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폴리시] 美 없는 자유무역, 해법은 개방형 연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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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이탈에도 자유무역 협력은 지속 가능 비관세장벽 완화로 실질적 시장 접근성 확대 국내 보완과 개방성 확보가 자유무역의 관건
본 연구 기사는 유럽 경제 연구소 The Economy의 연구위원(Fellow)들이 작성한 The Economy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The Economy 또는 집필자의 소속 기관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미국의 보호무역 기조는 국제 무역 질서의 재편을 예고하고 있다. 미국은 세계 최대 시장이지만 전체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14%로, 세계 교역 전반을 좌우할 만큼 절대적이지는 않다. 물론 미국이 국제 무역 체제에서 이탈하면 미국 수출기업은 타격을 받고, 미국이 주도해 구축한 무역 규범도 약화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다른 국가들이 무역과 투자 협력을 통해 축적한 경제적 이익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기존 교역과 투자 협력을 유지하려는 이해관계도 여전히 견고하다. 따라서 향후 국제 무역 질서는 자유무역 연합의 개방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자유무역 질서를 떠받치는 글로벌 교역망
무역 협력은 흔히 한 국가의 관세 인상이 연쇄적인 보복을 불러오고, 결국 국제 무역 체제 전체의 붕괴로 이어지는 ‘도미노 효과’로 설명된다. 그러나 실제 국제 무역은 여러 국가와 품목이 복합적으로 연결된 구조로 작동한다. 각국은 다양한 교역 상대를 확보하고 있으며, 협상도 품목별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다.
42개 경제권을 대상으로 한 모형 분석에 따르면 미국이 자유무역 협력 체제에서 이탈하더라도 중국과 유럽연합(EU)의 최적 관세율은 약 0.5%포인트 오르는 데 그칠 것으로 전망됐다. 미국의 이탈이 무역 협력의 지속 여건을 일부 약화시킬 수는 있지만, 남아 있는 주요 경제권의 교역 기반에는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분석이다.
최근 세계 교역 흐름도 이러한 흐름을 보여준다. 2024년 세계 교역 규모는 약 33조 달러(약 4경9,612조원)로 전년보다 3.7% 증가했다. 서비스 교역은 9% 증가했고, 상품 교역은 2%, 개발도상국의 수출입은 5% 늘었다. 팬데믹과 유럽 전쟁, 해운 차질, 무역 규제 확대 등 잇단 악재에도 세계 교역은 성장세를 이어갔다. 물론 성장세 둔화와 높은 비용 부담 등 불안 요인은 남아 있다. 다만 잇단 충격 속에서도 교역이 확대됐다는 사실은 세계 무역이 미국에만 의존하지 않고 작동할 수 있음을 뒷받침한다.

공급망 재편의 교훈
지정학적 갈등은 공급망의 구조를 바꿨지만, 국제 교역 자체를 위축시키지는 못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통화기금(IMF)은 경제 블록 간 교역이 블록 내부 교역보다 약 12% 더 감소했다고 분석했다. 해외직접투자(FDI) 역시 같은 흐름을 보이며 블록 간 감소 폭이 약 20%포인트 더 컸다. 이러한 변화는 중국과 미국의 교역에서도 확인된다. 중국이 미국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7년부터 2023년까지 8%포인트 낮아졌다. 그러나 줄어든 물량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상당수 교역은 멕시코와 베트남 등 제3국을 거치는 방식으로 재편됐고, 기업들은 새로운 공급망을 구축하며 생산과 교역을 이어갔다. 이 같은 변화는 개방된 교역망이 외부 충격에 대응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 같은 원리는 19세기 독일관세동맹(Zollverein)에서도 확인된다. 1834년 18개 독일 국가가 참여해 출범한 독일관세동맹은 회원국 간 관세를 철폐하고 교통 인프라를 확충하는 한편, 역외 국가에는 공동 관세를 적용했다. 유럽 전체를 아우르는 자유무역 체제라기보다 프로이센이 주도한 경제 협력 체제였다. 독일관세동맹은 회원국이 늘어날수록 시장 규모가 커지고 시장 접근의 가치도 함께 높아지는 구조를 만들었다. 이에 따라 소규모 국가들도 고립을 유지하기보다 연합에 참여해 이웃 국가의 항만과 교역망을 활용하는 편이 더 큰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다만 이러한 확대가 역외 국가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경계해야 한다. 보호무역 정책을 유지하며 독일관세동맹에 참여하지 않은 오스트리아의 쇠퇴에는 정치 불안과 전쟁, 민족주의, 재정 부담 등 다양한 요인이 작용했다. 미국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새로운 국제 무역 규범을 만드는 과정에서 스스로 이탈한다면 경제 규모만으로 기존 영향력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자유무역의 과제는 비관세장벽 해소
세계무역기구(WTO)에 따르면 2024년 6월 기준 전 세계에서 발효 중인 지역무역협정(RTA)은 380건을 넘는다. 그러나 협정이 늘어난 만큼 상품 기준과 통관 절차, 원산지 규정도 복잡해졌다. 특히 중소기업에는 신규 시장 진출의 걸림돌로 꼽힌다. 이에 따라 자유무역의 다음 과제는 관세 인하보다 비관세장벽을 해소하는 데 있다. 기업이 국경을 넘어 원활하게 거래할 수 있도록 통관 절차를 간소화하고 검사·인증 제도를 상호 인정하며 원산지 규정을 정비해야 한다.
주요 경제권도 이 같은 방향으로 협력을 확대하는 추세다. 최근 EU와 인도는 세계 경제의 약 25%를 차지하는 경제권을 아우르는 자유무역협정에 합의했다. 교역 품목의 90% 이상에서 관세를 인하하거나 철폐하고 통관 절차를 간소화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메르코수르(남미공동시장)와 EU 간 협상은 지연되고 있지만,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코스타리카가 가입하는 등 주요 경제권은 복수의 협정을 통해 시장 개방 범위를 넓히고 있다.
경제적 효과도 상당하다. 연구에 따르면 미국이 추가 관세를 부과할 경우 세계 실질소득은 0.16%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비관세장벽을 낮추고 복잡한 규제를 정비하면 세계 실질소득은 약 0.45% 증가할 전망이다. 동아시아는 약 2%, EU는 단일시장 기능이 강화될 경우 약 1.4%의 추가 소득 증가 효과가 예상된다.

지속 가능한 자유무역의 조건
자유무역의 혜택은 소비자와 기업 전반으로 확산되지만, 그 부담은 특정 지역과 전통 산업, 노동자에게 집중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2024년 WTO 연구에 따르면 관세 부담은 저소득 가구와 중소기업에 더 크게 돌아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불균형을 해소하지 못하면 자유무역에 대한 사회적 지지를 유지하기 어렵다. 따라서 자유무역 정책은 산업 구조조정 대책과 함께 추진돼야 한다. 피해 지역과 노동자를 위한 재정 지원, 직업 재교육, 소득 안전망을 마련하고 경쟁 당국은 독점 기업이 저렴한 수입 원자재로 얻은 이익을 소비자와 노동자에게 적절히 환원하는지 감시 체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국가안보를 이유로 한 무역 제한도 적용 범위를 엄격히 설정해야 한다. 군수 장비와 전략 물자, 핵심 인프라 등 안보 위험이 명확한 분야로 한정하고 대상 품목과 적용 사유, 재검토 일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안보 개념이 과도하게 확대되면 국제 무역 질서의 예측 가능성이 약화될 수 있다. 또한 기후와 노동 기준도 새로운 무역 장벽으로 활용돼서는 안 된다. 최빈국이 국제 기준을 충족할 수 있도록 재정·기술 지원을 병행해야 제도의 실효성도 높아진다.
새로운 자유무역 연합은 미국과 중국을 포함해 가입 요건을 충족하는 모든 국가에 참여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WTO는 공통 규범의 기본 틀을 유지하고, 더 높은 수준의 협력을 원하는 국가는 소다자 협정을 통해 개방 범위를 확대하는 방식이 현실적이다. 정치적 갈등이 발생하더라도 가입 요건을 충족한 국가는 배제하지 않는 원칙이 중요하다. 이는 향후 미국이 자유무역 체제로 복귀할 경우 다른 회원국과 동등한 조건에서 다시 참여할 수 있는 기반도 마련할 수 있다.
자유무역의 목표는 어느 한 국가의 정책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는 개방적이고 안정적인 국제 무역 질서를 확립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공동 통관 기준과 분쟁 해결 절차를 정비하고, 산업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분담할 제도적 기반을 갖춰야 한다. 이러한 구조가 마련돼야 자유무역 질서의 지속 가능성도 높아질 수 있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The Free-Trade Coalition Can Survive America’s Retreat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The Economy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