 거의 20%로 끌어올렸고, 주차 시나리오에서의 사용률은 42%에 달했다. 화웨이의 자회사 인왕(Yinwang)은 고속도로 레벨3 자율주행은 2026년에, 도시 L4(완전자율)는 2027년, 무인 트렁크 물류는 2028년에 대규모로 채택될 것으로 내다봤다. 2025년에서 2027년이 자율주행 기술 상용화의 '황금 3년'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실제 중국 완성차 업체들은 올해부터 차량용 반도체와 소프트웨어 내재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비야디(BYD)는 자체 자율주행 시스템 '디 파일럿(DiPilot)' 개발과 함께 반도체 독립에 나섰고, 보급형 모델에도 자율주행 보조 기능을 탑재해 AI 대중화를 강화하고 있다. 샤오펑(Xpeng)은 자체 AI 칩 '튜링(Turing)'을 개발해 자사 신차에 탑재했다. 또한 고속도로와 도심에서 자율주행 지원 서비스를 선보이며 중국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입지를 넓혀가는 중이다. 니오(NIO) 역시 자체 5나노미터 칩 '션지(Shenji) NX9031'을 선보이며 유럽, 동남아 시장으로 진격하고 있다.
과잉 공급이 불러온 수익성 붕괴
이 같은 사업 모델 전환은 중국 자동차 산업이 봉착한 위기와 맞닿아 있다. 현재 중국에서는 자동차 공급 과잉, 출혈 경쟁 속에 기업들의 수익성이 악화하고 있다. 10일 한국자동차연구원이 낸 보고서 ‘중국 자동차 산업의 역설, 내권(內卷)’에 따르면, 중국의 완성차 생산 능력은 내수 시장의 두 배에 달한다. 작년 중국의 완성차 생산 능력은 연간 5,507만대로 추정되는데, 내수 판매량은 2,690만 대에 그친다. 여기에 수출 물량을 더하더라도 2,000만 대 이상의 생산 시설이 가동을 멈추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 국가통계국이 일정 규모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산정한 차 산업 평균 가동률은 작년 72.2% 수준이었지만, 대상을 전체 등록 제조사로 확대할 경우 실질 가동률은 50% 내외로 추정된다. 일반적으로 산업 가동률이 75% 이하로 지속될 경우 과잉설비로 간주된다.
내수 규모를 뛰어넘는 공급 능력 탓에 업체들 간 가격 경쟁이 격화되고, 수익성도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지난해 중국 주요 전기차 제조사들의 평균 차량 판매 가격은 2만4,000달러(약 3,500만원)로 3년 새 21% 급감했다. 중국 완성차 업체들의 수익률도 2017년 8%에서 2024년 4.3%로 반토막이 났다. 작년 기준 중국의 전기차 업체 130곳 중 흑자를 기록한 곳은 BYD, 테슬라, 리오토, 지리 등 4곳뿐이다. 대부분 기업은 상업적으로 장기 생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고성장 신화를 썼던 러시아 시장에서도 중국 완성차 업체들의 독주가 막을 내렸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사회의 제재가 이어지면서 한국, 유럽, 미국 자동차 업체들이 러시아 시장에서 철수하자 중국 업체들은 재빨리 그 틈을 메웠다. 2023년 중국의 러시아 자동차 수출량은 95만 대로 급증했는데, 이는 2022년 16만3,000대에 비해 여섯 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시장 점유율의 거의 50%를 차지했다. 2024년 기준 중국의 대(對)러시아 판매량은 115만8,000대로 중국 최대 자동차 수출 시장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2024년 말 러시아 정부가 수입 차량의 재활용 수수료를 85%로 대폭 인상한 데 이어 올해 1월 수입 관세를 20%에서 38%로 올리면서 성장 신화도 종식을 맞았다.

출혈 경쟁 부작용 속 보조금 축소, 자생력 시험대
이로 인해 가뜩이나 수익률에 비상등이 켜진 상황에서 국가 지원마저 끊기게 됐다. 중국 정부는 전기차 산업에 대한 막대한 지원을 줄이고, 업체들이 자생 가능한 구조를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 국영 CCTV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오는 12월 31일부로 현행 신에너지차(전기·수소·하이브리드차) 구매세 '전액 면제'를 종료하고, 내년 1월 1일부터 2027년 말까지 세금의 절반만 감면한다. 이에 따라 현재 최대 3만 위안(약 620만원)에 달하는 전기 승용차 세제 혜택이 내년부터 1만5,000위안(약 310만원)으로 줄어들게 된다. 아울러 중국 공산당은 내년부터 시작되는 제15차 5개년 계획에서 전기차를 전략 산업 목록에서 제외, 정부 보조금 정책을 내년부터 중단할 것을 예고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중국 정부가 신에너지차 산업 구조를 재편하기 위한 시작으로 보조금 축소 카드를 꺼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 전기차 제조사들이 정부의 세액 지원에 기대 공급과잉 상태에 접어든 데다, 양적 성장 대비 품질 및 기술력 개선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판단에서다. 실제 중국 정부는 세제 혜택 축소에 앞서 지원 기준을 강화한 바 있다. 현재 중국 내 판매되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나 주행거리연장형전기차(EREV)는 EV모드로 43㎞ 이상 주행거리를 인증받으면 세제 혜택 대상이 되는데, 지난달 이를 '100㎞ 이상'으로 기준을 상향 조정했다.
중국 정부는 출혈 경쟁과 과잉 생산 속에 늘어난 '0㎞ 중고차' 수출에도 제동을 걸었다. 중국산 브랜드의 이미지와 중국 자동차업계 평판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0㎞ 중고차는 실제로는 신차지만 출고 후 형식적인 등록 절차를 거친 뒤 곧바로 중고로 판매되는 차량이다. 중국자동차공업협회 통계를 보면 0㎞ 중고차는 지난 2021년 1만5,000대 규모에서 지난해 43만6,000대로 늘었고, 올해는 50만 대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0㎞ 중고차는 중국 자동차 업체가 재고와 과잉 생산 압력을 해소하는 경로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당국이 대응에 나서면서 재고 물량을 밀어낼 수 있는 판로가 막히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완성차 기업들은 다음 단계를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다만 소프트웨어 전략으로의 전환 또한 충분한 자본력과 기술 역량을 갖춘 기업만이 수행할 수 있다. 결국 중소형 업체들은 빠른 속도로 정리되고, 대형·플랫폼형 기업 중심으로 재편될 공산이 크다. 여기에 해외 자동차 기업들의 중국 시장 진출까지 겹치며 압박을 키우고 있다. 현대차의 중국 시장 재진출이 대표적이다. 지난달 현대차는 중국에서 재도약을 위해 맞춤형 전기차 '일렉시오(ELEXIO)'를 출시했다. BYD의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탑재하는 등 설계부터 생산까지 현지에서 주도한 첫 전기차다. 현대차는 일렉시오에 이어 내년 준중형 전기 세단도 출시해 경쟁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2027년까지는 EREV까지 총 6종의 신에너지차를 선보일 예정이며, 중국 자율주행 기술 기업과도 협업을 늘려 현지 맞춤형 모델을 대거 출시할 방침이다.
한 경제 전문가는 “중국 정부의 보조금 체계가 사실상 종료된 상황에서 중국 전기차 업체들은 더 이상 가격 경쟁에 매달릴 수 없게 됐다. 생산 효율성은 이미 일정 수준에 도달했지만, 보조금 시대에 우후죽순으로 난립했던 기업들은 자생 기반이 취약해 연쇄적으로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며 "향후 몇 년은 중국 완성차 기업들이 소프트웨어 전환, 기술 내재화, 서비스 경쟁력 확보라는 새로운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면 생존 자체가 어려워지는 결정적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