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싼 원유로 버텼는데” 이란 전쟁에 中 생산비 급등, 디플레 탈출 더 멀어졌다
입력
수정
이란 전쟁으로 러·이란산 저가 원유 조달 차질 에너지·원자재 비용 뛰며 중국 PPI 3.8% 상승 내수 위축 속 생산비 상승분 가격 전가 난항

이란 전쟁이 중국의 ‘저가 생산 공식’을 뒤흔들고 있다. 값싼 러시아·이란산 원유를 대규모 생산설비와 결합해 수출 경쟁력을 지켜왔지만, 호르무즈 해협 마비와 미국의 제재 압박이 겹치며 원가 부담이 급증했다. 생산자물가가 가파르게 오른 것과 달리 소비자물가 회복은 더뎌 물가 반등의 온기도 상류 산업에만 머물고 있다. 지방정부 부채와 수출 의존형 성장 방식이 가격 전가를 가로막으면서 원자재발 인플레이션이 되레 기업 이익과 가계 구매력을 떨어뜨려 디플레이션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中 8월 생산자물가 3.8% 상승, 시장 예상치 상회
10일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8월 중국 생산자물가지수(PPI)는 지난해 같은 달 대비 3.8% 상승했다. 이는 47개월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던 6월 PPI 상승률(+4.1%)보다는 낮지만 7월 PPI 상승률(+3.5%) 보다는 높은 수치다. 또한 로이터통신이 집계한 8월 PPI 상승률 예상치(+3.6%)를 웃돌았다. 중국의 월간 PPI 상승률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이던 2022년 10월 이후 3년 넘게 마이너스를 이어오다가 올해 3월(+0.5%) 41개월 연속 하락세가 끊어졌다.
업종별로는 석탄 채굴·세광·선광업(+26.6%)과 비철금속 제련·압연 가공업(+20.8%), 석유·석탄 연료 가공업(+11.1%), 석유·천연가스 채굴업(10.5%) 등 에너지·원자재 분야 가격 상승이 두드러졌다. 전기기계·기자재 제조업(+5.9%)과 컴퓨터통신·기타전자설비 제조업(+5.3%) 등의 물가 상승도 이어졌다. 반면 전력 및 열에너지 생산·공급업과 자동차 제조업, 비금속 광물 제조업, 의약 제조업, 주류·음료·정제차 제조업은 전년 대비 1.7∼5.3%의 물가 하락을 보였다.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지수(CPI)도 전년 동월보다 0.8% 올라 시장 예상치에 부합했다. 7월 상승률(0.5%)보다 상승 폭이 확대된 것이다.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CPI 상승률도 1.0%로 지난 7월(0.9%)보다 소폭 상승했다.
이란 전쟁발 공급 충격이 물가 상승 압력 확대
8월 물가를 끌어올린 주요인은 이란 전쟁발 원자재 공급 충격이다. 지난 7월 초 일시적 정전 국면에서 잠시 진정세를 보였던 국제 유가는 미국과 이란이 상호 보복 공습을 재개하고 페르시아만의 대동맥인 호르무즈 해협 선박 통항이 전면 마비되면서 다시 배럴당 100달러(약 13만7,900원) 선을 위협하고 있다. 둥리쥐안(Dong Lijuan) 국가통계국 수석 통계관은 공식 브리핑에서 "국제 원유 및 비철금속 가격 급등이 국내 관련 제조업 부문의 원가 상승을 직접적으로 견인했다"고 밝혔다.
국가통계국 세부 통계에 따르면 8월 한 달간 석탄 채굴 및 선별업 가격은 전년 대비 무려 26.6% 폭등했으며, 비철금속 제련 및 압연 가공업은 20.8% 급등했다. 석유 및 천연가스 채굴업 가격 역시 전년 대비 10.5% 치솟으며 제조업 공급망의 상류 단가를 강하게 밀어올렸다. ING은행의 린 송(Lynn Song) 중화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제조업 원자재 투입 비용의 급등이 중국 경제의 리플레이션(물가 반등)을 뒷받침하고 있다"면서도 "지표 내면을 들여다보면 원자재 가격에 기댄 상류 산업만 호황을 누리고 하류 최종 소비재는 여전히 수요 부진에 시달리는 뚜렷한 '부문별 양극화(K자형 분열)'가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값싼 원유’ 공식 흔들
그동안 중국은 제재로 판로가 좁아진 러시아·이란산 원유를 할인된 가격에 들여와 상대적으로 낮은 인건비와 방대한 생산설비에 결합해왔다. 컬럼비아대 글로벌에너지정책센터(CGEP)는 지난해 중국 원유 수입의 22% 이상이 러시아·이란·베네수엘라산 제재 원유였을 것으로 추산했다. 이 가운데 이란산은 하루 138만 배럴에 달했고, 이란산 경질유는 오만산보다 배럴당 8~10달러(약 1만1,030~1만3,790원) 저렴했다. 값싼 투입재와 규모의 경제는 내수 침체 속에서도 중국산 제품의 생산 단가를 낮춰 수출 경쟁력을 지탱하는 완충재로 작용했다.
하지만 이란 전쟁은 이 같은 원가 계산을 뒤흔들었다. 로이터통신이 선박 추적업체 케이플러(Kpler)를 인용한 잠정 집계에서 중국의 이란산 원유 수입은 지난해 하루 평균 140만 배럴에서 지난달 53만4,000배럴로 급감했다. 한 달 전까지 브렌트유보다 배럴당 약 3달러(약 4,140원) 저렴했던 이란산 경질유 일부에는 8월 하순 약 2달러(약 2,760원)의 프리미엄이 붙었다. 대체재인 러시아산 동시베리아·태평양송유관(ESPO) 원유의 할인 폭마저 전쟁 전 배럴당 10달러(약 1만3,790원)에서 9월 선적분 기준 1~2달러(약 1,390~2,760원)로 축소됐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러시아 대형 석유사와 이란의 해운·항만망, 이란산 원유를 사들이는 중국 정유업체를 잇달아 압박하면서 중국으로 집중되던 제재 대상국산 원유의 가격 이점도 약화됐다.
표1. 이란 전쟁 이후 원자재 가격 상승의 중국 물가 전이 경로
| 구분 | 핵심 변화 | 기업·가계 영향 | 물가·경기 파급 |
|---|---|---|---|
| 초기 기대 | CSI 에너지 하위지수 8.4% 상승, 화학업체의 원가 전가와 ‘반(反)인볼루션’ 정책 병행 | 생산자물가(PPI) 반등에 따른 기업 실적·주가 개선 기대 | 완제품·서비스 가격과 임금·소비로 이어지는 디플레이션 탈출 전망 |
| 상류 산업 | 석유·석탄·비철금속 중심의 판매가격 상승 | 원자재 업체의 매출과 수익성 개선 | 물가 반등 효과가 상류 산업에 편중 |
| 하류 산업 | 원자재 가격 상승과 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의 연료 가격 인상 제한 | 정유·운송·소비재 업체의 비용 부담 및 수익성 악화 | 설비투자·생산·신규 채용·임금 인상 위축 |
| 가계·내수 | 고용·소득 불안 속 가계 구매력 약화 | 소비 축소와 기업의 재고 처분·할인 경쟁 심화 | 소비재 가격 하락과 디플레이션 압력 확대 |
| 정책 부담 | 생산자물가 상승에도 내수 부진 지속 | 상류 산업의 가격 상승이 하류 기업과 가계의 부담으로 전가 | 비용 상승과 수요 위축이 맞물리는 악순환 형성 |
디플레 탈출 기대 꺾여
이란 전쟁 초기만 해도 원자재발 물가 상승이 중국의 장기 디플레이션을 끊는 촉매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우세했다. 전쟁 발발 이후 CSI 에너지 하위지수가 8.4% 오르고 일부 화학업체가 원가 상승분을 제품 가격에 반영하자, 유가 상승과 중국 당국의 ‘반(反)인볼루션’ 정책이 PPI를 플러스 영역으로 돌려 기업 실적과 주가를 함께 끌어올릴 것이라는 기대도 번졌다. 생산가격 반등이 완제품과 서비스 가격, 임금과 소비로 차례로 확산된다는 전제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물가 반등은 석유·석탄·비철금속 등 상류 산업에 집중되는 양상을 보였다. 원자재 업체는 판매가격 상승의 수혜를 누렸으나 이를 사들여 제품을 만드는 하류 제조업체에는 투입 비용 증가가 그대로 부담으로 쌓였다. 여기에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가 가계 부담을 낮추기 위해 국내 연료 가격 인상 폭을 제한하면서, 정유·운송·소비재 업체가 흡수해야 할 비용도 커졌다. 내수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상황에서 제품값까지 올리면 판매량 감소를 감수해야 하는 만큼, 생산 현장의 가격 상승이 기업 이익과 가계 소득으로 이어질 여지는 협소해졌다.
생산비가 뛰는 동안 가계 소득이 제자리걸음을 하면 디플레이션 압력은 오히려 더 거세질 수 있다. 원가 상승분을 제품 가격에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기업은 수익성 악화를 견디기 위해 설비투자와 생산을 줄이고, 신규 채용과 임금 인상에도 소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고용과 소득에 대한 불안이 커지면 가계는 지출을 더욱 줄이게 되고, 판매 부진에 직면한 하류업체들은 재고를 털어내기 위한 할인 경쟁에 다시 내몰리게 된다. 상류 산업에서 촉발된 인플레이션이 기업 채산성과 가계 구매력을 함께 약화시키며 소비재 가격을 끌어내리는 악순환으로 번지는 셈이다. 중국 당국으로서는 생산자물가가 오르는데도 내수는 살아나지 않는 까다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中 가격 전가 막는 부채·수출 의존
현재 나타난 생산자물가와 소비자물가의 격차는 당초 예상된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원자재 가격 충격은 통상 1~2분기 뒤 생산자물가에 먼저 반영되며, 소비자물가로 전달되기까지는 2~3분기가 걸린다. 이란 전쟁이 발발한 지 이제 6개월가량인 데다 중국이 장기간 극심한 디플레이션에 시달려온 만큼, 소비자물가의 반응이 상대적으로 늦게 나타나는 상황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그렇다고 생산자물가 상승분이 소비자물가로 원활히 전달될 것으로 낙관하기는 어렵다. 가격 전가를 가로막는 첫 번째 제약은 누적된 재정 부실이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토지사용권 매각 수입이 감소한 데다, 지방정부융자기구(LGFV)의 원리금 상환 부담까지 불어나고 있어 지방정부의 소비 부양 여력도 제약받고 있는 상황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부동산 부문의 장기 침체와 지방정부로 번진 부채 부담이 내수 부진과 디플레이션 압력을 지속시키고 있으며, 지금까지의 정책 대응도 위기 규모에 비해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재정이 가계 소득과 사회안전망을 충분히 떠받치지 못하면 소비가 살아나기 어렵고 기업의 가격 전가력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
수출 중심의 성장 방식도 가격 전가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중국은 국내에서 소화하지 못한 생산 물량을 해외 시장에 판매해 성장률을 방어해 왔다. 그런 만큼 수출로 확보한 이익이 임금과 고용을 거쳐 가계 소비로 이어져야 내수 회복도 가능하다. 하지만 원자재값 상승분을 수출가격에 얹으면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해외 주문이 줄고, 기업이 비용을 떠안으면 이익이 감소해 임금 인상과 신규 채용, 설비투자 여력까지 위축된다. 미국과 유럽의 통상 장벽까지 높아지는 상황에서 수출 증가가 생산비 상승을 상쇄할 여지도 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