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원치 않는다” 유럽에 대화 손짓한 푸틴, 병력난·재정 악화에 러 전쟁 지속 능력 시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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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 악화 시 승자 없어" 푸틴, 유럽과 군사적 충돌 경계하며 관계 회복 시사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러 병력 충원 난항, 군 급여 지급 연기까지 추진 국방비 지출·국가 채무 급증에 재정 부담 가중, 전쟁 지속 능력 안갯속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유럽과의 전쟁을 치를 준비가 돼 있지만, 실제 군사적 충돌을 원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러시아와 유럽 간 갈등이 격화할 경우 승자는 없을 것이라는 경고다. 국제사회에서는 이 같은 발언의 배경에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인한 리스크가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방비 지출을 비롯한 러시아의 전쟁 지속 부담이 나날이 커지는 가운데, 돌파구 모색을 위해 대유럽 강경 메시지를 유지하면서도 협상 가능성을 열어뒀다는 진단이다.
푸틴의 대유럽 대응 기조
지난달 29일(이하 현지시각) 러시아 국영 타스통신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날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3차 러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 이후 기자회견에서 유럽 국가들과의 관계 회복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는 "우리는 유럽 국가들과 완전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모든 조치를 지지한다"며 유럽연합(EU) 차원의 다자 협의뿐 아니라 개별 국가와의 양자 대화에도 열려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유럽과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 대해 푸틴 대통령은 "우리는 준비돼 있지만 유럽과의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며 "누군가 전쟁을 원한다면 준비하라"고 경고했다. 이어 "서방은 러시아에 전략적 패배를 안기려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으며, 2030년까지도 이를 실현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상황이 지나치게 악화하면 승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짚었다. 아울러 그는 발트해 안보 문제에 대해서도 "페르시아만이나 호르무즈 해협과 같은 상황이 발트해에서 벌어지기를 원하지 않는다"면서도 "어떠한 도전에도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러시아 대화 물꼬 트여
푸틴 대통령의 이러한 발언은 유럽 정상들과의 이례적인 직접 접촉 직후 나왔다. 앞서 지난달 27일 알렉산데르 스투브 핀란드 대통령과 요나스 가르 스퇴레 노르웨이 총리는 푸틴 대통령과 약 90분간 3자 전화 통화를 진행하고,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 및 평화 협상 재개 방안을 논의한 바 있다. 이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이후 상당수 서유럽 지도자가 푸틴 대통령과의 직접 대화를 기피해 온 것과는 대비되는 행보다.
스투브 대통령과 스퇴레 총리는 이달 초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에서 진행될 미국·러시아·우크라이나 3자 실무급 협상을 앞두고 종전 필요성을 전달하기 위해 통화를 추진했다고 설명했다. 스투브 대통령은 "우리는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이번 전쟁의 결과는 양국과 유럽 전체의 안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는 직접적인 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스퇴레 총리 역시 "전쟁으로 막대한 인적·물적 피해가 발생하고 있으며, 고통과 파괴의 영향은 여러 세대에 걸쳐 이어질 것"이라며 군사적 긴장 완화의 필요성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다만 양국 지도자는 이번 접촉이 유럽 전체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기존 지원 방침에도 변화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추가 병력 확보 어려워져
이처럼 러시아가 유럽에 대화 물꼬를 터놓는 배경에는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따른 부담이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러시아는 최근 병력 확충 단계에서부터 난항을 겪고 있다. 지난 8월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 대통령실과 국방부는 올해 계약병 모집 목표를 40만9,000명으로 설정하고 지방정부별로 인원을 할당했다. 2022년 9월 예비군 약 30만 명을 동원하는 과정에서 대규모 해외 탈출과 사회적 혼란이 발생한 만큼, 추가 동원령 대신 최대 450만 루블(약 7,460만원)의 일시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병력을 충원하겠다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정보당국에 따르면 지난 7월 초까지 실제 계약병 모집 인원은 약 19만5,000명으로, 당시 목표치인 20만4,500명에 미치지 못했다. 하루 평균 신규 모집 인원도 1,070~1,090명으로 2024~2025년의 약 1,200명보다 줄었다.
러시아 당국이 강압적인 모집 방식을 동원하고 있다는 증언도 잇따른다. FT는 러시아 남부 펜자에서 경찰이 직장을 급습하거나, 거리에서 남성들을 연행해 군 모병사무소로 데려간 뒤 계약서에 서명하도록 압박한 사례가 확인됐다고 전했다. 울리야놉스크에서는 한쪽 눈의 시력을 잃은 남성까지 군 복무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전해졌다. 각 지방정부와 경찰 역시 채무자, 수사 대상자, 최근 전역한 징집병 등 취약계층의 개인정보를 확보해 자택과 직장을 직접 방문하는 방식으로 모집 대상을 확대 중이며, 일부 지역에서는 학생들이 계약 조건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입대를 유도당했다는 사실도 보고됐다.
전쟁 미참여 군인 급여 밀린다
기존 군인들에게 지급하는 급여 역시 러시아 정부에는 상당한 압박이다. 지난달 30일 러시아 독립 언론 베르스트카(Verstka)는 "러시아 국방부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 군인들의 올해 12월 급여 지급 시점을 내년 1월로 연기하는 내용의 명령 개정안을 마련했다"고 보도했다. 현행 규정상 러시아군은 매월 10~20일에 전월 급여를 지급받으며, 12월 급여는 예외적으로 같은 달 25일까지 수령하도록 돼 있다. 개정안상 12월 급여 지급 시점은 이듬해 1월 11~21일이다.
다만 우크라이나 전선에 투입된 부대는 적용 대상에서 제외돼 기존 일정대로 급여를 지급받으며, 계약병에 대한 12월 상여금 지급 규정도 별도로 유지된다. 베르스트카는 러시아군이 적어도 2008년부터 18년간 연말 이전에 12월 급여를 지급해 왔다며, 개정안이 시행되면 해당 관행이 처음으로 중단된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지급 일정 변경의 구체적인 이유를 명시하지 않았으나, 일각에서는 전쟁 장기화로 국방 지출이 누적되면서 러시아 정부가 일부 인건비를 다음 회계연도로 이월해 당장의 재정 부담을 줄이고자 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표1. 러시아의 재정 부담 확대
| 구분 | 기준 | 주요 내용 |
|---|---|---|
| 재정적자 | 2026년 전망 | 연방정부 재정적자 전망치가 3조7,860억 루블에서 7조3,449억 루블로 확대 |
| 세입 기반 | 2026년 전망 | 석유·가스 세수 전망치가 8조9,000억 루블에서 7조5,844억 루블로 하향 |
| 국방·안보 지출 | 2027년 예산안 | 국방비 및 국가안보·법 집행 예산이 전체 연방정부 지출의 약 44% 차지 |
| 국가채무 | 2027년 전망 | 국가채무 약 54조 루블(GDP의 21.7%)까지 확대 전망 |
| 채무 관리 비용 | 2027년 예산안 | 국채 이자 등 채무 관리 비용이 4조5,701억 루블로 전체 연방정부 지출의 9.4% 차지 |
지속되는 적자, 재정 적신호
이러한 분석이 등장한 것은 최근 러시아 정부의 재정 상황이 급격히 악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재무부 자료를 살펴보면, 러시아의 올해 연방정부 재정적자는 당초 예상했던 3조7,860억 루블(약 62조7,720억원)에서 7조3,449억 루블(약 121조7,780억원)로 대폭 확대될 전망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 전망치도 1.6%에서 3.2%로 높아졌다. 적자 폭이 커진 주요 원인으로는 석유·천연가스 세수 감소 및 전쟁 관련 지출 증가가 꼽힌다. 러시아 정부는 올해 석유·가스 세수 전망치를 기존 8조9,000억 루블(약 147조5,620억원)에서 7조5,844억 루블(약 125조7,490억원)로 하향 조정했으며, 이를 보완하기 위해 지난 1월 부가가치세율을 20%에서 22%로 인상하는 등 비에너지 부문의 세수 확충에 나선 상태다.
그러나 이 같은 수입만으로 전쟁으로 인한 지출 증가세를 따라잡기는 역부족이었다. 러시아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에 따르면 2027년 국방비는 17조1,474억 루블(약 284조3,040억원)로 기존 2026년 예산에 편성됐던 12조1,210억 루블(약 200조9,660억원)보다 41.5% 많으며, 전체 연방정부 지출의 35.2%를 차지한다. 국가안보·법 집행 관련 예산 4조2,866억 루블(약 71조720억원)까지 합하면 두 항목에만 전체 예산의 약 44%가 배정되는 셈이다. 여기에 국가채무도 빠르게 늘고 있다. 러시아 정부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2024년 14.4%에서 올해 말 19.9%, 2027년 말 21.7%로 높아지고, 2027년 채무 규모는 약 54조 루블(약 895조3,2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이에 따른 국채 이자 등 채무 관리 비용 역시 2020년 7,840억 루블(약 13조원)에서 2027년 4조5,701억 루블(약 75조7,720억원)로 약 5.8배 증가해 전체 연방정부 지출의 9.4%를 차지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