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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억 달러 썼는데" 호주 '중고 핵잠' 굴욕에 흔들리는 오커스, 美 동맹 신뢰 위기 속 韓·日 역할 급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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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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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오커스에 대규모 자금 투입하고 美 중고 핵잠만 겨우 확보
호주 내부서 반발 여론 들끓어, 美 인도·태평양 안보 전략도 '비상'
자체 핵잠 건조 능력 보유한 韓·日, 역내 안보 중심축으로 떠오를까  

오커스(AUKUS, 미국·영국·호주의 안보 동맹)의 핵심 축인 호주가 미국산 신형 핵 추진 잠수함 도입을 포기했다. 미국의 잠수함 건조 역량이 사실상 마비되며 호주의 핵잠 확보를 필두로 한 오커스 체제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호주 내부에서는 오커스 잠수함 조약 자체에 대한 의구심이 확산하는 추세이며, 미국 역시 인도·태평양 지역의 군사적 요충지를 잃을 위기에 직면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변화로 인해 미국 중심이었던 서태평양 안보 축이 일본·한국 등 자체 핵잠 건조 능력을 갖춘 역내 국가로 이동할 것이라는 분석마저 제기된다.

美 공급망 차질에 위기 빠진 오커스

지난달 31일(이하 현지 시각) 영국 일간 가디언의 보도에 따르면, 리처드 말스 호주 국방부 장관은 오커스의 잠수함 조달 계획을 기존 '신조함 및 중고함 혼합 도입'에서 '100% 중고 잠수함 매입' 방식으로 전격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호주는 당초 미국으로부터 버지니아급 핵추진 공격 잠수함(SSN) 3척을 도입하면서 미군이 운용 중인 현역 함정 2척과 신규 건조 함정 1척을 인수할 예정이었는데, 동일한 사양의 중고 SSN 3척을 2032년부터 4년마다 한 척씩 인도받는 방식으로 계약을 변경한 것이다.

말스 장관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중고 잠수함을 받아들이는 것이 비용을 대폭 절감하고 해군 인프라를 단순화하는 길"이라며 계약 변경 배경을 설명했다. 다만 가디언은 이 같은 조치의 본질이 미국 내 조선소의 극심한 적체 현상으로 인해 신형 주력함을 제때 공급받을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고육지책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미국의 잠수함 건조 인프라는 숙련공 부족 및 부품 공급망 붕괴로 인해 사실상 마비된 상태이며, 자국 해군용 알레이버크급 구축함·버지니아급 핵잠 등의 납기조차 수년씩 지연되고 있다. 대릴 커들 미 해군참모총장은 지난해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미국이 호주에 약속한 SSN을 넘겨주려면 조선 능력이 100% 개선되어야 한다"고 직접적으로 발언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호주 내부에서는 오커스 체제 자체에 대한 의구심이 싹트는 추세다. 호주의 핵잠 확보는 중국 해군력 확대에 대응하기 위해 출범한 오커스의 핵심 목표였다. 호주 정부는 핵잠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을 억제하기 위한 필수 전력이라고 강조해 왔으며, 이를 위해 30여 년간 최대 3,680억 호주달러(약 401조3,000억원)를 투입하는 역대 최대 규모의 국방 사업까지 추진했다. 이와 관련해 한 안보 전문가는 "호주는 막대한 비용을 부담하고 고작 중고 잠수함 수 척을 넘겨받게 된 것"이라며 "전 세계적으로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는 시기인 만큼, 사업 전반에 대한 재검토 요구가 빗발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각국 내부 여론 '악화일로'

이 같은 부정적 여론을 입증하는 사례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2일 BBC는 호주 노동당 정부에서 환경부 장관을 지낸 피터 가렛이 비영리 기구인 호주평화안보포럼(APSF)과 손잡고 오커스 잠수함 조약의 타당성을 검증하는 독립 조사위원회를 구성했으며, 오는 10월 최종 보고서 채택을 목표로 한 대국민 공개 청문회 개최를 선언했다고 보도했다. 가렛 전 장관은 외신 인터뷰를 통해 "오커스는 호주 역사상 가장 비싼 국방 계약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 질문하고 토론하고 결정할 권리가 의회와 국민의 손에서 완전히 박탈당했다"며 조사위 출범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조사위는 향후 5개월간 공청회를 통해 △중고 핵잠 인도 계약의 실현 가능성 △미영 해군 핵잠의 호주 주둔에 따른 안보 주권 침해 여부 △영해 내 핵폐기물 영구 저장소 건설의 불법성 △최대 무역국인 중국과의 전면적 정무·경제적 파열음 차단 대책 등 4대 핵심 의혹을 적극적으로 검증하겠다는 방침이다.

일각에서는 향후 미국에서도 유사한 움직임이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호주가 미국이 전개하는 인도·태평양 안보 전략의 핵심 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서호주의 HMAS(His(Her) Majesty's Australian Ship) 스털링 기지는 향후 미국·영국 핵잠의 순환 배치 거점으로 활용될 예정이며, 호주 중부 사막 지대에 위치한 파인 갭(Pine Gap)은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국가안보국(NSA)이 공동 운용하는 대표적인 해외 정보 수집 시설로 알려져 있다. 미국이 중국의 군사력 확대 행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호주와의 긴밀한 군사 협력이 전제돼야 한다는 의미다.

이런 가운데 오커스 체제가 힘을 잃을 경우, 단순히 잠수함 사업 하나가 무산되는 것을 넘어 미국의 인도·태평양 안보 구상 전반에 균열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 이에 더해 미국이 수백억 달러의 비용을 부담한 핵심 동맹국에 약속한 전략 자산을 제때 제공하지 못했다는 인식이 확산할 시 미국의 방산 공급 능력 및 안보 공약의 신뢰성에 대한 여타 동맹국의 의문도 커지게 된다. 미국에서 오커스 유지에 대한 내부적 압박이 가중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아시아·태평양 안보 지형 변화 전망

오커스의 균열을 계기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안보 지형이 급변할 것이라는 분석도 존재한다. 한국, 일본 등 역내 동맹국들이 미국 의존도를 낮추고 자체 핵잠 확보를 비롯한 자주국방 역량 강화에 무게를 둘 가능성이 있다는 진단이다. 실제 한국의 경우 앞서 ‘장보고 N사업’으로 불리는 한국형 핵추진 잠수함 개발 계획을 공식화하고, 2030년대 중반 1번함 진수와 2030년대 후반 이후 전력화를 목표로 제시한 바 있다. 한화오션은 올해 안에 핵잠 기본 설계를 마무리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지며, 내년 예산에 관련 사업비가 반영되면 상세 설계가 본격화하게 된다. 해당 계획과 관련해 지난달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은 "(한국의 핵잠 확보는) ‘잠재적 적국’을 견제할 동맹국의 중요한 역량"이라며 지지 의사를 밝혔다.

지난해 일본 방위성 자문 기구도 차세대 잠수함 체계에 대한 연구를 권고하며 핵잠 사업 추진 가능성을 시사했다. 일본은 미쓰비시중공업과 가와사키중공업을 중심으로 높은 수준의 재래식 잠수함 설계·건조 역량을 보유 중이며, 원자력 발전소 운영 경험과 원자로 설계 기술, 정밀 제조 기반까지 갖추고 있다. 정치적 결단이 이뤄지고 제도적 장벽이 해소되면 핵잠 개발에 순식간에 속도가 붙을 수 있는 환경인 셈이다. 일부 분석 기관 사이에서는 일본이 핵잠 개발에 착수할 시 비교적 단기간 내에 세계 최상위권 수준의 플랫폼을 확보할 것이라는 평가마저 나온다.

대만과 필리핀 역시 오커스 체제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할 만한 국가로 꼽힌다. 대만은 장기간 중국의 군사적 압박에 노출돼 있으며, 필리핀 역시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군도(난사 군도) 및 세컨드 토머스 암초를 둘러싸고 중국 해경 및 해상민병대와 반복적으로 충돌 중이다. 이들 국가 입장에서 오커스의 균열은 미국 위주로 움직이던 서태평양 안보 질서의 근간이 흔들리는 사건으로 해석될 수 있다. 향후 미국 중심의 집단 억지력에 대한 의구심이 커질 경우, 자체 핵잠 건조 능력을 갖춘 한국과 일본의 군사적 역할이 대폭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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