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컬쳐] 초고속 인터넷 시대, 영유아 발달의 새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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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속 인터넷 노출, 영유아 발달 위험 요인 부상 부모의 기기 사용 증가, 대화·독서·놀이 시간 축소 디지털 정책, 양육 환경까지 고려한 접근 필요
본 연구 기사는 유럽 경제 연구소 The Economy의 연구위원(Fellow)들이 작성한 The Economy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The Economy 또는 집필자의 소속 기관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초고속 인터넷 보급이 영유아 발달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영유아기에 초고속 인터넷 노출이 10%포인트 늘어날 때마다 의사소통과 문제 해결, 개인·사회성, 사회·정서 발달 점수는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디지털 기기 자체보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점이다. 지난 20여 년간 디지털 정책이 인터넷 인프라 확충과 보급 확대에 집중했다면, 앞으로는 초고속 인터넷이 가족의 일상과 양육 방식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도 함께 살펴야 한다.
광케이블 보급이 바꾼 영유아 발달 환경
이 같은 변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우루과이다. 우루과이 국영 통신사 안텔(ANTEL)은 2010년부터 광케이블망(FTTH) 구축에 나섰고 2018년 가구 보급률은 83%에 달했다. 특징은 광케이블 보급 순서가 가구별 수요가 아니라 통신망 구축 계획에 따라 결정됐다는 점이다. 덕분에 인터넷 보급이 아동 발달에 미치는 영향을 다른 요인과 비교적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새로운 기술은 소득이나 교육 수준이 높은 가정이 먼저 도입하는 경우가 많아 기술 효과와 가정환경의 영향을 구분하기 쉽지 않다.
반면 우루과이는 인프라 구축 일정에 맞춰 보급 시기가 결정돼 이런 편향을 상당 부분 줄였다. 연구진이 0~5세 아동을 분석한 결과 영유아기에 광케이블 환경에 오래 노출될수록 의사소통과 문제 해결, 사회·정서 발달 점수는 일관되게 낮았다. 반면 운동 발달에서는 유의미한 차이가 확인되지 않았다. 이는 언어와 사회성처럼 부모와 함께 대화하고 놀이하는 과정에서 발달하는 능력이 디지털 환경 변화의 영향을 더 크게 받을 수 있음을 뒷받침한다.

부모의 기기 사용이 아이 발달에 미치는 영향
초고속 인터넷 보급이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가정에서 부모와 아이가 시간을 보내는 방식이었다. 조사 결과 광케이블 접근성이 높은 가정에서는 어린이용 도서를 접하는 환경이 줄어든 반면 성인의 인터넷 이용 시간은 늘어나는 경향을 보였다. 아동의 디지털 기기 이용은 큰 차이가 없었지만, 부모가 기기를 사용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아이와 대화하거나 함께 노는 시간은 감소했다. 특히 부모가 아이 곁에서 스마트폰을 확인하거나 TV를 켜둔 채 시간을 보내면 부모와 아이의 대화는 질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 아이는 부모와 말을 주고받고 놀이를 함께하는 과정에서 언어와 사회성을 익힌다. 하지만 부모의 관심이 디지털 기기로 분산되면 이런 시간이 반복해서 줄어들고 발달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규제보다 중요한 부모와 아이의 시간
이 같은 결과는 디지털 정책의 방향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최근 호주와 영국 등 주요국은 청소년의 소셜미디어(SNS) 이용을 제한하는 정책을 연이어 발표했다. 그러나 이런 규제만으로는 영유아기의 디지털 환경이 발달에 미치는 영향까지 해결하기 어렵다. 특정 플랫폼만 막을 경우 이용이 다른 플랫폼이나 우회 수단으로 옮겨갈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앞으로의 디지털 정책은 연령 제한에 머물지 않고 서비스 설계 방식까지 함께 손봐야 한다. 무한 스크롤과 자동 재생, 야간 알림처럼 이용 시간을 늘리도록 설계된 기능은 부모와 아이 모두의 집중력을 떨어뜨릴 수 있는 만큼 개선이 요구된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디지털 기기 밖에서 부모와 충분히 대화하고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일이다. 이를 위해 도서관과 공원, 지역 놀이 프로그램, 문화예술 활동 등 부모와 아이가 함께할 수 있는 공간과 프로그램 확대가 시급하다. 디지털 규제도 이런 기반이 갖춰질 때 더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정책 패러다임의 전환
영유아 발달 정책은 디지털 기기 이용 시간을 일률적으로 제한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육아와 보육 현장에서는 식사 시간 휴대전화 사용 줄이기, 아동 도서 접근성 높이기, 혼자 보는 콘텐츠보다 부모와 함께 보는 콘텐츠 권장하기 등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지침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발달 선별검사도 디지털 기기 이용 시간뿐 아니라 배경 TV 노출 여부와 보호자의 기기 사용 습관 등 가정환경까지 함께 점검해야 한다.
동시에 돌봄의 부담을 부모 개인, 특히 여성에게만 맡기는 방식도 바람직하지 않다. 불규칙한 노동 환경과 부족한 돌봄 서비스 속에서 스마트폰은 부모에게 일상을 유지하고 육아를 병행하는 데 필요한 도구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부모에게 책임만 강조하기보다 유급 육아휴직 확대와 예측 가능한 근무 여건 마련, 안전한 공공 놀이공간 확충 등을 통해 부모가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늘리는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
초고속 인터넷은 생활의 편의를 크게 높였지만 그 효과가 곧바로 아이의 건강한 성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제 디지털 정책의 성과도 보급률이나 이용 속도만으로 평가해서는 부족하다. 인터넷이 가족의 일상과 양육 방식, 아동 발달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 기술의 성과를 사람의 삶의 질로 평가하는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The Broadband Problem Is an Attention Problem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The Economy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