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 前 부사장 기술 유출 파문, 대만 ‘반도체 안보’ 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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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MC 21년 근무 뤄웨이런, 경쟁사 인텔로 이직 경업금지 서약·영업비밀법 위반으로 소송 직면 임직원 영입해 기술 추격 유혹, 업계 기밀 유출 빈번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 대만 TSMC가 인텔로 이직한 전직 임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서 반도체업계의 기술 유출 리스크가 다시 불거졌다. 기술 개발에 천문학적인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는 데다, 기술 격차가 곧 시장 우위를 결정하는 반도체업계 특성상 기술 유출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 첨단 기술을 선점하기 위한 반도체 인재 쟁탈전이 기업의 생존을 건 법적, 도덕적 딜레마 속에서 위태롭게 전개되는 양상이다.
“은퇴해 학교 간다”던 TSMC 전 임원, 퇴직 석 달 만에 인텔행
28일 자유시보 등 대만 언론에 따르면 TSMC는 25일 뤄웨이런 전 수석부총경리(수석부사장)를 상대로 지식재산 및 상업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TSMC는 이번 소송에서 뤄 전 수석부사장이 △고용계약 △경업금지 약정 △영업비밀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뤄 전 수석부사장은 2004년 7월 TSMC에 입사해 21년간 근무하면서 5나노·3나노·2나노 등 첨단 공정의 양산을 주도한 인물이다. 지난 7월 27일자로 공식 퇴직한 그가 불과 3개월 만에 경쟁사인 인텔로 이직해 집행부사장을 맡았다는 소식은 업계를 놀라게 했다.
TSMC는 뤄웨이런이 재직 기간 서명한 기밀 유지 서약과 경업금지 약정을 어겼다고 보고 있다. 소장에서 드러난 뤄 전 수석부사장의 퇴사 과정은 치밀했다. TSMC 실비아 팡 법무실장(General Counsel)은 그의 퇴직 닷새 전인 2025년 7월 22일 출구 면담(Exit Interview)을 진행하면서 경업 금지 의무를 재차 고지하고 관련 서약의 중요성을 상기시켰다. 당시 뤄 전 수석부사장은 향후 거취를 묻는 사측에 "학계(academic institution)로 갈 계획"이라고 진술했을 뿐, 인텔행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더구나 그는 재직 중 기밀 유지 협약(NDA)과 경업 금지 약정에 모두 서명한 상태였다. 하지만 학교로 돌아가 후학을 양성하겠다던 그는 퇴사 직후인 10월 말, TSMC의 경쟁사인 인텔의 집행부사장 명함을 팠다.
TSMC는 뤄 전 부사장이 퇴직 전 2나노 등 첨단 반도체 기술 관련 기밀 자료를 복사해 외부로 반출했다고 전했다. 유출 규모만 최대 80박스에 달한다. TSMC는 그가 재직 기간 연구개발(R&D)과 관련이 없는 부서에 있으면서 첨단 반도체 공정 기술에 접근하려고 했다는 점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TSMC에 따르면 뤄 전 수석부사장은 2024년 3월 기업전략발전부 수석부총경리를 맡았는데, 해당 부서는 회장 및 최고경영자(CEO)에게 자문하는 참모 조직으로, R&D 부문을 감독하거나 관리할 필요가 없는 자리였다. 그럼에도 R&D 부문 직원들을 회의에 소집해 2나노, A16(1.6나노), A14(1.4나노) 등 첨단 공정 기술 브리핑을 요구하고, 관련 자료를 대량으로 가져갔다는 것이다. TSMC 측은 “뤄 전 수석부사장이 회사의 영업비밀 및 기밀 정보를 인텔에 사용·유출·전달·이전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해 법적 조치를 취하게 됐다”고 밝혔다.

경쟁력 회복 절실한 인텔, 생존 모멘텀 속 역풍
TSMC가 제기한 영업기밀 유출 의혹에 대해 인텔 측은 즉각 부인했다. 인텔은 26일(현지시각) 성명을 통해 “현재까지 우리가 아는 모든 내용을 바탕으로 살펴보면, 뤄 부사장과 관련한 의혹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회사는 제3자의 기밀 정보나 지식재산의 사용·이전을 엄격히 금지하는 규정을 갖고 있으며 이를 철저하게 준수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기업 간 인재 이동은 업계에서 흔히 일어나는 건강한 흐름이며 이번 사례도 다르지 않다”고 역설했다.
다만 인텔의 반박에도 불구하고 그간의 공격적 인재 영업 행보에 비춰볼 때 비판 여론이 쉽게 사그라들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인텔은 반도체 파운드리와 패키징 사업에서 수주 경쟁력 회복이 시급한 처지다. 인텔은 파운드리 사업에 무리한 R&D 및 설비 투자로 심각한 재무 위기를 겪어 왔으나, 최근 미국 정부와 엔비디아, 소프트뱅크 등의 지분 투자를 받아 반전 기회를 노리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대형 파운드리 고객사가 부재해 이들을 끌어들일 확실한 승부수가 없다면 앞으로 진행될 연구 및 생산 투자의 성과를 자신하기 어렵다.
인텔이 뤄 부사장을 불러들인 것도 이 때문이다. 뤄 부사장은 인텔 반도체 제조 분야에서 18년가량 근무한 뒤 2004년 TSMC로 이직했다. 이후 극자외선(EUV) 노광 공정과 5나노, 3나노, 2나노 등 TSMC가 주력으로 앞세우는 첨단 반도체 미세공정 기술 개발에 기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처럼 중요한 업무를 담당했던 만큼 인텔이 파운드리 사업 경쟁력을 빠르게 높이려면 그를 영입하는 일이 필수라고 판단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인텔이 기술 유출과 관련해 의혹이 불거질 수 있다는 점을 감수하면서도 뤄 부사장을 영입해 승부수를 던진 것이라는 해석이다.
TSMC 직원 2명, 일본 경쟁사로 이직한 전 직원에 2나노 기술 유출
TSMC가 자사 기술 보호를 위해 전직 고위 임원에게 칼을 겨눈 이번 사건은 반도체 인재 확보 전쟁이 법적·윤리적 한계선 위에서 얼마나 위태롭게 전개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반도체 공정은 선폭이 좁을수록 소비 전력이 줄고 처리 속도가 빨라지는데, 공정이 미세화할수록 개발 난도와 투자 규모가 급격히 증가한다. 이 때문에 최신 기술 개발에 참여한 경쟁사 임직원에게 막대한 보상을 제시하면서 영업비밀을 탈취하려는 시도가 빈번하다.
일례로 대만 고등검찰청은 지난 8월 TSMC의 전직 엔지니어 3명을 국가보안법 위반과 영업비밀 유용 혐의로 기소했는데, 이들 가운데 한 명은 TSMC 퇴사 후 일본의 주요 반도체 장비업체이자 TSMC의 핵심 공급사인 도쿄일렉트론(TEL) 자회사로 옮긴 인물(천씨)이다. 대만 검찰에 따르면 천씨는 이직 후 공급사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TSMC에 재직 중인 우씨와 거씨에게 접근해 영업 비밀을 요구했다.
이들이 빼내려 한 정보는 TSMC의 미래 경쟁력을 좌우할 최첨단 2나노 칩용 식각 장비였다. 우씨와 거씨는 2나노 공정 기술 도면을 천씨에게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 유출된 도면은 1,000장에 달했다. 우씨 등은 재택 원격근무를 하면서 회사에서 지급받은 노트북으로 사내 인트라넷에 접속해 기밀문서를 열람해 범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TSMC는 지난 7월 8일 고소장을 제출했고, 지적재산권분서는 같은 달 TSMC 전현직 직원 9명에 대한 수사에 나섰다. 수사기관은 전현직 TSMC 엔지니어 거주지와 북부 신주과학단지 내 TEL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이어 소환 조사, 압수 휴대전화 포렌식 분석, 클라우드 데이터 분석, 계좌 추적 등을 통해 지난 8월 6일 이들을 구속했다. 대만에서 경제 스파이 행위는 2022년 개정된 대만 국가보안법의 적용을 받을 수 있다. 이 법은 특히 반도체 부문에서 해외의 민감한 기술을 보호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