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밥캣 vs 캐터필러’ 2차 전선 본격화, 중국 공세 속 특허 장벽 높인다
입력
수정
두산밥캣·캐터필러 특허전, 美 ITC 공식 조사 착수 핵심 제어 기술 둘러싼 공방, 美 건설기계 시장 기술 기준 재편되나 중국 공세 속 특허 장벽 강화, 글로벌 패권 경쟁 분수령

두산밥캣과 캐터필러의 특허 분쟁이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공식 조사 단계에 들어섰다. 양사는 핵심 제어 기술과 유압·연료 효율 기술을 놓고 미국 법원과 ITC에서 동시에 맞붙으며 북미 건설기계 시장의 특허 경계선을 둘러싼 전면전에 돌입했다. 중국 건설기계 업체들의 저가 공세와 전동화 장비 확산으로 시장 질서가 흔들리는 가운데, 이번 소송은 미국 시장에서 보호받을 기술의 범위와 후발 업체들의 진입 가능성을 가를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캐터필러, 굴삭기·로더 4개 특허 놓고 역습
29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법률 매체 블룸버그로(bloomberglaw)에 따르면 ITC는 캐터필러가 지난달 26일 제기한 특허침해 제소를 받아들여 조사에 착수했다. 캐터필러는 같은 날 델라웨어 연방지방법원에도 별도의 특허소송을 제기하며 행정조사와 민사소송을 병행하는 '투트랙 전략'을 선택했다. ITC는 일반 법원과 달리 손해배상이 아닌 미국 내 수입 자체를 제한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조사 결과 특허 침해가 인정될 경우 해당 장비의 미국 수입금지(Exclusion Order)와 판매 제한 명령까지 가능하다.
캐터필러가 문제 삼은 것은 기계 제어시스템, 유압 성능, 연료 효율, 부드러운 구동 기술과 관련된 4개의 자사 특허다. 먼저 기계 제어시스템 특허에는 중장비가 스스로 현재 작업 상황을 판단하고 기계를 유연하게 조절해 효율성을 높이는 방법이 담겨 있다. 중장비는 삽으로 흙을 깊게 퍼 올리거나 무거운 자재를 들어 올릴 때 순간적으로 엄청난 부하가 걸리는데, 이때 작업자가 급격하게 높은 출력을 요구하면 엔진에 무리가 간다. 캐터필러 특허는 엔진 상태와 토크를 실시간 감지해 유압과 변속기 출력 요구량을 자동 조절하는 방식으로, 장비가 현재 엔진이 감당 가능한 범위 안에서만 힘을 쓰도록 제어하는 구조다. 캐터필러는 두산밥캣 장비의 ‘ECO 모드’와 ‘Horsepower Management’ 기능이 이런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주장했다.
캐터필러의 유압 제어 특허는 엔진 출력과 유압펌프 부하를 동시에 계산해 펌프 토크를 실시간으로 조정하는 방식이다. 굴착 작업이나 중량물을 들어 올릴 때 필요한 만큼의 유압만 공급하고 불필요한 출력 손실을 줄여 엔진 과부하를 방지한다. 캐터필러는 두산밥캣 대형 굴착기에 적용된 'Smart Power Control' 기능과 펌프 토크 제어 방식이 자사의 특허 기술을 활용했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엔진 회전수와 유압 사용량을 최적화해 동일한 작업량을 더 적은 연료로 수행하도록 설계된 연료 효율 기술도 침해 대상으로 지목했다.
부드러운 구동 기술 역시 쟁점이다. 이 특허는 유압식 구동장치(Hydrostatic Drive)의 토크와 가속을 전자적으로 제어해 출발과 정지, 방향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충격과 진동을 최소화하는 기술로, 작업자가 자재를 운반하거나 험지를 주행할 때 장비의 흔들림을 줄여 작업 안정성과 운전자 피로도를 함께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 캐터필러는 두산밥캣 텔레핸들러의 'Smooth Drive Mode'가 자사 특허와 동일한 원리로 구동된다고 주장하며 ITC 조사 대상에 포함시켰다. 캐터필러는 이들 기술이 엔진 보호, 장비 내구성, 작업 효율을 동시에 끌어올리는 핵심 제어 기술인 만큼 특허 보호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두산밥캣의 선공, 美·유럽 4개 법원 동시 전선
이번 분쟁은 두산밥캣이 지난해 12월 미국 연방법원, ITC, 유럽 통합특허법원(UPC), 독일 연방법원 등에 총 14개 특허를 놓고 동시다발적으로 제소하며 시작된 지식재산권(IP) 분쟁의 일환이다. 두산밥캣이 침해를 주장한 특허에는 스틱스티어(원격 조이스틱 제어), E-펜스(지오펜싱 안전 소프트웨어), 유압 구동 자동 변속, 리프트암 안전 구역 설정, 엔진 속도 가변 제어 등이 포함된다.
두산밥캣이 법원에 제출한 소장에는 "캐터필러가 스키드스티어 로더 시장에 1999년에야 진입한 후발 주자로 스스로 혁신하는 대신, 밥캣의 기술을 가져다 불공정 경쟁에 나섰다"고 적시돼 있다. 밥캣이 1957년 세계 최초로 소형 로더를 개발한 뒤 약 40년이 지나 시장에 뛰어든 캐터필러가 경쟁사 장비를 분해·역설계해 기술을 복제했다는 주장이다.
이에 캐터필러는 올해 1월 ITC에 제출한 공개이익 진술서에서 두산밥캣의 수입금지 요청이 허용될 경우 미국 경제와 인프라 사업에 심각한 피해가 발생한다고 반박했다. 캐터필러는 2023년부터 2025년까지 3년 연속 글로벌 건설장비 파이낸싱 판매 1위를 기록한 업계 최대 기업으로, 공급망 차질이 전국 인프라 공사와 렌탈 사업 전반에 파급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 공세 속 기술 방어선 구축
이번 분쟁이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건설기계 시장의 경쟁 구도가 가격·판매망 중심에서 특허·소프트웨어·통상 장벽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건설기계 시장은 오랫동안 캐터필러를 정점으로 한 북미·유럽계 제조사들이 주도권을 쥐어 왔다. 강력한 딜러망, 장비 금융, 사후관리, 렌탈 네트워크가 시장 진입 장벽으로 작동한 탓에, 후발 업체가 이 구조를 흔들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중국 업체들이 공세를 펼치면서 시장의 균열이 시작됐다. 중국 건설기계 기업들은 내수 부진과 공급 과잉 부담을 해외 판매 확대로 흡수하며 북미·유럽·신흥국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싼이(SANY), 쉬궁(XCMG), 줌라이언(ZOOMLION) 등은 굴착기와 크레인, 전동화 장비, 특수장비를 앞세워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고, 배터리와 전장 부품을 자국 공급망에서 조달하는 구조까지 갖췄다. 여기에 과거 저가 장비로만 취급되던 중국산 제품이 전동화와 자동화 기능을 탑재하며 기술 격차를 좁히는 흐름도 뚜렷해지고 있다.
캐터필러와 두산밥캣의 특허 소송전은 바로 이 지점에서 의미가 커진다. 두산밥캣은 글로벌 건설기계 전체 순위에서 캐터필러와 같은 최상위권 기업으로 분류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북미 소형 장비와 콤팩트 장비 영역에서는 이미 독자적인 브랜드 자산과 기술 포트폴리오를 확보한 핵심 사업자다. 캐터필러가 두산밥캣의 제소를 가볍게 넘기지 않고 판을 키운 것 역시 이 분쟁이 단일 경쟁사를 견제하는 차원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실제 기술 경계가 법적으로 확정되면 중국 업체들이 향후 비슷한 기능을 탑재해 미국 시장에 진입할 때 피해야 할 기준선도 함께 만들어진다. 캐터필러와 두산밥캣 모두 이번 소송을 통해 자사 기술의 보호 범위를 넓히려는 유인을 갖고 있는 셈이다.
두산밥캣이 먼저 소송을 제기한 배경도 이와 무관치 않다. 밥캣은 소형 로더 시장을 개척한 브랜드라는 상징성을 갖고 있고, 두산은 2007년 밥캣 인수를 통해 미국 현지 제조·판매 기반을 확보했다. 현시점 두산밥캣은 이미 미국 장비 생태계 안에서 기술 권리를 주장하는 플레이어로 올라선 상태로, 캐터필러를 상대로 역설계와 특허 침해를 주장한 것은 기술 주도권을 둘러싼 방어적 대응인 동시에, 북미 시장에서 더 높은 체급의 사업자로 인정받기 위한 공세적 행보로 보인다. 반면 캐터필러는 글로벌 건설기계 시장의 압도적 1위 기업으로, 자사 기술이 장비 성능의 표준처럼 받아들여지는 시장 구조를 유지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두산밥캣의 제소가 받아들여지고 ITC 조사가 진행되면, 캐터필러의 기술 우위와 시장 신뢰도에 부담이 발생한다. 그런 만큼, 캐터필러가 맞소송과 ITC 제소를 병행한 것은 방어 차원을 넘어 향후 기술 표준의 경계를 다시 그으려는 조치로 해석된다.
일각에서는 이번 분쟁이 건설기계 시장의 패권 경쟁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두산밥캣이 캐터필러를 상대로 기술 권리를 인정받을 경우 북미 콤팩트 장비 시장에서 위상이 한층 높아질 수 있다. 반대로 캐터필러가 우위를 확보한다면 기존 시장 질서와 기술 표준을 다시 공고히 하게 된다. 어느 쪽이 승기를 잡든 이번 판결은 중국 업체들의 북미 진입 전략에도 강한 신호를 줄 가능성이 크다. 한 IP 전문 변호사는 "이번 분쟁은 두 기업만의 특허 다툼으로 보기 어렵다"며 "ITC 판단은 향후 미국 시장에서 어떤 기술이 보호받고 어떤 기술이 시장 진입 기준으로 자리 잡는지를 결정하는 선례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중국 업체들이 북미 시장 확대를 추진하는 시점과 맞물린 만큼 이번 판결은 글로벌 건설기계 산업의 기술 경쟁 질서를 다시 그리는 분기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