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 LNG 거점 ‘이란 폭격 복구’ 중 또 폭발, 공급자 우위 속 에너지 가격 안정 후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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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 정부 "가동 시작하던 중 폭발, 기술적 사고" 라스라판 단지, 전쟁 발발 직후인 3월 초 가동 중단 LNG 공급망 경고음, 세계 에너지 불확실성 극대화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 완화를 기대했던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 다시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이란 전쟁으로 생산이 중단됐던 카타르 산업단지에서 재가동 과정 중 대형 폭발 사고가 발생하면서 글로벌 액화천연가스(LNG) 공급 회복 전망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2027년 이후 공급 과잉 전환을 예상해 왔지만, 카타르발 공급 공백이 장기화될 경우 LNG 가격 하락 시점 역시 뒤로 밀릴 것으로 관측된다.
바르잔 시설서 ‘기술적 결함’ 폭발
22일(이하 현지시간)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카타르 최대 에너지 허브인 라스라판 산업단지(Ras Laffan Industrial City)에서 대형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는 바르잔(Barzan) 가스 공급시설에서 발생했으며, 최소 13명이 사망하고 66명이 부상한 것으로 집계됐다. 카타르 당국은 사망자 가운데 인도와 파키스탄 국적 근로자가 포함됐다고 밝혔다. 인도 정부와 현지 외교 당국은 최소 12명의 인도인이 목숨을 잃었다고 확인했다. 부상자 역시 카타르를 비롯해 아시아·아프리카 각국 출신 근로자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카타르 정부는 이번 사고를 산업재해로 규정했다. 사드 셰리다 알카비 에너지부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사보타주(파괴공작)나 적대 행위와는 무관한 사고"라고 밝혔다. 당국은 현재 기술적 결함 여부를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확인된 정황상 외부 공격이나 고의적 파괴 행위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폭발은 카타르 국영 기업 카타르에너지(QatarEnergy)가 시설 재가동(start-up of operations) 작업을 진행하던 과정에서 발생했다. 사고가 난 바르잔 가스 플랜트는 카타르 내수용 천연가스 공급을 담당하는 핵심 설비로, 발전소와 담수화 시설에 공급되는 가스를 처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카타르에너지는 폭발과 화재 발생 사실을 확인한 직후 비상 대응 체계를 가동했고, 이어 소방 인력과 장비를 투입해 진화 작업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폭발 직후 카타르 정부는 화재가 통제 범위 안에 있으며 공공 안전이나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가스 누출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한 현재로서는 국가 가스 수출 능력과 국내 공급 체계에도 직접적인 차질은 발생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다만 현장 피해 규모와 설비 복구 기간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로, 당국은 추가 정밀 조사를 진행 중이다.
세계 에너지 시장 혼란 우려
이번 사고는 미국, 호주, 러시아와 함께 세계 주요 LNG 생산국 중 하나인 카타르에서 발생한 만큼 세계 에너지 시장에 혼란을 초래할 전망이다. 당초 카타르 정부는 이란 전쟁 종식에 따라 호르무즈 해협이 안전하게 개방되는 시점을 기준으로, 향후 2개월 이내에 라스라판 생산 시설의 80%를 가동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이번 폭발 사고로 계획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라스라판 산업단지는 면적 295㎢ 규모로, 인근 해상 가스전에서 생산된 LNG를 액화해 세계로 수출하는 세계 최대 LNG 허브다. 글로벌 LNG 공급량의 약 20%를 담당하며 이 중 90%가 아시아 시장으로 향한다. 사고가 발생한 바르잔 공장은 하루에 약 14억 표준입방피트(SCF)에 달하는 판매용 가스를 생산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 중형차 100만 대 이상을 동시에 한 달 내내 굴릴 수 있는 정도다.
앞서 라스라판 산업단지는 중동 전쟁 국면에서 이란의 드론 공격으로 상당한 피해를 입어 지난 3월부터 LNG 생산을 중단했다. 당시 카타르 당국은 해당 공격으로 자국 전체 LNG 수출 능력의 약 17%가 감소했다며 ‘불가항력(force majeure)’을 선언하고 시설 복구에 3~5년 걸린다고 밝혔다. 불가항력은 전쟁이나 자연재해 등 통제 불가능한 사유가 발생할 경우 계약상 의무 불이행 책임을 면제받는 조항이다. 카타르에너지에 따르면 전체 LNG 생산 라인 14개 중 2개와 가스액화연료(GTL) 시설 1곳이 피해를 입었다. 이로 인해 연간 약 1,280만t 규모의 생산 차질이 예상됐다.
카타르가 생산 정상화에 나선 시점에 발생한 이번 폭발은 글로벌 공급 회복 전망에도 변수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이미 불가항력 선언으로 글로벌 LNG 시장에서 대규모 물량이 이탈한 가운데, 재가동 과정에서 추가 사고까지 발생하면서 생산 정상화 일정 전반에 대한 불확실성이 확대됐기 때문이다. 라스라판의 복구 지연은 아시아 시장의 조달 부담을 높이는 동시에 LNG 가격 하락 속도를 늦추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 월가와 유럽 에너지 거래 시장에서는 벌써부터 불안감이 감지된다. 주요 국제 가스 지표인 네덜란드 천연가스 가격은 이번 사고 소식이 전해진 이후 22일 오전부터 즉각적인 상승세를 보이며 시장 참여자들의 우려를 반영했다.

LNG 시장 낙관론 흔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글로벌 LNG 시장은 공급 과잉 전환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었다. 미국·캐나다·아프리카 신규 액화 프로젝트가 순차적으로 가동되면서 2026년 LNG 공급 증가율이 2019년 이후 가장 빠른 속도로 확대될 것이란 전망이 제기됐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특히 올해 글로벌 LNG 생산량이 전년 대비 7%(400억 달러·약 62조원)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으며, 이러한 공급 확대가 글로벌 가스 수요를 역대 최고치로 끌어올리는 촉매제가 될 것으로 분석했다. 옥스퍼드에너지연구소도 2026~2027년 신규 공급 능력이 기초 수요 증가분을 웃돌며 가격 하방 압력을 키울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지난 2월 말 발발한 이란 전쟁과 이번 라스라판 폭발 사고는 이 전제를 크게 뒤흔들어 놨다. IEA는 올해 3월 글로벌 LNG 생산량이 전년 동기 대비 8% 감소했다고 집계했다. 카타르와 아랍에미리트(UAE)의 수출 감소분은 북미·아프리카 신규 프로젝트의 증산분으로도 충분히 상쇄되지 못했다. 4월 들어서는 LNG 인도량 감소 폭이 더 커지면서 공급 충격은 생산시설에서 운송·조달 단계로 확산됐다.
가격 안정 전망도 후퇴했다. 당초 시장은 2027년 이후 신규 물량 유입에 따른 공급자 우위 약화를 예상했지만, 카타르발 공급 공백이 장기화되면서 매수자들의 조달 부담도 다시 커졌다. 유럽은 러시아산 가스 의존 축소 과정에서 LNG 수입 비중을 높이고 있고, 아시아는 중국·인도 등 가격 민감도가 높은 수요국을 중심으로 장기 계약 확보 경쟁을 이어가고 있다. 공급 회복이 늦어질수록 현물 시장의 가격 협상력은 생산국과 트레이더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
이 같은 LNG 가격의 하방 지연은 물가 경로에도 직접 연결된다. 천연가스는 발전 연료와 산업용 에너지, 도시가스 요금에 동시에 반영된다. 에너지 비용이 높은 수준에서 유지되면 전기요금과 제조 원가, 물류비 전반의 둔화 속도도 늦어질 수밖에 없다. 전쟁 종결 기대가 원유 시장의 불안을 일부 낮추더라도, LNG 시장에서는 설비 복구와 선적 정상화가 확인되기 전까지 가격 안정 효과가 제한될 가능성이 크다. 뿐만 아니라 신규 액화 프로젝트의 증산 효과가 본격화되기 전까지 카타르발 공백이 이어질 경우 2027년 이후 가격 하락을 기대했던 수입국의 에너지 비용 전망도 수정이 불가피하다. 공급 회복 지연, 현물 조달 부담, 물가 압력 잔존이 맞물리면서 LNG 시장의 긴장 국면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