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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 마련보다 여행" 20년 부동산 신화 저문 홍콩, 자산가들 소유 대신 '경험'에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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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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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여러분과 '정보의 홍수'를 함께 헤쳐 나갈 수 있는 뗏목이 되고 싶습니다. 여행 중 길을 잃지 않도록 정확하고 친절하게 안내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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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 마련서 힘 빼는 홍콩 투자자들, 수년 만에 인식 급변
꺾여버린 부동산 가격 상승세, 홍콩식 '부의 공식' 붕괴
"경험 자산 확보 차원" 여행·웰니스 관련 소비 증가

홍콩 시장에서 부동산 자산의 가치가 퇴색하고 있다. 지난 수년 사이 두드러진 집값 하락세가 현지 투자자들의 투자 심리를 무너뜨린 것이다. 현재 소비를 희생해 집을 사야 할 유인이 줄어든 홍콩인들은 여행과 레저 등 ‘경험’에 지출 우선순위를 옮기는 추세이며, 일부 자산가들 사이에서는 이를 단순 소비가 아닌 새로운 형태의 투자와 자산으로 인식하는 흐름까지 확산하고 있다.

홍콩 중상위층의 태도 변화

11일(이하 현지시각) 글로벌 금융 그룹 스탠다드차타드가 30세 이상 홍콩 주민 1,05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홍콩 중상위층이 꼽는 최우선 목표는 조기 은퇴(49%)로 나타났다. 이어 '깊이 있게 머무는 몰입형 여행(48%)', '심신의 건강(47%)' 순이었다. '첫 집을 사거나 원하던 집을 갖겠다'는 응답은 24%로 7위에 그쳤다. 해당 조사는 유동자산이 20만 홍콩달러(약 3,600만원)를 넘거나 투자할 수 있는 자산이 100만~780만 홍콩달러(약 1억8,000만~14억원)인 사람을 중상위층으로, 투자 가능 자산이 780만 홍콩달러가 넘는 사람을 고액자산가로 구분해 진행됐다.

아울러 전체 응답자의 절반 이상은 여행을 일종의 투자로 인식했으며, 고액자산가에서는 이 비율이 72%까지 높아졌다. 전체 응답자의 80%는 젊은 시절 가장 후회되는 일로 ‘돈을 더 모으지 못한 것’보다 ‘여행을 더 많이 하지 못하고 세상을 충분히 보지 못한 것’을 꼽기도 했다. 이러한 인식은 자녀 교육 측면에서도 확인됐다. 부모 응답자의 90% 이상은 해외여행을 자녀의 성장에 가장 의미 있고 가치 있는 투자 가운데 하나로 평가했으며, 과외나 비교과 활동보다 높은 가치를 부여했다. 스탠다드차타드는 이처럼 여행을 통해 축적한 기억과 경험이 일종의 ‘경험 자산(experiential asset)’으로 규정된다고 전했다.

홍콩 부동산 시장 성장 구조

시장은 부동산에 대한 홍콩 시장의 인식이 수년 만에 급변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그룹 HSBC가 2022년 홍콩인 1,000명을 대상으로 유사한 조사를 실시했을 당시, 대부분 응답자는 홍콩에서 중산층으로 인정받기 위해 '유동자산 590만 홍콩달러(약 10억6,000만원)를 갖고 집 한 채를 소유해야 한다'고 답했다. 여기에 전체 중 76%는 부동산을 '재산을 지키는 유효한 수단'으로 봤고, 41%는 사치성 지출을 줄여서라도 집을 사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이러한 믿음은 부동산을 중심으로 한 홍콩식 '부(副)의 공식'에서 기인한다. 홍콩의 토지 대부분은 정부가 개발업체에 사용권을 매각하는 방식으로 공급돼 왔다. 토지 매각과 부동산 거래에서 거둬들이는 수입이 정부 재정의 핵심 축이 되는 구조다. 이처럼 공급이 제한된 상황에서 닥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현지 부동산 시장을 급속도로 달궜다. 미국에서 초저금리 기조가 강화되며 홍콩 주택담보대출 금리 역시 빠르게 미끄러진 것이다. 여기에 2000년대 이후 중국 경제가 눈에 띄게 성장하면서 본토 기업과 자산가의 홍콩 부동산 투자도 늘었고, 홍콩 주택 가격은 2003년부터 2021년까지 약 500% 폭등했다.

주택 보유가 곧 경제적 지위

집값이 오를수록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은 어려워졌다. 2019년 홍콩의 주택 가격 중간값은 가구 연 소득 중간값의 약 21배에 달했다. 이는 당시 미국에서 주택 부담이 가장 큰 도시로 꼽히던 새너제이(9.4배)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수치다. 2021년에는 이 배율이 23.2배까지 치솟기도 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홍콩인들 사이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집을 사야 한다’는 인식이 더욱 강해졌다. 축적된 가격 상승 경험, 부동산을 기반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재벌가 및 개인 투자자의 성공 사례 등이 '부동산은 장기적으로 결국 오른다'는 시장의 믿음을 굳힌 결과다.

열악한 주거 환경 역시 주택 소유에 대한 욕망을 부채질했다. 과거 홍콩의 1인당 주거 면적은 약 170제곱피트(15.8㎡)에 불과했고, 공공주택 입주 대기 기간은 최대 6년에 육박했다. 기존 주택을 잘게 나눈 초소형 분할 주택에서 생활하는 인구도 적지 않았다. 젊은층은 부모와 함께 살거나 좁은 공공주택에서 거주하며 소비를 줄이고, 소득의 상당 부분을 주택 계약금 마련에 쏟아부어 전형적인 ‘주거 사다리’를 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버티고 버텨 집 한 채를 마련하면 이후 자산 가격이 상승하며 계층 이동 및 노후 자산 확보 문제가 동시에 해결될 수 있다는 기대였다.

표1. 홍콩 부동산 시장의 흐름과 주택 인식 변화

시기시장 흐름주택에 대한 인식
2003~2007년제한된 토지 공급과 중국 본토 자금 유입으로 집값 상승 시작주택이 안정적인 자산 증식 수단이라는 믿음 형성
2008~2021년초저금리와 공급 부족이 맞물리며 장기 상승세 지속내 집 마련을 계층 이동과 노후 대비의 필수 경로로 인식
2021~2024년금리 상승과 경기 부진으로 집값 하락세 본격화‘부동산은 결국 오른다’는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
2025~2026년주택가격이 반등했지만 이전 고점은 회복하지 못함주택이 자산 증식과 계층 상승을 보장한다는 인식 약화
자료: 홍콩 정부 및 시장 자료 종합

집값 하락세 속 시장 믿음 무너져

이 공식이 흔들리기 시작한 시점은 2021년이었다. 홍콩 민간주택 가격은 2021년 9월 정점을 찍은 뒤 하락 전환했으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준)가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기준금리 인상에 나선 2022년부터 본격적으로 폭락하기 시작했다. 홍콩의 대출금리는 미국의 정책금리에 발맞춰 뛰었고, 저금리를 전제로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집주인들의 이자 부담은 줄줄이 급증했다. 여기에 중국 경기 둔화 리스크와 홍콩 경제의 부진까지 겹쳤다. 시장에는 소화되지 않을 매물이 쏟아져 나왔으며, 2021년 9월 민간주택 가격은 고점 대비 한때 약 30%까지 떨어졌다.

집값이 다시 방향을 튼 것은 지난해부터다. 홍콩 정부에 따르면 홍콩 민간주택 가격은 지난해 중반 이후 반등세를 이어갔고, 지난 6월까지 13개월 연속 상승했다. 2026년 상반기 가격 상승률은 7.9%로 2019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1년 고점 부근에서 집을 산 투자자 중 상당수는 약 5년이 지난 지금도 매입 가격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다. 이와 관련해 한 시장 전문가는 "홍콩 부동산 가격 조정은 단순한 '사이클'을 넘어 근본적 변화"라며 "2003년부터 2021년까지 이어진 장기 상승장에서 축적된 신뢰가 무너지면서, 주택이 계층 상승과 자산 증식을 보장해 주던 시대 자체가 저문 것"이라고 짚었다.

소비 패턴 변화 가시화

이런 가운데 지난 20여 년간 유형 자산에 집중됐던 홍콩 가계의 지출 우선순위는 여행·외식·레저와 같은 경험 중심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자산 가격 상승을 기대하며 현재 소비를 희생할 유인이 예전보다 약해진 결과다. 특히 홍콩인의 해외 이동은 이미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넘어섰다. 지난해 홍콩 주민의 출국 건수는 1억1,754만 건으로 전년보다 12.3% 늘었고, 같은 기간 항공권 결제액도 10.9% 증가했다. 코로나19 엔데믹 당시의 '보복 여행' 풍조가 사그라진 이후로도 여행 수요가 계속 확대되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변화는 비단 홍콩에 국한되지 않는다. 세계관광기구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국제관광객은 15억2,000만 명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국제 관광 수입도 1조9,000억 달러(약 2,687조4,000억원)로 5% 늘었다. 높은 물가와 지정학적 불확실성에도 소비자들의 여행 수요가 굳건했다는 의미다. 고소득층 및 자산가들 사이에서는 이런 경향이 한층 명확하게 나타난다. 미 경영 컨설팅 기업 베인앤드컴퍼니는 지난해 글로벌 럭셔리 시장에서 물건보다 경험을 우선시하는 소비 경향이 뚜렷해졌다고 분석했다. 전통적인 명품 의류나 가방 등 개인 명품 시장은 부진한 반면, 고급 여행, 호텔, 미식, 웰니스와 같은 경험 관련 소비는 상대적으로 강했다는 것이다. 베인앤드컴퍼니는 이 같은 흐름이 경기 순환적 현상이 아닌 럭셔리 소비의 구조적 변화이며, 희소한 장소를 방문하거나 특별한 경험을 갖는 것 자체가 새로운 형태의 '지위 소비'가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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