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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테크] 동남아 거친 중국 우회수출, 美 수출통제의 허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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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year 8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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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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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공되지 않은 정보는 거칠기 마련입니다. 파편화된 정보를 정리해 사회 현장을 부드럽고도 가감 없이 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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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中 기술 통제 경쟁 속 우회수출 진화 
동남아시아 반도체 생산 확대·우회 반출 리스크 부상 
실소유자 검증·사후 추적 체계 강화 필요

본 연구 기사는 유럽 경제 연구소 The Economy의 연구위원(Fellow)들이 작성한 The Economy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The Economy 또는 집필자의 소속 기관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지난해 한 달도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미국산 고성능 서버 최소 5억 달러(약 7,850억원)어치가 동남아시아를 거쳐 중국으로 우회 반출된 사실이 올해 3월 미국 검찰 수사를 통해 드러났다. 이번 사건은 허위 최종사용자 확인서와 페이퍼컴퍼니, 가짜 서버 등 단순한 수법만으로도 정부의 수출통제 체계를 우회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실제 원산지와 최종 사용처보다 서류상 법적 지위를 우선 확인하는 현행 수출통제 제도의 구조적 취약성도 확인됐다.

관세 회피를 넘어선 공급망 재편

중국의 우회수출이 본격화한 것은 2018년 미국이 중국산 제품에 대규모 관세를 부과한 이후다. 당시 수출기업들은 베트남과 말레이시아, 태국, 멕시코 등에서 최소한의 가공만 거쳐 원산지를 변경한 뒤 미국 시장으로 수출하는 방식을 활용했다. 하지만 동남아시아를 통한 수출 증가를 모두 단순한 우회수출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베트남 기업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미·중 무역갈등 이후 대미 수출 증가분 가운데 중국산 제품의 단순 재수출은 8.8%에 그쳤다. 약 40%는 베트남에서 새롭게 창출된 부가가치였고, 20.4%는 중국산 중간재를 활용한 현지 생산에서 발생했다. 이는 관세 회피와 함께 생산기지 이전도 동시에 진행됐음을 시사한다. 실제 관세 부과 이후 우회 진출한 기업의 절반 이상은 중국 및 홍콩계 자본이었다. 결국 통관 서류에 적힌 원산지만으로는 제품의 실제 생산 과정과 공급망을 온전히 파악하기 어려워진 셈이다.

주: 베트남의 대미 수출 증가는 현지 부가가치와 수입 중간재가 주도했으며, 확인된 우회수출은 8.8%에 그쳐 무역 증가만으로 우회 거래를 단정할 수 없다.

서류 심사의 허점 노린 우회 반출

이 같은 변화는 최근 전략기술 분야로 빠르게 확산하는 양상이다. 과거 우회수출이 관세 부담을 줄이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면, 최근에는 수출통제를 피해 중국으로의 공급이 제한된 첨단 기술과 장비를 확보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수출통제는 관세와 달리 특정 국가와 구매자, 최종 용도를 직접 제한하는 제도다. 그만큼 실제 구매자와 최종 사용처를 숨길 유인도 커진다. 페이퍼컴퍼니와 임대 창고, 명의상 현지 책임자만으로도 금지된 거래를 정상적인 역내 거래처럼 위장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로 인해 물류업체를 통한 재포장과 분할 배송을 거칠 경우 거래 서류만으로는 정상적인 상거래와 우회 거래를 구분하기도 쉽지 않다.

이 같은 허점은 최근 적발된 사례에서도 확인됐다. 지난해 8월 미국 당국은 미국 기업 한 곳이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물류업체를 거쳐 핵심 인공지능(AI) 반도체를 중국에 우회 공급한 혐의로 기소했다. 검찰은 최소 20건의 선적이 이 경로를 통해 이뤄졌다고 밝혔다. 올해 3월 공개된 사건은 규모와 수법이 한층 치밀했다. 동남아시아의 한 제조업체가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약 25억 달러(약 3조8,500억원) 규모의 고성능 서버를 구매한 뒤 상당수를 중국 고객에게 넘긴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실제 서버를 반출한 뒤 현장 점검에 대비해 수천 대의 가짜 서버를 배치한 정황도 드러났다.

아직 법원의 최종 판단이 내려진 사건은 아니다. 다만 이번 사례는 현행 수출통제 체계가 서류 심사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뒷받침한다. 현재 심사 방식은 제출 서류의 진위와 형식적 요건을 확인하는 데 그칠 뿐, 구매 기업이 해당 장비를 실제로 운용할 시설과 인력, 사업 기반을 갖췄는지는 충분히 검증하지 못한다.

반도체 생산기지이자 우회 거점인 동남아

우회수출 규제를 논의할 때는 동남아시아가 세계 반도체 공급망의 핵심 생산기지로 자리 잡았다는 점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싱가포르는 세계 최고 수준의 웨이퍼 생산시설을 기반으로 반도체 장비·소재 산업과 연구개발 역량을 함께 갖췄다. 말레이시아는 40년 이상 축적한 조립·검사·패키징 역량을 바탕으로 첨단 패키징 분야로 사업 영역을 확장 중이다. 베트남은 후공정 산업을 빠르게 육성하는 동시에 수천 명의 반도체 엔지니어를 양성하고 있으며, 태국과 필리핀도 전자·자동차 산업과 반도체 시험·검증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이들 국가에 반도체 산업은 양질의 일자리와 세수 확대, 고부가가치 제조업으로의 전환을 이끄는 성장 기반이다. 따라서 중국 자본이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투자 프로젝트를 의심할 경우 정상적인 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역내 국가와의 신뢰도 훼손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무역 흐름은 정상적인 투자와 생산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변화도 보여준다. 중국은 지난해 반도체 제조장비를 사상 최대 규모인 511억 달러(약 78조7,400억원)어치 수입했다. 미국에서 직접 들여온 물량은 크게 줄었지만 싱가포르발 수입은 약 57억 달러(약 8조7,800억원), 말레이시아발 수입은 약 34억 달러(약 5조2,300억원)로 늘었다. 물론 이러한 통계만으로 불법 우회 거래를 단정할 수는 없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에는 세계 주요 반도체 장비업체의 생산시설이 운영되고 있으며, 상당수 장비는 성숙공정용 설비이거나 역내에서 합법적으로 설치·운영·유지보수됐을 가능성도 있다. 결국 무역 통계는 위험 가능성을 시사할 뿐이다. 따라서 실제 우회 거래 여부는 개별 기업의 생산 역량과 설비 운영 현황 등을 종합적으로 검증한 뒤 판단해야 한다.

주: 중국은 지난해 미국보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를 통해 더 많은 반도체 제조장비를 수입했다. 이러한 변화는 검증 필요성을 보여주지만, 우회 반출의 증거로 단정할 수는 없다.

경유국보다 중요한 실사용 검증

수출통제의 기준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 현재 미국의 수출통제는 최종 사용자보다 경유국을 중심으로 위험을 판단하는 경향이 강하다. 앞으로는 구매 기업이 실제로 장비를 운용할 역량과 최종 사용처를 갖추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방향으로 심사 체계를 전환해야 한다. 엔지니어 확보 여부와 전력 공급 능력, 클린룸 시설, 유지보수 계약, 생산 실적 등이 핵심 점검 대상이다.

사무실과 사업자 등록만 갖춘 신생 기업이 수백 대의 첨단 서버를 주문하는 거래는 초기 심사 단계부터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또한 반도체 제조장비 역시 일련번호와 설치 기록, 유지보수 이력, 소프트웨어 접속 기록 등을 지속적으로 관리해 실제 사용 여부를 확인하는 사후 관리가 필수적이다. 수출기업들은 보증수리와 정기 점검 과정에서 장비 운영 정보를 이미 축적하고 있어 이를 수출통제에 활용할 기반도 마련돼 있다. 규제 당국은 이러한 데이터를 활용해 최종사용자 확인서 한 장으로 심사를 끝내는 방식에서 벗어나 거래 이후에도 장비 이동과 사용 현황을 지속적으로 확인하는 관리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규제가 강화되면 무역이 위축되고 아세안(ASEAN) 국가들이 중국과의 협력을 확대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실제로 광범위한 관세와 예측하기 어려운 규제는 미국의 무역 파트너로서의 매력을 떨어뜨렸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아세안 전체를 잠재적인 우회수출 경유지로 간주할 경우 이러한 흐름은 더욱 뚜렷해질 전망이다. 반대로 관리 체계를 느슨하게 운영하는 것도 부담이 크다. 우회수출이 계속될 경우 미국은 국가 단위의 수입 제한과 추가 관세, 수출허가 강화 등 더욱 강한 조치를 도입할 가능성이 높다. 이로 인해 일부 중개업자의 불법 행위가 정상적인 기업들까지 제재 대상으로 확대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조직범죄가 보여준 기업 검증의 한계

중국 반도체 산업 전체를 범죄조직과 연결할 만한 결정적인 증거는 없다. 또한 합법적인 투자와 국가 정책, 민간기업의 불법 밀수, 초국가적 조직범죄를 하나로 묶어 해석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다만 대형 범죄조직의 활동 방식은 현행 수출통제 제도의 구조적 취약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볼 수 있다.

대형 범죄조직은 수십 년 동안 여러 페이퍼컴퍼니를 동시에 운영하며 자금을 세탁하고, 합법적인 연구시설이나 사업장을 가장해 인력과 자금을 이동시켜 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동남아시아 기반 온라인 사기센터 산업이다. 국제형사경찰기구(INTERPOL)에 따르면 지난해 3월 기준 온라인 사기조직에 강제 동원된 피해자의 74%가 동남아시아 사기 거점에 집중됐다. 이들 조직은 호텔과 카지노, 데이터 서비스업체, 지역 보호세력 등을 활용하는 기업형 운영 구조를 갖췄으며 인신매매와 악성코드 유포, 자금세탁 등 다양한 범죄와 연결돼 있었다.

단속이 강화되자 이들은 사업장을 옮기고 법인명을 바꾸는 방식으로 추적을 피해 왔다. 지난해 12월 방콕에서는 60개국과 국제기구가 참여한 국제 공조가 이뤄졌지만, 올해 3월 유엔(UN)은 관련 불법 인프라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 사례는 기업 등록 정보와 통관 절차, 사무실 보유 여부만으로는 기업의 실제 목적이나 최종 수혜자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을 뒷받침한다. 명의상 이사로 실소유주를 숨기고, 물류업체를 통해 최종 목적지를 감추며, 임대 창고를 현장 점검용 공간으로 꾸미는 수법은 반도체 우회 조달 과정에서도 충분히 활용될 수 있다.

정밀한 수출통제 체계 구축

이 같은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실소유자 확인을 수출통제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이를 위해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은 고위험 판매자와 최종 구매자의 실소유자 정보를 세관과 금융정보분석기관(FIU)에 제출하도록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지배구조가 갑자기 바뀌거나 자본금이 부족한 기업, 동일 주소지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기업에는 강화된 심사를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역내 국가의 자체 통제 역량을 높이기 위한 지원도 병행돼야 한다. 미국과 일본, 네덜란드 등은 기술 검사 인력 양성과 데이터 시스템 구축을 지원할 수 있다. 내부 통제가 우수한 기업에는 통관 절차를 간소화하고, 고의로 우회수출에 가담한 기업과 중개업자에게는 엄격한 법적 책임을 묻는 처벌 규정이 필수적이다. 규제 범위도 반도체 산업 전반으로 확대하기보다 첨단 장비와 고성능 컴퓨팅 시스템 등 핵심 품목에 집중하는 접근이 요구된다.

이번 우회 반출 사례는 서류 중심의 수출통제 체계만으로는 거래의 실질을 충분히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줬다. 따라서 수출통제의 기준을 실소유자와 자금 흐름, 최종 사용처를 중심으로 재편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동남아시아를 공정한 무역 질서를 함께 유지하는 협력 파트너로 인식하고 공동 검증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러한 변화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허위 법인과 위장 창고, 조작된 거래 서류를 활용한 우회수출은 앞으로도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China Transshipment and the Southeast Asian Weak Link in Chip Controls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The Economy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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