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 장기간 지속될 것" 중동 분쟁 속 흔들리는 세계 경제, 시장 충격에 스태그플레이션 압박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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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이란 전쟁發 글로벌 경제 충격 장기화 전망 각국 산업계 및 금융 시장 혼란 두드러져, 가계도 '비명' 다수 주요국 스태그플레이션 위기 직면, 전쟁 길어지면 中까지 영향권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글로벌 경제에 막대한 충격을 안겼다. 각국 산업계 및 가계가 중동발(發) 리스크 속에서 신음하는 가운데, 세계 금융 시장까지 인플레이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요동치는 양상이다. 다수의 주요국은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가 동시에 발생하는 스태그플레이션 위기에 봉착했으며, 비교적 에너지 안전망이 탄탄한 중국마저도 각종 잠재적 리스크에 짓눌리고 있다.
중동 분쟁 '장기 리스크'로 부상
25일 앤 크루거 스탠퍼드대 석좌교수는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세계경제연구원 주최로 열린 조찬 강연회에서 "미·중 무역 갈등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에 더해, 최근 예상치 못한 미국-이란 전쟁 충격까지 더해지면서 세계 경제 불확실성이 전례 없는 수준으로 커졌다"며 "이는 한국처럼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에 심대한 위협"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그는 "이번 전쟁으로 이란이 에너지 자원을 무기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며 "전쟁이 종식되더라도 저유가 시대가 유지될 것이라고 낙관하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이 같이 어두운 전망은 국제사회 곳곳에서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국 석유 기업 셰브런의 마이크 워스 최고경영자(CEO)는 23일(이하 현지시각) 미국 휴스턴에서 개막한 에너지 콘퍼런스 세라위크(CERAWeek)에서 “이 상황(중동 분쟁의 충격)에서 벗어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따른 공급 부족 우려가 아직 선물 원유 가격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고 짚었다.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국영석유공사의 술탄 알 자베르 CEO는 “이것(유가 급등)이 (경제적) 여력이 가장 부족한 이들의 생계비를 높이고 있고, 모든 곳에서 경제 성장을 둔화하고 있다”며 “전 세계 공장에서 농장, 가정에 이르기까지 인적 비용이 날로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무역 회사 비톨 아메리카스의 벤 마셜 CEO는 국제 유가가 배럴당 120달러(약 17만9,760원)에 도달할 경우 심각한 ‘수요 파괴’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증권가에서도 분쟁 상황에 대한 우려가 끊이지 않는 분위기다. 미국 시타델증권의 노샤드 샤 유럽·중동·아프리카 지역(EMEA) 채권 세일즈 총괄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투자자들은 지난 수년간 지정학적 충격이 발생해도 곧 사라지는 패턴에 익숙해졌고, 이란 전쟁의 영향에 대해서도 비교적 태평하게 보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는 "투자자들의 이러한 믿음은 트럼프 대통령이 언제든지 전쟁을 끝내고 물러날 수 있다는 가정에 기반하지만,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며 "이란 전쟁을 단순한 지정학적 충격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쟁에서 손을 뗀다고 해도 이란 전쟁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국제사회 휩쓴 전쟁 후폭풍
중동 분쟁의 경제적 후폭풍은 이미 세계 각국에서 가시화하고 있다. 인도 영화 시장에서는 60억 루피(약 960억원) 규모 기대작인 ‘톡식: 어른을 위한 동화’의 개봉 시점이 3월에서 6월로 연기됐다. 인도 영화계의 핵심 공략 대상인 걸프 국가들이 군사적 분쟁에 휘말리자, 흥행 실패를 우려해 전략을 변경한 것이다. 영화업계는 이번 전쟁으로 인해 걸프 지역 박스오피스 수익이 20~25% 위축될 수 있다고 전망한다. UAE·걸프협력회의(GCC) 시장의 합산 손실은 1,500만 달러(약 225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의 경우 트럼프 행정부의 소비 부양책인 세금 환급 확대 정책의 효과가 상쇄될 위기에 처했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의 애나 웡 수석 미국 이코노미스트는 유가가 올해 전반에 걸쳐 배럴당 83달러(약 12만4,330원) 이상으로 유지될 시 세금 환급으로 얻는 평균 가계 이익이 대부분 증발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올해 미국의 세금 환급 총액은 전년 대비 200억 달러(약 30조원)가량 확대됐는데, 휘발유 가격이 3~4개월만 높은 수준에 머물러도 이 여유분이 빠르게 소진될 것이라는 진단이다. 씨티그룹 기셀라 영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연료비가 20% 상승했을 때 미국인들이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주유비는 1개월 기준 60억 달러(약 9조원)에 달한다.
금융 시장에도 막대한 혼란이 닥쳤다. 유가 상승으로 전 세계적 인플레이션 압력이 가중되며 주요국들의 국채금리가 치솟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20일 영국 국채(길트채) 2년물 금리는 전장 대비 0.3%P 높은 4.6%대까지 뛰었다. 이는 19일 영국 중앙은행(BoE)이 금리를 동결하고 기존의 금리 인하 지침을 철회한 결과다. 미국 10년물 국채금리 역시 20일 장중 4.3~4.4%대로 급등했고, 통화 정책에 민감한 2년물 국채금리도 전쟁 발발 후 약 3주 만에 0.5%P 오르며 3.9%대에 도달했다. 23~24일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 및 휴전 가능성을 시사하며 상승세가 주춤하기도 했으나, 양국 간 충돌이 재점화하면 재차 변동성이 확대될 위험이 있다.

전 세계적 스태그플레이션 우려 가중
급격히 가중된 인플레이션 압박 속 주요국들의 경제가 가라앉기 시작했다는 점도 문제다. 전 세계적으로 스태그플레이션 위기가 본격화한 것이다. 블룸버그통신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글로벌 신용평가사 S&P 글로벌이 집계한 주요국 3월 구매자관리지수(PMI)는 대체로 하락세를 보였다. S&P 글로벌의 PMI는 각국 기업 구매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설문조사다. 이달 조사 결과는 중동 분쟁이 전 세계 경제에 미친 영향을 포괄적으로 보여주는 지표인 셈이다. 우선 유로존의 경우, 제조업과 서비스업 수치를 합산한 플래시 복합 PMI가 50.5에 그쳤다. 이는 지난 10개월 중 최저치이자 시장 예상치를 밑도는 수준이다. 유로존 제조업의 투입 가격과 산출 가격 지표는 모두 큰 폭으로 상승했다.
미국의 3월 플래시 PMI도 서비스업 부문의 부진으로 인해 지난해 4월 이후 최저 수준인 51.4까지 미끄러졌다. 영국은 기업 활동 성장세가 6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고, 제조업 투입 비용은 1992년 이후 가장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일본의 3월 플래시 복합 PMI는 52.5로 상승률이 지난 3개월 이래 가장 낮았다. 이 같은 흐름은 G7 외 국가에서도 두드러졌다. 일례로 과반 이상의 에너지를 수입에 의존하는 인도의 경우, 지난달 민간 부문 성장 폭이 3년 만에 최소치를 새로 썼다.
중국은 이 같은 국제사회의 흐름에서 살짝 벗어나 있다. 85%에 달하는 에너지 자급률 및 전략 비축유 물량을 앞세워 중동발 에너지 충격을 비교적 원활하게 상쇄하는 양상이다. 그러나 호르무즈 해협 폐쇄 상황이 장기간 지속될 시, 중국의 자체 에너지 안전망도 결국 한계에 직면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의 군사 전문지 워온더락은 90일의 시한이 경과하는 시점부터 중국의 에너지 안보가 중대한 기로에 설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에 더해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인한 수요 위축 흐름이 중국 제조업을 궁지에 몰아넣을 것이라는 분석도 존재한다. 프랑스 투자은행(IB) 나티시스의 알리시아 가르시아-에레로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오일 쇼크가 세계 경제를 심각한 침체로 몰아넣으면 중국의 수출 주문은 붕괴될 것”이라며 “표면적인 강함 밑에 숨겨진 구조적 취약성이 드러나며 일자리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