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컬쳐]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다, 기후위기가 빼앗은 이동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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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속 이동하지 못하는 사람들 증가 폭염·빈곤·건강 악화 겹치며 지역 공동화 심화 이동권 보장과 현지 적응 강화가 정책 과제
본 연구 기사는 유럽 경제 연구소 The Economy의 연구위원(Fellow)들이 작성한 The Economy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The Economy 또는 집필자의 소속 기관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한 국가의 평년기온보다 평균기온이 1℃ 상승하면 향후 1년간 국제 이주가 약 5.7%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온이 높은 개발도상국에서는 감소 폭이 최대 16%까지 확대됐다. 기후위기가 대규모 국제 이주를 촉발할 것이라는 기존 통념과는 다른 결과다. 폭염은 생계를 위축시키고 해외로 이동할 여력도 함께 약화시킨다. 소득과 건강이 동시에 악화하는 반면, 교통비와 비자 발급비, 초기 정착비 등 이주 비용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한다. 그 결과 가장 취약한 계층일수록 국경을 넘을 기회부터 잃게 된다.
건강과 빈곤이 막아선 이주의 길
이주는 누구나 활용할 수 있는 대응 수단이 될 수 없다. 해외에서 일하려면 장거리 이동과 낯선 환경, 고된 노동을 견딜 수 있는 건강과 체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러나 기후위기로 건강이 악화하면 노동시장에 참여할 능력도 함께 떨어지게 된다. 이에 따라 노동력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이주 제도에서는 이주 기회 자체를 얻기 어려워진다.
경제적 부담도 또 다른 장벽이다. 생계 기반이 흔들려도 막대한 이주 비용과 불확실성을 감당하기 어려워 기존 생계를 유지하는 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실제 116개국을 분석한 연구에서는 기온 상승이 중간소득국의 도시·국제 이주는 늘린 반면 저소득국에서는 국내외 이동을 모두 줄이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러한 결과는 국제 이주 통계에 드러나지 않는 취약계층의 현실을 방증한다. 통계에 집계되는 이주민은 건강과 경제적 여건을 갖춰 실제 국경을 넘은 사람들이다. 반면 이동 비용을 마련하지 못하거나 건강 문제로 출국하지 못한 사람들은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따라서 낮은 이주율은 사회적 안정보다 기후 충격으로 주민들의 이동 여력이 약해졌음을 보여주는 신호일 수 있다.

폭염이 키우는 빈곤의 악순환
최근 연구는 국제 이주 감소의 배경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2019년부터 2022년까지 127개 개발도상국과 180개 목적지 간 이주를 분석한 결과, 기온 상승은 출발국의 1인당 소득을 약 2% 낮췄고, 이는 이주 자금 부족으로 이어졌다. 특히 초기 정착비와 이동 비용 부담이 큰 고소득국 이주에서 감소 효과가 더욱 두드러졌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충격이 한 차례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폭염으로 농업 생산성과 소득이 떨어지면 저축이 줄어 이주 비용을 마련할 여력도 빠르게 줄어든다. 해외 이주가 감소하면 남아 있는 가족에게 전달되는 해외 송금도 줄어 식비와 의료비, 교육비를 감당할 여력까지 약화된다. 기후 재해와 소득 감소, 해외 송금 축소가 겹치면 가계의 회복 능력은 빠르게 떨어진다. 여기에 건강과 경제력을 갖춘 인력은 지역을 떠나고 취약계층만 남으면서 지역의 인구구조와 재정 기반까지 약화시킨다. 이와 같이 개인의 이동 제약은 지역사회 전체의 성장 잠재력과 재정 여건을 흔드는 구조적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국경을 넘어도 끝나지 않는 건강 부담
국경을 넘었다고 건강 부담까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이주 초기에는 비교적 건강한 사람이 이동하는 '건강한 이주민 효과'가 나타나지만 10~20년이 지나면 이런 차이는 점차 줄어든다. 노년기에는 만성질환과 장애 유병률이 현지 출생자보다 높아지는 사례도 적지 않다. 언어 장벽과 불안정한 체류 자격, 의료비 부담, 복지제도 접근의 어려움이 장기간 누적된 결과다.
이처럼 기후위기가 만든 이동 불능 문제를 줄이려면 지역에 남아 안정적으로 살아갈 여건과 필요한 경우 안전하게 이동할 기회를 함께 보장해야 한다. 현지 적응 정책과 이주 정책을 별개로 접근하기보다 하나의 대응 체계로 연결하는 정책 전환도 요구된다. 우선 기후 취약지역에서는 일차 의료 접근성을 높이고 폭염에 대응할 수 있는 노동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취약계층의 소득 안전망도 강화해 기후 충격이 생계 악화와 이동 능력 상실로 이어지는 상황을 막을 필요가 있다.
또한 이주 과정에서는 건강검진을 배제 수단으로 활용하기보다 필요한 의료와 지원을 연계하는 방향으로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주 실태를 파악하는 조사 방식도 재검토할 시점이다. 기후 조기경보체계에 이주 의향과 예상 비용, 건강 제약 요인 등을 함께 조사해 실제 이동하지 못한 계층의 규모까지 파악해야 정책의 사각지대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기후위기가 만드는 새로운 불평등은 이동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점이다. 이동하지 못한 사람들은 국제 이주 통계에 드러나지 않지만 기후 충격과 빈곤, 건강 악화가 겹치는 가장 큰 피해를 떠안는다. 따라서 앞으로의 기후 정책은 탄소 감축과 재난 복구를 넘어 현지에서 살아갈 여건과 안전하게 이동할 기회를 함께 보장하는 방향으로 확대돼야 한다. 그래야 기후위기가 키우는 이동 불평등과 빈곤의 악순환도 끊어낼 수 있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Climate Immobility: When Heat Takes Away the Right to Leave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The Economy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