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TO 군비 증강 발판 삼아 안보 영향력 키우는 美, 아시아·중남미로도 국방비 증액 요구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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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O 회원국들, 美 압박 속 국방 지출 확대 계획 쏟아내 위축된 유럽 방산 생태계, 미국산 무기가 빈틈 파고들어 아시아·중남미도 트럼프식 'GDP 3.5%' 국방비 편성 요구 직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의 군사력 증강 행보에 속도가 붙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동맹국들을 상대로 방위비 지출 확대 압박을 이어 가는 가운데, 유럽 각국이 대규모 예산 증액 및 미국산 무기 조달 계획을 잇달아 구체화한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안보 영향력 강화 행보는 비단 유럽을 넘어 아시아·중남미 등지의 안보 지형에도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NATO의 국방력 강화 흐름
8일(이하 현지시각) 로이터통신 등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NATO 정상들은 이날 튀르키예 앙카라에서 열린 NATO 정상회의에서 채택한 '앙카라 정상회의 선언'을 통해 "우리는 500억 달러(약 75조4,000억원) 이상의 방위비 신규 조달 계획을 발표하며, 공동 생산 능력 확대와 산업계 협력을 통한 혁신 가속화를 약속한다"고 밝혔다. 러시아가 유럽·대서양 안보에 가하는 장기적인 위협과 테러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헤이그 국방 약속'을 이행하겠다는 전언이다. 앞서 NATO 회원국들은 지난해 6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NATO 정상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에 발맞춰 2035년까지 국내총생산(GDP)의 5%를 국방 분야에 지출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정상회의를 전후해 유럽 각국의 구체적인 실행 계획도 쏟아져 나왔다. 독일 내각은 2027년 예산안을 의결하며 핵심 국방예산을 올해 822억 유로(약 141조9,290억원)에서 내년 1,090억 유로(약 188조2,060억원)로 32.6% 늘리기로 했다. 영국은 12개 유럽 동맹국과 함께 향후 10년간 500억 달러를 투입해 최대 사거리 2,000㎞급 차세대 장거리 정밀 미사일 체계를 공동 개발·생산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한다고 발표했으며,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 역시 정상회의를 위해 튀르키예로 떠나기 전 차세대잠수함도입사업(CPSP) 우선협상 사업자를 발표하며 군사력 강화 의지를 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러한 국방력 강화 흐름에 동조하지 않는 국가들을 노골적으로 압박하고 나섰다. 8일 CNBC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NATO 정상회의 이후 마르크 뤼터 NATO 사무총장과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스페인은 NATO에서 끔찍한 파트너"라며 "스페인과는 어떤 일도 함께하고 싶지 않으니, 방문을 포함해 스페인과의 모든 무역을 끊어 달라"고 발언했다. 스페인은 NATO 회원국 중 유일하게 앙카라 정상회의 선언의 목표를 거부하고 예외 협정을 확보한 국가이자, 국방비 지출 규모가 크지 않은 국가 중 하나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스페인의 지난해 GDP 대비 국방비 지출은 2.1% 수준이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같은 날 튀르키예에서 미국으로 복귀하는 전용기 안에서 "무역을 중단하겠다고 하자 스페인이 태도를 바꿨고, 매우 관대해졌다"며 스페인이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를 받아들였다고 주장했다.
유럽, 美 무기 체계 대거 수용
미국은 NATO 차원의 국방 투자 확대 흐름을 자국 안보 영향력을 키우기 위한 발판으로 삼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을 보여주는 사례가 덴마크·핀란드·독일·노르웨이의 미국산 고고도 장기체공 무인기 MQ-4C 트리톤 공동 도입 결정이다. 이들 국가는 7일 미국 노스럽그러먼의 MQ-4C 트리톤을 최대 5대 공동 구매한다고 발표했다. 트리톤은 해상에서 함정과 잠수함의 움직임을 장시간 감시하는 정보·감시·정찰(ISR) 자산으로, 도입 이후 NATO가 공동 운용하는 정찰 전력에 편입될 예정이다. 같은 날 독일 라인메탈도 미국 록히드마틴과 독일 현지에서 전술지대지미사일(ATACMS)을 공동 생산하기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처럼 유럽이 미국의 방산 체계를 저항 없이 수용하는 것은 유럽 방산업계가 폭증하는 무기 수요를 자체 역량으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뤼터 사무총장은 앞서 지난달 30일 공개된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유럽과 미국에도 강력한 방위산업 기반이 있지만, 생산 능력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며 “(느린 공정으로 인해 납기일이 지연되는) 생산 병목 현상 때문에 일부 유럽 동맹국들이 NATO 외부, 특히 한국에서 무기를 구매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는 지난 5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도 “(유럽) 각국이 군사비 지출을 늘리면서 무기 수요가 폭증했지만, 정작 방산업계는 이를 감당하지 못하는 생산 수용 능력의 한계에 직면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한계는 냉전 종식 이후 30여 년간 형성된 유럽 특유의 '평시형 산업 구조'에서 비롯한 것으로 풀이된다. 유럽 각국은 소련 붕괴 이후 꾸준히 국방예산과 무기 재고를 줄였고, 현지 방산업체들도 대량 생산 설비를 유지하기보다 소수의 고가 무기를 주문받아 장기간 생산하는 방식으로 사업 구조를 재편했다. 이 과정에서 위축된 생산 라인, 핵심 부품 공급망 등은 사실상 단기간 내 복구가 불가능하다. 여기에 유럽 방산시장의 파편화 구조도 생산 규모 확대를 가로막는 요인으로 꼽힌다. 미국 방산업체가 단일한 국방부 수요를 기반으로 대규모 생산 라인을 운용하는 것과 달리, 유럽 업체들은 여러 국가의 소규모 주문에 맞춰 생산 공정을 별도로 조정해야 한다. 역내 각국이 같은 종류의 무기를 구매하면서도 서로 다른 성능과 규격, 인증 기준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이 같은 분절과 협력 부족으로 인해 매년 수백억 유로의 불필요한 비용이 발생한다고 추산하고 있다.

각국 짓누르는 '3.5%' 압박
유럽 시장 공략을 본격화한 미국은 여타 동맹국들에도 국방비 증액을 주문하며 추가적인 이익 창출을 꾀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한국이다. 한국은 지난해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국방비를 가능한 한 조속히 미국이 요구한 수준(GDP의 3.5%)까지 확대하고, 2030년까지 미국산 군사 장비 구매에 250억 달러(약 37조7,070억원)를 투입하기로 했다. 이러한 기조에 따라 올해 한국 국방예산은 전년 대비 7.5% 증가한 65조9,000억원으로 확정됐다. 일본 역시 당초 2027 회계연도 달성 예정이었던 방위비 목표(GDP 대비 2%)를 2025 회계연도에 조기 달성하고, 2026 회계연도 방위비 관련 예산을 총 10조6,000억 엔(약 98조원)까지 늘렸다. 다만 일본은 미국이 요구하는 GDP 대비 3.5% 지출 목표는 공식적으로 수용하지 않았다.
중남미 국가들 역시 미국의 직접적 압박에 직면했다. 8일 엘브리지 콜비 미 국방차관은 페루 쿠스코에서 열린 미주 국방장관회의에서 "(중남미의) 각국이 자기방어에 더 투자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일부 국가는 GDP 대비 1%도 국방에 쓰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마약 테러 위협에 직면한 나라들이 국방비 지출을 통제하는 상황은 상식에 어긋난다"며 "미국인들이 (중남미에서 미국으로) 들어오는 마약과 그에 수반되는 범죄로 인해 대규모로 죽어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중남미발(發) 카르텔 범죄가 국방 자본을 동원할 만큼 미국 본토에 직접적인 안보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논리다. 아울러 미국은 이들 국가에도 GDP 대비 3.5%의 국방비 지출 목표를 제시했다.
중남미에서 이 같은 목표치에 근접한 국가는 반군 및 카르텔과 장기간 교전을 지속해 온 콜롬비아(3.2%)뿐이다. 페루는 GDP 대비 국방비 지출이 0.9%에 그치며, 브라질도 1.1%에 불과하다. 칠레의 지출은 1.58%, 볼리비아는 1.37% 수준이며, 멕시코는 0.7%로 미국 목표치의 5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전문가들은 중남미 국가 정부들이 미국 측의 요구를 즉각 수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본다. 한 외교 전문가는 "중남미는 외부 군사 침략 위험이 낮아 국방예산을 확대할 명분이 부족하고, 재정 여력 역시 충분하지 않다"며 "특히 카르텔 소탕 같은 국가적 의제에 군 병력이 개입하면 과거 군부 독재 시절의 부패와 인권 침해 논란이 다시 불거질 위험도 있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