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합인가, 단순 슈퍼사이클인가" 美서 소송 휘말린 메모리 3사, 과거 판례 우위에도 이례적 가격 급등 논쟁은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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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소비자, 메모리 3사에 가격 담합 혐의 집단소송 제기 "담합이 아닌 시장 논리" 유사 판례에서는 메모리 3사 승소 AI 열풍 속 이례적인 메모리 가격 상승 폭, 갑론을박 지속 전망

미국 일부 소비자들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이하 메모리 3사)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 기업이 인공지능(AI)용 고대역폭메모리(HBM) 생산 확대를 명분으로 범용 D램 공급을 의도적으로 줄여 가격을 끌어올렸다는 이유에서다. 시장에서는 이번 슈퍼사이클의 가격 상승 폭이 전례 없는 수준인 것은 사실이나, 과거 유사 소송에서 메모리 3사가 승기를 쥔 전례가 있는 만큼 상황을 속단하기는 이르다고 본다.
메모리 3사 둘러싼 법정 공방
29일(이하 현지시각) 미국 기술 전문 매체 Wccf테크에 따르면, 지난 25일 미국 소비자 14명과 중소 PC 조립·유통업체 3곳은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 연방법원에 메모리 3사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원고들은 전 세계 D램 대부분을 생산하는 이들 기업이 2022년부터 재고 관리를 명목으로 내세워 생산량을 줄였지만, 실제로는 의도적으로 공급 부족을 유도해 지난 4년간 제품 가격을 약 700%나 끌어올렸다고 주장했다. 특히 HBM 생산 확대가 담합 수단으로 활용됐다는 지적이다.
원고 측은 “D램 과점 기업들이 HBM으로의 전환과 더블데이터레이트(DDR)3 및 DDR4의 단종을 조직적으로 조율했다”며 “메모리 반도체 가격 상승이 맥북·아이패드 등 IT 완제품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소비자들이 직접적인 금전적 피해를 입게 됐다”고 짚었다. 또한 일반적인 경쟁 시장에서는 한 기업이 생산을 줄이면 다른 기업이 생산을 늘리는 것이 일반적임에도 불구, 3사가 동시에 생산량을 줄이면서 사실상 생산 쿼터를 배분한 것과 같은 효과를 냈다고 적시했다.
원고들은 소장에서 삼성전자 등의 과거 가격 담합 사례를 지적하기도 했다. 앞서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SK하이닉스의 전신)는 지난 1999∼2002년 사이 미국 시장에서 D램 가격을 담합해 올린 혐의로 미 법무부로부터 각각 3억 달러(약 4,660억5,000만원)와 1억8,500만 달러(약 2,870억원)의 벌금을 부과받은 바 있다. 해당 판례와 관련해 원고 측은 “삼성은 범죄 행위를 저지른 임원을 징계하기는커녕 오히려 승진시켰다”며 “담합으로 얻는 이익이 법적 처벌 비용보다 크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 같은 사례가 반독점법 위반에 대한 기업의 조직적인 안이한 인식을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판례상 우위는 메모리 3사
시장은 해당 소송과 유사한 성격을 띠는 최근 판례가 메모리 3사 측의 손을 들어줬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앞서 지난 2018년 미국 로펌 하겐스 버먼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을 상대로 캘리포니아 북부연방지법에 소비자 집단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당시 원고 측은 2016년 중반부터 2018년 초까지 세 업체가 D램 공급 증가율을 의도적으로 낮추고, 공개 발언을 통해 서로 생산 조절 의사를 전달하며 가격 상승을 유도했다고 주장했다. 삼성전자가 선제적으로 2016년 3분기에 D램 생산량을 줄이고, 이후 다음 분기 마이크론과 SK하이닉스가 이에 합세하며 D램 가격이 급등했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1심 법원은 2019년 9월 피고 측의 소송 각하 신청을 상당 부분 받아들였다. 캘리포니아 북부연방지법의 제프리 화이트 판사는 원고들이 간접구매자로서 손해가 피고들의 행위와 연결된다는 점을 충분히 특정하지 못했고, D램 부품 가격 상승이 완제품 소비자 가격으로 어떻게 전가됐는지도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고 봤다. 이후 원고 측은 보완된 청구를 냈지만, 2020년 12월 1심 법원은 다시 소송을 기각했다. 이 결정에 대해 원고 측이 항소했고, 사건은 미국 제9연방항소법원으로 넘어갔다.
항소심의 결론은 피고 승소였다. 제9연방항소법원은 2022년 3월 7일 원고들이 셔먼법 제1조상 담합을 충분히 개연성 있게 주장하지 못했다며 1심의 각하 결정을 유지했다. 삼성전자가 먼저 공급 증가율을 낮춘 뒤 마이크론과 SK하이닉스가 뒤따라 유사 조치를 취한 것은 ‘동시 담합’보다 ‘시장 선도 기업 추종’에 가깝고, 공급 과잉으로 가격이 하락하던 상황에서 후발 업체들이 수익성 회복을 택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비합리적이지 않다는 판단이었다. 메모리 3사의 행보가 뚜렷한 시장 논리를 통해 설명된 셈이다.

AI發 격변 속 논쟁 여지 커져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메모리 슈퍼사이클이 해당 판례와는 조금 다른 성격을 띤다는 진단도 나온다. 최근의 메모리 가격 상승세가 단순한 업황 회복으로만 설명하기에는 지나치게 가파르다는 평가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범용 D램 계약가격은 전 분기 대비 93~98% 상승했고, 같은 기간 D램 업계 매출은 81% 늘었다. 삼성전자 역시 올해 1분기 메모리 평균판매가격(ASP)이 지난해 연평균 대비 약 146% 뛰었다고 밝혔으며, SK하이닉스도 D램 ASP가 전 분기 대비 60%대 중반 올랐다고 공시했다.
이러한 이례적 가격 급등의 직접적인 배경은 AI 인프라 경쟁이다. AI가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의 중심축으로 부상한 가운데, 클라우드 서비스 사업자(CSP) 및 빅테크 기업들은 메모리 물량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트렌드포스는 북미 CSP들이 AI 추론 인프라 구축을 앞당기며 고용량 RDIMM 조달을 확대하고 있고, 이에 따라 메모리 공급사들도 생산능력을 HBM과 서버용 제품에 우선 배정 중이라고 분석했다. 이는 수요가 증가한 제품군의 공급망은 물론, 범용 D램 수급에도 직접적인 압박을 가했다. 직접 수혜 제품인 HBM보다 범용 D램의 가격 상승세가 한층 뚜렷할 정도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S&P글로벌 산하 분석 기관 비저블알파는 올해 삼성전자의 비트당 D램 매출이 전년 대비 116% 오를 것이라 내다봤다.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의 D램 매출 성장 전망치는 각각 78%, 54%로 제시됐다. 반면 HBM 평균판매가격 상승률 전망치는 삼성전자 8%, SK하이닉스 1%, 마이크론 22% 수준에 그쳤다. 이 같은 상황과 관련해 한 시장 관계자는 "반도체 호황기가 닥칠 때마다 메모리 3사의 단합에 대한 의구심은 반복적으로 제기돼 왔으나, 이번 사이클은 범용 D램을 중심으로 가격 변동 폭이 평소보다 눈에 띄게 크다"며 "AI 수요와 공급사들의 제품 믹스 전환이 맞물리며 이례적 가격 상승 국면이 발생한 것으로 보이지만, 메모리 3사의 담합에 대한 의구심은 한동안 지워지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