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main content

"건설업계도 은행권도 빨간불" 산업계 휩쓰는 노란봉투법

"건설업계도 은행권도 빨간불" 산업계 휩쓰는 노란봉투법

Picture

Member for

10 months 4 weeks
Real name
전수빈
Position
연구원
Bio
독자 여러분과 '정보의 홍수'를 함께 헤쳐 나갈 수 있는 뗏목이 되고 싶습니다. 여행 중 길을 잃지 않도록 정확하고 친절하게 안내하겠습니다.

수정

'노란봉투법 리스크'에 주춤하는 건설업계
은행권, 외주 중심 콜센터 업무 재편하고 나서
"제도 보완 필요하다" 곳곳에서 쏟아지는 비판 의견

건설사들이 아파트 분양을 앞두고 입주 시기를 늦추기 시작했다. 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 시행을 앞두고 하청업체들의 잦은 파업 가능성이 새로운 변수로 떠오른 탓이다. 급작스러운 변화로 인해 산업계 전반이 혼란에 빠진 가운데, 곳곳에서는 법안을 보다 명확히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비판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건설업계, 노란봉투법 고려해 입주 시기 늦춰

5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최근 건설사들은 노란봉투법 시행을 앞두고 입주 시기를 늦추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아직 분양을 하지 않은 사업장을 중심으로 조합과 협의를 진행, 선제적으로 입주 시기를 조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건설업계가 이 같은 행보를 보이는 것은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면 공사가 지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노란봉투법은 노동자의 파업권을 보장하고, 노조 활동 위축을 방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에 따라 하청업체 근로자들도 원청 기업과 교섭할 수 있게 됐다. 레미콘, 전기, 설비, 인테리어 등 수많은 하청업체를 두고 아파트를 짓는 건설사들은 뼈아픈 리스크를 짊어지게 된 셈이다. 일반적으로 건설업계에서 파업이 발생하면 공사가 지체되며 공사에 투입되는 비용이 대폭 증가한다.

일각에서는 노란봉투법으로 인해 민간 정비 사업을 통한 주택 공급 자체가 늦춰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현 정부가 공공을 중심으로 주택 공급 확대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민간의 공급은 오히려 반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공급 절벽’ 상황 속 이 같은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경우, 집값 상승세가 가팔라지며 실수요자들이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하반기 서울의 공동주택 입주 물량은 1만8,982가구에 불과하다. 내년은 한 해 동안 2만8,885가구, 내후년에는 1만417가구가 입주 예정이다.

은행권도 일제히 '비상'

노란봉투법으로 인해 골머리를 앓는 것은 건설업계 만이 아니다. 일례로 은행권은 노란봉투법 통과 이후 비정규직 채용 관련 리스크에 짓눌리고 있다. 금융통계정보시스템 집계를 살펴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의 올 1분기 말 기준 비정규직 직원은 총 8,403명으로 1년 전 대비 199명 늘었다. 같은 기간 정규직 직원이 1,478명 줄어든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들 은행의 평균 비정규직 비율은 11.7%에 달한다.

이에 은행권은 노란봉투법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콜센터 업무를 재조정하고 나섰다. 고객 서비스의 최전선인 콜센터는 대부분 외주 인력으로 운영돼 노란봉투법 시행 후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신한은행은 연내에 외주 콜센터를 통한 대출 상환 업무 처리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대출 상환 등 은행 핵심 시스템과 직접 연동되는 업무를 콜센터와 분리, 은행이 콜센터 상담원의 업무를 실질적으로 지배·통제한다는 주장을 불식하겠다는 의도다. 우리은행, 농협은행 등 여타 주요 은행들도 노란봉투법의 영향을 분석하기 위한 내부 검토에 착수했다.

이처럼 산업계 전반이 노란봉투법으로 인해 혼란에 빠지자, 시장에서는 기업들이 인력을 신규 채용해 리스크를 짊어지는 대신 자동화 설비 도입을 확대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일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로봇주들의 주가가 일제히 상승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이병화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국 기업들이 당면한 노동력 부족, 인건비 상승이라는 구조적 문제 속에서 로봇 투자 확대는 필연적"이라며 "앞으로 글로벌 로봇 수요 폭발 시기에 국내 기업들의 대규모 수혜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노란봉투법, 아직 모호한 규정 많아

곳곳에서는 노란봉투법의 보완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흘러나오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등 경제 6단체는 노랑봉투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을 당시 “국회에서 사용자 범위와 노동 쟁의 개념을 확대하고, 불법 쟁의 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제한하는 노동조합법 제2조, 제3조 개정안이 통과된 것에 대해 경제계는 유감을 표한다”며 “(적용 범위를 둘러싸고) 향후 노사 간에 법적 분쟁이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란봉투법이 규정한 ‘실질적·구체적 근로조건을 지배·결정하는 사용자’와 합법적 쟁의 대상인 ‘사업 경영상 결정’의 범위가 모호하다는 시각이다.

일례로 완성차 회사가 협력사인 부품 업체 직원들의 사용자인지를 두고 분쟁이 생길 경우, 어느 정도의 관리나 지시를 사용자 권한으로 볼지 불분명하다. 원청 업체의 생산 계획에 따라 하청업체의 근무 방식이 달라지는 것을 실질적·구체적 권한 행사로 본다면 완성차 업체는 수십, 수백 개의 하청업체로부터 교섭을 요구받게 될 수도 있다. 고용노동부는 참고 자료를 통해 “특정한 근로 조건과 관련해서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경우에만 사용자로 인정된다”고 설명했지만, 보다 구체적인 판단 기준은 제시되지 않았다.

노동쟁의 범위 확대 관련 조항을 두고도 의견이 엇갈린다. 고용노동부는 “단순한 투자나 공장 증설 자체만으로 노동쟁의(대상)에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정리해고와 같이 근로 조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근로 조건의 변경을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경우가 노동쟁의 대상”이라고 밝힌 상태다. 하지만 경영계는 결국 해당 조항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이라며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결국 분쟁이 발생할 때마다 쟁의 대상인지 아닌지 노동위원회나 법원 판단을 받아봐야 한단 얘기”라며 “소송을 반복하다가 기업 활동이 마비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쟁의 행위의 수위와 관련한 규정 역시 문제가 되고 있다. 노란봉투법 42조는 '생산 기타 주요 업무에 관련된 시설, 이에 준해 대통령령이 정하는 시설을 점거'하는 쟁의 행위를 금지하고 있는데, 그 기준이 상당히 모호하다는 것이다. 이에 김은혜 국민의힘 원내정책수석부대표는 지난 4일 노조의 사업장 불법 점거를 금지하고, 파업 시 대체 근로를 허용하는 내용의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 보완 입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Picture

Member for

10 months 4 weeks
Real name
전수빈
Position
연구원
Bio
독자 여러분과 '정보의 홍수'를 함께 헤쳐 나갈 수 있는 뗏목이 되고 싶습니다. 여행 중 길을 잃지 않도록 정확하고 친절하게 안내하겠습니다.

최신 무기 전시장 된 中 열병식, 무기 자동화로 ‘강군몽’ 의지 재확인

최신 무기 전시장 된 中 열병식, 무기 자동화로 ‘강군몽’ 의지 재확인

Picture

Member for

10 months 4 weeks
Real name
이동진
Position
기자
Bio
흑백의 세상에서 회색지대를 찾고 있습니다. 산업 현장을 취재한 경험을 통해 IT 기업들의 현재와 그 속에 담길 한국의 미래를 전하겠습니다.

수정

中열병식서 최신 무기 대거 공개
초대형 무인잠수정·AI 드론도 주목
자동화로 전장 패권 속도전 가속화
지난 3일 중국 베이징 전승절 80주년 열병식에 등장한 레이더 장비/사진=게티이미지

중국이 베이징 톈안먼(天安門) 광장에서 열린 전승절 80주년 열병식에서 유인 항공기와 협동 작전을 수행하는 공격용 스텔스 무인기 ‘페이훙(FH)-97’을 비롯해, 미래 전장을 장악할 최첨단 무기를 대거 공개했다. 무인전투체계 등 ‘스타워즈’를 방불케 하는 미래형 무기를 내세워 중국의 전투 자동화 기술력을 과시함과 동시에, 미래 전장에서는 미국의 군사력을 추월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AI 스텔스 드론·로봇개 군단 등 미래형 첨단무기 과시

3일 오전 9시부터 약 70분간 진행된 이번 열병식의 핵심은 중국의 군사 현대화 성과를 한눈에 보여준 무기 전시였다. 중국은 육해공 전 영역에서 핵 억지력을 구축한 '핵 3축(트라이애드)' 완성을 과시했다. 미국 싱크탱크 군사전문가들은 중국이 보유한 핵탄두가 1,000기 수준으로 늘었으며, 서부 사막지대에 신형 사일로를 대거 증설했다고 관측하고 있다.

육상에서는 사거리 1만3,000㎞ 이상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둥펑(DF)-61은 물론 처음으로 DF-5C가 공개됐다. 이날 최초로 공개된 DF-61 미사일은 DF-41의 개량형으로 추정되며, 이외에도 '괌 킬러' DF-26D,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를 무력화 할 무기로 꼽히는 DF-17도 함께 공개됐다. 해상 전력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JL-3이 주목을 끌었다. 공중 전력으로는 전략폭격기 탑재용 JL-1이 등장해 공중 핵 투발 능력을 완성했다.

또한 중국은 이번 열병식에서 유인·무인을 아우르는 차세대 전력 구상도 선보였다. 초대형 무인잠수정 AJX-002는 러시아의 '포세이돈'에 견줄 심해 전략무기로, 중국은 수개월간 자율 항해하며 정찰과 핵 타격 임무까지 수행 가능하다고 선전했다. 스텔스 무인 전투기 GJ-11과 CH-7(FH-97)은 '충성스러운 윙맨' 개념을 강조하며, 인공지능(AI) 기반으로 유인기와 협동 작전을 수행한다. 중국은 내부 무장창을 갖춘 정밀 타격 능력까지 보여주며, 전투기와 드론이 결합된 미래전 양상을 예고했다. 아울러 YJ-17 등 극초음속 대함미사일, 로봇개 등 무인전투체계도 공개해 이목을 끌었다.

전투 자동화 중심으로 전환 공식화

군사 전문가들은 이번 열병식에서의 무기 전시를 두고 중국 인민해방군(PLA)이 무인기 중심의 '전투 자동화' 개념으로 전환 중임을 공식화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실제 무인전투체계를 활용한 실시간 전장 인식, 정밀 타격 등은 '지능화된 전쟁'을 향한 PLA 전략의 일환이다. 중국 CCTV에 따르면 올해 중공군 연습 중에 펼쳐진 드론은 중국 무기 제조업체인 노린코(NORINCO)의 지능형 정밀 타격 시스템에 의해 배치됐다. 이 시스템은 UAV(무인기)의 실시간 데이터를 사용해 전장을 모델링하고, 표적을 추적하며, 발사 정보를 배포해 실행한다. 발사 명령을 내리는 것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것이 자율적으로 이뤄진 셈이다.

이와 관련해 중공군 국방대학의 연구원들은 군사 작전에 있어 대규모언어모델(LLM)이 핵심적이라고 강조한다. 방대한 데이터 세트를 신속하게 처리함으로써, 정보 분석을 간소화하고, 무기 개발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현재 중공군은 LLM을 사용해 필요한 시간과 인력의 일부만으로 상세하고 현실적인 운영 시뮬레이션과 훈련 시나리오를 생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PLA 역시 군사 정보, 계획, 의사 결정에 AI를 접목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PLA가 주목하고 있는 시스템은 인민무장경찰공학대학의 연구실에서 개발한 'Aiwu LLM+'로, 이는 LLM, 다중 모드 빅 데이터 분석, 가상 어시스턴트 인터페이스를 결합해 지능형 상호 작용과 지휘 정보 시스템 내의 작업 계획을 제공한다. PLA는 여기서 나아가 지휘관에게 통찰력을 제공하고 의사 결정을 가속화하는 다중 소스 정보 시스템에 AI를 통합하는 것을 구상하고 있다.

中 정부, 자동화 시스템 핵심 육성

이 같은 무인 전력 기술은 드론, 로봇, 무인기, 무인차량 등을 통합해 정보 수집, 정찰, 타격까지 수행할 수 있는 체계로까지 진화 중이다. 중국은 이를 위해 AI 기반 지휘·통제(C2) 시스템과 전장 예측 시스템의 개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드론은 정찰, 통신, 자폭 공격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고 있으며, 대표 기종인 윙룽 시리즈는 고고도 장기체공 능력과 무장 능력까지 갖추고 있다.

중국이 자동화 시스템에 개발에 적극 투자하는 이유는 ‘인력 소모 최소화’에 있다. 인구 대국임에도, 현대전에서 고도의 전문성을 갖춘 장교·참모 인력 양성에는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AI는 그러한 한계를 단숨에 돌파한다. 군사 교범, 역사적 전투 기록, 실시간 위성 데이터 등을 학습한 AI가 수천명의 참모진이 수행할 업무를 대신하는 것은 물론 오히려 더 빠르고 정밀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중국이 일찌감치 자동화 시스템의 미래 가치에 주목해 온 배경이다.

현재 중국 정부는 AI 발전을 국가 전략으로 설정한 2017년 ‘차세대 AI 발전규획’을 시작으로, 올해 3월 ‘군대 장비 과학연구조례’ 개정을 통해 AI 기반 무기체계의 제도적 기반도 강화한 상태다. 아울러 드론산업은 ‘중국제조 2025’ 핵심 육성 분야로 지정됐고, 지상 로봇 분야에서도 4족보행형 무인 플랫폼 개발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기술 확보 전략에서는 민군 협력 방식을 채택했다. 중국의 대표 전투로봇 ‘로봇늑대’의 AI 시스템은 민간 첨단기술 기업인 전신커지가 개발했으며, 다수의 소형 드론을 탑재해 군집 운용이 가능한 무인 공중항모 ‘지우티안’은 드론 전문 기업 산시무인장비기술유한공사와 방산기업이 공동 개발한 사례로 꼽힌다. 이는 민간 기술의 국방 전환을 통해 기술 발전과 전력 자동화의 선순환 구조를 형성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Picture

Member for

10 months 4 weeks
Real name
이동진
Position
기자
Bio
흑백의 세상에서 회색지대를 찾고 있습니다. 산업 현장을 취재한 경험을 통해 IT 기업들의 현재와 그 속에 담길 한국의 미래를 전하겠습니다.

"신성장 동력 찾자" HMM 인수 나선 포스코, 실질적 시너지는 '의문'

"신성장 동력 찾자" HMM 인수 나선 포스코, 실질적 시너지는 '의문'

Picture

Member for

10 months 4 weeks
Real name
전수빈
Position
연구원
Bio
독자 여러분과 '정보의 홍수'를 함께 헤쳐 나갈 수 있는 뗏목이 되고 싶습니다. 여행 중 길을 잃지 않도록 정확하고 친절하게 안내하겠습니다.

수정

포스코, HMM 인수 위해 대규모 자문단 꾸려
포스코는 신성장 동력, 산은은 BIS 비율 리스크 해소 노린다
물류 시너지 기대하는 포스코, 증권가 등은 '갸우뚱'

포스코그룹이 HMM 인수에 속도를 내고 있다. 본업인 철강 사업이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자, 수십 년 만에 해운업으로 눈길을 돌리며 새로운 성장 동력을 모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HMM과 포스코의 사업 형태를 고려하면 양 사 간 유의미한 시너지가 발생하기는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내놓는다.

HMM 인수 시동 거는 포스코

5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최근 포스코는 HMM 인수 준비를 위해 삼일PwC, 보스턴컨설팅그룹 등과 계약을 맺고 대규모 자문단을 꾸렸다. 회계법인과 로펌, 컨설팅 업체를 대거 고용해 HMM의 사업성을 검토하고 구체적인 인수 전략을 세우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HMM의 대주주는 산업은행(36.02%)과 한국해양진흥공사(35.67%)다. HMM의 자사주 공개매수가 이달 중순 마무리되면 산은과 해진공 보유 지분은 각각 30%대 초반으로 떨어진다.

포스코는 산은이 보유한 HMM 지분 약 30% 인수를 추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HMM의 거대한 몸집으로 인해 인수 부담이 상당한 만큼, 산은의 지분만을 확보해 지분 매각 의사가 크지 않은 해진공과 공동 경영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실제 HMM 시가총액은 약 23조원에 달한다. 산은 지분만을 매입한다고 해도 포스코는 약 7조원에 달하는 비용을 지출해야 하는 셈이다. 

포스코가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며 HMM 인수에 나선 것은 신성장 동력이 절실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현재 포스코는 본업인 철강 사업에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으며, 신사업인 2차전지 소재에서도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상태다. 이에 장인화 포스코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철강 및 2차전지 소재와 시너지를 이루며 그룹 사업 포트폴리오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미래 신사업을 육성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포스코가 택한 '미래 신사업'이 곧 해운업인 셈이다. 포스코가 해운업에 뛰어드는 것은 포항제철 시절인 1995년 거양해운을 한진해운에 매각한 이후 30년 만이다.

HMM 주가 오르면 산은이 운다?

지분 매각에 나선 산은 측 역시 원금 회수가 필요한 입장이다. 산은과 해진공이 HMM에 자본 형식으로 투자한 금액은 총 4조2,000억원으로 추정된다. 2016년 당시 현대상선 구조조정 과정에서 산은 등 채권단이 대주주로 전환되며 1조6,000억원 상당의 출자 전환이 이뤄졌고, 2020년 7,200억원 규모 영구 전환사채(CB) 인수와 유상증자 참여 등으로 2조6,000억원가량이 추가 투입됐다. 이에 따라 산은은 HMM 지분 36.02%(3억6,919만 주)를 보유한 최대 주주로 등극했다.

문제는 HMM의 덩치가 커지며 산은이 BIS 규정에 따른 위험가중치를 부과받게 됐다는 점이다. BIS는 은행이 자기자본 대비 특정 기업 지분을 15% 이상 보유할 시 15%가 넘는 지분에 위험가중치 1,250%를 매긴다. HMM 주가는 5일 오전 10시 40분 기준 2만3,050원으로, 이를 기준으로 계산한 HMM 지분 총액은 8조5,100억원에 달한다. 이는 지난 1분기 말 기준 산은 총자본(47조7,045억원)의 15%를 훌쩍 웃도는 규모다.

BIS 비율은 위험 가중 자산이 자기자본에서 차지하는 비율로, 위험 가중치가 높아지면 위험 가중 자산이 늘어 BIS 비율이 낮아진다. 금융당국은 BIS 비율을 13% 이상으로 유지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BIS 비율이 13% 밑으로 떨어지면 산은은 건전성 관리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기업 대출을 늘리기도 어려워진다. HMM 주가가 오를수록 산은의 BIS 비율이 하락하며 정책금융 공급 여력이 위축되는 구조인 셈이다. 이에 금융감독원은 지난 7월 HMM의 지분 가치가 산은 자기자본의 15%를 초과하더라도 향후 3년간 초과액에 대해 위험가중치를 적용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담은 비조치 의견서를 발급하기도 했다.

HMM의 컨테이너선/사진=HMM

양 사 시너지 창출 가능할까

포스코는 HMM 인수를 통해 그룹의 오랜 고민거리인 물류 불확실성과 비효율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HMM의 선박을 활용해 물류 대란 등에서 발생하는 리스크를 최소화하겠다는 구상이다. 현재 포스코그룹 계열사들은 유연탄과 철강재, 배터리 소재 원료 등을 수입하기 위해 연간 3조원에 달하는 물류비용을 쓰고 있다. 포스코플로우(옛 포스코터미날)로 그룹 물류 업무를 모아 효율화를 꾀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다만 증권가에서는 양 사가 유의미한 사업 시너지를 창출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제기된다. 최용현 KB증권 연구원은 "포스코는 국내 해운 물동량의 10%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물류비 절감을 노린 인수 명분은 있지만, 포스코가 주로 활용하는 벌크선과 달리 HMM 매출의 80% 이상은 컨테이너선에서 발생해 직접적 시너지는 제한적"이라며 "포스코인터내셔널이 운영 중인 LNG 터미널을 활용한 벙커링 수요 확대도 기대할 수 있으나, HMM의 LNG 추진선은 현재 2척에 불과하다"고 짚었다. 아울러 "해운법상 특정 대량 화물 화주가 해운 사업에 진출할 경우 해양수산부 정책자문위 허가가 필요한 점도 잠재적 걸림돌로 꼽힌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포스코 측이 대규모 자문단을 꾸린 것이 이 같은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 시장 전문가는 "인수합병(M&A)에 착수하는 기업들이 외부의 유명 컨설팅 회사에 의뢰해 시너지 분석을 실시하는 것은 결국 내부 반발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며 "전문가의 의견을 빌려 거래의 '명분'을 만들고, 주주를 비롯한 이해관계자들을 납득시키는 과정"이라고 짚었다.

Picture

Member for

10 months 4 weeks
Real name
전수빈
Position
연구원
Bio
독자 여러분과 '정보의 홍수'를 함께 헤쳐 나갈 수 있는 뗏목이 되고 싶습니다. 여행 중 길을 잃지 않도록 정확하고 친절하게 안내하겠습니다.

日, 스테이블코인 발행 임박, 中도 ‘페트로 달러’에 도전장

日, 스테이블코인 발행 임박, 中도 ‘페트로 달러’에 도전장

Picture

Member for

11 months
Real name
김민주
Position
기자
Bio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는 지금 정보의 바다에 살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이 표류하지 않도록, 정확한 정보만 골라 빠르게 전달하겠습니다.

수정

‘현금 왕국’ 일본, 엔화 담보 스테이블코인 발행 추진
스테이블코인 연구 막았던 중국도 활용으로 선회
'페트로 위안화 굴기' 전략, 달러 패권 도전 가속

금융 분야 디지털 전환이 늦고 현금 거래량이 비교적 많아 ‘현금 왕국’으로 불리는 일본에서 첫 엔화 스테이블코인 승인이 임박한 가운데, 중국에서도 달러 견제를 위해 위안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발행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중국은 2021년 암호화폐 전면 금지 이후 스테이블코인에 대해서도 강경 기조를 유지했으나, 이를 ‘페트로 달러’를 흔들 수 있는 잠재적 도구로 인식해 입장을 선회한 모습이다.

日 금융청, 엔화 스테이블코인 첫 승인 예정

4일(이하 현지시간) 암호화폐 전문매체 코인데스크US에 따르면 일본 금융청(FSA)은 빠르면 올가을 첫 엔화 표시 스테이블코인을 승인할 예정이다. 도쿄 기반 핀테크 기업 JPYC가 이달 중 자금이체업 등록을 추진 중이며, 스테이블코인 JPYC는 1JPYC=1엔으로 설계돼 엔화 연동 스테이블코인 출시를 주도할 예정이다. JPYC는 일본 국채도 사들일 방침이다. 일본 국채를 코인 발행의 재원으로 삼겠다는 의미다. 오카베 노리타카 JPYC 대표는 “스테이블코인 발행이 늘지 않는 국가의 국채 금리는 앞으로 점점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JPYC 외에도 도쿄 소재 금융서비스사 모넥스그룹 역시 국제 송금 및 기업결제를 위한 엔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검토 중이다. 모넥스그룹 회장 마쓰모토 오키는 현지 언론에 "스테이블코인 발행에는 막대한 인프라와 자본이 필요하지만, 우리가 하지 않으면 뒤처질 수 있다"고 전했다. 앞서 일본 금융청은 2023년 6월 시행된 자금결제법(PSA) 개정을 통해 스테이블코인을 전자 결제 수단으로 인정했다. 해당 법에는 스테이블코인의 정의와 발행 주체, 취급 라이선스 등에 관한 내용이 상세히 규정돼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달러, 유로, 엔화 등 외부 자산에 가치를 고정한 암호화폐인 만큼 가격 안정성이 확보될 수 있다. 이는 무역·투자·송금·국제결제 등에서 자본 이전을 원활히 하고 기존 암호화폐의 변동성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기능한다. 반면 비트코인 가격의 경우 가격 변동성이 여전히 커 안전자산인 엔화를 담보로 한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수요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중국, 스테이블코인 규제에서 입장 선회

그간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 발행에 몰두해 온 중국도 위안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발행 검토에 나섰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중국 국무원은 지난달 말 톈진에서 열린 상하이 협력 기구(SCO) 정상회의에서 일부 국가와 국경 간 무역 및 지불에 위안화와 스테이블코인 사용을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디지털 자산에 대한 중국의 접근 방식에 큰 변화가 생겼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중국은 금융 시스템 안정성에 대한 우려로 2021년에 암호화폐 거래와 채굴을 금지했다. 더군다나 스테이블코인에 대해서는 지난달 초까지만 해도 관련 연구와 세미나를 금지하는 등 규제를 강화해 왔다. 이와 관련해 싱가포르의 대표 은행 OCBC의 크리스토퍼 웡 통화전략가는 "중국 정부는 개인 투자자들이 스테이블코인을 투기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막으려 한다"고 분석했다. 실제 해당 규제 중국이 암호화폐 규제를 강화하는 흐름 속에서 나온 조치로, 당국은 은행들에 암호화폐 관련 거래를 모니터링하고 불법 금융활동을 차단하도록 요구했다.

다만 홍콩은 예외적으로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허용하는 규제 샌드박스로 활용되고 있다. 최근 스탠다드차타드(SC) 홍콩 지사는 웹3 소프트웨어 기업 애니모카브랜즈와 협력해 홍콩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개발할 계획을 발표했다. 웹쇼핑 플랫폼 징동닷컴과 알리페이 운영사인 앤트그룹도 홍콩에서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추진 중이며, 중국의 벨트앤로드 이니셔티브와 연계된 위안화 기반 스테이블코인도 개발되고 있다. 그러나 해당 스테이블코인은 해외 시장만을 겨냥한 것으로, 스테이블코인 규제를 강화하면서도 홍콩을 활용해 글로벌 디지털 화폐 시장에 영향력을 확대하는 이중 전략을 펼친 셈이다.

'페트로 위안화' 전략으로 달러 패권 도전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중국의 입장 변화 이면에는 페트로 달러를 무너뜨릴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현재 중국 정부는 스테이블코인을 위안화의 글로벌 영향력을 확장할 유망한 도구로 보고 있다.

이미 중국 정부는 달러 패권을 흔들고, 위안화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100년 계획을 세운 바 있다. 여기엔 '페트로 위안화' 전략 등 과거 미국이 달러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썼던 방법도 모방되고 있다. 특히 중국은 러시아와의 거래에서 페트로 위안 접근 방식을 적극 사용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의하면 2024년 말 기준 양국 간의 무역의 90%가 위안화와 루블로 결제돼 달러를 우회한 것으로 파악됐다.

최근 중국이 위안화 스테이블코인을 석유 거래에 사용하는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는 움직임도 같은 맥락이다. 석유 결제는 전통적으로 지배적인 글로벌 통화의 영역이었다. 석유 거래와 같은 글로벌 결제 채널이 확보되면 위안화의 점유율이 크게 증가할 수 있다. 현재 국제금융망인 SWIFT에서 위안화는 국제 결제의 2.88%만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달러의 47.19%에 비해 매우 낮은 수치다.

최근 들어 중국 국영 에너지기업인 중국석유천연가스집단유한공사(CNPC)가 홍콩 금융관리국의 스테이블코인 라이선스 동향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있는 것도 페트로 위안화 전략의 일환이다. 이는 스테이블코인 발행자가 되려는 의도로, CNPC와 같은 최상위 에너지 기업이 스테이블코인을 국경 간 거래에 사용할 경우 결제 시간과 비용이 크게 줄어드는 것은 물론, 석유 거래에서의 달러 지배력을 약화할 수 있다.

Picture

Member for

11 months
Real name
김민주
Position
기자
Bio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는 지금 정보의 바다에 살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이 표류하지 않도록, 정확한 정보만 골라 빠르게 전달하겠습니다.

[딥테크] AI 번역 보편화, 단순 일자리 줄고 전문 영역 수요 지속

[딥테크] AI 번역 보편화, 단순 일자리 줄고 전문 영역 수요 지속

Picture

Member for

3 months 1 week
Real name
송혜리
Position
연구원
Bio
다양한 주제에 대해 사실에 근거한 분석으로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 전달에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수정

AI 번역 확산으로 단순 번역 일자리 줄고, 전체 고용 구조 재편
자동화 확산으로 범용 시장 가격 하락으로 소득 격차 심화
언어 교육, 기술과의 결합으로 전문성 강화 필요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Research Memo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AI) 번역은 노동시장의 구조를 바꾸고 있다. 단순 번역 업무의 수요는 줄고 있지만, 전문 지식을 요구하는 고부가가치 영역은 여전히 유지된다. 신경망 기계번역(Neural Machine Translation, NMT)이 2010년대 이후 빠르게 보급되면서 번역가 고용 양상도 달라졌다. 연구에 따르면 기계번역 사용률이 1% 증가할 때마다 번역가 고용 증가율은 0.7% 낮아졌다. 이에 따라 2010~2023년 사이 2만 8,000개의 신규 일자리가 줄어든 것으로 추산된다. 영어-스페인어 같은 널리 쓰이는 언어 조합에서도 외국어 능력을 요구하는 구인 공고는 많이 감소했다.

이는 단순한 일자리 소멸이 아니라 직업 구조가 점차 재편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교육은 이제 번역을 데이터, 법률, 보건 등 다른 분야와 결합해 전문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환돼야 한다. 정책 역시 학생들이 기계와 경쟁하기보다 기계와 협력해 결과를 관리할 수 있도록 설계될 필요가 있다.

사진=ChatGPT

기술 확산과 새로운 수요

기술은 빠르게 진전되고 있다. 억양과 음성을 살려 실시간으로 통역하는 시스템이 등장했고, 대규모 언어모델(LLM)은 국제 번역 평가에서 기존 기계번역을 능가하는 성과를 보였다. 다만 현장 적용 속도는 제각각이다. 자동화가 먼저 자리 잡은 분야에서는 번역가의 소득이 이미 줄었고, 인간 번역을 완전히 대체하기 전부터 시장에서 가격 압박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번역 일자리 감소가 곧 직업 가치의 하락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기계가 기본적인 번역을 저비용으로 제공하더라도, 오류가 치명적인 영역에서는 인간 번역가의 수요가 여전히 크다. 법률 문서, 의료 기록, 대규모 데이터 검증이 대표적 사례다.

산업 재편과 노동시장 통계

상업 번역 산업은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기계번역 후편집(Machine Translation Post-Editing, MTPE)은 다수 업체에서 기본 생산 방식으로 정착했고, 국제 번역 평가대회(Workshop on Machine Translation, WMT)에서는 대규모 언어모델이 기존 시스템과 경쟁하고 있다. 메타의 심리스(Seamless) 프로젝트는 지연 없는 음성 번역을 대중화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현재 번역 과정은 기계가 초안을 작성하고, 인간이 이를 검증해 법률·재정·의료 등 오류가 치명적인 영역에서 정확성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노동시장 통계는 산업의 변화를 동시에 보여준다. 출판업계 조사와 노조 설문에서는 번역가의 3분의 1 이상이 생성형 AI 확산으로 일감이나 수입을 줄였다고 답했다. 반면 미국 노동통계국은 2024년 통역·번역가의 연간 중위 임금을 약 5만9천 달러(약 8,100만 원)로 집계했고, 2034년까지 고용이 2%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성장률은 낮지만 산업이 붕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법원, 병원, 정부 등 전문·공공 부문의 수요가 고용을 떠받치고 있는 반면, 범용 번역 서비스 시장에서는 가격이 빠르게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4~2024년 구글 번역(Translator/Google Translate) 검색 추세
주: 연도(X축), Translator 검색 지수(좌측 Y축, 파란색 선), Google Translate 검색 지수(우측 Y축, 빨간색 선)/전통적 번역사에 대한 검색 수요는 감소했지만, 구글 번역과 같은 자동 번역 도구는 대중적 사용 기반을 확고히 구축한 것으로 나타난다.

가격 구조 변화

자동화가 번역 단가에 미치는 영향은 뚜렷하다. 프리랜서 번역가는 시간당 약 20달러(약 2만7천 원), 단어당 0.10~0.12달러(약 135~160원)를 받지만, 일부 플랫폼에서는 단가가 단어당 0.06달러(약 80원)까지 떨어졌다. 기계번역 후편집은 일반 번역의 절반 수준에서 가격이 책정된다.

인간 번역가는 시간당 400~600단어를 처리하고, 후편집은 800~1,000단어까지 가능하다. 이 경우 범용 시장에서는 시간당 수입이 생활임금 이하로 떨어질 수 있다. 반대로 법률·의료·기술 분야처럼 오류의 대가가 큰 영역은 여전히 높은 단가가 유지된다. 즉, 고객 유형과 분야별 위험 부담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고, 자동화는 품질 허용 범위가 넓은 영역일수록 가격을 낮추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언어 학습의 변화

언어 학습 수요는 지역별로 다른 흐름을 보인다. 미국에서는 2016~2021년 고등교육 단계 외국어 수강 인원이 16% 넘게 줄었고, 2009년과 비교하면 30% 가까이 감소했다. 이에 비해 유럽에서는 2023년 일반계 고등학교 학생의 60%가 두 개 이상의 외국어를 배우고 있다. 유럽은 다국적 협력과 인적 이동이 활발한 환경이라는 인식 속에서 언어 교육의 필요성이 유지되고 있으나, 미국은 기계번역 확산으로 언어 학습 필요성이 약화됐다는 인식을 반영한다.

교육의 대응 과제

기계번역이 일상화된 환경에서 교육은 핵심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번역 품질을 평가하고 오류를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후편집은 단순 보조가 아니라 전문 기술로 자리매김해야 하며, 체계적 훈련을 통해 품질 편차를 줄이고 판단력을 높여야 한다. 교육과정 초반부터 법률·생명과학 등과 결합한 전문화를 도입하고, 용어 관리와 규제 이해, 실제 산업 연계 프로젝트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초중등 교육에서는 기계번역을 학습 도구로 활용해 학생들이 결과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이를 통해 정보 검증과 미디어 리터러시를 기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기업은 언제 전문 번역이 필요한지, 언제 기계번역이나 후편집만으로 충분한지를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 이는 언어 서비스의 품질을 높이고, 교육 현장이 산업 수요와 맞물려 작동하도록 돕는다.

인간이 맡는 영역

AI 번역이 언어 직무를 완전히 대체할 것이라는 우려는 과장돼 있다. 기술 성능은 빠르게 향상되고 있지만 현장 도입 속도에는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 번역 시스템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의 판단과 오류 감지 능력은 여전히 필요하다. 결국 기계가 넘지 못하는 영역은 남아 있으며, 법률·의료·데이터 관리처럼 정확성과 책임을 필요로 하는 분야에서 인간 번역가의 역할은 지속될 것이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Learning in the Age of Good-Enough Translation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

Picture

Member for

3 months 1 week
Real name
송혜리
Position
연구원
Bio
다양한 주제에 대해 사실에 근거한 분석으로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 전달에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엑시노스가 돌아온다" 삼성전자, 퀄컴 AP 독주에 본격 제동

"엑시노스가 돌아온다" 삼성전자, 퀄컴 AP 독주에 본격 제동

Picture

Member for

10 months 4 weeks
Real name
김서지
Position
기자
Bio
매일같이 달라지는 세상과 발을 맞춰 걸어가고 있습니다. 익숙함보다는 새로움에, 관성보다는 호기심에 마음을 쏟는 기자가 되겠습니다.

수정

삼성전자, 갤럭시 S26 시리즈에 엑시노스 2600 탑재
성능·수율 대폭 개선, 퀄컴 AP 독주 체제 흔들리나 
2나노 경쟁력 갖춰가는 삼성전자 파운드리

삼성전자가 내년 초 공개할 최신 스마트폰 갤럭시 S26 시리즈에 자사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엑시노스 2600'을 탑재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기술적 도전 끝에 엑시노스 2600의 성능과 수율이 대폭 개선되자, 퀄컴의 AP 독주 체제를 막기 위한 행보가 본격화하는 양상이다.

자리 되찾은 엑시노스 2600

4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출시 예정인 갤럭시 S26 시리즈 중 기본형과 슬림 모델에는 엑시노스 2600을, 최상위 울트라 모델에는 퀄컴 스냅드래곤 8 엘리트 2세대를 탑재할 예정이다. 모델별로 탑재 AP를 차별화한 것이다. 지역별 공급 전략도 과거 체제로 부활한다. 한국과 유럽향 제품에는 주로 엑시노스를, 북미향에는 퀄컴 칩을 적용하는 식이다.

삼성전자가 엑시노스 복귀를 추진한 배경에는 기술적 자신감이 있다. 엑시노스 2600은 삼성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2나노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공정으로 제작되는 첫 플래그십 칩으로, 전력 효율과 발열 제어 성능이 전작보다 크게 향상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최근 공개된 벤치마크 점수를 살펴보면 엑시노스 2600은 긱벤치 6에서 싱글코어 3,309점, 멀티코어 1만1,256점을 기록했다. 이는 갤럭시 S25 시리즈에 탑재된 퀄컴 스냅드래곤 8 엘리트(싱글코어 2,900점, 멀티코어 9,300점)보다 각각 14%, 21% 높은 수치다.

2나노 AP 생산의 가장 큰 장애물로 꼽혔던 수율 문제 역시 눈에 띄게 개선된 것으로 전해진다. 한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삼성 파운드리는 연초까지만 해도 30%에 그쳤던 2나노 공정 수율을 현재 50% 수준까지 끌어올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연말까지 목표치인 수율 70% 달성을 위해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고 귀띔했다.

퀄컴에 의존하는 시대 끝나나

시장에서는 이번 엑시노스의 복귀가 단순한 제품 구성의 변화를 넘어 삼성 반도체 전체 사업의 위상을 가늠할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엑시노스 2600이 퀄컴 스냅드래곤 최신 칩과 대등한 성능을 입증할 경우, 삼성전자는 시스템LSI와 파운드리의 신뢰도를 동시에 끌어올리고 글로벌 반도체 시장 내 입지를 더욱 강화할 수 있다.

이번 복귀가 퀄컴 독점 체제를 흔드는 전환점이 될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최근 대부분의 삼성 플래그십 스마트폰에는 퀄컴 칩만이 탑재됐다. 이에 퀄컴은 지난달 열린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삼성 스마트폰 내 칩셋 점유율의 새 기준선을 75%로 정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만약 엑시노스 2600이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할 경우, 퀄컴의 독점 구조가 무너지며 글로벌 스마트폰 AP 시장에 지각변동이 발생할 수 있다.

이 같은 변화는 스마트폰 사업을 담당하는 모바일경험(MX) 사업부에도 호재다. 퀄컴이 AP를 수주하는 TSMC의 파운드리 공정 단가가 지속적으로 인상되면서 퀄컴 칩 가격 역시 전 세대 대비 크게 상승한 탓이다. 엑시노스 2600을 통해 수직계열화에 성공할 경우 상당한 수준의 비용 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의미다.

파운드리 경쟁력 강화 기회

파운드리 사업부에도 엑시노스의 재투입은 희소식이다. 엑시노스 2600 생산을 통해 2나노 공정 성장세에 힘을 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삼성전자 2세대 2나노(SF2P) 공정의 시장 존재감은 눈에 띄게 확대된 상태다. SF2P 공정을 채택하는 기업들이 점진적으로 증가하며 본격적인 개발 및 수율 향상의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SF2P는 삼성전자가 내년 양산을 목표로 개발 중인 차세대 공정이다. 1세대 2나노(SF2) 공정 대비 성능은 12% 향상됐으며, 소비 전력은 25%, 면적은 8%가량 줄일 수 있다.

SF2P의 핵심 고객사로는 테슬라가 꼽힌다. 앞서 삼성전자는 지난 7월 테슬라와 22조원 규모의 반도체 위탁생산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테슬라의 차세대 FSD(Full Self-Driving), 로봇, 데이터센터 등 사업 전반에 활용할 수 있는 고성능 시스템반도체 'AI6'를 SF2P 공정을 활용해 양산하는 것이 계약의 핵심이다. 현재 삼성전자는 국내 파운드리 및 패키징 설비를 통해 AI6 칩의 초도 샘플 제작을 진행 중이며, 이후 테일러시에 구축 중인 신규 파운드리 팹에서 본격적인 양산에 나설 예정이다.

AI 반도체 사업 확대를 노리는 국내 팹리스(반도체 설계) 기업들도 SF2P 공정에 주목하고 있다. 이달 중순 딥엑스는 삼성 파운드리 및 DSP(디자인솔루션파트너)인 가온칩스와 협력해 차세대 생성형 AI 반도체인 'DX-M2'를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DX-M2는 SF2P 공정을 기반으로 하며, 내년 상반기 시제품 생산 격인 MPW(멀티프로젝트웨이퍼)를 거쳐 2027년 양산될 예정이다. 이에 더해 삼성전자가 에이디테크놀로지, Arm, 리벨리온과 협력 개발하기로 한 차세대 AI 컴퓨팅 칩렛 플랫폼도 SF2P 공정을 채택했다.

Picture

Member for

10 months 4 weeks
Real name
김서지
Position
기자
Bio
매일같이 달라지는 세상과 발을 맞춰 걸어가고 있습니다. 익숙함보다는 새로움에, 관성보다는 호기심에 마음을 쏟는 기자가 되겠습니다.

[딥파이낸셜] 미국 관세가 소비세나 다름없는 이유

[딥파이낸셜] 미국 관세가 소비세나 다름없는 이유

Picture

Member for

11 months
Real name
김영욱
Position
연구원
Bio
경영학 전공에 관리자로 일했고 재무, 투자, 전략, 경제 등이 관심 분야입니다. 글로벌 전문가들의 시선을 충분히 이해하고 되새김질해 그들의 글 너머에 있는 깊은 의도까지 전달하고자 합니다.

수정

올해 미국 관세, 인플레이션율 0.4% 추가
최대 피해자는 미국 수입업체와 소비자
저소득 가구 피해도 ‘무시 못 해’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관세에 대한 정치적 논쟁은 흔히 무역 상대국에 대한 응징이나 국내 산업 보호라는 명분으로 포장되고는 한다. 하지만 미국 의회예산처 추산에 따르면 최근 미국의 관세 조치가 올해와 내년에 걸쳐 0.4%의 연간 인플레이션을 추가할 것이라고 한다. 결국 가장 큰 피해자는 미국 내 가구와 기업이라는 얘기다.

미국 관세 최대 피해자, 중국 아닌 ‘미국 기업과 가구’

숫자 자체만 보면 매우 작아 보이지만 이 정도면 미국 중위 소득 가구의 일주일 치 실질 임금에 해당한다. 관세 때문에 통장에 들어와 보지도 못하고 사라지는 근로자들의 소득이다. 관세로 인한 직접적인 비용도 해외 수출기업이 아닌 미국 수입업체와 학교, 가구가 대부분을 부담하게 된다.

미국 국제 무역 위원회가 2018~2021년 기간의 관세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수입 물가는 거의 정확하게 관세율을 따라 오른다. 미국 정부가 관세를 인상하자마자 해당 비용이 공급망을 따라 흘러내리는 것이다. 현재 도입되고 있는 신규 관세의 영향도 마찬가지다. 연방 정부의 자산 상태는 더 견고해 보이겠지만 가구와 학교의 예산은 압박을 받을 것이다.

이렇게 미국 정부의 관세 정책은 교묘하게 세금 부담 주체를 바꾼다. 정책 당국은 소득세 과세 구간에 대한 부담스러운 논의를 피하고 이름만 바꾼 소비세라고 할 수 있는 관세를 통해 국고를 채우고 있다. 또 다른 연구에 따르면 올해 도입된 일련의 관세 조치들이 미국 가구당 연간 1,300달러(약 181만원)의 추가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한다. 관세의 시기와 구성에 따라 물가 역시 1.8~2.3%의 상승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한다.

역진세 성격으로 저소득 가구에 더 큰 피해

여기에 관세는 역진세적 성격이 강하다. 일반재에 해당하는 의류, 신발, 식료품 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쳐 저소득 가구가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할 수밖에 없다. 부자에 대한 과세를 원칙으로 하는 정부라면 완전히 반대 방향의 정책이다.

소득세에서 관세로 바뀐 트럼프 행정부 재정 정책이 소비 계층에 미치는 영향(세후 소득 변화, %)
주: 20% 이하, 20%~40%, 40%~60%, 60%~80%, 80%~100%, 상위 1% 소득 계층(좌측부터) / 2017년 트럼프 감세 연장 조치 영향(적색), 관세 영향(하늘색), 순 영향(청색)

교육 예산에 대한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철강 및 알루미늄 관세는 학교 건설 비용을 증가시키고, 전자제품 및 반도체에 대한 과세는 크롬북이나 STEM(과학, 기술, 공학, 수학) 분야 연구실 장비 비용을 치솟게 한다. 관세가 경제 전체에 적용되기 때문에 학교 당국은 더 싼 구매처를 찾기도 어렵다. 양이나 질 중 하나를 포기하거나, 시설 업그레이드를 연기하거나, 지역 주민들에게 추가 세금을 거두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숫자는 이미 바뀌는 중이다. 올해 상반기 재고가 소진된 이후 소매 기업들은 관세를 내세워 통조림류, 하드웨어 장비, 전자제품 가격을 올렸다. 수입 물가는 수요가 냉각되는 시점인데도 소비자들의 주머니를 압박하고 있다.

관세 절반이 미국 수입업체에 전가

결국 관세 비용을 부담하는 쪽은 정해져 있다. 지난 관세를 연구한 결과들은 한결같이 관세 인상이 거의 대부분 수입품 가격과 소비자 물가에 반영된 결과를 입증한다. 이 틈을 타 관세와 무관한테도 제품 가격을 올리는 국내 기업들도 있다.

올해 상반기도 마찬가지다. 대략 절반의 관세가 미국 내 수입업체에 비용으로 전가됐고, 소비자들도 상당한 비용을 떠안았다. 해외 수출업자의 부담은 그렇게 크지 않다. 정치인들이 상대국을 벌준다며 발의한 정책의 부작용을 국민들이 감당하는 모습이다.

2025년 관세 부담 주체
주: 미국 수입업체, 미국 소매 및 유통업체, 미국 소비자, 중국 수출업체(보기 위부터)

대규모 소비세 인상과 ‘다를 바 없어’

관세 지지자들은 중국의 생산 과잉에 대한 대응 및 연방 정부 예산 문제 해결 등 전략적 목표 달성을 위해 관세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광범위한 관세 조치는 전면적인 세금 인상과 다를 바 없이 가구와 학교, 대학의 구매력을 끌어내린다. 따라서 포괄적 관세는 특별한 이유가 증명되지 않는 이상 일정 기간 후 자동 소멸하는 게 맞다.

또 관세 수입의 일부는 타이틀 1(Title I, 저소득 학생 지원 프로그램), 장애인 교육법(IDEA), 펠 그랜트(Pell Grant, 저소득 학생 보조금) 등을 조정해 학교를 포함한 공익 구매자들을 위한 충당금에 사용돼야 한다. 그리고 진짜 목표가 상대국의 덤핑이나 보조금을 통한 경쟁 전략을 봉쇄하는 것이라면 관세보다는 구체적인 목표에 근거한 정책 수단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결론적으로 현재의 관세 조치는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일반 소비세 인상 효과로 모양이 잡혀가고 있다. 물가는 소리 없이 올라 누적되고 있으며 그로 인한 부담은 가계를 향하고 있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Tariffs Are Taxes—And the Bill Lands at Home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

Picture

Member for

11 months
Real name
김영욱
Position
연구원
Bio
경영학 전공에 관리자로 일했고 재무, 투자, 전략, 경제 등이 관심 분야입니다. 글로벌 전문가들의 시선을 충분히 이해하고 되새김질해 그들의 글 너머에 있는 깊은 의도까지 전달하고자 합니다.

트럼프 ‘관세 카드’ 결국 대법원행, 절차·물가 논쟁 본격화

트럼프 ‘관세 카드’ 결국 대법원행, 절차·물가 논쟁 본격화

Picture

Member for

10 months 4 weeks
Real name
안현정
Position
연구원
Bio
정보 범람의 시대를 함께 헤쳐 나갈 동반자로서 꼭 필요한 정보, 거짓 없는 정보만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오늘을 사는 모든 분을 응원합니다.

수정

신속 상고로 불확실성 차단 움직임
절차적 정당성 결여 쟁점으로 부상
물가 경로·경제 영향에 이목 집중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를 둘러싼 행정명령의 효력을 부정한 항소법원의 판결에 불복하며 대법원 신속 심리 요청에 나섰다. 그는 관세가 사라지면 미국의 정체성도 흔들릴 것이라고 주장하며 정치적 정당성 확보에 열을 올렸다. 이번 소송은 대통령의 독단적인 행정명령이 의회 권한을 침해했는지가 핵심 쟁점으로, 절차 준수 여부가 대법원 판단을 가를 전망이다. 다만 최종 판결이 내년 초로 예상되는 만큼 관세 지속이 미국 내 물가와 경제 전반에 미칠 파급효과 또한 법원의 판결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시장 불안 확대 가능성 경계

3일(이하 현지시각)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연방대법원에 상호관세의 적법성에 관한 판단을 신속하게 하도록 요청할 방침”이라며 “관세를 없애면 우리는 제삼 세계 국가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항소법원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한 상호관세 부과가 대통령 권한을 넘어선다고 판단한 데 불복해 조속히 대법원 심리를 열어달라고 요구하며 “잘못된 결정은 재앙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법적 방어를 넘어 정치적 정당성 확보를 노린 시도로도 읽힌다. 그는 “우리는 수조 달러를 관세로 벌어들였고, 모든 국가가 협정에 동의했다”고 주장하며 “관세는 미국 산업과 투자 유치의 원동력”이라고 힘줘 말했다. 나아가 “주식시장이 항소법원의 판결 때문에 하락했다”며 금융시장 불안을 이유로 대법원의 조기 개입을 압박했다. 이는 관세 정책이 자국 경제와 안보 전반을 지탱하는 축이라는 인식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앞서 지난달 29일 미 항소법원은 7대 4로 IEEPA에 따른 상호관세 부과는 위법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다만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오는 10월 14일까지 관세 효력을 유예했다. 이에 따라 현행 관세는 유지되지만, 시장에서는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주를 이룬다. 미 세관국경보호청(CBP)에 의하면 지난달 25일 기준 IEEPA에 따라 부과된 관세는 총 658억 달러(약 91조원)에 달한다. 관세 무효가 확정되면 대규모 환급 문제가 현실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정부와 시장 모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양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의 신속 상고 요청 배경에는 대법원의 정치적 지형도 자리한다. 현재 대법관 9명 중 6명이 공화당 성향으로 분류되며, 트럼프 대통령이 첫 임기 당시 직접 임명한 인사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법조계에선 아무리 보수 성향이라 해도 대통령의 권한과 그 범위를 해석하는 데는 신중할 수밖에 없다는 평이 우세하다. 결국 이번 상고는 트럼프 대통령이 강조하는 정치적·경제적 상징성과 대법원이 중시하는 법적 절차 원칙이 맞부딪히는 시험대가 될 것이란 게 법조계 전반의 평가다.

행정명령 남용 논란 ‘활활’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 관세를 강행한 근거로 제시한 IEEPA는 국가안보 위기 상황에서 대통령에게 긴급 규제 권한을 부여하기 위한 법률이다. 그러나 연방항소법원은 IEEPA 어디에도 ‘관세’에 관한 언급이 없고, 세율 부과 권한은 헌법상 의회에 귀속된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이 단일 행정명령으로 최대 50%에 달하는 관세율을 임의로 정한 것은 권한 남용에 해당한다는 것이 판결의 핵심이다. 법원은 절차적 안전장치가 없는 상태에서 대통령이 무제한적 권한을 행사한다면 입법권을 침해하는 중대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자유무역협정(FTA) 실제 국제 통상 규범과 비교하면 문제는 더 명확해진다. FTA 수년간의 국제 협상과 각국 의회의 비준, 대통령의 공포 과정을 거친 후 최소 6개월이 지나야 효력이 발생한다. 만약 이 과정에서 분쟁이 발생할 경우,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고 판정이 나오기까지 다시 수년이 소요된다. 국제 무역 질서에서 관세는 이처럼 복잡하고 다층적인 절차를 통해 관리되는 제도다. 이 때문에 법원은 이번 사안을 단순한 정책 문제를 넘어 입법 절차를 무력화한 중대한 위헌적 조치로 규정했다.

법리적 쟁점은 ‘중대한 질문(Major Questions) 원칙’과도 맞닿아 있다. 그간 미 연방 대법원은 사회·경제 전반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행정부가 독자적으로 시행할 경우, 반드시 의회의 명시적 승인 근거가 필요하다고 판시해 왔다. 온실가스 배출 규제나 학생 대출 탕감 조치 등을 무효화한 판례가 대표적이다. 이번 사안 역시 수조 달러 규모의 무역 흐름과 글로벌 공급망 전반에 영향을 주는 만큼 행정명령으로만 추진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논리가 힘을 얻는 형국이다.

물가 흐름이 정책·시장 판단 좌우 전망

이처럼 상고 추진과 법리 다툼이 이어지는 가운데, 법원 판단의 분수령은 관세의 실제 경제적 파장으로 모아지는 양상이다. 당초 시장에서는 대규모 관세 인상이 미국 소비자물가를 빠르게 자극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기업들의 재고 축적과 마진 흡수, 수입처 다변화 등이 초기 충격을 완충하며 상승 압력을 늦추고 있다. 많은 기업이 관세 시행 전 대량의 중간재를 확보해 가격 전가를 미뤘고, 해외 수출기업들도 가격을 낮춰 부담을 일부 떠안았다. 이로 인해 가구·가전 같은 일부 품목에서 국지적 인상은 나타났으나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그러나 이러한 완충 장치가 장기적으로 지속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창고에 쌓아둔 재고는 점차 소진되고 있으며, 기업의 마진 흡수에도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최근에는 중국을 대체해 베트남, 멕시코 등으로 수입처를 다변화하는 방식 역시 뚜렷한 비용 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관세 대상국마저 계속 확대되면, 향후 물가 전가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전문가들도 관세의 중장기적 파급을 예의주시했다. 블룸버그가 집계한 8월 말 전문가 설문에서는 “관세 효과로 내년 상반기 CPI가 0.3~0.5%p 추가 상승할 수 있다”는 응답이 과반을 차지했다. 자동차와 전자제품, 가구 등 생활 밀접 품목들이 단기 방어에 힘을 쏟고 있지만, 기업의 영업이익 감소가 누적되면 이 같은 전략은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단 지적이다. 이 같은 분석은 단순 인플레이션 우려를 넘어 관세 자체의 경제적 효용성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진다.

시장에선 내년 초로 예상되는 대법원 최종 판결에 해당 시점의 물가 흐름이 핵심 참고 지표로 작용할 가능성을 점치는 분위기다. 물가가 현재의 완만한 상승세를 유지한다면 트럼프 행정부 측 논리가 상대적으로 힘을 얻을 수 있지만, 반대로 관세 효과가 누적돼 인플레이션이 본격화하면 시장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관세 조치에 제동을 걸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다. 미 연방대법원의 심리에 미국 경제는 물론 글로벌 무역 질서 전반의 향배가 달려 있단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Picture

Member for

10 months 4 weeks
Real name
안현정
Position
연구원
Bio
정보 범람의 시대를 함께 헤쳐 나갈 동반자로서 꼭 필요한 정보, 거짓 없는 정보만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오늘을 사는 모든 분을 응원합니다.

"폴란드 외 국가, 미군 감축할 수도" 강경 발언 내놓은 트럼프, 주한미군 손댈 수 있나

"폴란드 외 국가, 미군 감축할 수도" 강경 발언 내놓은 트럼프, 주한미군 손댈 수 있나

Picture

Member for

10 months 4 weeks
Real name
김서지
Position
기자
Bio
매일같이 달라지는 세상과 발을 맞춰 걸어가고 있습니다. 익숙함보다는 새로움에, 관성보다는 호기심에 마음을 쏟는 기자가 되겠습니다.

수정

트럼프 "폴란드엔 미군 계속 주둔, 다른 국가는 감축 고려"
韓에는 미군 주둔 대가로 군사 기지 부지 소유권 요구해
주한미군 감축에 제동 거는 美 의회, 국익 검토 필요성 주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방비를 많이 지출하는 폴란드에 주둔한 미군은 유지할 계획이지만, 다른 나라의 경우 감축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의 '안보 무임승차'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드러낸 이후 얼마 되지 않아 재차 미군 재배치 의미를 표명한 것이다.

트럼프의 '폭탄 발언'

3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 카롤 나브로츠키 폴란드 대통령이 방문한 자리에서 ‘미군이 폴란드에 남느냐’는 질문에 “폴란드가 원하면 더 많은 군인을 두겠다”며 “우리는 폴란드와 정말 많이 동조하고 있으며, 매우 특별한 관계”라고 말했다. 해외 주둔 미군을 ‘비용’으로 인식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추가 배치 가능성을 언급하며 이례적 행보를 보인 것이다.

폴란드에는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 합병 당시 처음 미군이 배치됐으며,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주둔 병력이 늘어 현재 1만 명 안팎의 미군이 머무는 중이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은 폴란드가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의 4.12%를 국방비로 지출했고, 올해도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 중 가장 높은 4.7%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언급하며 “매우 좋은 일”이라고 치켜세웠다.

이어 그는 “우리는 폴란드에서 군인을 없앤다는 생각조차 한 적이 결코 없지만, 다른 나라들에 대해서는 이를 생각하고 있다”고 발언했다. 변화한 안보 환경에 맞춰 전 세계 미군 배치 조정을 검토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기조를 재확인한 것이다. 이에 따라 약 2만8,500명의 미군이 주둔 중인 한국도 향후 상황을 예의주시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이재명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주한 미군 감축을 고려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친구이기 때문에 그걸 지금 말하고 싶지는 않다”며 확답을 피한 바 있다.

韓 '안보 무임승차' 지적하기도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 자리에서 이 대통령과 이전 정부의 방위비 분담금(SMA)에 대해 이야기하던 도중 돌연 주한미군 기지 부지의 소유권을 요구하기도 했다. 평소에도 한국을 향해 ‘안보 무임승차론’을 제기하던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으로 방위비 문제를 미군 기지의 소유권과 연관지은 것이다. 그는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주한미군의 감축 가능성에 대한 질의에 “한국에는 4만 명이 넘는 (미군) 병력이 있다”면서 “내 첫 임기 때 한국은 주둔 비용을 내기로 합의했지만, 조 바이든이 들어오고 나서 방위비를 지불하지 않기로 했고 (미국은) 수십억 달러를 포기했다”고 답변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수십억 달러를 받고 있었지만 바이든이 어떤 이유로 이를 끝냈다”면서 “그들(한국)은 ‘우리는 미국에 땅을 제공했다’고 말했지만, 나는 ‘당신들은 땅을 주지 않았고 우리에게 빌려준 것(lease)’이라고 말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빌려주는 것과 주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며 이 대통령을 향해 “내가 하고 싶은 일 중 하나는 한국에 우리가 큰 요새(fort)를 가지고 있는 땅의 소유권을 달라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한국도 기여를 했지만, 우리는 요새를 짓는 데 많은 돈을 썼다”며 “대규모 군사 기지가 있는 부지의 임차권을 없애고 소유권을 얻을 수 있는지 알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발언은 방위비를 올릴 수 없다면 땅으로라도 이익을 취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으며, 분담금을 추가로 납부하지 않을 경우 주한미군을 감축하겠다는 일종의 압박으로도 읽힌다.

美 의회, 주한미군 철수 반대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실제 주한미군 감축을 단행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미국 의회가 주한미국 감축에 강력한 반대 의견을 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 상원 군사위원회가 지난 7월 공개한 2026 회계연도(2025년 10월~2026년 9월) 국방수권법안(NDAA) 요약본에는 “국방장관이 국익에 부합한다고 의회에 인증할 때까지 한반도에서 미군을 감축하거나 연합군사령부에 대한 전작권을 변경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미 합참의장과 미 인도태평양사령관, 주한미군사령관에게 주한미군 감축에 따른 위험 평가를 실시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미 의원들은 주한미군 감축은 국익·위험 평가 없이 불가능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트럼프 행정부의 주한미군 감축에 반대했던 마이크 로저스 공화당 의원은 “어느 누구도 한국처럼 중요한 지역에서 미군을 무분별하게 철수하지 못하도록 의회가 견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로저 워커 공화당 의원 또한 “명확한 전략적 평가 없이 한반도에서의 주둔을 줄이는 것은 동맹을 위태롭게 하고 적을 대담하게 만든다”고 지적했으며, 잭 리드 민주당 의원도 “인도·태평양의 안정은 전진 배치된, 신뢰할 수 있는 미군에 달려 있으며 한국은 그 전략의 핵심축”이라고 짚었다.

외신은 미 상·하원이 통과시킨 이 법안이 한국 내 미군 전력 감축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로이터통신은 “이 조항은 미 행정부가 주한미군을 감축하거나 전작권 전환을 강행하지 못하도록 법적 안전장치를 마련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의회가 정권 변화에 따라 주한미군 철수 시도가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를 반영해 이 같은 제한을 법으로 명문화했다는 설명이다. 미국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해당 조항이 한국 내 미군 철수를 막기 위한 입법 장벽 역할을 한다”고 진단했다. 의회 승인 및 고위 군 관계자들의 독립 평가를 감축 조건으로 내걸어 관련 논의 자체를 구조적으로 어렵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미국 의회가 오히려 주한미군 감축의 길을 열어줬다는 해석도 나온다. 한 외교 전문가는 "국방수권법이 승인한 예산을 주한미국 감축에 사용할 수 없다고 규정한 2019년 회계연도(트럼프 1기)와 달리, 이번에는 이 같은 제어 장치가 없다"며 "국방부 장관의 인증이 있고, 의회가 협조한다면 언제든 주한미군 감축을 허용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Picture

Member for

10 months 4 weeks
Real name
김서지
Position
기자
Bio
매일같이 달라지는 세상과 발을 맞춰 걸어가고 있습니다. 익숙함보다는 새로움에, 관성보다는 호기심에 마음을 쏟는 기자가 되겠습니다.

'불패' 깨진 강남 아파트, 6·27 대출 규제에 서울 경매 시장 얼어붙어

'불패' 깨진 강남 아파트, 6·27 대출 규제에 서울 경매 시장 얼어붙어

Picture

Member for

11 months
Real name
김세화
Position
연구원
Bio
공정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세상의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국내외 이슈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분석을 토대로 독자 여러분께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하겠습니다.

수정

8월 강남구 아파트 경매 낙찰률 0%
서초구는 1건, 송파구도 4건에 그쳐
다만 집값 하락 신호로 보긴 어려워

정부가 '6·27 대출 규제'를 통해 대출 한도를 최대 6억원으로 묶으면서 지난달 서울 아파트 경매 시장이 크게 위축됐다. 특히 '불패'로 불리던 강남권의 낙찰률이 급감했다. 강남구는 단 한 건도 낙찰되지 않으면서 낙찰률 0%를 기록했고 서초구와 송파구도 각각 1건과 4건에 그쳤다. 다만, 전문가들은 부동산 시장의 선행지표로 여겨지는 경매 시장의 주요 지표가 주춤함에도 이를 집값 하락의 신호로 해석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한다. 강도 높은 규제로 거래가 막혔을 뿐 수요가 여전히 살아 있어, 향후 정부의 부동산 대책에 따라 시장 흐름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서울 아파트 낙찰률 3.1%p 하락한 40.3%

4일 경·공매 전문기업 지지옥션에 따르면 8월 한 달간 서울 경매 시장에 나온 아파트 221가구로 이 중 89가구가 낙찰됐다. 낙찰률은 40.3%로 전월(43.4%) 대비 3.1% 포인트 하락했다. 평균 경매 응찰자도 7.79명에서 7.76명으로 소폭 감소했다. 낙찰가율은 96.2%로 전월 95.7%와 비교해 0.5% 포인트 높아졌다. 업계에서는 6·27 대출 규제가 경매 시장 위축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한다. 수도권 주택 경매 자금 조달 한도를 6억원으로 제한한 데다, 낙찰 후 6개월 내 전입 의무까지 부과되면서 투자 수요가 위축됐다는 평가다.

자치구별로 보면 강남구의 낙찰률이 0%를 기록했다. 8월 한 달간 강남구에서는 삼성동 힐스테이트 2단지, 청담동 청담린든그로브, 삼성동 그라나다 등이 매물로 나왔으나 모두 유찰됐다. 7월에는 23건 중 4건이 낙찰됐으나, 이달에는 한 건도 팔리지 않았다. 서초구에서는 반포동 삼호가든맨션 1건만 매물로 나와 두 차례 유찰 끝에 감정가의 약 73%인 4억5,100만원에 낙찰됐다. 송파구는 8건 중 4건이 낙찰됐다. 잠실르엘 등 인기 단지에서 낙찰 사례가 나왔으나, 일부 아파트에서는 감정가보다 낮거나 비슷한 수준에서 낙찰됐다.

반면, 성동·동작구 등 한강변 단지나 재건축 단지처럼 투자 가치가 높다고 평가되는 곳에는 '미래 가치'를 노린 현금 부자들이 몰려 감정가를 크게 웃도는 고가 낙찰이 이어졌다. 낙찰가율이 가장 높은 곳은 리모델링 추진 단지인 동작구 사당 극동아파트 전용 47㎡(131.8%)로, 지난달 13일 경매에서 8억9,900만원에 팔렸다. 성동구 금호동에 위치한 전용 85㎡ 두산아파트도 감정가의 116%인 12억7,600만원에 낙찰됐다. 재건축을 추진하는 양천구 목동 신시가지 14단지 전용 108㎡는 감정가의 114.1%인 23억 8,500만원에 낙찰됐다.

6.27 규제 전까지는 아파트 경매 시장 활기

6.27 대출 규제 전까지만 해도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에 수요가 몰리며 경매 시장이 활기를 보였다. 실제로 지난 5월 강남구에서만 9건의 경매에서 낙찰이 이뤄졌는데 매각가율이 103.4%를 기록했다. 매각가율이 100%를 넘었다는 것은 감정가보다 비싸게 낙찰됐다는 의미로, 일반적으로 경매 매물의 수요자가 많아질수록 매각가율은 높아진다. 이 시기 진행된 서울 강남구 래미안포레 전용 101㎡ 경매에는 20명이 몰리며 18억2,150만원에 매각됐다. 같은 면적의 래미안포레가 최근 일반 매매에서는 17억원에 거래됐다.

송파구도 같은 달 99.8%의 높은 매각가율을 기록했다. 4월 한 달간 송파구에서 이뤄진 아파트 경매 9건의 매각가율은 108.8%였다. 이 기간 서울 평균 아파트 경매 매각가율이 87.5%였던 것과 비교하면 강남권의 투자 수요가 집중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여의도와 목동에도 경매로 아파트를 낙찰받으려는 수요가 몰렸다. 지난 4월 서울 여의도 시범아파트 전용 157㎡는 40억8,000만원에 낙찰되며 최고가를 경신했다. 전월 같은 면적의 일반 매매가 39억~40억원 사이로 거래된 점을 감안하면 시세보다 비싸게 낙찰된 셈이다.

다만 당시 과열된 경매 시장과 달리 일반 매매 시장은 한산한 분위기를 이어갔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의 자료를 분석해보면 지난 4월 서울 강남구 아파트 매매는 105건으로 전월(750건) 대비 약 86% 거래가 감소했다. 같은 기간 송파구도 751건에서 123건으로 거래가 급격하게 줄었다. 서초구는 같은 기간 620건에서 48건으로 매매가 급감했다. 전문가들은 올해 3월 토지거래허가구역(토허구역)이 확대 재지정되면서 실거주 의무가 생긴 강남 3구 아파트를 중심으로 투자자들이 경매 시장으로 눈길을 돌린 것으로 분석했다.

지난해 말 탄핵정국에는 경매 시장 얼어붙어

부동산 매수 심리는 이전에도 정부의 부동산 정책과 대출 규제, 정치적 불확실성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지난해 말에는 12.3 비상계엄에 따른 탄핵 정국이 본격화하면서 서울 아파트 경매 시장이 움츠러들었다.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서울 아파트 경매는 총 244건 진행됐는데, 이 중 103건만 낙찰됐다. 낙찰률은 42.2%로 전월(48.2%) 대비 6%포인트가량의 큰 낙폭을 보였다. 낙찰가율도 한 달 전 94.9%보다 3.0%포인트 떨어진 91.9%로 집계됐다. 응찰자 수 역시 6.21명으로 한 달 전과 비교해 0.4명 줄었다.

불황기에도 불패라 불리던 강남3구 대단지 아파트에서도 이 시기 유찰되는 사례가 나왔다. 지난해 12월 중순 경매로 나온 송파구 대장주인 잠실엘스 전용 119㎡는 응찰자가 없어 유찰됐다. 대치동 강남구 대치아이파크 전용 120㎡도 계엄령 직후인 지난해 12월 5일 경매를 진행했으나 새 주인을 찾는 데 실패했다. 감정가가 38억9,000만원으로 40억원대 수준인 같은 평형대 시세 대비 1억원가량 저렴했고, 마찬가지로 실거주 의무를 피할 수 있었지만, 정치적·경제적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응찰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지난해 말부터 이어진 정치적 혼란에 더해 새 정부의 강도 높은 대출 규제와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3단계 시행 등으로 인해 경매 시장의 불확실성이 단기간에 해소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이달 중 정부가 부동산 공급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당분간 관망세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다만 전문가들은 강남3구 경매 침체를 곧바로 집값 하락 신호로 연결 짓기는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대출 규제의 영향으로 거래가 제한됐을 뿐 수요 자체가 사라진 건 아니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고가 아파트가 잇따라 유찰됐음에도 인근 매매가격은 뚜렷한 하락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결국 향후 시장 흐름은 규제의 지속 여부에 달려 있다. 시장에서는 정부가 대출 규제를 완화할 경우, 강남권의 낙찰률은 빠르게 반등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대로 규제가 장기화되면 유망 단지를 중심으로 한 국지적 과열만 심화되고 일반 단지는 거래 절벽에 갇히는 양극화 구조가 고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강남 낙찰률 0%는 시장이 무너졌다기보다 정부 규제로 거래 자체가 봉쇄된 결과”라며 “규제 완화 여부가 경매시장 정상화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재건축 단지 쏠림이 심해지면 일반 아파트와의 가격 격차가 벌어지고, 실수요자들은 더욱 밀려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Picture

Member for

11 months
Real name
김세화
Position
연구원
Bio
공정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세상의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국내외 이슈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분석을 토대로 독자 여러분께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하겠습니다.